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꽃길 에디션)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의 재미있는 지점은 어떤 책을 한번 읽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 있기에 그걸 몸소 실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 경우에는 정말 내 인생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싶은 경우에만 두 번, 세 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장을 정리할 때. 평생 소장하기 애매한 경우에도 책을 읽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와 지금 리뷰하는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다시 읽었다. 둘 다 꽤 나 오래전에 읽었기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보통의 존재> 같은 경우에는 다시 읽어도 작가 특유의 개성이 묻어 있는 산문집이어서 이 사람의 신작인 <우리가 보낸 긴 밤>도 최근에 구해서 읽었었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은 군 생활을 시절에는 읽고 나서 감동적으로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이 되었다. 일단 자기계발 적인 서사가 마음에 안 들었고, 하고 싶은 말을 강조하려고 몇몇 문장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것은 실소가 나올 만큼의 유치한 편집이다. 결론적으로 돈을 주고 사면 안 돼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느낀 부분이 없지는 않아서 몇 자를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내가 강렬하게 느낀 부분은 주인공인 아마리의 동기와 결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아마리는 스물아홉 살 생일에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것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자살을 기도한다. 막상 자살할 용기는 없어서 미수로 그쳤지만, 삶에 대한 용기는 잃었기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티브이에서 나오는 라스베이거스 광고에 눈을 빼앗기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 결심은 돈을 모아서 1년 후에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흥청망청 논 이후에 돌아올 자신의 생일에 자살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모습이 한심해서 모습을 바꾸고 싶었다는 식의 진부한 자기계발 서사보다는 훨씬 나은 설정이다. 초반의 비참한 아마리의 모습은 너무 생생해서 자취생활을 하는 내가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어떤 동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꾼다고 결심했어도 몇 날, 며칠을 지내 다 보면 그 결심은 흐지부지해지는 법이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는 이유는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고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변화의 동기로 설정한 이 책은 꽤나 독창적이다. 평생 술과 담배를 피던 사람도 그것 때문에 죽게 생겼으면 담배를 끊는다. 당뇨병 환자들은 전에는 입에도 안 되던 음식들을 먹고, 시한부 판정을 받던 환자들의 삶은 농도가 달라진다. 인간에게 죽음은 삶을 뒤흔드는 동기다. 어떤 인간이든지 죽음 앞에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아마리의 경우에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함으로써 1년 동안 생활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변화의 과정은 아마리를 전과는 다르게 치열하게 여러 생활에 부딪히게 하고 긍정적인 변화로 이끈다. 술집에 아무렇지 않게 취직을 한다던가, 누드모델에 도전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었다 라는 부분은 그냥 개소리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아마리의 인간관계가 확장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위험하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아마리는 혼자서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축하해줄 친구, 애인, 가족 하나 없다는 데에서 깊은 우울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아마리 옆에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책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 책의 엔딩이 해피엔딩인 이유는 아마리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크게 깨달았다기보다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병원까지 찾아와 줄 친구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혼자 남았다면 목표를 이루는 것에 깊은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확장되는 인간관계는 인간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이게 아마리를 살려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이래서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중요한 걸 하나도 언급하지 않는다. 성공이든 무엇이든 간에 고립된 인간은 위험하다. 저자는 이 말을 할 의도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읽어낸 메시지는 이렇다. 인간이 인간관계에서 아무리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고독해지면 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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