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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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총서의 열네 번째 소설이다. 현재 활동 중인 작가에 대해서는 일천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의 저자인 장은진 작가와는 이 책이 초면임 셈이다. 우선 작가와 나의 첫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만남이 괜찮은 인상은 주었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배경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외국의 대중매체나 소설에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한국 소설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소설을 접하지는 못했다. 이 소설이 배경이 되는 세상은 끝없이 회색 눈이 내리고 그 때문에 서서히 멸망해가는 세상이다. 세상의 종말을 다룬 아포칼립스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세상의 종말이란 꽤나 흥미로운 소재다. 그렇기에 게임이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매체의 경우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휩쓸려 죽어가고, 생존을 위해서 인간성을 상실하거나 혹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사람 사이의 사투를 그리기도 한다. 이 소설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지만, 누군가가 죽고 죽이는 식의 사투는 그려지지 않는다. 소설 속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평소의 일상을 지켜내려고 애쓰면서 세상에 저항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첫 문장인 그게 온다고 한다에서처럼 저항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1년 동안 회색 눈이 내리는 세상이 있다. 처음에는 피처럼 붉은 비였고, 그 다음에는 검은 눈이 내렸다. 검은 눈의 색이 서서히 옅어져서 회색으로 변했지만, 눈이 하얘 질 거라는 사람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회색 눈은 끝없이 내려 도시와 세상 전체를 삼키는 중이었다. 회색 눈은 도시를 회색시로 만들었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회색인이라고 이름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과 영원히 계속 될 거라는 절망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사람들 사이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게온다고 한다는 소문이다. 소문은 점점 퍼져나가고 어디론가 줄을 지으며 떠나는 회색인의 무리가 나타난다.


는 떠나는 회색의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도시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의 개인 과 함께 구청 옆의 컨테이너에서 떠나가는 회색의 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오기 전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문을 들었고, 컨테이너에는 여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노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줌마와 어린 소녀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게오기 전에 컨테이너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소하다.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앙숙이었던 사이는 항상 그랬듯이 얼굴을 붉히고 싸운다. 떠나가는 이는 작별인사를 한다. ‘그게오기 때문일까 하루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계속해서 회색 눈이 내리고, 도시를 떠나는 회색인의 무리는 점점 커져간다. ‘그게오고 있지만,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며 여전히 다정하게 서로를 사랑한다. 하루가 끝나가고 그게오고 있었다.


그게정확히 무엇인지는 결말까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끝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 끝이 희망적인 것인지 아니면, 절망적인 종말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부분을 독자의 것으로 남겨두었기에 개인의 바람에 따라서 그게무엇인지를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회색의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배경이기에 회색외의 색이 등장할 때는 활자이지만,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회색이외의 색이 등장하는 장면은 네 부분 정도다. 소설의 첫머리에 가 붉은 우산을 가지고 서있다. 그러나 그 우산은 회색인에 홀린 나가 그 무리에 접근하다가 넘어지고 망가지고 만다. 그 다음에는 컨테이너로 돌아오는 가 높은 빌딩에서 떨어져서 자살한 연인들의 시체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통해서 등장한다. 이쯤에서 붉은 색의 의미는 인간성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회색 눈이 내리는 세상에서는 죽어야만 인간성을 보전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가 남자에게 달아준 화려한 단추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먹는 김치찌개 같은 것들은 그들이 마지막 까지 지키려고 한 사랑 혹은 인간성 같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절망적인 배경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저편에 깔려있는 감정은 절망이 아니라 애틋함이고 그렇기에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다. 굶주리고 하루가 지나가면서 그게다가오는 시간은 점점 가까워져 오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회색무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은 무리에 참여함으로서 사랑을 잃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너에 남은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희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절망을 논하지도 희망을 논하지도 않는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그 사랑이 결국 회색 눈에 파묻히든, 새로 뜬 해를 맞이하든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작가는 그 결말을 쓸 권리를 독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독자는 자신이 바라는 결말을 상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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