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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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은 해방을 앞둔 시기의 조선 사람들을 다룬다.  

하지만 이 책 속 인물들은 아직 해방이 올 줄 모른다.  

독자는 곧 일본이 패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작품 속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과 공출, 징용, 감시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래서 이 권은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끝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고통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더 거칠어지고, 사람들의 삶은 더 깊이 흔들린다.


이번 권에서는 친일에 기대어 세력을 얻으려는 사람들, 전쟁 속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끝까지 마음속 불씨를 지키는 민초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말단 말직, 실속 없는 명예직이라도 하나 얻어 걸치고 보면 세력의 판도는 여지없이 뒤집히는 현실”이라는 문장은 당시 사회의 뒤틀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허울뿐인 자리 하나에도 사람의 태도가 바뀌고, 권력의 끄트머리에라도 매달리려는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친일은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때로는 욕심과 비겁함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환국과 순철의 대화도 오래 남았다.  

“바보처럼 웃고 살자. 광대가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이 말에는 웃음조차 생존의 방법이 되어버린 시대의 슬픔이 담겨 있다.  

진심으로 웃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웃어야 하는 시대.  

그 뒤에는 공포와 허무, 무력감이 가득했다.


전쟁을 바라보는 환국의 시선은 특히 날카롭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집단의 광기를 비판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단결이라 부르지만, 그 방향이 파괴를 향할 때 그것은 가장 무서운 폭력이 된다.  

“창조 없는 곳에선 파괴뿐이고 사람이 짐승으로 전락하지.”  

이 문장을 읽으며 전쟁이 왜 인간을 망가뜨리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이 빠진 질서는 결국 모두를 무너뜨릴 뿐이다.


이번 권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홍이였다.  

송관수의 죽음 이후 홍이는 깊은 외로움과 의욕 상실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흩어지고,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만주도 조선도 온전히 그의 자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런 홍이가 보연의 금 문제에 얽혀 조선으로 압송되는 과정은 더욱 안타깝다.  

전시하에서는 개인이 금을 소유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가 금을 회수하고, 모든 것이 전쟁을 위해 동원되는 시대였다.  

한 사람의 작은 판단도 전쟁이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는 큰 사건이 되어버린다.  

보연의 물정 모름은 결국 홍이의 삶까지 흔들어놓는다.


홍이, 영광, 영호, 휘가 함께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용이의 아들 홍이, 관수의 아들 영광, 한복의 아들 영호, 강쇠의 아들 휘.  

이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부모 세대의 상처와 시대의 비극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토지』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삶은 가족의 역사와 이어지고, 가족의 역사는 다시 시대의 역사와 맞물린다.


유인실과 오가타 지로의 만남은 이번 권에서 가장 아프게 남은 장면이었다.  

인실은 일본인 오가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마음껏 선택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녀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독립운동가로서의 책임, 일본인을 사랑했다는 죄의식이 모두 뒤엉켜 있었다.


“인실 씨는 사람을 사랑한 것뿐입니다.”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인실은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그 사랑은 시대 속에서 배신과 죄책감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사랑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오가타 역시 단순히 일본인이라는 이름으로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인실을 사랑했지만 조선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의 절망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개인의 진심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사람이 비인간화될 수 있는가.  

작품은 쉽게 답을 주지 않고, 그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


환국의 내면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시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창조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해숙을 향한 연민, 소림과의 엇갈림을 보며 환국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시작일 수 있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결국 또 다른 외로움이 된다.


『토지 17』은 거대한 역사만 보여주지 않는다.  

병든 귀남을 다독이는 말, 김두만을 향한 영팔노인의 분노, 해도사와 연학의 대화처럼 작은 장면들 속에서도 삶의 결이 살아 있다.  

“사람이란 살다 보면 병도 나고 험한 꼴도 보고, 그기이 사는 거 아니겠나.”  

이 투박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큰 위로처럼 다가왔다.  

사는 일은 늘 반듯하지 않고, 때로는 아프고 험하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범석의 말은 『토지』라는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민중의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복종하는 듯 보여도 결코 섬기지 않고, 두려워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모멸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조선의 대지이며 생명이라는 말이 깊게 남았다.


『토지』에서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빼앗겨도 마음속에서 끝내 놓지 않은 조국이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지켜낸 생명이다.  

이동진이 떠올린 고향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땅 위에 사람들이 있었기에 산천은 조국이 되고, 조국은 다시 민족의 삶이 된다.


『토지 17』은 아프지만 단단한 권이었다.  

전쟁은 사람의 삶을 동강내고, 권력은 진실을 허구로 덮으려 하며, 시대는 개인의 사랑과 선택마저 짓밟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무너지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살아가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버틴다.


이 권을 읽고 나니 결국 삶이란 무엇을 지키며 버티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국은 진실과 창조를 말했고, 송관수는 배고프고 핍박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으며, 인실은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자신을 찢어야 했다.  

홍이는 돌아갈 곳 없는 외로움 속에서도 다시 길을 걸어야 했고, 민초들은 복종하는 듯 보이면서도 마음속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토지』는 오래전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묻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  

내가 딛고 선 땅은 무엇인가.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인간다운 마음은 무엇인가.


ㅡ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야간에 두만이 그놈 멀잖을 기구마. 자식 놈이 그 꼬라진데 무신 장로(장래)가 있을 기고. 말짱 헛공부 시킨 기라. 그 불쌍한 어미를 떠다밀고 논문서를 강탈해가질 않나 삼촌을 들고 패질 않나 하는 짓이란 주색잡기, 살림이 빠질라 카믄 하루아침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캐도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르는 법은 없인께. 지은 죄가 어디로 가노? 조존구 그놈을 봐라. 최참판댁에서 뺏은 그 많은 재산, 동전 한 푼 건사하지 못하고 알거지가 돼서 버린 자식 집에 기어들어왔다 안 카나? 하기사 그놈이 벌을 받을라 카믄, 어림없제. 멀었다, 멀었고 말고. 개과천선을 해도 그 죄를 못다 갚을 긴데 머라? 자식한테 호통을 치믄서 수발을 받는다꼬? 불로초를 구해오라 하면서 지랄발광을 한다고?"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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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도감
박우진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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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왜 이렇게 미숙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날,

헤어진 사람의 사진을 지우지 못하던 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이상하게 공허했던 순간들.

『인간 실격 도감』은 바로 그런 마음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아주 날것 그대로, 그러나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꺼내 보인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목과 달리 누군가를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괜찮은 척 살아가느라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실제 경험담과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나 만화가 아니다.

사람들의 실제 사연을 받아 작가가 그림과 글로 다시 풀어낸 생활 만화 형식이라 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실제로 겪었던 상처와 후회, 외로움이 작가의 상상력과 그림을 통해 한 장면으로 시각화되는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감정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짧은 컷만화인데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처음 이 책의 목차를 훑어봤을 때부터 유독 마음이 가는 제목들이 많았다.

그 안에는 실제로 내가 겪어봤거나, 지나고 나서 후회했고,

한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던 순간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엄마에게 난리 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아빠를 미워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헤어지고 사진 정리 못 하는 당신이 봐야 할 만화”

“자기연민이 과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운 당신이 봐야 할 만화”

마치 누군가 내 검색 기록이나 마음속 생각들을 몰래 훔쳐본 뒤 제목으로 붙여놓은 것처럼 현실적인 제목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스스로를 개미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봐야 할 만화’ 파트였다.

볼펜으로 그어진 선 하나를 넘지 못하는 개미를 보며

사람 역시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 안에 갇혀 살아간다는 이야기.

“우리는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

라는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실제로 선은 지워질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선을 절대적인 벽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짧은 만화였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정적인 당신이 봐야 할 만화’였다.

썩은 과일 상자 앞에서 “이번에도 썩었네?” “그래.. 애써도 다 의미 없다 이거지?” 라며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이 모습이 단순히 게으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안 될 이유만 찾느라 시작조차 못 하는 겁쟁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괜히 마음이 뜨끔했다.

결과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안 될 이유를 하나둘 가져다 붙이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주춤거리며 스스로를 가로막는 내 모습이 괜히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이 파트의 그림과 글들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 책은 가족 이야기를 다룰 때 특히 더 묵직해진다.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 파도처럼 사라지는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젊을 때는 결과만 바라보느라 그 과정을 견디던 부모님의 손마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문장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단순히 부모님께 잘하자는 식의 뻔한 감성이 아니라,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지를 여운이 남는 그림과 함께 담담하게 보여준다.

반대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의외로 다정하다.

‘카메라 필터 없이는 세상과 마주하기 힘든 위축됨’ 파트에서는 정형화된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작은 흔적과 개성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쌍꺼풀이 없는 눈, 덧니, 눈가의 촉촉함 같은 것들을 결점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분위기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했다.

“예쁜 렌즈는 어떤 피사체든 예쁘게 찍는데. 너의 시선이 그만큼 예쁜 거야.”

라는 대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세상을 예쁘게 포장하는 책이 아니라 상처와 미숙함까지 포함해서 인간을 바라보려는 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제목은 ‘실격된 당신들을 위한 에필로그’다.

그 문장을 읽고 있으면 작가는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원래 미숙한 존재이고, 중요한 건 그 미숙함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인간 실격 도감』은 힘내라고 등을 떠미는 자기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대신 지친 사람 옆에 조용히 앉아서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읽고 나니 이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는 도감이 아니라,

상처받고 흔들리고 후회하면서도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둔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실격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자주 흔들리고, 미숙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 부족함을 마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실격된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조용한 고백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

ㅡ

이 리뷰는 <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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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은 어른의 시간 - 시니어 IN 그림책 ㅣ IN 그림책
최혜정 지음 / 생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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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인 리뷰를 남기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먼저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처음 이 책을 넘겼을 때는 그림책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왜 정작 그림은 빠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약간의 의아함을 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작가님의 시선을 따라 그림책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니 오히려 그림이 없어서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림이 눈앞에 주어지지 않으니 글만으로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풍경을 스스로 그려보는 시간이 생겼다. 그림이 아닌 글에 집중하다 보니, 삶에 빛이 되어줄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도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게 느껴졌다.

읽을수록 소개된 그림책의 그림을 직접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래서 본문 발췌 부분에서는 두 작품 정도만 실제 그림을 찾아 함께 실었고, 나머지 발췌 부분에는 일부러 그림을 넣지 않았다.

이 책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궁금증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은 어른의 시간』은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더 깊은 교훈과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그림책 한 권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나이 듦과 어른의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이 책은 직접 읽어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이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리뷰]

『오히려 좋은 어른의 시간』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제목 그대로였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단단해져야 할 마음이 있고, 더 부드러워져야 할 태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시니어 IN 그림책’이라는 부제처럼, 그림책을 통해 나이 듦과 어른의 시간을 바라보는 책이다. 초고령 사회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어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 듦은 자주 두려움이나 상실의 언어로만 이야기된다.

젊음은 가능성이고, 나이 듦은 끝이라는 식의 시선도 여전히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조용히 뒤집는다.

나이 듦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다르게 피어나는 시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저자가 그림책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책 속 인물과 장면을 통해 삶의 태도를 길어 올리고, 그 안에서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차분히 묻는다. 특히 흰머리, 주름, 굽어진 몸 같은 것들을 결핍이나 초라함으로만 보지 않고, 그 시간 속에 쌓인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인상 깊었다.

좋은 어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을 결핍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어른에 가까운 것 같다.

책 속에서 김동성 작가의 그림책 『꽃에 미친 김 군』을 다룬 부분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조선 시대 꽃에 평생 몰입했던 김덕형의 삶을 통해,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보여준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고, 미련해 보이고, 때로는 이상해 보이는 일이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실제로 『꽃에 미친 김 군』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책에서 표현한 대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꽃에 저절로 취하는 느낌이었다.

텍스트만으로 그림을 설명한 책이었는데도, 그 그림이 너무 궁금해져 결국 찾아보고 결제까지 하게 되었다. 그 순간 이 책이 가진 힘을 실감했다.

좋은 책은 다른 좋은 책으로 이어지고, 한 권의 책은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어쩌면 ‘취향’은 삶을 지탱하는 작은 뿌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일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고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좋은 어른의 시간』은 나이 듦을 말하지만, 단지 나이 든 사람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

나이 드는 일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어른이란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계속 배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은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깊은 질문이 숨어 있다.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책이 어른에게 더 깊이 다가올 때가 있다.

어릴 때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 나이가 들어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고,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어느 순간 마음을 오래 붙든다.

결국 그림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고, 사소한 것에서 마음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 그게 어른의 품격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에 들어간 ‘오히려’라는 말도 오래 남는다. 나이가 들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는 시간.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어서 오히려 천천히 볼 수 있는 시간.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져서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을 더 소중히 붙드는 시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이 듦을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갈 그늘이 되어주는 어른. 내 취향과 몰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른. 나이 듦을 숨기지 않고, 그 시간 안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어른. 그런 어른의 시간을 나도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다.

『오히려 좋은 어른의 시간』은 그림책을 통해 나이 듦을 다시 배우게 하는 책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꼭 쓸쓸한 일만은 아니라고, 오히려 더 깊고 넓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정한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지금 당신의 시간은 어떤 아름다움으로 익어가고 있는가?


ㅡ

'검은고양이 서평단 @thaod1088‘을 통해

‘도서출판 생애’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 인생 IN 그림책 >

빨) 김진향 @book_cart_ssam

주) 조은주 @chakanbyeol_j

노) 김볕 @written.byemma

초) 최혜정 @pianokey68

파) 김혜경 @hyekyoung__arcabooks 

남) 김태은 @8.green.picture


18세기 조선에, 이러한 해체와 전복을 시도한 지식인 그룹이 있었다.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이다. 기존의 공리공론을 거부하는 실학자였던 그들은 늘 새로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덕에서 벗어나 ‘벽과 치’를 즐겼다. 벽癖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즐기는 병이며, 치癡는 너무 어리석어 미친듯하다는 뜻이다. 이덕무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가 호였으며, 정철조는 돌에 비친 바보라는 뜻의 ‘석치’를 호로 사용했다. 박제가는 화가 김덕형이 만든 식물도감 『백화보』의 서문인 「백화보서」를 써서 ‘벽’을 예찬한다.
그는 글을 시작하며 먼저, 편벽된 병을 앓는다는 의미의 ‘벽’이 실은 병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독하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그는 김덕형의 ‘벽’을 극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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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교양 : 야망은 큰데 왜 맨손인가 ㅣ 세계척학전집 5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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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 그런 순간이 있다.

분명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제시 했는데 더 크게 말한 사람이 인정받고,

실력은 쌓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삶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때 말이다.

공감한다면 이 책에 집중해보시라~!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단순히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성실해야 하나, 더 참고 더 노력해야 했었나 싶었다.

그런데 『세계철학전집 : 싸움의 교양 편』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부족했던 건 진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하고.

처음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아주 직설적으로 다가왔다.

“진심은 전략이 아니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괜히 마음이 멈칫했다.

살면서 늘 진심은 통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성실하면 알아봐 줄 거라고, 묵묵히 열심히 하면 결국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은 냉정하게 말한다. 세상은 당신의 본질보다 당신이 내보이는 신호에 먼저 반응한다고.

호텔 로비에서 정장을 입었을 때와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예시는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달라진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밖으로 내보인 모습이었다.

협상 테이블에서도, 조직 안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심 자체보다 그 진심이 어떤 모습으로 전달되는지에 먼저 반응한다.

나는 늘 진심이면 된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라 억울하면 더 설명하려 했고, 답답하면 더 많이 이해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사람들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진심이 있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묻히고,실력이 있어도 그것을 꺼내는 방식이 서툴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 부족했던 건 단순한 실력이 아니라 그 실력이 보이고, 전달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설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말도 전한다.

“사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우의 교활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조금 거칠게 느껴졌는데

읽다 보면 여기서 말하는 교활함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언제 밀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읽는 능력에 가까웠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제갈량의 이야기였다.

2,500명으로 15만 대군 앞에 섰을 때 그는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탄다.

얼핏 보면 허세 같지만 사실 그건 30년 동안 쌓아온 평판 위에서 가능했던 전략이었다.

그 장면을 읽는데 사람은 결국 보이는 모습 하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쌓아온 이미지와 신뢰 전체를 보고 판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척”이라는 것을 단순한 허세로 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가장 강한 형태로 배치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같은 실력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무시당하기도 하고 압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결국 내가 가진 것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반응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특히 “싸워서 이긴 밤”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말다툼에서 분명 내가 이겼다.

논리도 맞았고 마지막 한마디도 정확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상대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져 있다.

읽는데 괜히 숨이 턱 막혔다.

살면서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승리는 가져왔지만 그 이후의 관계는 완전히 멀어져 버리는 일들.

이 책은 이 이야기를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연결해 보여준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 전체에서는 실패했던 구조처럼,

순간의 승리에만 몰두하다 보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손자의 문장이 정말 오래 남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쟁, 병법, 철학, 협상, 정치 같은 어려운 이야기들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손자의 병법 이야기를 하다가도 인간관계와 조직 이야기로 이어지고,

협상 이론을 설명하다가도 어느 순간 회사 생활과 사람 사이 거리감 이야기로 연결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모두가 합리적인데 모두가 지는 이유”라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늘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 이익만 계산하다 보면 결국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또 “정면으로 가는 자가 가장 먼저 진다”라는 내용도 꽤 인상 깊었다.

예전의 나는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최대한 참고 넘기려 했고,

부당하다고 느껴도 괜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삼킨 적이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맞서기만 하는 사람이 위험한 것처럼

아무 전략 없이 계속 참기만 하는 사람 역시 결국 불리한 판에 오래 남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중요한 건 감정적으로 부딪히느냐, 끝까지 참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판 위에 서 있는지 읽는 능력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비스마르크의 현실정치, 저우언라이의 외교,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같은 내용들이 이어지는데

읽다 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깨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충격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다.

살면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다시 움직이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힘을 만든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인생은 한 번 크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자기 판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 게임에 가까운 것 같다.

읽는 내내 계속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나는 그동안 너무 진심만 믿고 살아온 건 아닐까.

진심은 중요하다. 성실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 책은 성실함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함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내보일지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철학전집 : 싸움의 교양 편』은 누군가를 짓밟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사람과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만 바라보다 자꾸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의 문장들이 꽤 깊게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왜 그렇게 맨손으로만 세상을 상대하려 했을까?”


ㅡ

'책읽는 쥬리 @happiness_jury'님을 통해

'모티브 출파나'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우의 교활함이 필요하다."
사자는 힘이 있다. 하지만 함정을 보지 못한다. 여우는 힘이 없다. 하지만 함정을 읽는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교활함"은 속임수가 아니다. 구조를 읽는 능력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가 약한지, 언제 밀어야 하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같은 힘을 가지고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뒤집힌다. 힘이 아니라 설계가 승패를 가른다. 이 설계를 우리는 "척"이라 부른다.
강한 척, 여유로운 척, 관심 없는 척. "척"은 가볍게 들린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들은 전부 이 "척"의 구조를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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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성장시키는 세계 문학 명문장 필사책 - 영원히 사랑받는 명작 소설 영어로 따라쓰기
제인 오스틴 외 지음 / 현익출판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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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좋은 문장 모음집’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명문장 필사책이라고 하면 유명한 문장만 짧게 나열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을 성장시키는 세계 문학 명문장 필사책》은 작품 설명과 줄거리, 문장이 등장하게 된 감정의 흐름까지 함께 정리되어 있어서 마치 한 권의 세계문학 안내서를 읽는 느낌에 가까웠다. 여기에 영어 원문과 주요 단어 뜻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어,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과 문장 구조도 익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문장을 베껴 쓰는 필사책이 아니라, 왜 이 문장이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 이해하면서 영어 공부까지 함께할 수 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책의 첫 장에 실린 프롤로그는 “삶을 살아가면서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문장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오래 품고 살아가는 문장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장은 힘든 순간 다시 떠오르고, 어떤 문장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문장들은 어느새 희미해지기 쉽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을 다시 손으로 천천히 불러오는 책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필사의 의미를 단순히 영어 공부로만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책에서는 눈으로 읽고 지나간 문장을 손으로 직접 옮기는 순간, 문장이 훨씬 천천히 마음속으로 들어온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써보면 정말 그렇다. 그냥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갔던 단어들이, 막상 따라 적기 시작하면 묘하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인지 필사 공간도 넉넉하게 구성되어 있어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써볼 수 있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록된 작품들도 굉장히 좋았다.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익숙한 작품부터 『안나 카레니나』, 『레 미제라블』, 『율리시스』처럼 조금 더 깊이 있는 고전까지 폭넓게 담겨 있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 자기 인식”, “사랑과 감정의 밀도”, “사회와 인간의 구조”, “상상과 이야기의 세계”처럼 주제별로 구성해 둔 방식도 정말 좋았다. 덕분에 문장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의외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사실 예전에는 『빨강머리 앤』의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더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키다리 아저씨』 속 문장들이 훨씬 깊게 다가왔다.

특히 주디 애벗이 이야기하는 삶의 태도가 지금 읽으니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가장 크게 중요한 것은 거창한 즐거움들이 아니에요.

작은 즐거움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내느냐가 더 중요하죠.”

행복은 엄청난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내느냐에 있다는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살아가라는 문장은 흔한 조언처럼 보이지만, 주디의 편지 속에서는 이상하게 진심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상상력에 대한 문장이었다.

“상상력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문장은 단순히 문학의 역할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세계문학을 읽는 시간이 결국 내 마음을 넓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인 에어』의 문장들도 강렬했다.

“나는 새가 아니에요. 그리고 나를 얽어맬 그물도 없어요.”라는 문장은 너무 유명한데,

직접 따라 써보니 문장이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존엄과 독립적인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또 『빨강머리 앤』에서는 “10월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라는 문장이 참 사랑스러웠다. 평범한 계절 하나를 저렇게까지 기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앤이라는 인물의 매력인 것 같다.

이 책은 영어 필사책이지만, 단순히 영어 문장을 따라 쓰는 데 목적이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사랑받아 온 세계문학 속 문장들을 천천히 읽고, 손으로 옮기면서 내 감정과 삶을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책에 더 가깝다. 영어 표현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건 문장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둘 수 있는가에 대한 경험이었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한 날, 조용히 한 페이지를 펼쳐 문장을 따라 적다 보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빨리 읽고 끝내는 책이라기보다는, 천천히 꺼내 읽고 좋은 문장은 직접 필사해보면서 느리게 보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ㅡ

'유엑스리뷰어 12기‘ 활동을 통해

’현익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It isn’t the great big pleasures that count the most; it’s making a great deal out of the little ones—I’ve discovered the true secret of happiness, Daddy, and that is to live in the now. Not to be forever regretting the past, or anticipating the future; but to get the most that you can out of this very instant. It’s like farming. You can have extensive farming and intensive farming; well, I am going to have intensive living after this."
"가장 크게 중요한 것은 거창한 즐거움들이 아니에요. 작은 즐거움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내느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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