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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읽기 ㅣ 세창명저산책 90
임채광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2월
평점 :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과연 칸트가 요구한 바 있는, '스스로 따지고, 알고 그리고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한가? 자유롭고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도는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을까? (p.6)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에리히 프롬에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나 역시 '사랑의 기술'과 '자유로부터의 도피' 두 권에 도전했다. 사랑은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거로 생각했던 내게 멈춤이 없는 노력을 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남긴 '사랑의 기술',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무엇에 대한 자유인지를 놓고 고찰과 자아 정립을 목적으로 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어쩌면 나의 요약을 보고 뭐라는 거야, 하며 비웃을 분들도 있을 듯하다. 맞다. 분명 읽기는 읽었는데 글씨만 읽은 느낌이었다. 그저 지성인이 되고 싶은 우매한 나의 발버둥이랄까.
몇 년이 흘러 이 책을 만났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읽기” 사실 처음에는 나 스스로 실소가 나왔다. 몇 년을 책을 읽어놓고 이렇게 '설명서'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마음에서.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했고, 머잖아 다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을 예정이다. 물론 나이를 먹으며 저절로 이해되거나 감상이 바뀌는 책이 있음을 안다. (최근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며 뼛속까지 감동했다) 하지만 이렇게 '돕는 책'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굳이 먼 길을 둘러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프롬의 의도와 무관히 그의 책이 히틀러를 포함한 독재 정권과 불의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주요 관점을 제공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p.39)
프롬에 따르면 중세 사회가 물론 근대 사회와 비교하여 볼 때 “개인의 자유가 결여 ”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자유가 전체적으로 억압되거나 통제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p.76)
프롬에게 인도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신뢰하고 도덕적 판다의 근거를 제공하는 윤리적 규범이다. (p.138)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을 때 그가 말하는 것이 내가 아는 개념과 다른, 그 이상의 이념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소속감을 위해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파괴한다'라는 말이 지독한 방향으로 들렸던 것. 물론 여전히 나는 그처럼 분석적으로 탐구할 그릇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가 하고 싶던 진짜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자본이나 종교, 이념 등을 자유롭게 가지는 것 너머, 정체성을 가지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위협이나 억압을 받지 않는 것만이 자유가 아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살아가는 일이라는 막연한 정리도 해본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정확히는 에리히 프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아직도 내가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지를 실감했다. 나는 또 분명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게 버거운 책들을 탐하겠지만, 사실 탐할 게 없어 무료한 일상보다는 올려다볼 것이 많은 앉은뱅이 지식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