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 보여도 슬픔을 삼키는 사람이라
조종하 지음 / 이상공작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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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고흐잖아. 가난한 예술가의 표상이 되고 싶어 하잖아. 조흐조흐.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데….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p.132) 

 



읽을 책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였는데, 덥석 그의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즐거워 보여도 슬픔을 삼키는 사람이라니. 오히려 반대의 사람인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슬퍼 보여도 즐거운 사람인 편이 천 배는 더 행복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슬픔을 삼키는 공허한 이야기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친구를 '가난한 예술가의 표상, 고흐' 라 칭하는 친구는 친구인가. 그의 말은 고흐처럼 시대를 아우르는 예술가가 되라는 말일까, 유명하지 못한 친구를 향한 걱정일까. 알 수는 없지만, 작가는 왜 구태여 작게 대답을 하는가. 속상한 마음으로 읽다 문득 '곽진언의 자랑'을 보고 눈물이 핑 돈다. 의기소침해지지 말라고, 슬픔은 삼키지 말고 뱉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에게인지, 나에게인지. 

 




 

다짐했다. 나는. 그날 깊숙이. 살아가는 내내 절대로 내 사람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고. 타인의 시선과 잣대를 신경 쓰지 말고,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소중한 마음으로 간직해야겠다고. (p.173) 


 

만약 그의 글이 주저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진즉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슬픔이나 말을 삼키는 사람인지는 모르나, 그것을 다져 진주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 수 있는 사람임을 읽는 중간중간 느꼈다. 자존심을 올바르게 쓰는 법을 잊지 않으려 꾹꾹 눌러 담을 수 있고, 불안함이 들면 그러지 말자면서도 글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다. 진짜 여유가 없어 불안해하지만, 자신이 왜 불안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아파도 스스로 단단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이란 거다. 

 


나는 언제인가부터 슬픔이 뚝뚝 흐르는 책도 못 읽고, 영화나 드라마도 못 본다. 감정이입을 너무 해 힘겨워서다. 그의 책을 그런 두려움으로 열었으나, 그의 글들은 보송보송했다. 그래서 이 문장들은 묘한 응원을 준다. “너도 아팠어? 나도 그랬는데 나아졌어.” 하는 듯한 응원 말이다. 힘들어 보지 않은 이의 위로는 겉핥기가 되기도 하지만, 아파본 사람의 위로는 공감과 울림을 준다. 그의 문장들은 그렇게 토닥임 같았다. 

 



 

타인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다. 아 그저 나는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매 순간 감각적으로 느끼게끔 태어난 사람이구나! 혹은 나는 사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씩 웃으면 되는 것이다. (p.67)

 



이 책에서 내가 건진 성과를 말하라면, 위의 문장들로 대신하고 싶다. 종종 말했듯, 늘 휘둘리며 살아온 나는 요즘 “어쩌라고”를 연습 중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내뱉기 위해. 그런데 그의 문장을 읽으며 타인에게 내뱉을 말은 연습해놓고 나를 달래줄 말은 연습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아, 나는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구나!”, “나는 이제부터 나를 더 사랑해줄 거다.”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나에게 한 발 더 다가선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무명배우라고 표현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서점사의 책 소개에 쓰인 무명배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글이 잘 팔리는 글이든 아니든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섹시하고 멋지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인의 지나온 길을 소중히 안고 사는 사람은 무명이 아니라고 말이다. 진지한 관종이 되어 자신을 내던진 이를 이제는 우리가 알아봐 줄 때가 아닐까.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 표면 위로 드러날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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