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저는 00이랑 xx랑 꼭 같이 먹어줘야 한다는 속칭 '국룰'적 정서에 꾸준히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먹어'줘'야 한다는 표현부터가 벌써 뒷걸음질을 치게 합니다. '줘'라는 글자에서 남의 설렁탕에 다짜고짜 깍두기 국물을 부어놓고, 이게 제대로 먹는 거라며 껄껄대는 자들과 비슷한 악취를 느낍니다. (p.185)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웹툰을 보지 않아 들깨이빨이라는 작가님을 몰랐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 주변인 3명이나 “들깨이빨!”이라고 외쳐서 유명한 분임을 알았다. (죄송함돠)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간절히 읽고 싶었던 이유.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ENFJ(전 세계의 2~3%, 대한민국 1% : 말하는 직업, 작가나 디자이너 군에 많음)인 나는 분명 꿔보의 삶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도망치듯 휴직계를 내고 보니, 와 이거 뭐야! 혼자 식탁에 앉아서 노는 거 왜 이렇게 재밌지? (비록 꿔보테스트는 “활발한 활동가”로 판명 났지만) 나는 문득 꿔보로 사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작가님의 책을 만났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사람 나랑 비슷한 점이 꽤 있었다. 식자재 자체의 맛을 탐험하고, 통한 쪼가리, 계란 한 알에도 의미를 두고 바라본다. 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에 흥미와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스타일같다. 뭐 물론 다른 점도 많다.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채소를 “그나마” 맛있게 먹는다니! 그나마는 채소에게 붙을 말이 아니다. 채소는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라구요! 

 

서리태 : “나는 지금 건강식을 먹고 있다”라는 블랙푸드 특유의 플라시보 효과도 톡톡히 느낄 수 있죠.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날, 큰맘 먹고 손을 떨며 주문합니다. (P.45)

어쨌든 지금은 채소 맛의 광활한 스펙트럼을 탐험하는 게 무척 재밌습니다. (P.31)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꽤 많이 낄낄거렸다. 만화가들은 천재라는 “호적같이 쓰는 남자”의 말에 동의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대단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술술 풀어내는 문장력도 대단하다. 군데군데 그려진 그림도 재미있고, 레시피같지 않은 레시피들은 흥미롭다. (몇 개 따라 해본 것은 안 비밀)

 

“쓰고 보니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P.215)”

 

사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글을 쓰고 싶어 병을 앓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는 몰랐던 것 같다. 글이 좋아 글이 쓰고 싶은지, 좋은 글이 쓰고 싶은지, 글을 써서 다른 뭔가를 얻고 싶은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최근 식탁꿔보로 살면서 내가 꽤 행복한 사람이고, 어쩌면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작가님의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더라.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먹는 것, 책을 읽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그 모든 것이 “행복”이 주된 목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심플한 상태로 만들고 나면 그 모든 것이 더 명확해지는 데 말이다. 작가님의 글을 통해, 나는 명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까워진 느낌이다. 작가님의 '먹이'가, 나에게도 '행복의 도구'가 되어 기쁘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서리태 한 봉지를 사주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