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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걷고 또 걷다 보면, 내 열망과 걱정으로부터, 내 슬픔과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이 좋다.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목이 말라 물을 찾게 될 때까지 걷다 보면 어느덧 나를 괴롭히던 그 문제가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던 나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p.53)
나는 월든을 두 번 읽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세 번째 읽고 있다. 첫 번째는 책이라면 전화번호부라도 읽던 맹렬한 독서기였고, 두 번째는 몇 년 전 독서 모임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두 번의 월든은 내게 그리 깊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소로가 현실로부터 도망쳐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월든을 꺼내 든 것은, 정여울이 만난 '자신만의 온도'를 나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는 일주일 내내 “역시 갓여울”을 외치게 만든 장본인 소로를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다.
요즘의 나는, 어제의 나에 비해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게 산다. 잃어버린 것도 많겠지만 얻은 것은 더 많은 느낌이다. 분명 타인의 잣대로는 놓'친' 것이 더 많을 것인데, 나는 “놓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괜찮아진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나아져 있음을 더 많이 느꼈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지금 나를 위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관계와 접촉들에서 오는 피곤함, 감정노동을 내려놓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깊은 희열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다(p.276)'라고 했던가. 소로가 또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지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만 해도 왜 하필 월든일까 생각했다. 내가 큰 감흥이 없었던 책이기에 작가의 열광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소로는 내게 울림을 준다. “평화로운 것은 사랑하는 엄마랑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천천히 마시는 우유 같은 것”이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수많은 평화로운 순간들을 그것이 평화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냈다 싶어 아득해졌었다. 그런데 소로는 빗속에서 자신이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로도 정여울도 자신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행복의 가치를 느끼는 법을 알아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적정온도는 스스로에게도 한발 물러서 줄 수 있고, 타인이나 물건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함을 통해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오두막집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오래 아팠던 곳을 보듬으며 치유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의 고독이 그토록 아름답게 반짝인 것은 처음이었다. (...) 자연 속에 폭 안겨 있는 작은 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존재임을. (p.301)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우리는 고독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해 왔음을 깨달았다. 분명 함께 있는 시간도 의미가 있지만,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고독이 가지는 순기능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혼자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눈부신 단독자로 거듭나자(p.305)는 말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꿈을 생각해내느라 고민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뭐든 되어야만 한다'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느라 정작 오늘 하루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p.121)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지체했던 것 같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나의 압박감과, 내가 아이에게 가중한 쥐어준 '꿈'이라는 부담감까지. 나만 생각해도 여전히 흔들리고 휘청이면서도 아이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아이가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기를 기도하려 한다. 나 역시 각진 마음을 내려놓고 흔들리되 내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나도 마침내 나의 적정온도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모두가 여름일지도 나만은 봄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나만 움직이지 않고 이 자리에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싶다면 세상의 속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p.99)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이 이 책 전반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속도로 잘 걸어가는 것. 대신 대충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풍경도 보며 온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