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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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처럼 책을 리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연을 리뷰하는 글입니다. 북플에도 공연을 리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므로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3월에 공연을 보고 4월에 쓴 글입니다.


친구가 어쩌다가 낭독회 표를 얻었다며한번 같이 가보자고 말했다낭독회에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키지는 않았지만실망하더라도 내 돈이 드는 것도 아는데 경험삼아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공연은 일곱 시 반에 시작했지만따로 볼일이 있었기에 일찍 혜화역으로 갔다날씨는 더럽게 좋아서 멀리 북악산의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인파가 혜화역 인근에 모여 있었다알고 보니 서울대 의과대학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미래의 의사들이 학사모를 입고 서울대 병원의 담장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친구는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를 늦었다미리 와있기는 했어도 볼일을 보느라 친구와 비슷한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기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공연장은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혜화역 인근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조금 길을 해매서 도착했다골목 사이의 공연장이 그러하듯일반적인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은 낯설지만아늑했다거실이었던 부분을 개조해서 한쪽에는 무대를 만들고 그 반대편에는 관객들이 앉을 의자를 새워놓았다명단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와 친구는 자리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공연은 몇몇 관객이 우리처럼 길을 잃었기에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 30개 남짓한 관객석은 꽉 찼고 자리가 모자라서 의자를 몇 개더 가져다 놓아야만 했다.


도화선의 스토리는 정석적이었다은행에서 근무하는 존재감 없는 남자가 예전에 성적으로 동경했던 여자 동창과 재회하고불륜에 빠지다가 서서히 자신의 몸이 희미해져 결국에는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이야기다이야기 자체는 뻔하고정석적이다사용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도 못하고소재 때문이라도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은 정해진 듯 훤하게 뚫려있다그러나 그런 뻔한 스토리도 배우들의 연기에 곁들여서 펼쳐지니 색다르고 즐거웠다.


공연에는 네 사람의 배우가 등장한다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 각각 한명과 소설의 지문을 낭독하는 한명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이렇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네 배우는 각각의 대사와 지문을 상황의 톤에 맞추어 역동적이기도 하고 정적이기도 하면서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해준다특히 가장 빛났던 배우는 엑스트라를 연기한 남자 배우다음식에 조미료를 치듯이 튀어나와서 연기를 하는데절망적인 스토리를 우스광스럽 게 포장하는 역할을 해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무엇보다도 이극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공연이다불륜이라는 소재를 쓰기 때문에 성애장면도 아주 제대로 묘사한다그저 따라서 읽는 수준이아니라 진짜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여성연기자 분은 민망했을 탠데도 열심히 연기를 해주어서 민망하기 보다는 재미있었다그런 성애장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 극은 군데군데감초처럼 섞여있는 코믹스러운 연기 덕분에 즐겁게 공연을 볼 수 있었다결말은 비극적으로 끝이난다초반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극은 일어났고 공연은 끝이 났다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배우연출자 사이의 질의 응답시간이 바로 이어졌다연출자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앞으로 나와서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에 감동한 듯연출자 분은 살짝 흥분된 몸짓으로 자신의 소회를 말했다공연이 만족스러웠기에 이 대담은 좋은 분위기에서 이어졌다몇 가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 연출자와 배우 분들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대충 기억나는 질문은 이렇다.

 

 

1.김영하의 작품 중 도화선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연극이라는 특성상 관객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면이 있어야만 했다도화선 같은 경우에는 불륜이라는 소재와 성애장면이 관객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2. 이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 했는가?

연출자는 남자가 서서히 투명해지는 상황은 불륜이라는 세상의 도덕을 위배한 행위에 대해서세상이 가하는 재제의 은유라고 해석했다소설 제목인 도화선은 남자가 불륜을 하는 것을 세상의 규범을 넘는다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어떤 부분에서는 이 해석이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우선 투명인간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말해보자투명인간이 최초로 문학사에 등장한 이래 투명인간이란 사회 속에서 점점 실종되는 개인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최초의 투명인간 이후로 문학에서 투명인간이 등장한다면거의 다 이와 비슷한 비유로서 사용되어 왔다도화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소설의 초반부에 남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자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요구받지도 않는 를 상실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묘사된다그가 걱정하는 것은 임원감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은행에서 하루라도 버티는 것이다놀랍게도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은행에서 해고당하는 것과 그로인해서 내지 못하게 될 수많은 공과금이다눈앞에 일을 걱정하지 자신의 인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나는 이 부분에서 이 남자는 이미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그가 투명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의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가 투명해지는 도화선이 하필이면 과거에 동경했던 여자와의 재회 그리고 불륜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사랑이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온전한 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남자가 투명해지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불륜녀의 거실이었다장소도 시점도 어색하게 느껴진다아이러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어색함을 없애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진다작가도 그것을 느꼈는지 소설의 첫머리에는 어떤 사람이 남자에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는 식으로 경고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물론 그 장면도 납득 되지는 않았다.

 

이런 의문이 생겼지만질의 응답시간에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수줍음이 많기도 했고이 질문을 할 대상은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만약 김영하 작가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왜 도화선이 불륜이냐고이 소설을 썼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처음으로 찾은 낭독회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끝났다. ‘도화선공연은 3월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4월에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공연한다고 한다솔직히 놀랐다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어본 편이었는데그것을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으로 묘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생각한다이런 우려에도 일단 공연이 재미있었으니 배우들과 연출자가 알아서 재미있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다음에는 돈을 주고 볼 생각이다.


지금은 5월이고 4월의 낭독회는 일이 생겨서 보지 못 했습니다. 표값이 5000원 이었다는데서 더 아쉬웠습니다. 이 번 달에는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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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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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호기심에 집어 들고 앞부분의 몇 페이지를 읽고,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다행이 그때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찾아보니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고 있었기에 바로 책을 빌려 읽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5년 만의 신혼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그전에 장강명이 HJ라고 호칭하는 아내와 만나고 연애해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내용이 재밌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HJ가 호주로 이민을 가려고 했다는 것. 여기서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고백한다. 아무튼 본인의 문학적 고백과 함께 기자로 일하다가 기자 생활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기자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 생활을 시작했는지 전업 작가의 생활이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나름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을 소개한다.


남의 연애 얘기도 꽤 재밌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려고 여러 번 선을 봤지만, 마음이 차지 않아 번번이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랑이 호주에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고, 결국에는 호주에 있는 HJ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년 정도는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 사랑은 결실을 맺어서 두 사람은 결혼식은 하지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했고, 작가는 정관수술을 받았고, 30평 정도의 전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꾸렸으며, 결혼 5년 만에 작가가 문학상을 받은 덕분에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자전적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니 정확히는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읽은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를 통해서 여행 에세이를 극혐하게 된 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재밌었다. 그 여행하는 과정이 재밌었다기 보다는 (여행자체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평범한 신혼여행에 지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자투리처럼 끼어있는 작가의 사고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작가 덕분에 비판적이고 삐뚜름한 사고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알랭드보통과 베르나르 베르베르 두 작가를 비평한 부분은 박수를 치면서 동감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사고는 작가가 여행 동안 읽은 <동물들의 침묵>이라는 책에 많은 부분을 빚졌다. 예를 들자면, 일명 진보주의자라고 일컫는 무리들의 대표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는 억압을 파괴하라같은 말은 오히려 새로운 억압으로서 작동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은 요즈음 일명 진보단체들과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충돌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궁금증이 생겼기에 나중에 <동물들의 침묵>을 읽어봐야겠다.


작가와 HJ 두 사람의 신혼여행은 집으로 돌아와 신도림 테크노마트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는 이야기로 끝난다. 작가는 밥을 먹고 30평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이 에세이를 썼을 것이다. 40대 부부가 여유가 안 돼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난 이야기는 사실 너무 평범하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꾸며서 타인에게 팔 수 있는 상품으로 꾸미는 것도 작가의 일일 것이다. 아무래도 전업 작가다 보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1년 전에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한국이 싫어서>는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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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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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총서의 열네 번째 소설이다. 현재 활동 중인 작가에 대해서는 일천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의 저자인 장은진 작가와는 이 책이 초면임 셈이다. 우선 작가와 나의 첫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만남이 괜찮은 인상은 주었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배경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외국의 대중매체나 소설에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한국 소설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소설을 접하지는 못했다. 이 소설이 배경이 되는 세상은 끝없이 회색 눈이 내리고 그 때문에 서서히 멸망해가는 세상이다. 세상의 종말을 다룬 아포칼립스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세상의 종말이란 꽤나 흥미로운 소재다. 그렇기에 게임이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매체의 경우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휩쓸려 죽어가고, 생존을 위해서 인간성을 상실하거나 혹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사람 사이의 사투를 그리기도 한다. 이 소설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지만, 누군가가 죽고 죽이는 식의 사투는 그려지지 않는다. 소설 속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평소의 일상을 지켜내려고 애쓰면서 세상에 저항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첫 문장인 그게 온다고 한다에서처럼 저항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1년 동안 회색 눈이 내리는 세상이 있다. 처음에는 피처럼 붉은 비였고, 그 다음에는 검은 눈이 내렸다. 검은 눈의 색이 서서히 옅어져서 회색으로 변했지만, 눈이 하얘 질 거라는 사람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회색 눈은 끝없이 내려 도시와 세상 전체를 삼키는 중이었다. 회색 눈은 도시를 회색시로 만들었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회색인이라고 이름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과 영원히 계속 될 거라는 절망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사람들 사이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게온다고 한다는 소문이다. 소문은 점점 퍼져나가고 어디론가 줄을 지으며 떠나는 회색인의 무리가 나타난다.


는 떠나는 회색의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도시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의 개인 과 함께 구청 옆의 컨테이너에서 떠나가는 회색의 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오기 전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문을 들었고, 컨테이너에는 여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노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줌마와 어린 소녀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게오기 전에 컨테이너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소하다.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앙숙이었던 사이는 항상 그랬듯이 얼굴을 붉히고 싸운다. 떠나가는 이는 작별인사를 한다. ‘그게오기 때문일까 하루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계속해서 회색 눈이 내리고, 도시를 떠나는 회색인의 무리는 점점 커져간다. ‘그게오고 있지만,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며 여전히 다정하게 서로를 사랑한다. 하루가 끝나가고 그게오고 있었다.


그게정확히 무엇인지는 결말까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끝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 끝이 희망적인 것인지 아니면, 절망적인 종말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부분을 독자의 것으로 남겨두었기에 개인의 바람에 따라서 그게무엇인지를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회색의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배경이기에 회색외의 색이 등장할 때는 활자이지만,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회색이외의 색이 등장하는 장면은 네 부분 정도다. 소설의 첫머리에 가 붉은 우산을 가지고 서있다. 그러나 그 우산은 회색인에 홀린 나가 그 무리에 접근하다가 넘어지고 망가지고 만다. 그 다음에는 컨테이너로 돌아오는 가 높은 빌딩에서 떨어져서 자살한 연인들의 시체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통해서 등장한다. 이쯤에서 붉은 색의 의미는 인간성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회색 눈이 내리는 세상에서는 죽어야만 인간성을 보전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가 남자에게 달아준 화려한 단추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먹는 김치찌개 같은 것들은 그들이 마지막 까지 지키려고 한 사랑 혹은 인간성 같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절망적인 배경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저편에 깔려있는 감정은 절망이 아니라 애틋함이고 그렇기에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다. 굶주리고 하루가 지나가면서 그게다가오는 시간은 점점 가까워져 오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회색무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은 무리에 참여함으로서 사랑을 잃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너에 남은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희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절망을 논하지도 희망을 논하지도 않는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그 사랑이 결국 회색 눈에 파묻히든, 새로 뜬 해를 맞이하든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작가는 그 결말을 쓸 권리를 독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독자는 자신이 바라는 결말을 상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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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 대산세계문학총서 65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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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은 영화가 먼저 한국에 알려졌고 뒤이어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작가는 지난 201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모옌 작가다. 나에게 중국문학은 변두리 문학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문학이 아니더라도 읽어야 할 한국작가의 책은 끝없이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중국 문학까지 손에 댈 여유는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읽었던 책들은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정도였다. 그러다가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수님께서 1학기 안으로 읽어봐야 할 책들을 소개해 주셨다. 이 책은 그 중에 한 권으로 예전에 출판된 작은 소책자 형태의 책이라 분량이 적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의 배경은 산둥성 동북 지방의 까오미 마을이다. 오랫동안 그 땅에 살아온 중국인들은 땅에 붉은 수수를 잔뜩 심어놓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화자인 는 까오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가는 가문의 손자로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와 대대적인 조사 끝에 가족 3대에 걸친 역사 정확히는 항일 운동 역사를 조사한다. 이 소설은 그가 조사한 가족사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의 아버지인 또우꽌은 이른 아침에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양아버지인 위잔아오 사령관이 함께 있었다. 또우꽌의 어머니(나의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둘이 안개로 뒤덮인 수수밭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과 위잔아오 사령관이 이끄는 부대는 일본 수송부대를 공격하기 위한 작전을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나가고 있었다. 소설의 시간대는 이 작전이 시작돼서 끝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항일군사 작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사이 사이에 까오미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농후하고 아름답다. 묵직한 역사적 배경을 인간을 묘사하기 위한 곁가지 정도로 사용하는 작가의 원숙한 솜씨는 이 소설이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서 중국 문학의 손꼽히는 작품으로 발돋움 시키는 원동력이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에 어울리게 피가 나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피는 일본인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중국 민초들의 피가 아닌,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맞서는 용감한 사람들의 피다.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의 용기는 내가 이전에 읽었던 무협지의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들은 오직 중국 문학에서만 탄생할 수 있으리라.


짧지만 강렬한 독서였다. 책을 읽다보면,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 책은 명작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많은 책을 읽다가도 이런 느낌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한동안 이런 책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다.


내가 읽은 얇은 책은 장편의 일부를 때어내서 따로 출판된 책이다. 원래 장편의 이름은 홍까오량 가족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이니 도서관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교수님은 장편은 조금 실망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대가 꺾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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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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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 때는 그의 소설인 1Q84가 한참 베스트셀러였던 때여서 소문을 들은 나는 그 책을 빌리기 위해서 동네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실을 찾았다. 도서관에서는 신간 소설, 거기에다 한참 잘 나가던 소설은 다른 사람도 잘 찾았으므로 책을 빌리기가 어려웠다. 여러 번 허탕을 친후,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그의 다른 소설인 해변의 카프카를 빌려 읽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해변의 카프카는 19금딱지만 안 붙었다 뿐이지 그(?)장면이 아주 적나라하다. 정사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하루키의 소설들 중에서도 아주 강한 편에 속한다. 그런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교실에서 책을 읽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 강렬했던 첫 만남 덕에 나에게 하루키=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 인식은 후에 그의 다른 소설을 읽어가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이런 부분만 보고 그의 소설들을 외설로 취급하는 독자들도 많이 있어서 안타까울 노릇이다.


웬만한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관이나 창작방법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씩 내고는 한다. 이 책도 그런 책과 같이 하루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창작에 임하는 자세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소설을 창작하라는 식의 얘기는 없기에 하루키가 소설을 창작하면서 느끼는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 같다.


소설가로서의 하루키 자신을 묘사한 이 책은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우선 하루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재미있는데, 야구장에 갔다가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불연 듯이 소설이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재즈 바의 주방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완성한 소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처음 쓴 초고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는 자신이 봐도 엉망이어서 고쳐 썼고 그걸 잡지에 응모했더니, 신인상도 받고 함께 책도 꽤나 팔려서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날아오는 공을 보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라는 말은 성경 속에서 기독교 신자가 신에게 계시를 받는 것 하고도 비슷하게 보인다. 작가의 말이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창과에 다녔던 나의 경험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이 글을 쓰고 싶다고 결심한 계기도 하잘 것 없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오히려 거창한 이유로 문학을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설가로서 겸손한 편인 하루키는 자신이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좋은 독자를 만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소설가로서 가장 큰 책무는 독자에게 양질의 소설을 제공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고도 하는데, 어찌 보면 이 말은 앞의 말과 모순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소설 쓰기로 타인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니. 그거야말로 재능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하루키의 소설은 꽤나 오해를 많이 받고는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적나라한 정사 장면을 넣기도 해 몇몇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단순한 외설 취급하기도 하고, 그의 가독성 높은 문체는 가벼운 문체로 여겨져.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일반적인 팔리기 위해서 쓰여 진 소설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하루키 다운 것 이 책에서도 설명하는 오리질내러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작가 본연만의 매력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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