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당신들
이주옥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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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배꽃은 피지 않을 테고, 나 또한 여기를 찾을 일이 없겠다며 돌아서는데, 문득 발끝이 간질거렸다. 내 안의 꽃대 하나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을까. 알 수 없는 기운이 뻗쳤다. 어쩌면 내 남은 날에도 꽃 한 송이 필지 모른다는 희망 같은 거 말이다. (P.68)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사실 책을 선물 받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에 닿았다. 내가 꽤 오래 “당신”이라는 말로 부르는 이가 있는데, 마치 그 사람을 부르듯 온 마음이 따뜻해지는 제목이라서 표지를 여러 번 쓸어보았다. 사람 첫인상이 중요하듯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나), 책의 첫인상도 꽤 큰 영향력을 지닌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선물을 받게 된 순서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꽤나 아프면서도 따뜻했다.






사람의 한 호흡이나 한 걸음이라도 자기만의 방식이나 의미가 있는 법. 사소한 일상에 조금은 추상적인 관념을 양념으로 버무리는 내 삶과 살림살이. 언제나 조금 성글고 손끝이 맵지 않아 어설프지만 그것이 내 사는 맛이다. (P.94)



2015년 등단, 등단 후의 첫 책. 지방신문에 오래 기고를 했다고는 하지만 첫 책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문장들은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은 너무나 내 마음을 옮겨 놓은 것 같아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타인의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내 삶을 내 방식으로 제대로 살아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그녀의 문장들을 읽었다.







담담하게 이제는 가야겠다는 그 마음 바닥에 깔린 생에 대한 미련을 어찌 당신이 모르고 우리가 모를까. 천년을 살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부모생존이고 가야할 때를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정한 목숨 아니던가. 마실 떠나듯이 한 세상 등질 수 있으면 내 생에도 진정 면 서는 일일 터, 떠나는 자 남은 자 서로 손 흔들며 웃을 수 있으면 진정 아름다운 별리겠지. 하지만 부모 자식간 진은 인연에 아름다운 별리라니. 영원히 서로를 품고 붙들 수 밖에 없으리라. (P.164)



내 나이도 어느덧 불혹을 앞두었으나, 나는 여전히 내 부모와의 이별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마치 떠올리면 안되는 큰 죄를 짓기라도 하는 듯, 단 한번도 그런 일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문단을 읽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내 엄마를 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또 내가 내 자식을 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저자의 말처럼 그런 날은 영원히 없으리라. 비록 나는 댓잎 서걱이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정확히 모르나, 가슴에 스산히 파고든다는 댓잎소리가 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시렸다.





오래 머물러야 할 것들이 자꾸 사라져 가는 세상(P.233)에서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렇게 순간의 오판과 오독으로 예기치 않은 길을 달리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러다 제 길을 찾아 다시 달리는 것이리라. (P.189)는 그녀의 문장은 나에게 잠시 흔들려도 괜찮다고, 마음이 닿는 만큼 원하는 자리에 서서 머물러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울컥했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쉴 틈 없이 살아왔는데, 너무나 많은 나의 역할들이 종종 어깨를 누르곤 했는데, 잠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당신들처럼 나의 당신들도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멀며, 때로는 곱고 때로는 밉다. 아마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당신일테고. 하지만 멀었다가도 가까워지고, 미웠다가도 곱기에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당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일 테다. 정확하고도 따뜻한 그녀의 문장에서 나의 당신들이 얼마나 귀한지를 또 한번 느낀다. 내가 누군가의 당신으로 살 수 있어 때때로 버겁지만 대부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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