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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세상에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아니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이 있다. 나는 결코 세상 박으로 나갈 수 없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 (p. 58)
햇볕이 아깝잖아요. 뭐 이런 서정적인 제목이 다 있담. 이게 이 책을 손에 들은 첫 내 마음이었다. 햇볕이 아깝다니. 이런 마음을 느껴본 게 언제였던가. 아니, 난 한번이라도 햇볕을 아깝다고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운 좋게도 햇볕이 풍부한 나라에서, 햇볕이 잘 드는 집에서 자랄 수 있었고, 어른이 되어 내 집을 가졌을 때에도 참으로 햇볕이 잘 드는 집에 살 수 있어서 였을까. 나는 햇볕을 대단히 귀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냥 공기처럼,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니 햇볕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느낀다. 새삼 우리 등에 닿는 빛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느낀다.
- 자라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제는 꽃도, 열매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p.82)
-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뭘까? 어떤 것을 살아있다고 봐야 할까?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운 문제다. (p.118)
- 뻔뻔하게 남의 힘에 의존해서 위로, 위로 뻗어나간다. 어쩐지 나는 그 뻔뻔함이 좋다. (p.168)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일본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어렵지 않은 주제와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랄까. 그냥 편안하게 읽어 내리면서 마음이 평온했다.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며 느끼는 감정들을 소소하게 이끌어 냈는데, 그것이 꽤 위안을 전해준다. 읽다 보니 문득, 참 <샘터>에서 나오는 책들이 주는 다른 책들처럼 마음에 평화를 선물했다.
위대한 자연 안에서 우리는 극히 일부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그저 지구는 그저 회전하는 것 이라는 작가의 말이 새삼 마음에 닿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힘든 하루도 조금 더 살아갈만하고, 눈물 나는 날도 그냥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