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 격리 형벌, 계몽, 자유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8
한정숙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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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동안의 독서 인생의 대부분을 소설을 읽는데 쓴 나로서는 인문학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꽤나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 문학 부분에서는 신뢰하지 않는 베스트셀러 칸을 참고하고는 하는데, ‘서울대 인문 강의시리즈는 인문학부분에 익숙하지 않는 나도 신뢰하며 책을 빼내는 시리즈다.

 

처음 읽었던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은 관심 깊은 역사 부분을 다뤄서 읽는 것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일단 이 시리즈의 저자들이 글을 잘 쓰기도 해서. 일반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이 책을 쓰여 졌을 때 사용 된 수준 높은 연구 수준은 지식습득의 의미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정직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토대로 책이 진행된다. 러시아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베리아 유형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의 골자다. 시베리아 유형이 언급된 러시아 문학은 참 많다. 일단 본인이 시베리아 유형을 다녀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서 죄를 저지른 등장인물들을 시베리아로 보낸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주인공과 중요 등장인물이 시베리아로 떠난다. 이 두 사례의 경우에서 시베리아 유형은 단순한 유형이 아닌 자신의 죄와 영혼을 씻을 수 있는 정화의 땅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낭만적인 시베리아 이미지는 이들 문학에 빚을 진 모습일 것이다.

 

책 안에서도 묘사된 부분이지만, 낭만적인 시베리아라는 이미지는 현지 러시아인에게 코웃음 칠만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시베리아란 고통스러운 노동의 공간이고 자연과의 치열한 대결의 현장이기에 시베리아에 대한 낭만을 가질 일이 없고, 따라서 외국인(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진짜 사나이>를 보고 코웃음을 치는 군필자들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저자는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제도가 단순히 형벌로써 수행된 것이 아니라는 분석에서 유형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모피를 찾아 나선 러시아인들이 태평양에 다다르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거대한 영토는 척박하고 황량하기에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이주를 수행시키기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죄를 지은 죄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유형 제도는, 러시아 정부에게 본토인 유럽러시아에서 범죄자들을 추방하는 동시에 식민지를 개척할 노동력을 제공하는 두 가지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성립된 유형 제도는 최종적으로 19세기 말까지 유지되었고 형태는 다르지만 소련시대 까지 유지되었다.

 

그와 비슷한 제도는 동시대에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었다. 조선 같은 경우에는 선비들을 외딴 섬에 유배시키기도 했고, 영국 같은 경우에는 본토와 멀리 떨어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죄수들을 유형보내기도 했다. 이들 유배제도와 시베리아 유형의 차이점은 바로 본토와 시베리아가 바다라는 장애물 없이 바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차이점으로 인해서 시베리아 유형은 다른 유배, 유형 제도와 차별성이 생긴다.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죄수들은 죄를 지은 범죄자인 동시에 식민지 시베리아의 새로운 주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시베리아 유형수들은 가족들이 그들을 따라서 시베리아로 가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고 그런 점들 때문에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받는 대접이 결코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비록 혹독한 것이기는 해도 시베리아 유형이 지옥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유형수들은 기본적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기는 했어도 그곳이 인간이 거주하지 못할 지옥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유형수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 생활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죄인의 신분으로 얻은 돈을 걷어서 자신들의 복지를 발전시켰다는 묘사는 꽤나 흥미롭다.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버려졌기에 신세가 비슷한 죄인들끼리 서로를 돌보는 모습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곳이 아무리 혹독하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만든 것들은 완벽한 지옥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인생을 비극이라고 여기더라도 짧은 순간순간은 희극이 존재할 것이고. 그렇기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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