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과 어니스트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7
레이먼드 브리그스 지음, 장미란 옮김 / 북극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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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즐겨보지 않아도 낯설지 않은 몇몇 그림책들이 있다. 아마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 꼬마에게는 눈사람 아저씨보다 “코끼리와 버릇없는 아기”가 더 인기였지만, 레이먼드 브릭스의 책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특유의 따뜻함과 섬세함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따뜻함을 담은 작품이 바로 이 “에델과 어니스트” 아닐까? 

 

몇 해 전 같은 제목으로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라는 인사를 하며 한 우유배달부와 가정부, 가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공개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 만날 때보다 두 번 세 번 만날 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레이먼드 브릭스라는 대단한 작가님의 부모 이야기이기에 특별하게 느꼈지만, 만날수록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 이야기 같아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물론 에델과 어니스트가 겪는 상황은 우리 부모님과 다르겠지만, 모두 각자의 역사를 품고 가족을 일구어가는 과정은 같기에 더 찡하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매력이라면, 두 번째 매력은 영국의 현대사를 한눈에 만난다는 것을 꼽고 싶다. 영국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노동당의 집권 등 장면마다 런던의 풍경, 역사적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진격이나 히로시마 폭탄, 달 탐사선, 텔레비전, 전화 등의 출현 등 세계적인 역사의 순간들도 만날 수 있어 마치 현대사 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신문물을 만나는 에델과 어니스트의 모습에서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봤던 이 이야기를 만나며 몇몇 부분에 인덱스를 붙였는데, 에델과 어니스트가 헐빈한 신혼살림을 차리고도 신이나 우리는 부자라고 외치는 장면, 유리창이 다 깨지고 현관문이 나뒹구는데도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는 모습, 엄마의 마지막 모습 등이었다. 

 

개인적으로 책과 영상이 모두 만들어진 작품을 만날 때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영상물이 책보다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같은 이유로 나의 상상력이나 이해가 아닌 “설정된 이해”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에델과 어니스트” 역시 영상물도 매우 좋았으나 책이 나에게 주는 여운이 더욱 컸다. 사실 책보다 영상을 먼저 만나면 책을 읽을 때도 그 영상의 장면들이 복기 되기 마련인데, 그림의 잔잔함 때문인지 온전히 책에만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보통”의 힘을, 보통만큼의 행복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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