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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레고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할 정도로 재미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멈출 수가 없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레고를 조립하는 동안에는 마감걱정도 사라진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p.64)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아마 이 책은 읽지 않았더라도, 제목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제목도 특이했고 책 표지도 강렬했으니. 나도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이젠 주인공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제목만큼은 여전히 강렬히 인상에 남아있다. (표지도) 그렇게 강렬했던 저자의 에세이 북이 나왔다. 그것도 첫 번째 에세이 북이라고. 원래도 에세이를 좋아하는 내가 유명작가의 에세이라고 하면 안 읽고 버티는 건 사실 어려운 일.
책을 받아 들고 살펴보는데, 띠지에 적힌 말이 읽다가 졸리면 자랜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야! 피식 웃음을 흘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 책은 촘촘한 글씨가 무색하리만큼 휘리릭 읽혀졌다. 일단 문장력이 좋기도 했고, 소재들도 다 너무 재미있었다.
- 책상 위에도 사과하고 싶은 것들이 정신 없이 굴러다닌다. 그 중에서 비교적 큰일을 고르라면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이다. 소설이란 기묘한 것을 쓰는 사람 중에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천지신명에게 맹세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실은 나도 거짓말만 하고 산다. (p.113)
-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설정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모순들을 모두 테스트해보려는 것에 틀림이 없다. (p.306)
- 암초에 부딪힐 때는 ‘사전에 설계한 것을 뛰어넘는 엄청난 소설이 태어나려고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러니 내게 막힌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p.368)
사실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라는 책 제목 때문에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했다. 이건 뭐 하자는 책이지, 하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가 뒤통수를 한대 크게 맞았다. 이 책은 재미있었고, 유쾌했고, 신났고, 깊었고, 다정했고, 뜨거웠으며, 냉철하기도 했다. 이제 반대로 저자가 나에게 “이게 뭐 하자는 서평이지” 라고 물어도 나는 사실 대꾸할 말이 없다. 이 모든 감정은 전부 사실이기 때문에.
난 어쩌면 거의 평생을 글을 쓰고 싶어했던 사람이다. 여전히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날마다 이렇게 활자 중독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욕심에 난 평생 일기를 쓰고, 매일 리뷰를 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쉽게 쓰는 것 같은” 작가들에게 선입견과 질투, 그 중간 즈음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저자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그 선입견을 벗어 던지지 못했을 거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했다. 쉽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사실은 얼마나 명문인지. (물론 정말 쉽게 쓴, 아니 아무렇게나 쓴 글들로 책을 내는 이들도 있기는 있다.)
그가 수없이 암초에 부딪히며 써내려 갔을 글들을 다시 읽는다.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기도 하고, 문단을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야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그는 말한다. “모험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모험에 대한 글을 쓰고, 귀신이 보이지 않아서 괴담을 쓰며, 하늘을 날지 못하니 소설을 통해 하늘을 날아본다.(p.386)” 고. 문득 행복하지 않아 행복한 글을 쓰지 못한다고 불평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오늘 무엇을 욕심냈던가. 왜 그 욕심을 글로 써내지 못했던가.
결국 좋은 글은 우리에게 생각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깊은 밤 혼자 조용히 내일의 나를 그려보며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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