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꽃길 에디션)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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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의 재미있는 지점은 어떤 책을 한번 읽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 있기에 그걸 몸소 실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 경우에는 정말 내 인생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싶은 경우에만 두 번, 세 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장을 정리할 때. 평생 소장하기 애매한 경우에도 책을 읽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와 지금 리뷰하는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다시 읽었다. 둘 다 꽤 나 오래전에 읽었기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보통의 존재> 같은 경우에는 다시 읽어도 작가 특유의 개성이 묻어 있는 산문집이어서 이 사람의 신작인 <우리가 보낸 긴 밤>도 최근에 구해서 읽었었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은 군 생활을 시절에는 읽고 나서 감동적으로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이 되었다. 일단 자기계발 적인 서사가 마음에 안 들었고, 하고 싶은 말을 강조하려고 몇몇 문장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것은 실소가 나올 만큼의 유치한 편집이다. 결론적으로 돈을 주고 사면 안 돼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느낀 부분이 없지는 않아서 몇 자를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내가 강렬하게 느낀 부분은 주인공인 아마리의 동기와 결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아마리는 스물아홉 살 생일에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것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자살을 기도한다. 막상 자살할 용기는 없어서 미수로 그쳤지만, 삶에 대한 용기는 잃었기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티브이에서 나오는 라스베이거스 광고에 눈을 빼앗기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 결심은 돈을 모아서 1년 후에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흥청망청 논 이후에 돌아올 자신의 생일에 자살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모습이 한심해서 모습을 바꾸고 싶었다는 식의 진부한 자기계발 서사보다는 훨씬 나은 설정이다. 초반의 비참한 아마리의 모습은 너무 생생해서 자취생활을 하는 내가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어떤 동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꾼다고 결심했어도 몇 날, 며칠을 지내 다 보면 그 결심은 흐지부지해지는 법이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는 이유는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고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변화의 동기로 설정한 이 책은 꽤나 독창적이다. 평생 술과 담배를 피던 사람도 그것 때문에 죽게 생겼으면 담배를 끊는다. 당뇨병 환자들은 전에는 입에도 안 되던 음식들을 먹고, 시한부 판정을 받던 환자들의 삶은 농도가 달라진다. 인간에게 죽음은 삶을 뒤흔드는 동기다. 어떤 인간이든지 죽음 앞에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아마리의 경우에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함으로써 1년 동안 생활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변화의 과정은 아마리를 전과는 다르게 치열하게 여러 생활에 부딪히게 하고 긍정적인 변화로 이끈다. 술집에 아무렇지 않게 취직을 한다던가, 누드모델에 도전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었다 라는 부분은 그냥 개소리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아마리의 인간관계가 확장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위험하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아마리는 혼자서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축하해줄 친구, 애인, 가족 하나 없다는 데에서 깊은 우울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아마리 옆에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책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 책의 엔딩이 해피엔딩인 이유는 아마리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크게 깨달았다기보다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병원까지 찾아와 줄 친구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혼자 남았다면 목표를 이루는 것에 깊은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확장되는 인간관계는 인간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이게 아마리를 살려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이래서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중요한 걸 하나도 언급하지 않는다. 성공이든 무엇이든 간에 고립된 인간은 위험하다. 저자는 이 말을 할 의도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읽어낸 메시지는 이렇다. 인간이 인간관계에서 아무리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고독해지면 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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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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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토종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추리소설 코너에 일본이나 다른 외국 작가의 책들만 가득했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한국 작가들이 만들어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왔다. 비단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SF소설에서도 한국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띤다. 비록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출판시장도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장르적인 다양성면에서는 더 풍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시간과 돈을 쏟아서 읽을 만한 작품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내가 처음 추리 소설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 작가들은 단편집 정도만 출판하는 정도였는데. 참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마당 있는 집>은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두 여자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얽히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란이다. 능력 있는 의사 남편을 그녀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부잣집 안방마님으로 묘사된다. 모종의 이유로 강남에서 판교의 마당이 있는 집에 이사 온 그녀는, 결혼한 24살부터 16년 동안, 남편이 부여한 헌신적인 아내라는 역할에 충실해 왔다. 집안일에 충실하고 중학생이 된 아들을 돌보는데 신경을 쏟고는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마당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악취가 집안에 진동하는 것. 그 일을 남편에게 말해보지만 주란을 어린애 취급하는 남편은 그녀에게 그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던 주란은 혼자서 마당을 파기 시작하고 거기에서 시체 같은 것을 발견하는데

 

또 다른 화자인 상은은 주란과 정반대의 여자로 묘사된다. 돈 없는 남편과 결혼해 대출금과 생활에 쫓겨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상은은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에 노출돼있는 상태였고, 최근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에 더해져 그녀의 스트레스는 극한까지 높아져가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그 사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어떠한 윤리적인 고민도 담아져있지 않고 거의 소시오패스 정도의 관점을 가진다. 상은을 움직이는 동기는 바로 생존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그를 위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나 계획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이러한 적극성은 이 소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자. 주란이 가지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다. 상은의 집착이 없다면 소설 진행이 안 될 정도.

 

이 두 화자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이 소위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점이다. 주란은 과거 언니를 끔찍하게 잃은 기억 덕분에 히스테릭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그녀의 황당한 행동과 생각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의 진술을 믿을 수 없게 한다. 상은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일반적인 윤리의식이 결여된 존재다. 그러한 화자의 결함은 이 소설의 스토리 진행에 흥미를 배가 시켜주는 요소이고 비판점이기도 하다. 소설의 결말에 도달 했을 때. 결국엔 그날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누군가가 죽었고 그 시체를 누군가가 마당에 숨겼지만 그 사건의 진실을 누구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리와 선의에 대한 기괴한 관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서 이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겉은 화려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징그럽게 보이는 꽃에 대한 이미지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추악한 악의를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포장한 세계고 그 세상 속에서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서로를 대한다. 겉으로는 평범한 십대가 역할놀이를 위해서 몸을 팔고, 아내는 자신의 속물근성 때문에 양심과 윤리를 외면한다. 남편은 친절함과 위선의 가면으로 자신의 악의를 가두고. 아들은 그 위선 속에서 버려지고 타락한다. 그 악의는 소설의 곳곳에서 숨김없이 던져진다.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진 채. 끝나는 이 소설은 한국 장르 소설을 한차례 끌어올렸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끝내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인형으로서의 삶에 주저앉고 스스로의 윤리적인 각성마저도 속여 넘긴 주란’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악한 일을 행하고 어떤 윤리적인 반성도 없는 상은’. 이 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가 느낀 기분은 답답함이다. 여성 등장인물이 반드시 선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성찰을 이루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는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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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 격리 형벌, 계몽, 자유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8
한정숙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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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동안의 독서 인생의 대부분을 소설을 읽는데 쓴 나로서는 인문학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꽤나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 문학 부분에서는 신뢰하지 않는 베스트셀러 칸을 참고하고는 하는데, ‘서울대 인문 강의시리즈는 인문학부분에 익숙하지 않는 나도 신뢰하며 책을 빼내는 시리즈다.

 

처음 읽었던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은 관심 깊은 역사 부분을 다뤄서 읽는 것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일단 이 시리즈의 저자들이 글을 잘 쓰기도 해서. 일반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이 책을 쓰여 졌을 때 사용 된 수준 높은 연구 수준은 지식습득의 의미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정직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토대로 책이 진행된다. 러시아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베리아 유형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의 골자다. 시베리아 유형이 언급된 러시아 문학은 참 많다. 일단 본인이 시베리아 유형을 다녀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서 죄를 저지른 등장인물들을 시베리아로 보낸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주인공과 중요 등장인물이 시베리아로 떠난다. 이 두 사례의 경우에서 시베리아 유형은 단순한 유형이 아닌 자신의 죄와 영혼을 씻을 수 있는 정화의 땅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낭만적인 시베리아 이미지는 이들 문학에 빚을 진 모습일 것이다.

 

책 안에서도 묘사된 부분이지만, 낭만적인 시베리아라는 이미지는 현지 러시아인에게 코웃음 칠만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시베리아란 고통스러운 노동의 공간이고 자연과의 치열한 대결의 현장이기에 시베리아에 대한 낭만을 가질 일이 없고, 따라서 외국인(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진짜 사나이>를 보고 코웃음을 치는 군필자들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저자는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제도가 단순히 형벌로써 수행된 것이 아니라는 분석에서 유형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모피를 찾아 나선 러시아인들이 태평양에 다다르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거대한 영토는 척박하고 황량하기에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이주를 수행시키기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죄를 지은 죄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유형 제도는, 러시아 정부에게 본토인 유럽러시아에서 범죄자들을 추방하는 동시에 식민지를 개척할 노동력을 제공하는 두 가지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성립된 유형 제도는 최종적으로 19세기 말까지 유지되었고 형태는 다르지만 소련시대 까지 유지되었다.

 

그와 비슷한 제도는 동시대에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었다. 조선 같은 경우에는 선비들을 외딴 섬에 유배시키기도 했고, 영국 같은 경우에는 본토와 멀리 떨어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죄수들을 유형보내기도 했다. 이들 유배제도와 시베리아 유형의 차이점은 바로 본토와 시베리아가 바다라는 장애물 없이 바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차이점으로 인해서 시베리아 유형은 다른 유배, 유형 제도와 차별성이 생긴다.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죄수들은 죄를 지은 범죄자인 동시에 식민지 시베리아의 새로운 주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시베리아 유형수들은 가족들이 그들을 따라서 시베리아로 가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고 그런 점들 때문에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받는 대접이 결코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비록 혹독한 것이기는 해도 시베리아 유형이 지옥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유형수들은 기본적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기는 했어도 그곳이 인간이 거주하지 못할 지옥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유형수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 생활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죄인의 신분으로 얻은 돈을 걷어서 자신들의 복지를 발전시켰다는 묘사는 꽤나 흥미롭다.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버려졌기에 신세가 비슷한 죄인들끼리 서로를 돌보는 모습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곳이 아무리 혹독하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만든 것들은 완벽한 지옥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인생을 비극이라고 여기더라도 짧은 순간순간은 희극이 존재할 것이고. 그렇기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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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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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기울여져 진열되어서 제법 팔리는지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진 이 책은, 1,2권으로 나눠졌고 책의 제목은 <곰탕>이었다. 서점에서 오래 일했기에 어떤 책이 출판된 걸 봤을 때. 느껴지는 촉이란 게 있다. 곰탕은 꽤나 잘 팔리는 책일 것 같았다. 물론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꼭 재미있거나 좋은 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독서는 상대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책이 내게도 좋을지는 책을 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곰탕>의 경우에는 좋은 느낌이 왔다.


제목만 잘 지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책이 넘치는 게 현실이고, 실제로 많은 작가들도 좋은 제목 짓기에 골몰한다. 특히 에세이의 경우에는 제목만 괜찮고 안쪽 내용이 용두사미인경우가 많다. <곰탕>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매력적인 제목은 아니라고 느꼈다. 김정한의 <아버지>같은 느낌의? 너무 심플하게 느껴졌고 솔직히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그런데 1권의 부제가 미래에서 온 살인자? 아니? 미래에서 온 살인자라니? 그게 왜 곰탕이라는 제목과 같이 붙어있는 거지? 참 절묘한 배치였다. <곰탕>이라는 심심한 제목에 부제가 붙으니 내용을 짐작할 수가 없어지고 갑자기 이 책이 엄청나게 읽고 싶어졌다. 물론 나는 마음먹은 일을 항상 바로 하는 것은 아니기에 막상 책을 읽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곰탕>의 장르를 뭐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 SF라고 할 수 있고, SF적인 소재를 쓰기는 하지만 그 설정을 위한 과학적인 묘사가 부족해서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다. 가족의 사랑과 애정을 다뤘기에 가족애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고, <바디 에일리언>이나 <바디 스내쳐>처럼 소리 없이 바꿔치기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공포 소설이기도 하다. 스릴러 같기도 하고, 성장 소설 같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의 소재가 키메라처럼 섞여있어서 작가가 어떤 계기로 이런 소재로 글을 썼는지 궁금하기 까지 하다.


이 소설은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되던 소설을 책으로 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웹 소설에 큰 원한은 없지만 중,고등학생 때.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있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웹 소설이라는 태생이 이 책을 읽는데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웹에서 1, 1편을 연재하고 독자들에게 새로 결제를 하도록 유도해야 하니. 형식적으로는 짧은 토막, 토막이 각자의 기승전결을 가지고 메인 스토리라는 실에 연결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거의 처음 보는 구성이기에 신기하고 동시에 놀라웠다. 그런 구성이 산만하기는커녕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길게 늘여 쓰긴 했지만, 결론은 그냥 소설이 재미있었다.


쓰나미로 초토화 되고 재건 된 부산이 배경인 이 소설의 시작은 꾀나 매력적이다. 주인공인 이우환은 고아 출신으로 어떤 식당에서 수십 년 동안 주방 보조를 하면서 지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환이 일하는 식당의 사장이 과거 자신이 좋아하던 곰탕집에 가서 곰탕을 만드는 비법을 배워오라고 한다. 미래의 부산에서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었고 미래에서 과거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여행은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한 여행이었고 가난하고 가진 재산이 몸밖에 없는 사람들이 돈을 가진 사람들의 의뢰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의 부산에서 어떤 희망이나 꿈도 없이 살아가는 우환은 이런 여행에 딱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우환은 배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 같은 배를 탄 열 세 명 중에 열한 명이 그 과정에서 죽고 우환과 꽃 미남인 화영만이 살아남는다. 한편 부산에서는 교실 한가운데에 시체가 갑자기 나타나는 사건이 벌어진다. 부산서의 형사들은 이 기묘한 사건에 강한 흥미를 보이고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형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잔혹한 사건들이다. 우환은 무사히 과거의 부산에 도착해 자신의 목적지인 부산곰탕에 도착하고 거기에서 사장인 이종인과 그의 아들 순희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줄거리가 참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자세히 써 놓으면 그대로 스포일러가 되기에 줄거리를 함부로 써놓을 수가 없다. 반전이 워낙에 많고 그 반전을 들으면 소설의 재미가 반감되기에 이 정도만 써놓는다. 이야기의 전개는 크게 우환의 시점과 형사들이 수사를 하는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이러한 사건의 진행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겹치는 지점이 많아지고 두 이야기가 완전히 합쳐지는 지점에서 이 소설의 재미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결말부분에서 과거가 우환이 머문 미래에 도달하면서 주는 감동도 쏠쏠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는 구멍이 많다. 예를 들자면 앞에서도 말한 부분이지만 순간이동이라는 설정은 이 소설을 SF가 아닌 판타지로 여겨지게 한다. 뭐 타임머신도 있는 세계관인데 순간이동이 뭔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소재가 결말 부분에서 발휘하는 시너지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능력을 사용하는 화영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주인공인 우환의 최대의 적인 그가 어째서 과거로 오게 되었는지. 2권의 부제인 ‘12명이 사라진 밤이라는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떡밥회수가 안 된다. 이 부분은 꽤 치명적인 단점으로 여겨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운명을 명확하게 확정하면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화영이 그런 식으로 소모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보통이라면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주는 구성과는 반대로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결말에서 그 사건들이 그리하여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로 정리되는 과정은 감동적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몇 번이나 보여주는 고개를 숙인 채 곰탕을 먹는 남자의 머리는 마지막 순간에 생생하게 보여 진다. 처음 읽어본 웹소설인데 우려와는 달리 너무 즐거운 독서여서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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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숨은 명작.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주인공인 두 사람의 삶을실감나게 그려내고 뒤이어 자신이 클론이라는 혼란과 그럼에도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게 그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결말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고 여행을 갔었던 훗카이도가 배경이라 읽으면서 반갑기도 하고 실감나게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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