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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처럼 책을 리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연을 리뷰하는 글입니다. 북플에도 공연을 리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므로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3월에 공연을 보고 4월에 쓴 글입니다.
친구가 어쩌다가 낭독회 표를 얻었다며, 한번 같이 가보자고 말했다. 낭독회에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실망하더라도 내 돈이 드는 것도 아는데 경험삼아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공연은 일곱 시 반에 시작했지만, 따로 볼일이 있었기에 일찍 혜화역으로 갔다. 날씨는 더럽게 좋아서 멀리 북악산의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인파가 혜화역 인근에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서울대 의과대학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 미래의 의사들이 학사모를 입고 서울대 병원의 담장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친구는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를 늦었다. 미리 와있기는 했어도 볼일을 보느라 친구와 비슷한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기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공연장은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 혜화역 인근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조금 길을 해매서 도착했다. 골목 사이의 공연장이 그러하듯, 일반적인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은 낯설지만, 아늑했다. 거실이었던 부분을 개조해서 한쪽에는 무대를 만들고 그 반대편에는 관객들이 앉을 의자를 새워놓았다. 명단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와 친구는 자리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공연은 몇몇 관객이 우리처럼 길을 잃었기에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 30개 남짓한 관객석은 꽉 찼고 자리가 모자라서 의자를 몇 개더 가져다 놓아야만 했다.
도화선의 스토리는 정석적이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존재감 없는 남자가 예전에 성적으로 동경했던 여자 동창과 재회하고, 불륜에 빠지다가 서서히 자신의 몸이 희미해져 결국에는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는 뻔하고, 정석적이다. 사용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소재 때문이라도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은 정해진 듯 훤하게 뚫려있다. 그러나 그런 뻔한 스토리도 배우들의 연기에 곁들여서 펼쳐지니 색다르고 즐거웠다.
공연에는 네 사람의 배우가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 각각 한명과 소설의 지문을 낭독하는 한명, 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이렇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 네 배우는 각각의 대사와 지문을 상황의 톤에 맞추어 역동적이기도 하고 정적이기도 하면서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해준다. 특히 가장 빛났던 배우는 엑스트라를 연기한 남자 배우다. 음식에 조미료를 치듯이 튀어나와서 연기를 하는데, 절망적인 스토리를 우스광스럽 게 포장하는 역할을 해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무엇보다도 이극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공연이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쓰기 때문에 성애장면도 아주 제대로 묘사한다. 그저 따라서 읽는 수준이아니라 진짜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여성연기자 분은 민망했을 탠데도 열심히 연기를 해주어서 민망하기 보다는 재미있었다. 그런 성애장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 극은 군데군데, 감초처럼 섞여있는 코믹스러운 연기 덕분에 즐겁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결말은 비극적으로 끝이난다. 초반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극은 일어났고 공연은 끝이 났다.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배우, 연출자 사이의 질의 응답시간이 바로 이어졌다. 연출자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앞으로 나와서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에 감동한 듯, 연출자 분은 살짝 흥분된 몸짓으로 자신의 소회를 말했다. 공연이 만족스러웠기에 이 대담은 좋은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몇 가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 연출자와 배우 분들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대충 기억나는 질문은 이렇다.
1.김영하의 작품 중 ‘도화선’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연극이라는 특성상 관객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면이 있어야만 했다. 도화선 같은 경우에는 불륜이라는 소재와 성애장면이 관객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2. 이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 했는가?
연출자는 남자가 서서히 투명해지는 상황은 불륜이라는 세상의 도덕을 위배한 행위에 대해서, 세상이 가하는 재제의 은유라고 해석했다. 소설 제목인 도화선은 남자가 불륜을 하는 것을 세상의 규범을 넘는다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 해석이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투명인간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말해보자. 투명인간이 최초로 문학사에 등장한 이래 투명인간이란 사회 속에서 점점 실종되는 개인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최초의 투명인간 이후로 문학에서 투명인간이 등장한다면, 거의 다 이와 비슷한 비유로서 사용되어 왔다. 도화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소설의 초반부에 남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자,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요구받지도 않는 ‘나’를 상실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묘사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임원감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은행에서 하루라도 버티는 것이다. 놀랍게도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은행에서 해고당하는 것과 그로인해서 내지 못하게 될 수많은 공과금이다. 눈앞에 일을 걱정하지 자신의 인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이 남자는 이미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가 투명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의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가 투명해지는 ‘도화선’이 하필이면 과거에 동경했던 여자와의 재회 그리고 불륜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사랑이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남자가 투명해지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불륜녀의 거실이었다. 장소도 시점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이러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어색함을 없애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작가도 그것을 느꼈는지 소설의 첫머리에는 어떤 사람이 남자에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는 식으로 경고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장면도 납득 되지는 않았다.
이런 의문이 생겼지만, 질의 응답시간에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수줍음이 많기도 했고, 이 질문을 할 대상은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김영하 작가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 왜 도화선이 불륜이냐고. 이 소설을 썼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처음으로 찾은 낭독회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끝났다. ‘도화선’공연은 3월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4월에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공연한다고 한다. 솔직히 놀랐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어본 편이었는데, 그것을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으로 묘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우려에도 일단 공연이 재미있었으니 배우들과 연출자가 알아서 재미있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다음에는 돈을 주고 볼 생각이다.
지금은 5월이고 4월의 낭독회는 일이 생겨서 보지 못 했습니다. 표값이 5000원 이었다는데서 더 아쉬웠습니다. 이 번 달에는 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