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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평점 :

결국에는 외로움만 남았다. 사방에 그런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만 남았다. (p.97)
주의사항 1 : 혼자 있을 때 읽지 말 것.
주의사항 2 : 마음이 힘겨운 날에는 읽지 말 것.
섬뜩하여 추운 느낌이 들거나 잠 못 이룰 수 있으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 3.
시간이 넉넉할 때 읽을 것. 중간에 덮을 수 없을 테니.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공포영화를 못 본다. 하나 잘못 보고 나면 겁이 많고 상상력이 워낙 넘치다 보니 사소한 현상에도 깜짝 깜짝 놀래서 일상생활도 어려워진다. 30년에 이르는 독서생활에서 스릴러, 호러, 범죄 등의 장르는 사랑하는 애거서와 코난도일까지 합쳐도 100권 가량 밖에 읽지 않은 것 같으니 평소 얼마나 겁이 많은지, 상상하실 수 있을 터. 그런데 이 책은 표지부터 나를 잡아 끌었다. 인상적인 데뷔작이라니. 얼마나 욕심나는 문구인가. 내가 낼 책에도 이런 문장이 붙는다면 나는 한 달을 굶어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읽었고, 이러한 주의사항을 달아둔 채 리뷰를 시작해본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현실에서 상상도 해보고 싶지 않다. 딸이 사라진다면? 오, 이 문장을 쓰는 거 만으로도 심장이 저밋해서, 미칠 듯 불안해져서 감히 저 앞에 “나”의 라는 대명사를 붙이고 싶지도 않다. 아무튼 이 책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버스를 타고 간 뒤 사라진. 딸. 그 딸을 찾는 아버지. 본문은 아버지의 시선과 어머니의 시선이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사실은 처음엔 조금 정신이 없다. 이리 저리 빠르게 진행되어 다소 어라, 뭐지- 했는데,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책의 마지막 장이었다. 분명 시작은 어라, 이 책 재미있나? 뭐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이 들자마자 다 읽어버리는 책이라니! 문장이 간략하고 선명하게 묘사하는 덕분에 어려운 느낌이 전혀 없고, 몰입이 대단하다. 간혹 이런 류의 책들이 문장이 너무 길어 앞의 내용이 뭐였는지 잊어버리게 까지 만드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감이 전혀 없다. 완전히, 정말 깊게 몰입한다.

사실은 읽는 동안 괴로웠다. 리나 생각에 미칠 것 같았고, 불안함이 나를 엄습했다. 곁에 있다면 어떻게든 무엇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주고 싶을 만큼 나는 몰입해있었고, 아파했다. 그렇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언제인가 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절망했던 적이 있었는데… 생각하며 한참 앉아있다가 생각했다. 아. 도가니를 읽었을 때구나. 하고. 어른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니 오히려 어른이 아이보다 못한 상태로 나의 실익을 위해 누군가의 존엄성을 누르는, 미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거기서 오는 분노와 좌절. (어쩌면 분노를 넘어서는 더 깊은 절망) 그리고 그런 책을 읽고 덮은 뒤 현실이 아님에 감사하는 묘한 아픔.
단순한 스릴러를 지나 생각할 거리를, 반성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이 책은 분명 큰 의의를 지닌다.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많은 생각을 남긴다. 사실은 그래서 더 힘겹지만. 집에서 혼자 보내야 할 시간이 많은 요즘, 한나절 순삭에 완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몰입감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