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 대산세계문학총서 65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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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은 영화가 먼저 한국에 알려졌고 뒤이어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작가는 지난 201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모옌 작가다. 나에게 중국문학은 변두리 문학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문학이 아니더라도 읽어야 할 한국작가의 책은 끝없이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중국 문학까지 손에 댈 여유는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읽었던 책들은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정도였다. 그러다가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수님께서 1학기 안으로 읽어봐야 할 책들을 소개해 주셨다. 이 책은 그 중에 한 권으로 예전에 출판된 작은 소책자 형태의 책이라 분량이 적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의 배경은 산둥성 동북 지방의 까오미 마을이다. 오랫동안 그 땅에 살아온 중국인들은 땅에 붉은 수수를 잔뜩 심어놓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화자인 는 까오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가는 가문의 손자로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와 대대적인 조사 끝에 가족 3대에 걸친 역사 정확히는 항일 운동 역사를 조사한다. 이 소설은 그가 조사한 가족사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의 아버지인 또우꽌은 이른 아침에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양아버지인 위잔아오 사령관이 함께 있었다. 또우꽌의 어머니(나의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둘이 안개로 뒤덮인 수수밭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과 위잔아오 사령관이 이끄는 부대는 일본 수송부대를 공격하기 위한 작전을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나가고 있었다. 소설의 시간대는 이 작전이 시작돼서 끝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항일군사 작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사이 사이에 까오미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농후하고 아름답다. 묵직한 역사적 배경을 인간을 묘사하기 위한 곁가지 정도로 사용하는 작가의 원숙한 솜씨는 이 소설이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서 중국 문학의 손꼽히는 작품으로 발돋움 시키는 원동력이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에 어울리게 피가 나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피는 일본인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중국 민초들의 피가 아닌,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맞서는 용감한 사람들의 피다.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의 용기는 내가 이전에 읽었던 무협지의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들은 오직 중국 문학에서만 탄생할 수 있으리라.


짧지만 강렬한 독서였다. 책을 읽다보면,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 책은 명작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많은 책을 읽다가도 이런 느낌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한동안 이런 책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다.


내가 읽은 얇은 책은 장편의 일부를 때어내서 따로 출판된 책이다. 원래 장편의 이름은 홍까오량 가족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이니 도서관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교수님은 장편은 조금 실망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대가 꺾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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