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5 - 미네르바의 임무 별의 계승자 5
제임스 P. 호건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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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애정하는 시리즈. 한국같은 SF불모지에 시리즈가 전부 출시돼서 감사할 뿐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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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지음 / 푸른숲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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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섯 페이지 읽다가 오그라들어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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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새로운 세대 테이크아웃 12
손아람 지음, 성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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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테이크 아웃 시리즈는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모토로 출발한 시리즈다. 테이트 아웃이라는 이름 그대로 커피 한잔 마실 시간에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분량이어서 최근에는 분량이 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머리도 식힐 겸 읽고는 한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편집부에서 다양한 작가를 찾아서 선정하기에 정말 다양한 작가들을 접할 수 있다. 보통은 문학상 수상집을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접하고는 하는 나에게도 다양한 작가를 접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너무 다양하다 보니 내 취향을 넘어서 그냥 별로인 소설도 있었다.

 

<문학의 새로운 세대>는 평소에 앙숙인 원로작가와 평론가가 신춘문예 심사과정에 참가하게 되면서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신경전을 벌인다는 얘기다. 이 소설의 의도는 뻔하게도 문단 권력에 대한 비판. 두 원로를 중심으로 심사위원들이 파벌을 나누고, 그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신진 작가의 등장, 화룡정점은 두 권위의 싸움을 통해서 탄생한 신춘문예 당선자가 심사위원 중에서 그 누구의 작품도 읽지 않았다는 결말. 자조와 비웃음과 냉소가 어우러진 소설이다.

 

이 짧은 단편의 작가인 손아람 작가는 영화화까지 된 <소수의견>의 작가다. <소수의견>은 보통 작가들의 출판코스인, 등단-문학수업-장편출판 혹은 장편 소설 공모전을 통한 출판이 아닌 작가가 출판사에 소설을 직접 투고 해 출판이 된 케이스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출판형태지만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시스템이 보편적인 한국에서는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이러한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은 이 소설에도 꽤 영향을 준 것 같다. 테이크 아웃 시리즈의 뒤편에는 작가와의 간단한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작가가 이 소설을 쓰는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디스하려고 쓴 소설은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나도 동의한다. 아마 한국문단 전체를 디스하고 싶었겠지.

 

나는 이전에 장강명 작가의 르포인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문단의 특이한 시스템인 신춘문예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거기에서 손아람 작가는 신춘문예와 등단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냥 사라지는 게 좋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장강명 작가도 그렇지만, 나도 신춘문예를 모두 폐지하자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니 뒷장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련하시겠어’. 무엇보다도 노벨 문학상을 김진명에게 빼앗긴 고은처럼분개했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런 문장을 써 놓고 고루한 문단 권력을 비판하시겠다니.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은 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신춘문예가 배경인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과거에 의견 차이가 나서 대립하는 두 원로라는 설정은 더 진부하다. 결말 부분의 신춘문예 당선자의 한국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았어요.’라는 대사는 진부함의 화룡정점. 이런 내용을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철마다 돌아오는 한국소설의 위기. 혹은 왜 요즘 독자들은 한국소설을 읽지 않는가. 라는 제목으로 쓰여지는 기사에서 많이 봤었다. 신춘문예를 비판하고, 문단 권력을 비판하는 건 좋다. 그러나 이렇게 진부한 제목, 진부한 소재, 진부한 등장인물로 소설을 쓰신다면, 시간과 돈을 지불 한 독자는 꽤 억울해진다. 덮어놓고 테이크 아웃 시리즈를 사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실망이라도 해서 다음 테이크 아웃 신간을 사지 않게 되면, 한국소설의 위기에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문단 권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새로울 수 있을까.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작가 형사 부스지마>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일본 추리소설인데 특이하게 배경이 문단인 소설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작가, 혹은 출판계 관련자들이고 다들 싸이코다. 수준 미달의 자기 작품을 욕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치고, 근거 없는 자존감이 예술가병을 만들어 읽는 독자의 눈에도 이,,병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소설 속에서 각종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도 그들에게 질려서 문단 관련된 인물이라면 질색부터 한다. 개인적으로 진부한 설정과 배경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비약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본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계간지 창비에서 청탁이 들어와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용이나 소재 때문인지 편집부에서 이 글을 싫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소설이 별로여서 안 실은 것 같다. 일단 다음부터는 노벨 문학상을 김진명에게 빼앗긴 고은처럼은 절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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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꽃길 에디션)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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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재미있는 지점은 어떤 책을 한번 읽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 있기에 그걸 몸소 실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 경우에는 정말 내 인생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싶은 경우에만 두 번, 세 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장을 정리할 때. 평생 소장하기 애매한 경우에도 책을 읽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와 지금 리뷰하는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다시 읽었다. 둘 다 꽤 나 오래전에 읽었기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보통의 존재> 같은 경우에는 다시 읽어도 작가 특유의 개성이 묻어 있는 산문집이어서 이 사람의 신작인 <우리가 보낸 긴 밤>도 최근에 구해서 읽었었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은 군 생활을 시절에는 읽고 나서 감동적으로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이 되었다. 일단 자기계발 적인 서사가 마음에 안 들었고, 하고 싶은 말을 강조하려고 몇몇 문장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것은 실소가 나올 만큼의 유치한 편집이다. 결론적으로 돈을 주고 사면 안 돼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느낀 부분이 없지는 않아서 몇 자를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내가 강렬하게 느낀 부분은 주인공인 아마리의 동기와 결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아마리는 스물아홉 살 생일에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것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자살을 기도한다. 막상 자살할 용기는 없어서 미수로 그쳤지만, 삶에 대한 용기는 잃었기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티브이에서 나오는 라스베이거스 광고에 눈을 빼앗기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 결심은 돈을 모아서 1년 후에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흥청망청 논 이후에 돌아올 자신의 생일에 자살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모습이 한심해서 모습을 바꾸고 싶었다는 식의 진부한 자기계발 서사보다는 훨씬 나은 설정이다. 초반의 비참한 아마리의 모습은 너무 생생해서 자취생활을 하는 내가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어떤 동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꾼다고 결심했어도 몇 날, 며칠을 지내 다 보면 그 결심은 흐지부지해지는 법이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는 이유는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고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변화의 동기로 설정한 이 책은 꽤나 독창적이다. 평생 술과 담배를 피던 사람도 그것 때문에 죽게 생겼으면 담배를 끊는다. 당뇨병 환자들은 전에는 입에도 안 되던 음식들을 먹고, 시한부 판정을 받던 환자들의 삶은 농도가 달라진다. 인간에게 죽음은 삶을 뒤흔드는 동기다. 어떤 인간이든지 죽음 앞에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아마리의 경우에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함으로써 1년 동안 생활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변화의 과정은 아마리를 전과는 다르게 치열하게 여러 생활에 부딪히게 하고 긍정적인 변화로 이끈다. 술집에 아무렇지 않게 취직을 한다던가, 누드모델에 도전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었다 라는 부분은 그냥 개소리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아마리의 인간관계가 확장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위험하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아마리는 혼자서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축하해줄 친구, 애인, 가족 하나 없다는 데에서 깊은 우울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아마리 옆에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책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 책의 엔딩이 해피엔딩인 이유는 아마리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크게 깨달았다기보다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병원까지 찾아와 줄 친구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혼자 남았다면 목표를 이루는 것에 깊은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확장되는 인간관계는 인간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이게 아마리를 살려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이래서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중요한 걸 하나도 언급하지 않는다. 성공이든 무엇이든 간에 고립된 인간은 위험하다. 저자는 이 말을 할 의도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읽어낸 메시지는 이렇다. 인간이 인간관계에서 아무리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고독해지면 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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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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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토종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추리소설 코너에 일본이나 다른 외국 작가의 책들만 가득했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한국 작가들이 만들어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왔다. 비단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SF소설에서도 한국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띤다. 비록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출판시장도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장르적인 다양성면에서는 더 풍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시간과 돈을 쏟아서 읽을 만한 작품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내가 처음 추리 소설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 작가들은 단편집 정도만 출판하는 정도였는데. 참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마당 있는 집>은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두 여자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얽히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란이다. 능력 있는 의사 남편을 그녀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부잣집 안방마님으로 묘사된다. 모종의 이유로 강남에서 판교의 마당이 있는 집에 이사 온 그녀는, 결혼한 24살부터 16년 동안, 남편이 부여한 헌신적인 아내라는 역할에 충실해 왔다. 집안일에 충실하고 중학생이 된 아들을 돌보는데 신경을 쏟고는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마당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악취가 집안에 진동하는 것. 그 일을 남편에게 말해보지만 주란을 어린애 취급하는 남편은 그녀에게 그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던 주란은 혼자서 마당을 파기 시작하고 거기에서 시체 같은 것을 발견하는데

 

또 다른 화자인 상은은 주란과 정반대의 여자로 묘사된다. 돈 없는 남편과 결혼해 대출금과 생활에 쫓겨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상은은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에 노출돼있는 상태였고, 최근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에 더해져 그녀의 스트레스는 극한까지 높아져가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그 사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어떠한 윤리적인 고민도 담아져있지 않고 거의 소시오패스 정도의 관점을 가진다. 상은을 움직이는 동기는 바로 생존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그를 위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나 계획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이러한 적극성은 이 소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자. 주란이 가지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다. 상은의 집착이 없다면 소설 진행이 안 될 정도.

 

이 두 화자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이 소위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점이다. 주란은 과거 언니를 끔찍하게 잃은 기억 덕분에 히스테릭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그녀의 황당한 행동과 생각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의 진술을 믿을 수 없게 한다. 상은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일반적인 윤리의식이 결여된 존재다. 그러한 화자의 결함은 이 소설의 스토리 진행에 흥미를 배가 시켜주는 요소이고 비판점이기도 하다. 소설의 결말에 도달 했을 때. 결국엔 그날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누군가가 죽었고 그 시체를 누군가가 마당에 숨겼지만 그 사건의 진실을 누구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리와 선의에 대한 기괴한 관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서 이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겉은 화려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징그럽게 보이는 꽃에 대한 이미지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추악한 악의를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포장한 세계고 그 세상 속에서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서로를 대한다. 겉으로는 평범한 십대가 역할놀이를 위해서 몸을 팔고, 아내는 자신의 속물근성 때문에 양심과 윤리를 외면한다. 남편은 친절함과 위선의 가면으로 자신의 악의를 가두고. 아들은 그 위선 속에서 버려지고 타락한다. 그 악의는 소설의 곳곳에서 숨김없이 던져진다.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진 채. 끝나는 이 소설은 한국 장르 소설을 한차례 끌어올렸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끝내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인형으로서의 삶에 주저앉고 스스로의 윤리적인 각성마저도 속여 넘긴 주란’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악한 일을 행하고 어떤 윤리적인 반성도 없는 상은’. 이 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가 느낀 기분은 답답함이다. 여성 등장인물이 반드시 선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성찰을 이루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는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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