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노베르트 로징 글.사진,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 새벽 해가 뜨기 전에, 그 전날 북극곰 씨름 선수들을 본 현장에 다시 가 보았습니다. 밤새 갠 하늘은 분홍빛으로 밝아지고 두 녀석은 얼음 위해 평화롭게 누워있습니다. 시합으로 지친데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에 둘은 눈을 먹으며 몸을 식혔습니다. 잠시 후에 곰들은 다시 일어나더니 결정타 한 방을 날리려고 앞발을 뻗어 마구 흔들어댔습니다. 하지만 곧 성의 없이 잽을 몇 번 날리고는 다시 좋아하는 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털썩 드러눕더니 휴식을 취했습니다. (p.143)



먼저 책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네셔널지오그래픽에 많이 수록되는 사진작가인 노베르트 로징의 사진첩이다. 그는 약 18년간 캐나다의 북극지역 (허드슨 만의 서쪽 해변)에 지내며 북극곰, 북극여우, 바다코끼리, 고래 등의 동물을 찍었고, 북극광과 태양 등의 현상, 눈 폭풍 등에 매료되어 지속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왔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던 것은 작가의 말에 적힌 한 줄 때문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아이와 앉아 꺼낸 이 사진첩에는 “제 열정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란 말이 적혀있었다. 그 말은 거짓말처럼, 책과 닿은 내 손끝에서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훗날 다시 찾아보고자 출판사를 검색하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오마이갓! “북극곰”을 출판한 곳이 내 사랑 “북극곰” 출판사라니. 말 그대로 “북극곰의 북극곰”이었구나.

그리고 결국, 이 책은 우리 집에 왔다.



아이와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아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말했다. “이거 우리 도서관에서 봤지” 하고. 오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괜한 뭉클함이 다가왔다. 그날, 이 책을 보며 말도 잘 못하던 녀석이, 아기곰과 엄마곰의 키스신(?)을 흉내 내던 게 떠올라서. 2011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열정을 10년 즈음 지난 지금, 한 아이에게 전달되었다면 작가는 어떤 마음이 들까. (그런데 그는 아직도 한국에 못 와본 것일까?)



- 북극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땅입니다.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면적도 넓고 강력한 힘도 있지만 사실 이 북극지역은 너무나 연약합니다. (p.13)

- 처음에는 새끼 곰들이 어미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지만 곧 눈 위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새끼들은 이런 놀이를 통해서 점점 상하게 자라며 신체 조절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p.25~26)

- 어미 곰은 낮잠을 자기 전에 몇 시간 동안이나 새끼들을 등 위에 올려놓고 새끼들과 놀아줍니다. (p.31)

- 곰은 대부분 인간에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야외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에 호기심이 많고 굶주린 동물에게 겁이 날 정도로 근접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p.129)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사진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곰이 아기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곰이 개를 따뜻하게 앉아준다거나. 꽤 많은 사진인데도 아이랑 바라보며 몇 일간 또 펼치고, 또 펼치며 이 책을 사진으로 읽고, 구경하고, 만났다. 그리고 저녁이면 나 혼자 다큐멘터리를 듣는 기분으로 읽고,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그렇게 한참을 보냈다. 만약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북극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어디서 구경해본단 말인가. 정말 작가의 말처럼 극북에 가볼 날이 평생에 있을까.



이 책이 그냥 쉬이 읽고 덮어지지 않는 것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담아온 열정도 무시할 수 없고, 이 아름다운 북극이 사라져간다는 게 무섭기도 해서다. 물론 저자가 환경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페이지는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북극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샴푸 한번 더 짠 것 조차 죄스러워진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한 게 범죄라고 느껴진다. 백마디 말보다, 눈 위에 누운 북극곰 사진 한 장이 훨씬 깊은 감동을 준다.

나는 가만히 방에 앉아 경이로운 북극을, 북극곰을, 바다코끼리를, 북극여우를 만나고 있다. (무려7,000일이라는 시간 동안 기록된 것을, 나는 편안히 방바닥에 앉아, 그것도 이 여름에 북극을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자연 그대로의 날 것을 보여주다 보니 우리가 상상하는 하얗고 예쁜 북극곰이라기보다는 바다코끼리를 공격하고, 피를 핥는 등의 모습도 그대로 있고, 또 때로는 본능을 넘어서는 모정을 드러내는 사진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전혀 꾸며지지 않은 것에서 느끼는 절대적인 감정인 듯 했다.

그래, 어쩌면 이 말이 정답인 듯하다. 자연 그대로의, 절대적인 책. 부디 이 책을 우리 아이가 직접 읽을 수 있는 날에도 북극 어딘가에는 북극곰이 그대로 헤엄치고, 사냥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본능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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