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김준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치심의 치유가 이 영화처럼 단 2,3분 사이에 드라마틱하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수치심을 꺼내 놓아도 괜찮을 만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연결감이 생기는 데는 대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긴 시간을 빨리 건너뛸 지름신은 아직 없다. (P.84)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입니다.”라는 문장이 선명한 책을 받아 들고, 과연 나는 내 안의 바람들을 마주 볼 용기가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나는 꽤 오래 한가지 고민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아픔을 꺼내 본 적이 없다. 그저 묻어두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나도 내 아픔을 꺼내봐야지 하고.

이 책은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의 두 번째 이야기로, 증상부터 치유까지 일상으로 파고든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 등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게 잘난 척하거나 전문가의 딱딱한 말투가 아니라, 아는 오빠가 옆에서 편안하게 이야기해주는 말처럼 들려서 더욱 쉬이 읽힌다. 만약 이 말투가 딱딱했거나 전문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너무나 재미없는 책이었을 테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편안한 문장으로 이어진 의견과 인용된 수많은 문장들과 어우러져서 이 책의 진짜 맛을 느끼게 한다. 내가 본 영화는 더욱 깊은 공감을 자아내고, 내가 보지 못한 영화는 그 영화 자체가 궁금해질만큼 여러가지 마음이 복합적으로 든다. 여러 생각이 복합적으로 생겨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불었다.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는 절대로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P. 239)

속으로 참는 아이만큼 안쓰러운 게 또 있을까. 화가 나는데 화를 표현하지 않는 아이는 너무 안쓰럽다. 울고 싶은 눈으로 울음을 삼키는 아이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런데 사실 어른도 그렇다. 화가 나는 데 화를 못 낼 때 더 아프고, 슬픈 데 울지 못할 때 더 슬프다. 내가 나이를 먹어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힘들어 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살고, 더 깊은 트라우마를 갖곤 한다. 그래서 더욱 떨쳐 내기 어렵고 더 깊게 아파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의 아픔도 이렇게 좀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픈 것을 아프다고 묻어두기 보다, 이래서 아프다, 이런 점이 아프다고 꺼내 놓고 나면 덜 아프지 않을까, 수없이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적어봤다. 내가 어떤 것에 아프고, 무엇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늘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을 적어보니 참으로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크고 아프게 느꼈던 일인데, 막상 그것을 글로 적다 보니 생각보다 작은 일이었고, 별 것 아니라고 넘겨볼 수 있는 일이었고,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이 생각뿐일지도 모르지만, 내 아픔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만나게 될 이들이, 이 책의 사례에서 자신의 아픔을 조금 더 바라보고, 그로 인해 조금 덜 아플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에게도 꽤 담담한 치유의 말이 되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