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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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토종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추리소설 코너에 일본이나 다른 외국 작가의 책들만 가득했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한국 작가들이 만들어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왔다. 비단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SF소설에서도 한국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띤다. 비록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출판시장도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장르적인 다양성면에서는 더 풍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시간과 돈을 쏟아서 읽을 만한 작품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내가 처음 추리 소설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 작가들은 단편집 정도만 출판하는 정도였는데. 참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마당 있는 집>은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두 여자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얽히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란이다. 능력 있는 의사 남편을 그녀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부잣집 안방마님으로 묘사된다. 모종의 이유로 강남에서 판교의 마당이 있는 집에 이사 온 그녀는, 결혼한 24살부터 16년 동안, 남편이 부여한 헌신적인 아내라는 역할에 충실해 왔다. 집안일에 충실하고 중학생이 된 아들을 돌보는데 신경을 쏟고는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마당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악취가 집안에 진동하는 것. 그 일을 남편에게 말해보지만 주란을 어린애 취급하는 남편은 그녀에게 그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던 주란은 혼자서 마당을 파기 시작하고 거기에서 시체 같은 것을 발견하는데

 

또 다른 화자인 상은은 주란과 정반대의 여자로 묘사된다. 돈 없는 남편과 결혼해 대출금과 생활에 쫓겨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상은은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에 노출돼있는 상태였고, 최근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에 더해져 그녀의 스트레스는 극한까지 높아져가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그 사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어떠한 윤리적인 고민도 담아져있지 않고 거의 소시오패스 정도의 관점을 가진다. 상은을 움직이는 동기는 바로 생존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그를 위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나 계획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이러한 적극성은 이 소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자. 주란이 가지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다. 상은의 집착이 없다면 소설 진행이 안 될 정도.

 

이 두 화자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이 소위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점이다. 주란은 과거 언니를 끔찍하게 잃은 기억 덕분에 히스테릭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그녀의 황당한 행동과 생각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의 진술을 믿을 수 없게 한다. 상은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일반적인 윤리의식이 결여된 존재다. 그러한 화자의 결함은 이 소설의 스토리 진행에 흥미를 배가 시켜주는 요소이고 비판점이기도 하다. 소설의 결말에 도달 했을 때. 결국엔 그날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누군가가 죽었고 그 시체를 누군가가 마당에 숨겼지만 그 사건의 진실을 누구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리와 선의에 대한 기괴한 관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서 이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겉은 화려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징그럽게 보이는 꽃에 대한 이미지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추악한 악의를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포장한 세계고 그 세상 속에서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서로를 대한다. 겉으로는 평범한 십대가 역할놀이를 위해서 몸을 팔고, 아내는 자신의 속물근성 때문에 양심과 윤리를 외면한다. 남편은 친절함과 위선의 가면으로 자신의 악의를 가두고. 아들은 그 위선 속에서 버려지고 타락한다. 그 악의는 소설의 곳곳에서 숨김없이 던져진다.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진 채. 끝나는 이 소설은 한국 장르 소설을 한차례 끌어올렸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끝내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인형으로서의 삶에 주저앉고 스스로의 윤리적인 각성마저도 속여 넘긴 주란’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악한 일을 행하고 어떤 윤리적인 반성도 없는 상은’. 이 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가 느낀 기분은 답답함이다. 여성 등장인물이 반드시 선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성찰을 이루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는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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