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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 매일 흔들리지만 그래도
오리여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4월
평점 :
여전히 눈을 좋아한다. 눈을 좋아했던 그 사람 덕에 (p. 130)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어디서 책을 봐도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은 책을 보면 이 책은 읽었을까- 오늘 밤은 또 무슨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고. 어디서 커피향이 나면 내 생각이 난다고. 그 말을 들으며 참 고마웠었다. 분명 좋지 않은 모습도 많이 가진 나인데, 책과 커피라는 단어로 나를 기억해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돌아보면 난 참으로 같은 것을 오래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향을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 좋게 말하면 “한결같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말캉말캉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잘 모아놓은 예쁜 책의 느낌이랄까. 마치 동그란 통나무 쟁반 위에, 예쁜 돌을 줍고 꽃을 주워 한 상 차려놓은 소꿉놀이 밥상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 책에는 그렇게 많은 문장이 들어있지도 않고, 그림에 뭔가 많은 텍스트가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꽤 긴 시간 이 책을 잡고 있었던 것은 각각의 그림에서 나를 만나고, 내 이야기를 찾았고, 나의 기억들과 추억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떠오르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뜨거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 이라는 표현들에, 작가님도 사소한 것들도 추억으로, 기억으로 남겨두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특히 오리여인이 고향이라고 언급한 도시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다 보니, 친숙한 호수, 친숙한 지명 등에서 괜히 더 푸근했고.
- 일곱의 시커먼 밤과 일곱의 수없이 많은 별을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시커먼 밤처럼 물들어갔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별처럼 꺼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을까. 기다리는 이의 마음은 그 긴 밤보다 더욱 시커맸을 테고 기다리며 흘린 눈물은 하늘의 별보다 많았을 그런 밤이었다. (p. 118)
- 그때로 다시 돌아가려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같아질 수는 없었다. (p. 172)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있을 테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물건, 과거의 한 지점이 떠오르는 노래, 누군가와의 대화가 선명히 떠오르는 어떤 키워드.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온 마음이 따뜻해 질만큼 행복한 기억, 눈가가 빨게 질만큼 슬펐던 기억, 온 마음을 둥둥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음악 기타 등등. 이 책은 그런 것들을 참 많이 꺼내주었다. 마음에 담아두고 아주 가끔 혼자 꺼내보던 것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예쁜 추억으로 리메이크 해준 기분이었다. 오늘만 해도 좋은 추억을 쌓았다. 이번 주만해도 돌아보면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추억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오리여인처럼 내 방식으로 간단히 기록했다. 훗날 돌아볼 때 포근한 추억하나 만들어두려고. 오늘, 이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 그래서 오늘을 더 여실히 살아야 된다는 말을 요즘에는 마음 깊이 느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