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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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곽재식 작가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TV토크쇼인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현한 편이 화제가 되었다. 원래 그 프로그램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의 창궐로 아무 대나 돌아다니면 욕먹기 딱 좋으니 어떤 분야에선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닌 그런 분들을 초대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SF 작가라던가. 곽재식 작가는 그 프로그램에서 지식을 모으는 일종의 덕후임을 인증했다. 그분의 트위터를 보면 주말마다 요리까지 올린다. 또 조선왕조실록에서 괴물에 대한 기록이나 설화 같은 내용을 틈틈이 올리시곤 한다. 거기에 요즘엔 책까지 내시고 소설도 쓰고, 도대체 이 사람은 몸이 두 개인가? 곽재식1 곽재식2가 번 갈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틀림없다. 아니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건지.

 

보통은 SF작가로 알려있지만, 수집하는 설화를 바탕으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느와르 소설을 쓸 정도의 역사덕후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니 창비에서 내는 경장편 시리즈인 소설Q에서 <신라 공주 해적전>이라는 소설을 냈어도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또 한 건 해내셨군.’ 하는 마음이었다.

 

<신라 공주 해적전>은 정직한 제목의 소설이다. ‘신라를 배경으로 공주가 나오며 해적도 나온다. 줄거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니 100점짜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제목 짓기도 쉽지 않을 텐데. . 소설의 시작은 신라 장보고가 망하고 난 뒤에 장보고를 따르던 무리중 하나인 장희가 마을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을 뻔한 한수생을 구하고 난 뒤에 시작된다. 배를 타고 도망치는데 그 배가 바다까지 흘러가 해적에게 납치당한다. 이 사건 사이의 도약이 교과서에서 읽은 고전 소설을 보는 듯했다. 골품제가 작동하던 신라의 신분제는 삼국을 통일 한 이후에 오히려 더 강화되어 신라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박물관에 전시된 찬란한 신라 유물은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짠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치와 향락에 물들여 일부 집단이 모든 사회의 부를 빨아먹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우리가 배워왔고 <태조 왕건>에서 봐왔던 대로 혼란스러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살아남고 활약하는 것도 배경이 된 신라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해적에게 납치된 장희와 한수생은 온갖 고생을 하다가 백제의 잔당임을 자처하는 해적에게 납치당한다. 백제 중흥을 내세웠지만, 결국엔 해적질이나 하는 이들에게 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진국인 건 그 모든 위기를 주인공 장희가 입을 털어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털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은 백제가 남긴 보물을 중심으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백제 중흥의 탈을 썼어도 결국엔 해적들이라 알아서 망하는 게 참 씁쓸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장희는 워낙 임기응변에 뛰어난 타입이라 꿋꿋이 살아남는다. 고전 설화에서처럼 칼과 의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은 없지만, 온갖 위기를 탈출하는 장희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 즐거웠다. 정상인인 한수생의 징징거림도 짜증나지 않고 불쌍하기만 했다.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니 즐겁다. 21세기에 탄생한 신라 공주 해적전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지만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충분히 주는 소설이었다. 곽재식 작가님의 즐거운 덕질 생활을 응원하며 이 글을 닫으려고 한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소설을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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