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ㅣ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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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나 화가의 작품을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삶까지 궁금해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톨스토이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따뜻한 색으로 그려낸 르누아르

작품만 놓고 보면 두 사람 모두 인간을 깊이 바라보고 사랑했던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거장의 사생아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작품으로 알고 있던 ‘거장’의 모습과 실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모습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에게는 젊은 시절 농민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들 티모페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아들을 자신의 가족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티모페이는 훗날 톨스토이의 적자들을 태우는 마부로 살아갔다.

르누아르에게도 젊은 시절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리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잔이 있었다.

르누아르는 딸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편지를 전했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딸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평생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을 그렸던 그의 그림 속에서도 정작 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도덕을 이야기했던 톨스토이는 자기 아들을 온전히 품지 못했고,

행복한 가족과 아이들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그렸던 르누아르는 자신의 딸을 화폭 밖에 두었다.

두 사람의 작품 속 세계와 실제 삶을 나란히 놓고 보니,

예술가가 작품에서 이야기한 가치와 그 사람이 현실에서 살아낸 삶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거장의 숨겨진 사생활을 들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만들어온 거장의 이미지 너머로 모순과 결핍을 안고 살아간 한 인간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작품을 사랑하는 것과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든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할까?

예술가의 삶과 작품은 어디까지 함께 바라봐야 할까?

책을 읽다 보니 톨스토이와 르누아르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평생 사람을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바라보는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사람이 왜 욕망에 흔들리는지, 무엇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지,

돈과 신분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죽음을 앞두면 무엇이 남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반대로 르누아르는 눈앞에 펼쳐진 삶을 바라봤다.

햇빛 아래 앉아 있는 사람, 춤추는 연인, 아이들의 발그레한 얼굴,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같은 인간을 바라보면서도 톨스토이는 사람의 내면으로 향했고, 르누아르는 사람을 둘러싼 삶의 순간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두 사람이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됐다.

내게 톨스토이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르누아르는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거울은 나를 보여준다. 보고 싶은 모습뿐 아니라 감추고 싶은 모습까지 보여준다.

반면 창문은 나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준다. 내 마음속에만 갇혀 있던 시선을 햇빛과 사람, 풍경과 일상으로 옮겨준다.

톨스토이는 거울을 통해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모습을 들여다봤고, 르누아르는 창문을 통해 인간이 놓치기 쉬운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봤다.

한 사람은 인간의 어둠을 오래 바라봤고, 한 사람은 인간의 밝음을 오래 바라봤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평생 바라본 대상은 같았다.

인간이었다.

이 차이는 책에 실린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주인과 일꾼』에는 부유한 상인 바실리 안드레이치와 그의 일꾼 니키타가 등장한다.

바실리는 좋은 조건으로 땅을 사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길을 나선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처음의 바실리는 자신부터 살아남으려고 한다.

니키타를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가지만 눈보라 속에서 계속 길을 헤매다 결국 다시 그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죽어가는 니키타를 발견한다.

그 순간 바실리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

자신의 몸으로 니키타를 덮어 체온을 나눠준다.

평생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남았다.

죽음 앞에서는 돈도, 소유도, 주인과 일꾼이라는 위치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이다.

평생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던 바실리가 마지막 순간에 경험하는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구원도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살면 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톨스토이 자신의 삶이 떠오른다.

작품에서는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품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 모순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은 자신이 완벽하게 해낸 것만 글로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지 못했던 것, 후회했던 것,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글 속에서 반복해서 묻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답보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에 더 오래 매달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톨스토이의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랑과 구원, 욕망과 절제에 대한 질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가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완벽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 역시 그렇게 살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평생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또 물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문학은 완성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답을 찾지 못한 한 인간이 평생 써 내려간 질문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악마』에서는 그런 톨스토이의 내면이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젊은 지주 예브게니는 결혼 전에 한 농촌 여성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뒤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과거의 욕망이 되살아난다.

자신에게 좋은 아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잘못된 선택 하나가 현재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많은 잘못은 무엇이 옳은지를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과 실제로 옳은 선택을 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읽다 보니 제목의 ‘악마’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계속 그쪽으로 마음이 끌리는 것. 인간 안에서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욕망 자체가 악마처럼 느껴졌다.

톨스토이 역시 젊은 시절 자신의 욕망과 성적 경험, 그로 인한 죄책감을 오랫동안 기록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악마』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멀리서 관찰하며 쓴 작품이라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꺼내놓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그래서 다시 ‘거울’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거울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외면하고 싶은 모습도 그대로 비춘다.

톨스토이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은 자기 모습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는 욕망이 질투로 이어진다.

아내가 한 바이올리니스트와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함께 연주한 뒤 남편의 의심과 질투는 점점 커지고 결국 비극으로 향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톨스토이와 음악의 관계였다.

그는 음악을 무척 사랑했다.

차이콥스키의 《현악 사중주 1번》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쇼팽을 들을 때면 자신이 직접 그 음악을 작곡한 것처럼 느낀다고 할 만큼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순식간에 움직이는 힘을 두려워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음악 한 곡을 듣다가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이 갑자기 흔들리기도 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을 움직인다.

톨스토이가 두려워했던 것도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이성이 준비되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움직여버리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 소개된 클래식 여덟 곡도 흥미로웠다.

쿠프랭,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구노, 차이콥스키, 바그너.

단순히 책을 읽을 때 틀어놓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실제 두 거장의 삶과 연결된 음악들이다.

르누아르 역시 어린 시절 노래에 재능이 있어 작곡가 샤를 구노와 인연을 맺었고,

조금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화가가 아닌 음악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특히 바그너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정말 재미있다.

르누아르는 바그너를 동경해 직접 찾아가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반면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바그너의 예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같은 음악가 앞에서 한 사람은 붓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펜을 들었다.

짧은 일화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르누아르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오래 바라보고 남기려 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질문했다.

그리고 책에 실린 르누아르의 그림을 넘기다 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한참 인간의 욕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만나면 정말 창문 하나를 활짝 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그레한 볼, 부드러운 피부, 아이와 여성, 꽃과 햇빛.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욕망과 죄책감, 죽음 같은 무거운 문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웃고, 햇볕을 쬐고,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는 평범한 행복도 존재한다.

톨스토이가 ‘인간은 왜 이렇게 괴로운가’를 묻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르누아르는 ‘그래도 삶에는 이런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딸 잔의 존재를 알고 난 뒤 그의 그림을 다시 보면 그 밝음마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톨스토이가 자기 삶의 어두운 부분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르누아르는 어쩌면 자신의 어두운 부분은 화면 밖에 두고 자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세계를 오래 그렸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어느 쪽이 더 솔직하고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간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것을 끝까지 들여다보며 해결하려고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에는 잠시 그 문제에서 눈을 돌려 산책을 하거나 좋은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모두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톨스토이의 거울과 르누아르의 창문이라는 이미지가 더 마음에 남는다.

거울만 보고 있으면 자기 안에 갇힐 수 있고, 창밖만 바라보면 자신의 문제를 외면할 수도 있다.

때로는 거울 앞에 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고, 때로는 창문을 열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톨스토이의 아들 티모페이와 르누아르의 딸 잔은 같은 해인 1934년 세상을 떠났다.

거장들의 이름은 지금도 수없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두 사람의 삶은 오랫동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렬한 제목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장의 사생아들』이라는 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톨스토이를 덜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고, 르누아르의 그림이 덜 아름답게 느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들도 우리처럼 욕망하고 실수하고 모순을 안고 살아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작품을 이전보다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거장의 작품을 보면 그 결과물만 보았다면,

이제는 그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질문과 모순을 품고 살아갔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작품은 완벽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끝내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살아간 사람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과 모순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이해하려 했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 흔적을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우리가 다시 읽고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좋은 예술은 정답을 남기기보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톨스토이는 거울을 보며 인간의 안쪽을 들여다봤고, 르누아르는 창문을 열어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둘 다 필요하다.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고, 너무 내 안에만 갇혀 있지 말고 고개를 들어 바깥을 바라봐야 할 때도 있다.

문학과 미술, 음악을 함께 따라간 책인데 마지막에는 이상하게도 두 거장보다 내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지금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 좋은 순간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밝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것은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할 때와 창문을 열어야 할 때를 아는 것.

『거장의 사생아들』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이었다.

ㅡ

'단단한맘킴히 서평단'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단단한맘 @gbb_mom

#킴히 @_kkimhee

#수련 @water_liliesjin

#모티브 @motivebooks.official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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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 브레이커 - 보이지 않던 세상을 다시 읽는 사고법
양중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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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살아간다.

그런데 『씽크 브레이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눈에 들어오는 것’과 ‘제대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늘 지나던 길인데 어느 날 처음 보는 가게를 발견하고,

매일 사용하던 물건인데 누군가 불편한 점을 지적하고 나서야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그동안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 눈앞에 있었지만 우리의 인식에 제대로 남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차이를 ‘인식의 해상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진이나 영상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작은 차이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람의 사고에도 해상도가 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물, 같은 사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지나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구조와 관계, 원인과 가능성까지 읽어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같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 역시 처음부터 하나의 전문성을 향해 곧게 나아온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러 일과 취미, 관심사를 두루 경험했고 한때는 그런 자신을 ‘어중이떠중이’처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살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예전에 잠깐 해봤던 일, 실패했던 경험, 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지식, 취미를 통해 익힌 감각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산만하게 흩어진 조각처럼 보였던 경험들이 문제 앞에서는 하나씩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된 것이다.


특히 이 비유가 특히 좋았다.

인생에서 쌓이는 경험은 그 순간의 성공과 실패만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도 훗날 전혀 다른 문제를 만났을 때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실패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 자체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왜 실패했는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정보를 꺼내두면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카드가 된다.

경험은 많이 했다고 해서 저절로 자산이 되지 않는다.

경험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것을 어떤 의미로 기억했는지, 그리고 다른 경험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문제 해결 능력이 특별한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천부적인 재능은 아닐 수도 있다는 관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누군가가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머리가 특별히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경험의 카드를 모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관찰했고, 얼마나 많이 실패했고, 무엇을 공부했으며, 어떤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는지도 겉으로는 알 수 없다.

결과만 보면 순간적인 ‘센스’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관찰과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책의 초반부에서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저해상도와 고해상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저자는 우리 눈이 최신 카메라보다 훨씬 정교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세상을 상당 부분 저해상도로 처리하며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뇌가 비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면서 주변 사람들의 옷 색깔, 휴대전화 기종, 광고판의 문구, 안내 방송, 표정, 움직임을 모두 분석하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정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밀어낸다.

익숙한 길을 걷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면서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한다면 평범한 하루조차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효율적인 뇌에는 동시에 하나의 맹점이 생긴다.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정보 속에 실제로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투명 고릴라’ 실험은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농구공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고 있을 때 화면 한가운데를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지나가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눈은 분명 보았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다. 이 사례를 일상으로 가져오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관심을 두는 것, 알고 있는 것,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세상을 선택적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고도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작은 이상 신호를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고해상도 사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고해상도의 시선은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는 태도와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모든 것을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아직 자신이 읽어내지 못한 맥락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깊이 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서는 자동차를 통해 이 차이를 매우 쉽게 보여준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으면 움직이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는 기계’ 정도로 보일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해도 “차가 이상하다”, “소리가 이상하다” 정도로 느낀다.

하지만 자동차의 구조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던 엔진이 흡기, 연소, 배기, 냉각, 윤활처럼 여러 과정으로 나뉘어 보이기 시작한다. 부품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면 똑같은 이상한 소리도 이전과 다르게 들린다.

어디에서 소리가 발생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진동이 생기는지, 계기판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같은 것들이 단순한 ‘이상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좁혀갈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것은 지식이 많아졌다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를 읽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차가 이상하다’라는 하나의 커다란 문제밖에 보이지 않았다면, 이제는 증상과 조건, 원인 후보와 확인 순서로 나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문제의 덩어리가 잘게 나누어지는 순간 막막함도 함께 줄어든다.

이 부분은 업무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요즘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문제는 거대한 덩어리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업무량 자체가 많은 것인지, 반복 작업이 많은 것인지, 불필요한 확인 과정 때문인지,

정보 전달이 늦어서 대기 시간이 생기는 것인지, 우선순위가 정리되지 않은 것인지 문제를 나눌 수 있다.

문제가 나뉘면 해결 방법도 달라진다.

막연한 문제를 구체적인 문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절반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문제 해결에 대해 한 가지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은 정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줄 아는 사람일 수 있다.

해결책을 빨리 찾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문제를 제대로 읽는 능력인 이유다.

책의 이러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창의성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무에서 만들어내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아이디어는 이미 존재하던 정보와 경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면서 나온다.

카메라를 오래 다룬 사람에게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물건이 아니라 빛과 조리개, 셔터와 센서가 상호작용하는 장치로 보인다.

악기를 오래 다룬 사람에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호흡, 압력, 리듬과 타이밍의 구조로 들린다.

요리를 오래 해본 사람은 재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열과 시간, 수분과 간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함께 생각한다.

지식과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세상에 없던 것이 새롭게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고 있었던 차이를 비로소 구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새롭게 읽힌다.

많이 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구분할 수 있는 개념과 경험이 많아질수록 이전에는 하나로 뭉쳐 보였던 세상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 보인다는 의미다.

다만 책은 모든 것을 고해상도로 바라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모든 간판과 사람의 표정, 모든 기계와 현상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살아간다면 금세 지쳐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순간에 해상도를 높일 수 있느냐다.

특히 반복해서 불편한 일이 생길 때, 같은 문제가 계속 나타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에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치기 전에 한 번쯤 초점을 다시 맞춰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을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것은 무엇일까?

지금 보고 있는 현상 뒤에 다른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저해상도로 뭉쳐 있던 문제가 조금씩 나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불편함이 문제로 바뀌고, 문제는 다시 해결 가능한 대상으로 바뀐다.

이 책이 말하는 창의성도 결국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머리를 쥐어짜기 전에 평소 그냥 지나쳤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것.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던 방식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씽크 브레이커』는 ‘천재처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라기보다

평범하게 지나쳤던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읽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도 이 지점이 가장 좋았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세상을 더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경험은 양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해상도를 높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이렇다”는 판단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험이 많을수록 필요한 것은 확신만이 아닐 것이다.

경험은 정답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편견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를 재빨리 판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눈앞의 상황이 정말 과거와 같은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태도다.


그래야 오래 쌓아온 경험이 벽이 아니라 카드가 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경험 카드’ 역시 이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은 그 당시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실패한 일, 잠깐 배웠던 기술, 오래된 취미, 어설프게 익힌 지식까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 카드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다.

그래서 실패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까지 생각했을 때 실패는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제 해결 능력은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평소 세상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어떤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가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 힘이다.

결국 누군가는 같은 장면을 보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수많은 신호를 읽어낸다.

그 차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능력이라기보다 무엇을 오래 들여다봤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지, 어떤 경험의 카드를 쌓아왔는지에서 조금씩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씽크 브레이커』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다.

세상이 달라져야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달라지는 순간, 오래전부터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항상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눈앞에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문제라고 읽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계속 반복되는 불편, 이유 없이 거슬리는 과정, 늘 해오던 비효율적인 방식 안에도 개선의 실마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답을 찾아 서두르기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너무 뭉뚱그려 보고 있는지, 무엇을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안에 아직 읽어내지 못한 구조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고해상도의 사고는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힘이다. 그리고 문제 해결은 바로 그 정확한 읽기에서 시작된다.


결국 생각의 틀을 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억지로 기발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잘 보는 것.

질문하는 것.

차이를 구별하는 것.

경험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경험들을 다시 연결해보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 쌓이면 어제까지는 ‘원래 그런 것’으로 보였던 것이 오늘은 하나의 문제로 보이고, 문제로 보이던 것이 다시 가능성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씽크 브레이커』는 정답을 많이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정답이라고 믿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다.

문제를 잘 풀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가장 먼저 연습해야 하는 것은 더 빠르게 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눈앞의 세계에 조금 더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는 일일 것이다.


ㅡ

'이 리뷰는 [체크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남들이 보기엔 산만해 보였을 경험들이, 문제 앞에서는 전부 보너스 카드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문제 해결 능력은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고 무엇을 쌓아왔는가에 더 가까운 능력인지 모른다고.
세상을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보는 데 있다.
같은 사물, 같은 현상, 같은 사건을 보고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고, 누군가는 그것을 탐구한다.
누군가는 겉모습만 보고 끝내고, 누군가는 구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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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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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뇌에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까?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며

익숙한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신경과 의사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의 『뇌가 만든 천재들』은

이 질문을 높은 지능이나 타고난 재능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신경과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우리의 뇌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고통과 기억을 어떻게 다시 구성해 예술로 바꾸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의 출발점부터 흥미롭다. 약 300만 년 전의 ‘마카판스갓 조약돌’이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돌로, 발견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저자는 이를 인간의 얼굴 인식 능력과 파레이돌리아 현상에 연결한다.

먹을 수도 없고 특별한 도구도 아닌 돌을 누군가 굳이 가지고 다녔다면,

그에게는 이미 쓸모를 넘어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여기서 창의성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창의성이란 없는 것을 갑자기 만들어내는 능력보다 모두가 보고 있는 것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쇼베-퐁다르크 동굴 이야기도 놀랍다.

구석기 시대 화가들은 사자의 머리를 겹치거나 들소의 다리를 여러 개 그리는 방식으로 정지된 벽 위에 움직임을 표현했다. 수만 년 뒤 뒤샹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에서 하나의 화면에 연속된 움직임을 담아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 품어온 감각과 질문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과정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이후 ‘광기와 천재’라는 오래된 신화를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은 멕시코 출신 화가 마르틴 라미레스다.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공황과 실업, 가족과의 단절을 겪은 뒤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긴장성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당시 충분한 통역 없이 이루어진 진단이었다는 점에서 그 정확성을 둘러싼 논쟁도 존재한다.


병원에서 라미레스는 쓰레기통의 종잇조각을 이어 붙이고 성냥의 목탄, 구두약, 크레파스와 과일주스까지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는 멕시코의 교회와 기병, 성모상과 동물뿐 아니라 끝없는 터널과 철도, 고속도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길들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멕시코와 미국, 고향과 타향, 병원 안과 바깥세상 사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삶이 겹쳐 보인다. 사람은 현실에서 돌아갈 수 없는 장소를 기억 속에서 다시 만들기도 한다.

예술은 때로 현실에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라미레스나 반 고흐의 삶을 근거로 ‘정신질환이 예술적 천재성을 만든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생각을 ‘고통받는 천재’의 신화로 경계한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천재들은 강하게 기억되는 반면 평온하게 살았던 수많은 창작자는 잘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적 고통과 천재성이 실제보다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책이 강조하는 것도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형했는가에 가깝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고통을 예술의 재료로 바꿀 수 있다는 것과 고통이 있어야 위대한 예술이 탄생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후자의 생각은 정신질환을 낭만화하고, 실제로 질환 때문에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고통마저 천재의 대가처럼 포장할 위험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사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평생 뇌전증을 앓았고, 작품 속에도 뇌전증을 가진 인물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스메르쟈코프의 뇌전증이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뇌전증이 도스토옙스키를 천재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질병과 고통을 인간의 죄책감과 죽음, 구원과 자유를 탐구하는 문학적 재료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앤디 워홀에서는 다른 방향의 질문이 등장한다. 워홀이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후대 연구자들은 그의 반복적인 생활습관과 제한된 관심사,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을 자폐 특성과 연결해 해석해왔다.

이 책은 이 가능성을 워홀의 팝아트와 함께 살펴본다.

흥미로운 것은 ‘반복’이 그의 예술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캠벨 수프 캔과 매릴린 먼로의 얼굴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부르며 예술 제작 과정 자체를 대량생산 방식으로 바꾸었다.

남들에게는 경직된 습관처럼 보일 수 있었던 특성이 워홀에게서는 하나의 미학적 언어가 된 것이다.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고, 결국 세상이 그 세계 안으로 들어왔다.


이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이 얼마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경험하는지도 보여준다.

프란츠 리스트와 바실리 칸딘스키를 통해서는 소리를 색처럼 경험하거나 서로 다른 감각이 연결되는 공감각을 살펴보고, 프리다 칼로에게서는 끔찍한 사고 이후 계속된 육체적 고통과 트라우마가 자화상과 신체 이미지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버지니아 울프와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의 삶에서는 이야기가 개인의 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들의 죽음을 단순한 ‘광기’로 환원하지 않고 유전적 취약성과 만성적인 스트레스,

가족 관계와 여성에게 가해졌던 사회적 압력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바라본다.

또 뇌 손상으로 공간의 한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편측 무시’가 화가의 그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향정신성 물질과 환각은 인간의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꿈과 무의식은 초현실주의 예술과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살펴본다.


기억과 망각 역시 중요한 주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반드시 축복인 것은 아니며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는 역설도 생각하게 한다.

시력을 잃어간 보르헤스가 자신의 상실마저 문학의 재료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더 깊게 남는다. 이 모든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생각으로 모인다.

예술은 완벽한 뇌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구성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까지 쓰는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공감각과 질병, 트라우마, 꿈, 기억과 망각을 거쳐 결국 인간과 기계의 지능과 창의성이라는 문제까지 나아간다.


라미레스에게는 돌아가지 못한 고향이 있었고, 칼로에게는 고통스러운 몸이 있었으며

도스토옙스키에게는 뇌전증과 죽음 가까이까지 갔던 삶이 있었다.

인간의 창작에는 단순한 정보의 조합만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살아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표현하는 과정이 들어 있다.


그래서 『뇌가 만든 천재들』을 읽고 나면 처음의 질문도 조금 달라진다.

‘천재의 뇌는 무엇이 다른가?’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어쩌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천재는 고통을 많이 받은 사람도, 남들과 다른 뇌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과 경험, 때로는 결핍과 한계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 이전에는 없었던 언어로 세상에 보여준 사람이다.


300만 년 전 누군가 얼굴을 닮은 돌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던 순간부터 동굴벽화와 라미레스의 선로, 워홀의 수프 캔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현실에 없는 의미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보는 존재가 아니다.

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험한 것을 다시 해석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도 존재하게 만드는 존재다. 『뇌가 만든 천재들』은 천재들의 특별한 뇌를 구경하는 책인 줄 알았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한 뇌가 얼마나 놀라운 방식으로 세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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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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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랫동안 광기와 창의성의 상관관계를 추측해왔지만,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역사를 거치며 조금씩 변화했다. 고대에는 광기를 신이 내린 속성이나 형벌로 여겼다. 중세에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개념을 제시하고 훗날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가 발전시킨 의학에 따라 질병을 체액 불균형과 연관 지었다. 혈액이 과하면 쾌활하고 활기차며 정력적이고, 점액이 과하면 사려 깊고 평온해지며, 황담즙이 과하면 공격적이고 야심 차며, 흑담즙이 과하면 시인의 질병인 우울증에 걸린다고 보았다.
19세기에 들어서야 현대 정신 의학의 선구자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이 정신 질환을 분류했다. 천성이 인본주의자였던 피넬은 정신병원 내 쇠사슬 사용을 막은 최초의 의사이며, 정신 질환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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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처음 읽는 부의 철학
최영원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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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어와 영어, 수학과 과학을 배우며 어른이 되지만,

정작 평생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돈’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적이 거의 없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얼마를 저축해야 하는지, 투자는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돈을 어떻게 지키고 불려야 하는지 누구도 체계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돈을 벌기 시작한 뒤에야 시행착오를 겪으며 재테크를 공부한다.


『서른에 처음 읽는 부의 철학』은 이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재테크 책과는 방향이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노자,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니체, 쇼펜하우어 등 고전 철학자의 사상을 돈과 소비, 투자, 노동, 욕망의 문제에 연결하며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보다 먼저 ‘왜 돈을 원하는가’를 묻는다.


저자는 돈을 공부할수록 결국 돈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같은 돈을 가져도 어떤 사람은 자유를 얻고, 어떤 사람은 더 큰 불안을 얻는다.

소득이 늘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돈 자체보다 비교와 욕망, 삶의 기준에 있을 수 있다.

돈은 우리의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돈이 많아질수록 지켜야 할 것과 비교할 대상, 원하는 것까지 함께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부를 만들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얼마를 가져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에게 충분함은 어디까지인가’를 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를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스토아 철학자들 역시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요한 부로 여겼다.

노자의 이야기도 같은 지점에 닿는다. 화려한 색과 소리, 맛과 귀한 물건처럼 강한 외부 자극에 계속 끌리다 보면 인간은 자신의 중심을 잃기 쉽다고 경고한다.

이 말은 소비 자극이 넘쳐나는 지금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SNS를 켜면 새 옷과 자동차, 여행, 명품, 투자 수익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과거의 욜로 문화 역시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소비가 자존감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소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소비가 나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생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냐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가 중요해지면,

돈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한 무대 장치가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준 단순한 삶도 그래서 인상적이다.

적게 소유한다는 것은 무조건 아끼고 궁핍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면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저소비의 본질은 돈을 안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욕망에서 빠져나오는 데 있다.

물건을 줄이는 일이 결국 자신의 기준을 되찾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정 욕구와 소비의 관계도 깊이 들여다본다.

아들러가 말한 열등감과 허구적 목적처럼 우리는 ‘이 정도가 되면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가상의 기준을 만들기도 한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명품, 집, 투자 수익 같은 요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증명하는 표식이 된다.


특히 SNS에서는 다른 사람의 연봉과 자산, 몸매와 성취가 매일 전시된다.

우리는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평범한 현실을 비교하면서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비교의 가장 큰 문제는 기분이 나빠지는 데 있지 않다. 타인의 속도를 내 인생의 시간표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누군가 집을 샀다고 조급하게 투자하고, 누군가 성공했다고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시작한다면 삶의 방향타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소비 습관도 무시할 수 없다.

제임스 클리어가 설명하듯 반복되는 행동은 어느 순간 자동화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쇼핑 앱을 켜고, 지칠 때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불안을 달래기 위해 충동적인 투자에 손을 대는 행동도 반복되면 하나의 습관이 된다. 부를 만드는 것과 부를 잃는 것 모두 거대한 선택 한 번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통장을 관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감정과 습관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현실적인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근로소득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정한 종잣돈을 만들고 주식, 채권, ETF, 부동산 등 자산을 통해 돈이 다시 돈을 만드는 구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핵심은 수익률보다 자기 통제다.

소득이 늘 때 소비까지 함께 늘어나면 자산은 좀처럼 쌓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오래 남았던 문장은 버나드 쇼의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는 말이었다. 젊음은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 아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자본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살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귀한 자본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는 데 너무 쉽게 써버린다. 몇 년 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유행과 소비에 젊음을 사용하면서 정작 자신을 성장시키는 독서와 경험, 기술과 건강에는 인색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은 무조건 아끼라는 뜻이라기보다 지금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무엇에 투자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말로 느껴졌다. 소비의 흔적은 사라질 수 있지만 읽은 책과 배운 기술, 쌓아온 경험과 건강한 습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돈의 복리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삶의 복리’인지도 모른다.


칸트의 철학도 돈을 바라보는 기준을 한 단계 더 넓혀준다.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돈을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서른에 처음 읽는 부의 철학』이 말하는 부는 통장 잔액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간, 건강, 지식, 관계, 경험, 선택의 자유까지 삶 전체를 자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책 후반부에서 시간 관리와 복리, 독서 습관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일 읽는 몇 페이지, 조금씩 쌓는 투자금, 꾸준히 관리하는 건강처럼 눈앞에서는 별것 없어 보이는 행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격차를 만든다.


결국 진짜 부자는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의 욕망을 좇는 데 인생을 소비하지 않고, 오늘의 작은 선택을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투자로 바꿀 수 있는 사람. 이 책이 말하는 ‘부의 철학’은 결국 그런 삶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그 돈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묻는 책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은 ‘얼마를 벌고 싶은가’보다 조금 다른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가장 귀한 자본인 돈과 시간, 그리고 젊음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ㅡ

'스노우폭스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맹자는 "뜻을 세우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이기지 못한 탓"이라고 했습니다. 부를 쌓지 못하는 이유도 능력의 부족보다 자기 통제의 실패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욕망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늘어난 수입에 휘둘리지 않고 소비를 절제하며 미래의 가치에 집중하는 힘. 이것이 바로 자산을 만든다는 말의 본질이며 그것은 ’돈의 기술’이기 이전에 ’삶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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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독서법 - 책을 읽고도 제자리인 사람들에게
하토야마 레히토 지음, 원선미 옮김 / 마인드빌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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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시간은 점점 부족해진다.

서점이나 SNS에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발견하면 일단 사두지만,

어느 순간 책장에는 ‘언젠가 읽어야 할 책’만 늘어간다.

한편으로는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는지 기록하고, 완독한 책을 쌓아가는 일이 독서의 성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10권 독서법』을 읽다 보면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가 아니라 ‘읽은 책이 실제로 내 삶에서 무엇을 바꾸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저자 하토야마 레히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빠르게 읽는 속독도, 많은 책을 읽는 다독도 아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지금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20대와 30대가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만으로 싸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40대의 관리자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일을 맡고 경험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와 낯선 업계의 노하우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평생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쌓은 경험과 실패를 몇 시간 안에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지 못한 삶을 빌려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가 제안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단 10권’이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과 일본 학생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두 집단의 차이가 ‘독서량’보다 ‘책 사용법’에 있다고 말한다.

책을 외워야 할 지식, 즉 입력의 수단으로 읽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처럼 읽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도 결국 ‘알고 있다’를 ‘할 수 있다’로 바꾸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에 머무른다. 책을 읽고도 이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한다면, 책 한 권을 끝냈다는 사실만 남을 뿐이다.

결국 독서의 진짜 결과는 완독 표시가 아니라 그 뒤에 달라진 행동에서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책을 읽는 시간만큼 ‘고찰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내 상황에 적용하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에 어느 부분이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독서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서와는 다르다.

책을 하나의 정답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꺼내기 위한 질문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독서는 지식을 많이 저장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

저자가 눈앞에 두는 책을 10권으로 제한하는 이유도 흥미롭다.

책이 너무 많으면 정말 필요한 책이 다른 책 사이에 묻히고 관심도 분산된다.

그래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책, 실제로 실천해 보고 싶은 책, 미래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 책을 골라 10권만 가까이에 둔다. 이 10권은 단순한 독서 목록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어디에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업무 리스트 역할까지 한다.

어떤 책을 지금 곁에 두고 있는지는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작은 지도와도 같다. 결국 책을 고르는 일은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10권은 계속 바뀐다.

저자는 한 달에 한 번 목록을 다시 살펴보고 현재의 과제와 맞지 않는 책은 정리한다.

필요하면 버렸던 책도 다시 산다.

실제로 『혁신 기업의 딜레마』를 한 번 처분했다가 산리오의 라이선스 사업이 성공하던 시기에 다시 구입했다.

사업이 잘되고 있었기에 오히려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책도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책처럼 읽힐 수 있다.

책이 바뀐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결국 내가 새로운 질문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실용적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먼저 살펴보고,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자신이 주목하는 사람이 읽는 책이나 신뢰할 만한 추천 목록을 참고한다.

중요한 것은 유명한 책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문제와 연결되는 책을 찾는 것이다.

다음 주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언젠가 도움이 될 교양서가 아니라 당장의 발표를 개선할 수 있는 책이다.

경제경영서나 실용서를 스마트폰 사용설명서처럼 생각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 없이 필요할 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완독 여부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제를 해결할 답에 빠르게 도달해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다.

300페이지를 끝까지 읽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보다 단 한 페이지에서 필요한 답을 발견해 행동 하나를 바꾸는 편이 훨씬 의미 있는 독서일 수 있다.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만족보다 책에서 무엇을 가져와 현실에 옮겼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산리오에서 해외 CSR을 고민하던 당시 마이클 포터의 ‘공통 가치 창조(CSV)’

개념을 실제 업무에 활용한 저자의 경험도 이 독서법을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

책에서 얻은 개념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하면서 기업의 사회공헌을 단순한 비용이 아닌

‘비즈니스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좋은 책은 반드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결국 독서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이유는 책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책을 통해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은 이해가 잘되지 않을 때 ‘콘텍스트가 부족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다. 우리는 어려운 내용을 만나면 쉽게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경과 앞뒤 맥락을 알게 되는 순간 복잡했던 내용이 쉽게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이해한다는 것은 정보를 하나 더 외우는 일이 아니라 정보와 정보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독서는 문장을 수집하는 과정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권 독서법』을 읽고 나면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라는 독서의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진다.

저자가 말하는 ‘책을 10권밖에 읽지 않는다’는 것은 적게 읽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10권의 책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바꾸라는 의미다.

책의 숫자를 늘리는 독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늘리는 독서.

100권을 읽고도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보다 단 10권을 읽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편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결국 독서가 남겨야 하는 것은 읽은 책의 숫자가 아니라 책을 만나기 전과 조금은 달라진 나 자신일 것이다.

『10권 독서법』은 책을 많이 읽는 방법보다 책을 현실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ㅡ

'마인드빌딩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미국과 일본의 학생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독서량’이 아니라 ‘책 사용법’이다.
일본의 학생은 책을 입력의 수단, 즉 외워야 할 지식으로 생각하며 읽는다면,
미국의 학생은 책을 문제 해결의 처방전으로 생각하고 출력의 수단으로서 읽는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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