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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도감
박우진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평점 :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왜 이렇게 미숙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날,
헤어진 사람의 사진을 지우지 못하던 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이상하게 공허했던 순간들.
『인간 실격 도감』은 바로 그런 마음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아주 날것 그대로, 그러나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꺼내 보인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목과 달리 누군가를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괜찮은 척 살아가느라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실제 경험담과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나 만화가 아니다.
사람들의 실제 사연을 받아 작가가 그림과 글로 다시 풀어낸 생활 만화 형식이라 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실제로 겪었던 상처와 후회, 외로움이 작가의 상상력과 그림을 통해 한 장면으로 시각화되는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감정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짧은 컷만화인데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처음 이 책의 목차를 훑어봤을 때부터 유독 마음이 가는 제목들이 많았다.
그 안에는 실제로 내가 겪어봤거나, 지나고 나서 후회했고,
한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던 순간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엄마에게 난리 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아빠를 미워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헤어지고 사진 정리 못 하는 당신이 봐야 할 만화”
“자기연민이 과한 당신이 봐야 할 만화”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운 당신이 봐야 할 만화”
마치 누군가 내 검색 기록이나 마음속 생각들을 몰래 훔쳐본 뒤 제목으로 붙여놓은 것처럼 현실적인 제목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스스로를 개미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봐야 할 만화’ 파트였다.
볼펜으로 그어진 선 하나를 넘지 못하는 개미를 보며
사람 역시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 안에 갇혀 살아간다는 이야기.
“우리는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
라는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실제로 선은 지워질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선을 절대적인 벽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짧은 만화였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정적인 당신이 봐야 할 만화’였다.
썩은 과일 상자 앞에서 “이번에도 썩었네?” “그래.. 애써도 다 의미 없다 이거지?” 라며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이 모습이 단순히 게으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안 될 이유만 찾느라 시작조차 못 하는 겁쟁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괜히 마음이 뜨끔했다.
결과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안 될 이유를 하나둘 가져다 붙이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주춤거리며 스스로를 가로막는 내 모습이 괜히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이 파트의 그림과 글들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 책은 가족 이야기를 다룰 때 특히 더 묵직해진다.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 파도처럼 사라지는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젊을 때는 결과만 바라보느라 그 과정을 견디던 부모님의 손마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문장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단순히 부모님께 잘하자는 식의 뻔한 감성이 아니라,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지를 여운이 남는 그림과 함께 담담하게 보여준다.
반대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의외로 다정하다.
‘카메라 필터 없이는 세상과 마주하기 힘든 위축됨’ 파트에서는 정형화된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작은 흔적과 개성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쌍꺼풀이 없는 눈, 덧니, 눈가의 촉촉함 같은 것들을 결점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분위기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했다.
“예쁜 렌즈는 어떤 피사체든 예쁘게 찍는데. 너의 시선이 그만큼 예쁜 거야.”
라는 대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세상을 예쁘게 포장하는 책이 아니라 상처와 미숙함까지 포함해서 인간을 바라보려는 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제목은 ‘실격된 당신들을 위한 에필로그’다.
그 문장을 읽고 있으면 작가는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원래 미숙한 존재이고, 중요한 건 그 미숙함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인간 실격 도감』은 힘내라고 등을 떠미는 자기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대신 지친 사람 옆에 조용히 앉아서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읽고 나니 이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는 도감이 아니라,
상처받고 흔들리고 후회하면서도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둔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실격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자주 흔들리고, 미숙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 부족함을 마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실격된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조용한 고백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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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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