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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 청나라 혼쭐내고 백성을 위로한 영웅 이야기 ㅣ 너른 생각 우리 고전
박은정 지음, 조정림 그림 / 파란자전거 / 2022년 3월
평점 :

오랑캐가 물러나니 검은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하늘이 맑아졌다. 창과 칼을 든 갑옷 입은 병사들은 가지와 이파리가 달린 나무로 변했고 천지에 울리던 북소리와 함성도 사그라졌다. (p.135)
감히 조선을 넘본 너희를 모두 죽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라의 운이 좋지 않은 때이니 너희를 살려 보낸다. 그러니 세자마마와 백성을 조심히 모셔가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 너희를 하나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다. (p.151)
두 번째 읽는 박씨전이다. 분명 읽은 내용인데 어른이 되어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새롭다. 그 사이 병자호란을 더 알고, 조선 시대의 시대상이나 여성들의 처우 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을 새삼 이해했다. 박씨전을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이야기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박 씨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유추하고, 어떤 연유에서 일어난 일인지를 상상했다. 또 용골대를 혼쭐내는 장면에서는 인조의 치욕스러운 '삼전도 굴욕'이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만 국한될 감상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분명,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에 풍덩 빠져 문학적 의미들을 찾는다면, 두 번째에는 역사적 의미들을 찾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 자칫 지루하다고 여겨질 고전을, 새로운 문장으로 살려냈다. 문장이 깔끔하여 고전의 소재로 현대의 소설을 써낸 듯했다. 일러스트 역시 어찌나 익살스럽고 재미있는지, 이것은 고전인가 만화인가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지겨워질 만하면 익살스러운 일러스트가 등장해 분위기를 쇄신시켜준다. 아이가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면 그저 조선 시대로는 드문 여성 영웅이 등장하는 소설이고, 한글 소설임만 알려주어도 좋겠고, 선입견이나 여성의 입지 등에 대해 알려준다면 문학적 의미는 충분히 학습되리라 생각한다. 또 소설의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인조, 김자점, 임경업, 이시백, 용골대 등 박씨전 속 인물들과 실제 인물들을 비교하는 등의 학습까지 한다면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아이가 배워가는 것이 많은 책이다.
어렵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독후활동이 수록되어 있어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박씨전은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여러 과목, 여러 단원에 걸쳐 등장하는데 교과서에서 지문으로 짧게 만나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학습된 정답”을 찾으려 할 텐데,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문학적 의의, 역사적 의의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야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다. 세월이 흘러도 고전문학의 가치는 변함없음을 많은 이들은 안다. 물론 고전을 잘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나, 이렇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 우리 아이들도 고전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