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고요
기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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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이 나라의 작가들을 많이 알기는 쉽지 않다. 결국엔 문예지를 모두 훑어보는 수밖에는 없는데 그런 건 문예창작과 대학원생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내가 선호하는 형식은 단행본을 사서 읽는 일이다. 전자책 시장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이책 읽기를 선택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질감과 이름 모르던 작가의 소설이 만드는 즐거움 같은 것. 기준영 작가의 <사치와 고요>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되었다. 백수린 작가가 대상을 받은 2020년 현대문학상에 후보작으로 실려 있었다.

 

내가 문학상 수상집을 사는 이유는 아마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많은 문학상 수상집은 심사위원들이 문예지를 뒤지며 수고하며 모은 한국 소설들을 별다른 노력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 해 동안 괜찮은 소설들이 모은 소설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들 한국 문학의 위기를 논하지만, 그 속의 다양한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그런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 문학계에선 매년 끝없이 불협화음이 끝없이 생기지만 자신과 독자의 문학을 위해서 노력하는 작가들이 존재하기에 존재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준영 작가의 <사치와 고요>2020현대문학상 수상집에서 보았다. 그리고 수상집에서 본 소설은 그대로 소설집의 표제작이 되었다. 소설들을 읽고 느낀 생각은 투명하고 고요하다는 것. 깔끔하고 우아한 문체는 소설 속의 기묘한 관계를 투명하게 비춘다. 기준영 작가의 소설에서 가장 특이한 지점은 각 등장인물이 그리는 기묘한 관계이다. 뭐라 정의하기 힘든 우리가 끊어내라고 붙잡으라고 훈수두는 네이트 판썰 의 그렇고 그런 빤한 관계가 아니다. 복잡하고 섬세하게 얽혀있어 함부로 끼어들면 모든게 어그러트릴 것 같은 기묘한 관계들이다.

 

첫 소설인 <마켓>의 주인공과 남편의 관계가 표제작인 <사치와 고요>의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얽혀있다. 그 섬세한 거미줄 속의 관계망을 작가의 우아한 언어는 투명하고 동시에 섬세하게 드러난다. 문체의 특징은 괜히 멋 부린다며 낯선 문장구조와 단어를 남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많은 장르 소설이 그러하듯이 투박하게 정보를 서술하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들의 몸을 이루는 문장은 한마디로 우아하다. 독자는 작가가 쓴 문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우아한 문장은 섬세하게 인물들 간의 관계를 감정을 그리고 기묘한 사건들을 서술한다. 고요한 소설의 진행이 조용한 카페에서 흐르는 낮은 음악을 듣는 것만 같다.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주위 사람들의 소음을 잠시 벗어내고 내 귀를 사로잡는 음악의 선율에 집중한다. 기준영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어떤 소설들은 마지막에 무너지고 소설의 격이 떨어진다. 솜씨있는 작가는 끝의 중요성을 알며 아름다우면서도 예외적인 장면을 그려낸다. 나는 <사치와 고요>의 마지막 장면을 도심의 사무실에서 갑자기 사슴을 마주한 순간을 그 사슴이 알고보니 갈색 푸들이었다.라는 문장을 잊지 못한다. 고요한 가슴에 서늘한 파동이 울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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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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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곽재식 작가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TV토크쇼인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현한 편이 화제가 되었다. 원래 그 프로그램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의 창궐로 아무 대나 돌아다니면 욕먹기 딱 좋으니 어떤 분야에선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닌 그런 분들을 초대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SF 작가라던가. 곽재식 작가는 그 프로그램에서 지식을 모으는 일종의 덕후임을 인증했다. 그분의 트위터를 보면 주말마다 요리까지 올린다. 또 조선왕조실록에서 괴물에 대한 기록이나 설화 같은 내용을 틈틈이 올리시곤 한다. 거기에 요즘엔 책까지 내시고 소설도 쓰고, 도대체 이 사람은 몸이 두 개인가? 곽재식1 곽재식2가 번 갈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틀림없다. 아니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건지.

 

보통은 SF작가로 알려있지만, 수집하는 설화를 바탕으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느와르 소설을 쓸 정도의 역사덕후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니 창비에서 내는 경장편 시리즈인 소설Q에서 <신라 공주 해적전>이라는 소설을 냈어도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또 한 건 해내셨군.’ 하는 마음이었다.

 

<신라 공주 해적전>은 정직한 제목의 소설이다. ‘신라를 배경으로 공주가 나오며 해적도 나온다. 줄거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니 100점짜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제목 짓기도 쉽지 않을 텐데. . 소설의 시작은 신라 장보고가 망하고 난 뒤에 장보고를 따르던 무리중 하나인 장희가 마을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을 뻔한 한수생을 구하고 난 뒤에 시작된다. 배를 타고 도망치는데 그 배가 바다까지 흘러가 해적에게 납치당한다. 이 사건 사이의 도약이 교과서에서 읽은 고전 소설을 보는 듯했다. 골품제가 작동하던 신라의 신분제는 삼국을 통일 한 이후에 오히려 더 강화되어 신라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박물관에 전시된 찬란한 신라 유물은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짠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치와 향락에 물들여 일부 집단이 모든 사회의 부를 빨아먹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우리가 배워왔고 <태조 왕건>에서 봐왔던 대로 혼란스러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살아남고 활약하는 것도 배경이 된 신라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해적에게 납치된 장희와 한수생은 온갖 고생을 하다가 백제의 잔당임을 자처하는 해적에게 납치당한다. 백제 중흥을 내세웠지만, 결국엔 해적질이나 하는 이들에게 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진국인 건 그 모든 위기를 주인공 장희가 입을 털어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털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은 백제가 남긴 보물을 중심으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백제 중흥의 탈을 썼어도 결국엔 해적들이라 알아서 망하는 게 참 씁쓸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장희는 워낙 임기응변에 뛰어난 타입이라 꿋꿋이 살아남는다. 고전 설화에서처럼 칼과 의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은 없지만, 온갖 위기를 탈출하는 장희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 즐거웠다. 정상인인 한수생의 징징거림도 짜증나지 않고 불쌍하기만 했다.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니 즐겁다. 21세기에 탄생한 신라 공주 해적전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지만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충분히 주는 소설이었다. 곽재식 작가님의 즐거운 덕질 생활을 응원하며 이 글을 닫으려고 한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소설을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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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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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의 책인데 영화 얘기 나오는 부분은 괜찮으나 특유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가 글에선 완벽하게 단점이다. 특히 각장별로 빠지지 않고 딴길로 세서 영화에 대한 좋은 얘기들이 살아남지 않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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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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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답답하고 고구마 같기만 한 소설이었는데 마지막장에서 쿵하고 감정이 울린다. 이 책을 두 번읽었는데 결론은 작가가 주인공인(그는 이름도 안 나온다.) 9번이 겪은 일들을 독자가 같이 겪어 보게 하려는 의도 였던것 같다. 읽는 이는 답답했지만 그덕에 마지막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니 느낌이 많이 달랐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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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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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의 유일한 후속작이라 자처하지만 그 발끝에도 미치지 않은 책. 저자는 전작인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아내다. 많은 과학자와 SF작가들이 코스모스를 통해서 과학에 관심 가졌다고 할정도로 영향력 있는 책이다. 대중 과학서의 시발점이자 성경이라 할만한 책이다. 나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감명 깊게 읽었기에 이 책이 나왔을 때. 기대가 많았고 읽은 후에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게 되었다. 겨우 이런 책이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달아도 된다고? 겨우 이런 글이?

우선 이 책은 난잡스럽다. 주제와 소재가 통일성있지 않으며 각 장의 내용이 따로논다. 또 각 장의 내용도 난잡해서 이상하다. 예를 들면 생명의 특징을 설명하면 그를 발견한 과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 왜? 물론 과학자 얘기 좋다. 그런데 그 얘기가 그렇게 많이 설명될 이야기인가? 난 그 과학적 발견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지 과학자 세 명의 전기를 읽고 싶은 게 아니다. 과학자의 전기가 나오는 부분은 읽지 않고 넘겨도 될 정도다. 쓸모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근데 그 내용이 책의 3분의 1이다.

책의 문장 또한 난장판이다. 한문장에서 쓸모 없는 단어를 한 개씩 찾을 수 있었다. 또 말투는 어떤가 끊임없이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구절들은 지겹고 짜증난다. 학창 시절에 실력없는 선생들의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또 -이건-왜 이렇게 쓰는 건가? 접미사는 남발되어 그리고 그러나 그렇게 해서 투성이다. 또 그 말투. 와우! 판타스틱!하는 말투는 뭔가. 왜 우리가 같이 1만 년전의 풍경을 봐야하는 가 저자인 당신이 설명해줘야 하는 건데... 내가 책읽다가 저자가 글을 못 쓴다고 느낀건 처음이었다. 이 정도면 번역자와 편집자가 불쌍할 정도였다. 원본이 얼마나 별로면 손을 댄게 이정돈가... 화딱지가 난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이 코스모스의 후속작을 써야 하는가? 저자 설명란에는 이 사람이 칼 세이건과 함께 그의 저작을 ‘함께‘ 썼다며 후속작의 당위성을 피력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니...? 이렇게 글을 못 쓰는데? 그렇게 글을 잘 써서 코스모스를 썼으면 혼자서도 책을 잘 썼을 것이다. 근데 작가는 혼자 책을 내본적이 없었다... 이 책이 코스모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열받지는 않았을텐데 코스모스여서 1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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