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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ㅣ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1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2월
평점 :

인조는 광해의 실패를 통해 왕이 한 집단에 너무 의존해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서운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적당한 배분이 중요했다. 정책이나 결재만으로 배분이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가치와 마음을 공유해야 한다. 진심으로 같은 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P.199)
“후금이 성장하며 조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이로 인해 조선에는 척화파가 생겨났다. 후금이 민가의 마필을 빼앗아 달아나던 중 평안도관찰사의 유문을 손에 넣는 바람에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악화한다. 인조 14년,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이 조선을 침입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삼전도로 나가 항복을 한 전쟁”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병자호란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강하게 남은 병자호란은 배우 이덕화 님이 이마에 피를 줄줄 흘리며 삼전도에서 절을 하는, 삼전도 굴욕의 모습이다. 이게 나에게만 강한 인상은 아니었던지, 삼전도 굴욕은 조선 최고의 굴욕, 인조는 최악의 군주라 불린다. 늘 인조는 정말 최악의 군주인가, 다른 왕이었다고 한들 병자호란을 피할 수 있나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분을 제대로 짚어주는 책을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다 내 속을 시원히 풀어준 책이 한 권 등장했으니, 바로 임용한 소장님의 “병자호란”이다. 심지어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라니. 나는 역사를 잘 모르지만, 알고 싶어 좋아하는 역덕으로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임용한 소장님의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얼마나 재미있던가. 원래도 불구경,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지만 전쟁 구경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프로그램 아니었나. 그런 사람의 “시간순삭전쟁사”라니.
세종이었다면 일단 밤새도록 고민하면서 대신들을 불러모으고 해결책이 안 나오면 전체 관료회의라도 열어 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는 아무 말 없이 바로 비변사에 안건을 넘겼다. 그래도 노련한 비변사 대신들은 묘수를 찾아냈다. 묘수라기보다는 꼼수였다. “성문과 몇 군데를 수리하는 척합시다.” (P.95)
그 순간 인조는 본성을 드러내고 만다. “내 할 일은 이미 다했다. 이제부터는 경들의 몫이다.” (P.204)
개인적으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열린 눈과 귀”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완벽할 수 없으므로 적재적소에 알맞은 인재를 두기 위해 열린 눈으로 보고, 올바른 말을 듣는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조 본인도 장님에 귀머거리였고, 대신들은 그런 인조에게 선글라스와 이어폰을 끼워주는 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가 책을 너무 재미있게 쓴 탓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다가 여러 번 책장을 덮어야 했다. 분통이 터져서였다. 배낭도 메지 못할 양반님들에게 둘러싸여 그저 “나는 몰라”는 식의 정치를 했다. 요즈음처럼 총칼이 아닌 지식과 경제로 전쟁을 하는 시대에 인조처럼 정치한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모든 것을 빼앗긴 빈껍데기가 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총칼을 든 적에게도 대응하지 않는 리더가 보이지도 않는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을까. 인조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열린 눈으로 위기를 바라보고, 그 위기에 대한 바른 조언을 듣는 귀를 가진 리더만이 여러 위기에 노출된 지금 시기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했을 인조는 자신의 왕위를 유지했고, 싸움을 회피하여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잃게 한 김자점은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니 이어진 조선의 치욕과 멸망은 당연한 순서는 아니었나.
군대가 있어도 적을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은 군대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선명했다. 학창시절부터 품어온 궁금증도 다 풀었고,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거의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얻었다. 그런데 사실은 잘 몰랐을 때보다 마음이 더 착잡하다. 아마 그것은 우민이 아주 조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간다는 뜻이겠지.
이 책을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한 번만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이 책이 품은 이야기가 너무 크다. 그러나 이 품은 이야기들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제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야 할 우리의 내일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본 도서는 레드리버출판사에서 지원 받았으며, 리뷰는 전적으로 제 생각을 기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