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p.59)

소크라테스의 변명. 사실 제목만 보면 매우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고 망설이기도 했으니. 그러나 현대지성에서 나온 몇몇 책을 이미 접해보았는데 사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도 읽기 쉬운 문체로 잘 엮여주신 덕분에 나처럼 일반인도 읽어낼 수 있었기에 피하기보다는 정면돌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읽어낼 수 있었고, 몰랐던 이야기들을 배울 수 있었고, 이 책을 읽기전보다 아주 조금은 더 소크라테스를, 철학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스승이자 우리 모두가 흔히 철학이야기를 할 때면 흉내 내곤 하는 "너 자신을 알라"의 주인공. 어쩌면 모든 철학가 중에 가장 유명할지 모를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직접 남긴 책조차 없다. 그의 사상이나 언행을 제자들이 남기거나, 유추하여 작성된 것일 뿐이다. 이 책은 플라톤이 남긴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아테네를 터나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 후 플라톤 역시 매우 깊어졌으며, 아카데미아를 통해 많은 제자를 배출하게 된다.

이 책의 첫 번째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정치적 구설에 휘말려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본인의 사상을 매우 열심히 설파하였고, 그런 곧은 심지로 인해 플라톤이라는 제자를, 이 책을, 수많은 철학가들에게 전달된 사상을 남겼다. 만약 그가 그 당시에 목숨을 구걸하며 입장을 굽혔더라면 우리는 오늘 날 이 책을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이 남긴 30여 편의 대화편 중 일부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묵직한 생각을 느꼈다. 또 현대의 어떤 사상들이 먼 훗날,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       내가 하는 말이 자네들에게 옳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동의하고,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면 모든 말로 반박해주게. 그리하여 내가 이 논의에 너무 열중하다 보니 나 자신과 자네들을 속이는 일이 벌어져서, 독침을 남겨두고 떠나가는 벌 같은 신세가 되지 않게 해주게. (p.159)

이 말을 읽을 때는 눈물이 살짝 나려 했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던 그가, 스스로 독침을 남기는 벌이 될 것이 두려웠다니. 문득 그도 그저 하나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렸다. 이 사람이 철학 계에서, 또 세상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외로운 사람 같아서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인 사람 같아서, 아니 스스로 타인을 위해 혼자가 되는 사람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너무나 담담히 이야기하고, 자신의 탈옥과 죽음에 대해 너무나 원리, 이성에 근거해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오히려 나는 그가 안쓰러웠고, 그의 신랄한 철학이 가슴 아팠다. 이 책에서 가장 완벽한 대목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팠다. 그동안 왜 소크라테스를 진지하게 읽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기도 했고, 내가 읽은 소크라테스가 현대지성의 수준높은 번역이라 감사했다.

철학 그 자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의 이성적인 <변명>을 읽으며 나는 오늘, 철학을 읽을 수 있어서, 내가 그래도 인문학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잘나지 못한 사람이지만,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 한층 깊어짐이 이런 것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눈물겹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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