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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올리버는 메일리 부인이 애써 슬픔을 억누르며 차분하고 단단하게 몸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점은 메일리 부인의 굳건한 태도가 계속 지속되었고 로즈 양을 간호하는 동안 줄곧 민첩하고 차분하게 모든 일들을 수월하게 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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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읽었던 올리버 트위스트를 다시 읽었다. 학생시절,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마음에 닿기보다는 그저 묵직한 책, 읽으며 고전했던 책이라는 느낌이 남았었다. 친구들과 “고전이라서 고전문학이 아니라 고전하게 해서 고전문학인가”라는 농담까지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읽는 이 책은 전혀 다른 감상을 안겨준다. 번역의 차원이 달라서일까, 엄마가 된 탓일까, 내가 조금 더 견문이 늘어서일까 알 수 없지만 또 한번 찰스디킨스의 문장에서 놀라움을, 치밀한 묘사와 날카로운 비판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빈민구제소에서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태어나고, 태어나자 마자 고아로 살아야 하는 올리버는 어떤 마음으로 성장했을지, 그저 배가 고파서 죽을 더 달라는 일반가정이었다면 “당연하고도 합당한”요구 때문에 호된 매질을 당하며 어떤 마음을 느꼈을까. 운이 좋게도 여러 번 좋은 기회(물론 극적인 요소를 위해 전혀 좋지 않은 기회도 많이 만나지만)를 만나는 올리버를 보면서 과연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올리버들은 그런 기회조차 만날 수 있었을까, 그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합당하지 않은” 요구라고 수없이 거절당하며 어떤 아픔을 겪어야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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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는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부산스럽게 책들을 한 팔로 안아 들었다. (p.167)
맙소사. 나는 이 문장에서 눈물이 났다. “엄마 제가 도와줄까요?”라며 무엇인가 도운 후 기뻐하는 내 모습에 뿌듯해 하는, 우리 아이의 선한 얼굴이 온 마음에 퍼지며 올리버가 한없이 안쓰러웠다. 부모가 없이 태어나는, 혹은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는 그 모든 아이들은 그 기쁨을 전혀 모르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너무나 시렸다.
- 벽이 흔들거리며 화염 속에 무너져 내렸고, 불에 녹은 납과 쇠가 하얀 재로 바닥에 쏟아졌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남자들은 커다랗게 고함을 질러 서로의 힘을 북돋았다. (p. 536)
찰스 디킨스의 글은 마치 내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엄청난 매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읽을수록 질투가 나기도 하고, 팬이 되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진작에 후루룩 국수라도 먹듯 다 읽어놓고 리뷰를 마무리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고, 빈민구제법 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기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랫동안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낸 건지,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대 얇지 않은 이 책이 눈깜짝할 사이에 후루룩 넘어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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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의 <현대지성클래식>시리즈를 열 댓 권 정도 읽었다. 읽었는데 다시 읽은 것도 있고, 처음 만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매번 읽을 때마다 번역도 너무 좋고 짜임도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꾸만 이 시리즈를 다 모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 분명 내 책상의 한 켠에 초록물이 들겠구나, 하고 예상해본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 아우렐리우스 이런 책을 도대체 왜 읽느냐고. 재미있는 소설도 얼마나 많은데 보기만해도 고리타분한 고전은 왜 읽냐고. 늘 웃어넘겼지만, 지성을 갖추지 못한 내가 아주 잠시라도 지성을 만나는 짜릿함 때문이랄까? 혹은 마음을 쿵쿵 울리는 고전의 묵직함 때문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머리가 묵직해지는 문장으로 잠시 지성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어 감사했다. 현대지성은, 또 고전은 그렇게 나를 지성의 영영역에 초대한다. 아마 책이 없었다면 평생 닿을 길조차 없었던 먼 세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