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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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뒤범벅 된 글을 읽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남자라고 해서 여성의 분노를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아니다. 책은 트위터가 아니다. 분노 좋다. 여자가 한국 사회에서 힘들게 산다는거 알고 있다. 그런데 글을 읽는 게 즐겁지가 않다. 글들은 티브이 예능에서의 남성 권력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읽으면서 숨이 막힌다. 내가 남자이기도 때문이지만 글이 별로여서였다. 무언가를 싫어할때 논리적이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분노는 좋은 매개체 이지만 나는 아니다. 소설로 따지자면 백인 노예를 학대하는 흑인 주인이 나오는 역사 소설이고,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목사를 훈계하며 구타하는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이 소설 참 구리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은 구리다. <글쓰기 특강>에서 유시민씨에 따르면 취향이 논리가 되지 못하는 글이랄까. 분노에 어울리는 매체를 떠난 글이 책이 될때 글에 묻힌 분노는 오히려 단점이 된다.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기에 비평이 될 수 없고, 결국엔 취향을 따라서 쓰인 리뷰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집인줄 알았는데 리뷰집이었다. 그것도 1점만 주는 인색한 리뷰집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오래 쓰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독자인 나는 글을 읽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1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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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말미에서 스가 아쓰코는,각자 가지고 있던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몰락해간 사회 변혁 운동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쓴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 덧붙인다, 꿈꾸었던 공동체의 몰락이 꼭 저주만은 아니었다고. ˝젊은 날 마음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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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습니다. 우리가 『맹자』의 이 대목에서 생각하자는 것은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생사가 갈리는 차이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아는, 이를테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 없는 것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곡속장이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이 푸줏간을 멀리한 까닭은 그 비명 소리를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닙니다. 생선 횟집에 들어가면서 수조 속의 고기를 지적하여주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가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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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작가의 단편을 읽다가 문득 라로슈푸코의 잠언을 떠올렸다.
‘위선이란 악이 덕에 바치는 찬사다.‘
그 단편에 가난한 여자를 능멸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나는거기서 작가의 경망을 읽었다. 그럴싸한 경구라도 만들어낸그 구절을 발설하며 즐거워하는. 내가 과민했던 것일까? 아무튼 내게는 그 구절이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작가의 삭히지 않은 평소 생각으로 읽혔던 것이다. 그건위악도 아니었다. 노악(露惡)이었다.
 ‘솔직‘ 이란 옷을 입고 저의 삿됨과 속됨과 추함과 비전함을발산할 것인가, 아니면 제 한 몸 솔직하기‘ 를 희생해서 인간정신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과 비범함에 봉사할 것인가. 라로슈푸코는 후자에 높은 점수를 준다. 나도 내 시가 최소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 소극적바람이다. 적극적 바람은 즐겁게 시를 쓰는 것이다. 난 즐거움으로 달려요. 난 일로 달리기 싫어요˝ 라고 말하는 달음박질꾼처럼 즐거움으로 시를 쓰고 싶다. 매혹적인 시의 길이 영원까지뻗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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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클래식 클라우드 9
조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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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거에도 동물
이었고 지금도동물이다.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먹고.
이해 먹고 마시며, 성관계하며, 그를 통해 자녀를 갖고, 감각을 통해 바깥 세계를 지각하며 자신에게 좋은 것을 가려내서 욕망하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모든 활동은, 신체 기관들과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느곳에서 신체의 활동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의 어느 시점부터 이 가기
˝이상한 동물이 되었다. 인간이 동물적 존재로서 자신을 부정하기시작한 것이다. 생명을 스스로 파괴하고, 성관계와 출산을 거부하고, 감각의 세계를 거짓이라며 부정하고, 심지어 금욕적 삶을 욕망.
하는 것이 호모사피엔스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반동물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양면성, 즉 자기 보존과 자기 파괴, 자기 긍정과 자기부정, 자기 확대와 자기 축소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론은 인간의 로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다. 이러한 인간론에 바탕을 둔 윤리나 정치에 대한 논의라면 ˝매미 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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