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유어 마인드 - 반복되는 루틴에 가려진 내 안의 잠재력과 마주하는 법
마리오 알론소 푸이그 지음, 성소희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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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불안할 때마다 같은 생각에 빠지고, 외로울 때마다 익숙한 행동을 반복하며, 상처받았던 관계와 비슷한 관계를 다시 선택하기도 한다.

분명히 변하고 싶은데도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셋 유어 마인드』는 그 답을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찾는다.

이 책의 문장처럼, “프로그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프로그램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그램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면 탐험의 안내서다.


저자 마리오 알론소 푸이그는 인간의 마음을 막연한 감정이나 긍정적인 태도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뇌과학, 심리학, 의식과 무의식, 신체 감각과 정서적 기억을 함께 설명하며 우리가 왜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보여준다. 책에서는 인간의 정신에도 컴퓨터처럼 여러 운영체제가 있다고 말한다.

생존과 본능을 담당하는 시상 하부, 감정과 애착을 기억하는 대뇌변연계, 언어와 분석을 맡는 좌뇌, 직관과 연결감을 느끼는 우뇌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 안에는 “지금 당장 안전해야 한다”는 마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마음, “더 깊은 의미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행동 하나에도 여러 층의 이유가 있다.

시상 하부는 배고픔, 목마름, 성적 욕구, 스트레스 반응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이 영역은 “지금 당장 필요해”라고 외친다.

반면 대뇌변연계는 위험과 기회를 감지하고, 즐거움은 가까이하고 고통은 피하려 하며, 무엇보다 정서적 유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왜 낯선 변화보다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르려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변화가 무서운 것은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깊게 남은 부분은 신체 접촉과 정서적 유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아기에게 안기고 쓰다듬어지는 경험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뇌 발달과 관계 형성의 중요한 토대라고 말한다.

편도체는 대뇌변연계의 중심이며 감정적인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다.

어린 시절 충분한 접촉과 애착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 관계에서 불안정함을 느끼거나 외로움과 거절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외로울 때 음식을 찾고, 어떤 사람은 불안을 느낄 때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며, 어떤 사람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대목은 단순히 뇌과학 지식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행동을 보며 “왜 나는 또 이러지?”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행동을 곧바로 비난하기 전에 그 안에 숨은 결핍을 보라고 말한다.

음식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을 수 있고, 물건을 사고 싶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허전함을 달래고 싶었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를 때, 가장 가까이 있는 대체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그래서 변화의 시작은 행동을 억지로 끊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대신 채우고 있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도 좋았다. 저자는 누군가의 행동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과거에 겪은 일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어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 상처, 결핍, 두려움 속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반응할 때 우리는 쉽게 판단한다.

그러나 판단은 대상을 좁게 보고, 이해는 대상을 넓게 본다.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묻는 대신 “저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어떤 맥락이 있었을까?”라고 묻는 순간, 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물론 과거의 상처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일과 원인을 이해하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원인을 보지 못하면 같은 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진짜 성숙은 상처를 핑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나를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알아차리고 더 이상 그 방식으로만 살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일이다.


좌뇌와 우뇌에 대한 설명도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좌뇌는 언어, 분석, 분류, 판단을 담당한다.

우리는 좌뇌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현실과 다를 때도 우리가 그것을 진실처럼 믿는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안 돼”,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늘 실패한다” 같은 생각도 반복되면 하나의 자기 서사가 된다.

반면 우뇌는 존재의 느낌, 직관, 연결감, 더 깊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좌뇌가 소유와 성과와 통제를 중시한다면, 우뇌는 존재와 공감과 연결을 중시한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좌뇌가 나쁘고 우뇌가 좋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뇌만 강하면 삶을 성과와 인정, 소유로만 바라보기 쉽고, 우뇌만 강하면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통합이다. 이성과 감정, 논리와 직관, 현실과 내면이 함께 움직여야 우리는 더 온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삶은 논리만으로도 부족하고 감정만으로도 불안하다.

좋은 선택은 차가운 분석과 따뜻한 감각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자리에 앉을 때 가능해진다.


책에서 말하는 ‘리셋’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던 반응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는 상처받았던 과거가 괴로우면서도 그것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반복한다.

익숙한 고통은 이상하게도 안전처럼 느껴진다. 불편하지만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할 때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조용히 건드린다.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반복이 정말 나를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가두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후반부에서 말하는 명상과 호흡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명상은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라보는 시간이다.

집중해야 하는 활동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호흡에 집중할 때, 뇌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때 창조적 무의식이 움직이고,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기억 자체를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제한하지 못한다.


『리셋 유어 마인드』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뇌의 구조와 의식, 무의식, 좌뇌와 우뇌, 운영체제 같은 개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고장 난 존재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존재다.

나를 힘들게 했던 반복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감정도, 자꾸만 돌아가던 익숙한 선택도 모두 나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자기 이해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회복의 출발점이다. 나를 알아야 나를 바꿀 수 있고, 나를 바꿀 수 있어야 비로소 내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책을 읽고 나서 오래 남았떤 생각은, 괜찮은 정도의 삶에 머물기엔 우리 안의 잠재력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그 자원이 잠들어 있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다.

물이 액체, 얼음, 수증기로 형태를 바꾸듯 인간도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발휘한다.

지금 무기력하다고 해서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불안하다고 해서 삶 전체가 불안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다.

결국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더 세게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 안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감정에 묶여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사실처럼 믿어 왔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반응하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진짜 리셋은 과거의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이해한 뒤 더 이상 그 방식만으로 살지 않겠다고 조용히 선언하는 일이다.


'오픈도어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떤 대상이든 겉모습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협력을 이끄는 감정적 유대를 쌓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시상 하부는 개체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서적 유대를 일으키는 데 아주 중요한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도 생성한다. 그런데 이 기능은 포유류에만 존재할 뿐 파충류에는 없다. 아울러 진화 과정에서 더 나중에 발달하는 편도체 핵이야말로 진정한 정서적 유대감 형성 및 모성 행동의 핵심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몇 년 동안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다면, 편도체 핵이 발달하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는 성장한 후 스트레스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회복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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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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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분명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자주 텅 비는 순간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왜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밤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SNS를 보면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열심히 일해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고, 쉬는 날이 와도 제대로 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혼자인 것 같고, 무언가를 사고 먹고 보고 즐겨도 잠깐뿐, 다시 원래의 허전함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다.

나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아주 크게 무너진 사람뿐 아니라,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는 지금 뭘 위해 살고 있지?”라고 묻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상하게 힘든데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돈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관계 때문에 지친 것 같기도 한데,

막상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의 상실’은 바로 그런 마음의 상태에 가까웠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마음이 굶주린 느낌. 쉬고 있는데도 쉬어지지 않고, 웃고 있는데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느낌.

이 책은 그 공허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인간에게는 의미가 필요하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해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단순히 강제수용소의 고통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그 이후의 질문을 던진다.

살아남은 뒤에도 사람은 다시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

하루하루는 계속되지만, 마음속에서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삶은 쉽게 버거워진다.

나는 이 부분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보통 힘든 일을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지나간 뒤에 더 크게 남기도 한다.

사건은 끝났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고, 겉으로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속으로는 삶의 이유를 다시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니라, 버틴 이후에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서문에서 손자 알렉산더 베셀프랭클은 할아버지를 쾌활하고 사랑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주들과 놀이공원에 가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고, 화를 내더라도 금방 사과할 줄 아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보였지만, 그는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튀르크하임을 지나온 사람이었다.

가족을 잃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세상을 미워하는 사람으로만 남지 않았다.

이 부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 반드시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상처가 없어서 다정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깊어진 사람도 있다는 것.

프랭클의 삶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픔을 겪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망만 남는 것은 아니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간에게는 고통 이후에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밝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산산이 부서지고도 원망에만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프랭클이 전쟁 후 빈으로 돌아왔을 때 더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강제수용소에서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목표가 분명했다.

살아남아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

그러나 돌아왔을 때 가족은 더 이상 없었다.

삶을 지탱하던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은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을 견뎌야 할 이유가 사라졌을 때 더 깊이 무너지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시간도 “이걸 지나면 만나게 될 사람”, “이걸 견디면 해내고 싶은 일”,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삶은 갑자기 방향을 잃는다.

프랭클이 겪은 절망은 감히 쉽게 상상할 수 없지만, 그가 다시 붙든 것이 ‘나를 위한 이유’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일’이었다는 점이 깊게 다가왔다. 자기 삶이 무너진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붙드는 쪽으로 걸어갔다는 것. 그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프랭클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남은 하나의 과제를 붙들었다.

의사로서, 작가로서, 자신과 비슷하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처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였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삶의 의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내게 던지는 질문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생긴다.

나는 이 문장이 단순한 명언처럼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주 삶에게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왜 나는 이렇게 힘드냐고, 왜 원하는 만큼 얻지 못했냐고.

그런데 프랭클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삶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쉬운 위로는 아니지만,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삶의 의미는 생각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깊게 다가온다.

취업에 실패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 매일 바쁘게 살지만 마음속은 텅 빈 사람, 남들처럼 소비하고 과시하려 애쓰지만 정작 왜 사는지 모르는 사람. 번아웃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사람, 주말이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지는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앞으로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

프랭클은 이런 상태를 단순한 우울이나 나약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안에 실존적 공허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 있는 의미를 향한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생기는 깊은 허기다.

이 표현이 참 정확하다고 느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정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이유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인 것 같다.

계속 비교하게 되고, 계속 증명해야 하고, 계속 더 나아져야 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 정작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놓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텅 빈다.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안 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프랭클은 그 공허를 인간의 중요한 신호로 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내 삶이 의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신호로 말이다.


프랭클은 현대인이 더 빠르게 달리는 이유도 이 공허와 관련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일이 많아서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멈추면 자신 안의 공허가 드러날까 봐 더 바쁘게 움직인다.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빨리 달리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목표가 없을수록 속도만 빨라진다는 말은 오늘의 삶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요즘 사람들의 삶이 많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계속 보고, 사고, 올리고, 확인하고, 계획하고, 일정을 채우지만 정작 혼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바쁘게 살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멈췄을 때 마주하게 될 허전함이 두려워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방향 없는 성실함일지 모른다.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구원은 거창하지 않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성취하는 일이다.

둘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셋째,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일부러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고통 앞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가 좋았던 이유는 너무 멀리 있는 답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은 꼭 대단한 성공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조금 더 성실하게 해내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슬픔 앞에서도 나 자신을 함부로 망가뜨리지 않는 것. 그런 일들 속에도 의미는 있었다.

결국 의미는 나만 바라볼 때보다 내가 기여할 일과 사랑할 사람과 지키고 싶은 태도를 가질 때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말은 오래 남는다.

이 말은 고통을 똑같이 보자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실직이, 누군가에게는 이별이, 누군가에게는 질병이,

누군가에게는 죄책감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몰라주는 외로움이 자기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고통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고통을 비교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걸로 힘들어하면 안 되지” 같은 말로 누군가의 아픔을 작게 만든다. 하지만 고통은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 “내가 힘들어해도 되는구나”라는 작은 위로처럼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힘든 것도 진짜라고,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프랭클은 인간을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말하면서 반드시 책임을 함께 말한다.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취할 태도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다.

군중 속에 숨고, 시대 탓을 하고, 운명 탓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반대로 소수일지라도 품위 있는 사람의 편에 서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프랭클의 위로가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힘든 사람에게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을 믿는 말처럼 느껴졌다.

상황에 휩쓸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작은 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조금씩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들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만들어간다.


책 후반부에서 프랭클은 덧없음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설명을 남긴다.

사람들은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프랭클은 덧없음이야말로 가능성이자 기회라고 말한다.

우리가 한 일, 우리가 한 사랑, 우리가 견딘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창고 안에 보관된다.

한 번 실현된 것은 아무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나는 이 생각이 참 좋았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자주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

끝난 관계, 실패한 시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떠올리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프랭클은 과거가 사라진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게 보관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 최선을 다해 견딘 시간, 누군가를 위해 애쓴 시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삶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고, 누구도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이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말하는 의미의 형태도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이런 뜻인 것 같다. 삶의 의미는 처음부터 완성된 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흩어진 점처럼 보이는 경험들, 실패, 사랑, 일, 상실, 고통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아, 이 일이 내 삶에서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조금씩 알게 된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삶 안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모양에 가깝다.

같은 사건도 누구에게는 절망으로 끝나지만, 누구에게는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그 모양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해서, 내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는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당시에는 실패처럼 보였던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당시에는 상실처럼 보였던 시간이 나에게 사랑의 깊이를 가르치기도 한다.

삶은 매 순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내고, 사랑하고, 견디는 동안 흩어진 조각들은 조금씩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간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완벽한 답을 손에 넣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조각들이 어떤 그림을 이루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고통을 없애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이 책은 내게 아직 삶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으며, 끝까지 견뎌내야 할 태도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나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가 완전히 절망하는 순간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만이 아닌 것 같다.

그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정말 무너진다.

프랭클은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마지막 자유를 이야기한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조차, 나는 그 상황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은 작아 보여도 결코 작지 않다.

그 태도 하나가, 고통 속에서도 내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게 붙들어주는 마지막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랭클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피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작은 응답들이 쌓여 내 삶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과거라는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끝내 우리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삶의 의미란 대단한 성공이나 특별한 사명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는 멀리 있는 답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더 가까웠다.

무너진 날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는 것,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감당하는 것.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작고 조용한 선택들이 한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태도가 남아 있다고 말해준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책임을 붙들 것인지.

결국 그 응답들이 모여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말해준다.



'북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스트레스 연구의 창시자인 몬트리올의 한스 셀리에조차도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스트레스는 삶의 소금이며, 인간에게는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신중하게, 인간에게는 건강한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큰 긴장도, 너무 적은 긴장도 아닌 적정 수준, 즉 건강한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런 긴장은 양극을 가진 자기장에서 생겨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쪽 극에는 인간이 있고, 다른 쪽 극에는 의미가, 오직 그가 실현해주기를 기다리는 고유하고 구체적인 ‘의미’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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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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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우리는 특별한 사건들이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평범한 순간들이다.

함께 밥을 먹던 저녁, 아무렇지 않게 나눴던 대화, 끝내 하지 못했던 사과,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침묵.

데니스 존슨의 유작 《바다 여인의 선물》은 바로 그런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서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줄거리도 선명하지 않고, 현실과 기억, 꿈이 뒤섞여 있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따라가다 보니, 이 작품은 사건을 들려주는 소설이 아니라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한 장씩 넘겨 보여주는 기록에 더 가까웠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무엇을 후회하며, 마지막에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가?’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첫 번째 단편인 〈바다 여인의 선물〉이었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큰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혼을 통보받던 순간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질 듯 뛰던 순간이나 아이가 태어나 처음 울던 소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크리스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내가 들은 가장 조용한 소리는 지뢰가 내 다리를 날려버리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가장 조용한 소리일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데니스 존슨이 말한 침묵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큰 충격은 오히려 모든 소리를 지워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도 사람은 크게 울부짖기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진짜 고통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말조차 잃게 만드는 침묵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인상 깊었다. 크리스는 농담처럼 자신의 잘린 다리를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의족을 벗는 순간 디어드리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에는 상처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읽으니 그녀가 본 것은 다리가 아니었다. 늘 유쾌하게 웃던 사람이 사실은 전쟁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몇 달 뒤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결말도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느껴졌지만, 작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도 나도 이유를 안다.“라는 한 문장만 남긴다. 그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너무 쉽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늘 웃는 사람은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고, 씩씩한 사람은 상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진짜 이해란 지금 눈앞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 온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장면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공범’에서는 침묵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한 남자가 자신이 아끼던 그림을 벽난로 속에 던져 버린다.

그는 “내 것이니 내가 태워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이상했던 것은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모두가 불타는 그림만 바라볼 뿐이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데니스 존슨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후회는 내가 저지른 잘못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힘들어하는데 괜히 나섰다가 불편해질까 봐 모른 척했던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다 끝내 하지 못했던 일처럼 말이다.

그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침묵이 가장 크게 마음에 남는다.

그림을 태운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도 결국 그 순간의 일부가 된다.

침묵은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못을 완성시키는 공범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조용히 일깨워 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화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광고인이었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 상을 받게 되지만, 기쁨보다 허무함을 먼저 느낀다.

몸은 조금씩 고장 나고, 신경통은 점점 심해지며, 예전의 영광은 기억 속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가 말한 “삶의 속도에 관한 엄청난 슬픔”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 해가 너무 빨리 끝나 버린다. 성공은 남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함께 흘러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큰 성공을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오래 붙잡아 주는 것은 성취보다 기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보다,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봤을 때 후회보다 따뜻한 기억이 하나라도 더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둔 첫 번째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잊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사과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화자는 통화 도중 자신이 첫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 두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황당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억도 함께 늙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구였든 그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이제야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형수와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 이야기 역시 오래 남는다.

그녀는 남편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만큼은 행복한 마음으로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거짓말을 선택한다.

거짓말조차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반대로 화가 토니의 이야기는 예술조차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과 깊은 감수성을 지녔지만 끝내 외로움을 이겨 내지 못한 그의 삶은 예술도 인간의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남은 단어는 ‘침묵’이었다.

우리는 침묵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데니스 존슨은 가장 깊은 진실은 말보다 침묵에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도, 상실도, 용서도, 후회도 결국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친절하게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빈칸을 채우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이 어려운 이유이면서도 오래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같은 문장을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

그래서 이 소설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으로 남았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더 잘 살아가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인생은 거창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범했던 하루, 누군가와 나눈 대화, 끝내 하지 못한 말,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켜 준 사람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기억을 만드는 일은 거창한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 주었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젊은 크리스 케이스는 대화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서 침묵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가장 고요한 소리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서 지뢰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던 소리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침묵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제 우리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크리스가 다리 한쪽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다.
크리스는 아주 미약하게 다리를 절 뿐이었다.
나는 심지어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참전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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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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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더는 사람을 세게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명료함』은 리더십을 카리스마나 타고난 자질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리더십을 조직 안의 모호함을 줄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로 설명한다.

저자는 훌륭한 리더를 “조용한 엔지니어”에 비유한다.

좋은 엔지니어가 제품의 설계도를 그리듯, 좋은 리더는 조직의 목적과 기준, 일하는 방식을 설계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명료함은 바로 그 설계도의 밑그림이다.

리더의 말이 흐리면 조직은 추측으로 움직인다. 구성원은 리더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리더는 구성원이 자기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애초에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명료함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덜 헤매고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배려에 가깝다.


이 책이 인상 깊은 이유는 리더십을 추상적인 말로 설명하지 않고, 저자의 실패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과거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안젤라라는 직원을 “역량이 부족하고 성장 가능성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해 내보낸다.

그런데 2년 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놀랍게도 안젤라는 그곳에서 유능하고 신뢰받는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녀가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안젤라는 오히려 자신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2년 전에는 한 번도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없잖아요.”

이 장면은 책 전체의 핵심을 관통한다.

안젤라가 일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그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였던 저자 자신도 그 기준을 명료하게 정리해본 적이 없었다.

많은 리더들은 구성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기대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라”는 말은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에게 추측을 떠넘기는 말에 가깝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는 일이 많은 순간보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방향이 맞는지 모르고, 혼나긴 하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모를 때 사람은 지친다. 평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안내다. 기준 없는 평가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상처가 되기 쉽다. 그래서 리더가 해야 할 첫 번째 친절은 막연한 격려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 일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일이다.


저자는 조직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무질서해진다고 말한다.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 개념을 조직에 적용해, 리더의 역할을 ‘조직적 엔트로피를 줄이는 일’로 설명한다.

구성원이 늘어나고 일이 복잡해질수록 조직은 저절로 흐트러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선명한 기준이다. 리더는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정의하고,

그 차이를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명료함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조직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일이다.

조직에서 생기는 많은 오해는 누군가 게을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기준으로 성실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떤 사람은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또 다른 사람은 관계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조직의 기준이 없다면 그 최선은 서로 충돌한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의 노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다. 흩어진 성실함을 성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명료함이다.


책은 흔히 말하는 미션, 비전, 핵심 가치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질문한다.

저자는 과거 자신의 회사에 미션과 핵심 가치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멋진 말에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것을 “철학을 아웃소싱했다”고 표현한다.

리더가 직접 고민하지 않고 가져온 기준은 리더 자신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구성원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느낀다.

모든 회사가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진짜 목적이 없다면 억지로 거창한 Why를 만들기보다,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목표를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

사람은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더 믿는다.

아무리 멋진 미션을 내세워도, 실제 의사결정에서 그 가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구성원은 금방 알아차린다.

오히려 거창하지 않아도 진심인 목적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리더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실제로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할 때 조직은 혼란을 덜 겪는다.

좋은 리더십은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정직하게 찾는 데서 시작한다.


이 책이 실용적인 이유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준을 만드는 방법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최고의 인재와 평균 수준의 인재를 비교하고, 그들의 행동을 상황·행동·영향으로 나누어 분석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실함”, “주인의식”, “고객지향”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먼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만들었는지까지 구체화해야 비로소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고객 중심이라는 가치를 말하고 싶다면, 단순히 “고객을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이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단기 매출과 고객 신뢰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까지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문구가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 된다.

좋은 기준은 사람을 옥죄는 규칙이 아니라, 헷갈리는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지도와 같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매번 리더의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를 살핀다.

하지만 기준이 분명하면 리더가 없을 때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명료함의 힘이다.

명료한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단순히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인간 등대’ 개념도 오래 남는다.

인간 등대란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따라가는 상징적 인물이다.

아무리 벽에 멋진 가치를 붙여두어도 실제로 인정받고 승진하는 사람이 그 가치와 다르게 행동하면, 

구성원은 벽의 문구가 아니라 그 사람을 기준으로 배운다.

조직문화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인정받고 누가 남는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리더는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인간 등대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조직 안에서 계속 빛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직의 진짜 가치는 선언문에 적힌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남는다.

성과를 내면서도 동료를 존중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과, 결과만 좋으면 어떤 태도도 용인되는 조직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갖게 된다.

구성원은 리더가 칭찬하는 사람, 승진시키는 사람, 끝까지 지키는 사람을 보며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배운다.

결국 문화는 말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또 하나의 핵심 도구는 ‘명료함 캔버스’다.

명료함 캔버스는 “우리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도구다.

직무별·부문별로 기대 수준을 정리하고, 기본 수준과 탁월한 수준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도구가 중요한 이유는 기준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가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꺼내어 글로 쓰고, 구성원과 공유할 때 비로소 조직은 같은 언어를 갖게 된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는 선명해 보이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면 얼마나 흐릿했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기준을 적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글로 쓰인 기준은 리더 자신에게도 거울이 된다.

내가 정말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실제로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 구성원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 점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료함은 말하는 기술 이전에 생각을 끝까지 붙잡는 훈련이다.


『명료함』은 좋은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소통은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좋은 소통은 상대가 헤매지 않도록 기준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막연한 칭찬보다 무엇이 좋았는지 알려주는 피드백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추상적인 지시보다 판단 기준이 담긴 설명이 사람을 움직인다.

이 책은 CEO, 팀장, 관리자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는 리더가 된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의견을 나누고, 기준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명료함』을 읽고 나면 리더십의 출발점이 사람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리더의 생각이다.

명료한 리더는 사람을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남긴다. 

누군가를 움직이고 싶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건네야 한다. 

그 과정이 쌓일 때 사람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하며 움직이게 된다.


결국 명료한 리더가 명료한 조직을 만들고, 명료한 조직이 더 좋은 성과를 만든다.

『명료함』은 리더십책이지만, 동시에 관계와 소통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얻게 된다.


"나는 내가 기대하는 것을 정말 명료하게 말하고 있는가?"

'탁민 오'작가님에게 선물로 도서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조직은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조직 역시 다양성이 있을수록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장’과 ‘고객’이라는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해 조직은 다양성을 보유한 생명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깊이 있는 통찰의 과정 없이 ‘문화’라는 허울 아래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회사를 채우는 것은 번영이 아닌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다.
우리의 조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리더의 불성실함‘이 기준 없는 조직을 만든다.
기준 없는 회사는 비슷비슷한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세상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회사로 밀려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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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 : 야망은 큰데 왜 아직도 평범한가 세계척학전집 6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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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은 큰 꿈은 있지만 이상하게 늘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삶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까?

남들은 작은 실패에도 금세 회복하고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는데,

나는 왜 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리고 비교와 후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까?

이 책은 그 이유를 단순히 멘탈이 약해서,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강함이라고 믿어온 것, 더 나아지기 위해 붙잡고 있던 방식이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두고 있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다. 자리가 위태로워져도 조급해하지 않고,

실패를 겪고도 무너지지 않으며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며 “멘탈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현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으니 멘탈이 강하다고 하고, 멘탈이 강하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도는 설명일 뿐이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흔들리지 않음은 타고난 기질일까? 아니면 도달할 수 있는 상태일까?

『초월자의 조건』은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길을 2,500년 동안 탐구해온 인류의 사유를 25명의 사상가를 통해 보여준다.

니체, 헤세, 베커, 힐먼, 아렌트, 프랭클, 스피노자, 한병철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가진 사상가들이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자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더 강한 자아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던 껍데기를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니체의 ‘르상티망’이다.

친구의 좋은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다.

잘나가는 사람을 보며 “재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의 몰락 앞에서 이상하게 후련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니체는 이것을 단순한 질투나 분노가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원한이 안에서 곪는 상태로 본다.

르상티망의 무서움은 나의 하루를 타인의 삶에 묶어둔다는 데 있다.

내가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내 기분을 결정한다.

결국 내 삶의 운전대를 남의 손에 쥐여 주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누군가를 “악하다”고 부르기 전에, 정말 그에게 악의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아니면 내가 그를 이길 방법이 그 말밖에 없어서인지 돌아보라고 한다.

약자는 종종 결핍을 미덕으로 바꾸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한다.

“나는 저런 거 안 해”라는 말도 때로는 선택이 아니라 무력함을 꾸민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독자를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정의감이라 믿었던 감정, 겸손이라 여겼던 태도, 고생을 훈장처럼 붙잡고 있던 마음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도 오래 남았다.

베커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지 않으려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나만은 예외일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 더 큰 이름, 더 많은 성취를 향해 달린다.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르지만, 베커의 눈으로 보면 그 밑바닥에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숨어 있다.

돈과 명성, 업적과 인정은 결국 육체는 사라져도 무언가는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불멸 프로젝트’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베커는 "인간만이 자신의 소멸을 미리 아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 위해 문화와 종교, 예술, 업적 같은 상징적 성취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이후 공포관리이론의 출발점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따라왔다.

정말 죽음을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반려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임종을 앞둔 반려견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보호자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고, 품 안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동물이 인간처럼 자신의 죽음을 명확히 인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몸으로 느끼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행동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남았다.

물론 동물이 인간처럼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감지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은 남는다.

최근에는 동물의 죽음 인식을 연구하는 비교 타나톨로지(Comparative Thanatology) 분야에서도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침팬지, 코끼리, 범고래, 까마귀, 개 등이 죽음이나 이별 앞에서 애도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베커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오늘날에는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은 죽음을 언어와 철학으로 해석하고 미래까지 확장해 성찰하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 사상가의 이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이후에 나온 힐먼의 ‘다이몬’ 이야기 또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방향을 아직 못 찾아서 제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좋은 재능을 찾고,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힐먼은 반대로 말한다. 방향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던 것,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것,

안정된 삶 속에서도 이상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끌림.

힐먼은 이것을 다이몬이라 부른다.

그것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천사가 아니라, 나답게 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내면의 부름에 가깝다.

이 부분은 자기계발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만든다.

우리는 늘 위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그러나 힐먼은 아래로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기 위해 먼저 땅속으로 내려가 뿌리를 내려야 하듯, 사람도 자기 안에 처음부터 묻혀 있던 것을 파내야 한다.

평생 고치려 애썼던 예민함, 내성적인 성격, 쉽게 질리는 기질도 어쩌면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방향이 아니라 고장으로 여겨왔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왜 같은 자리에 머무는지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변화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설명한다.

사람은 단순히 결심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나를 유지하는 방식이 있고, 불편하지만 안전한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변화란 더 나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어온 껍데기를 하나씩 의심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헤세의 말처럼 알을 깨지 않으면 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알은 한 번만 깨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다.

어제의 성공, 익숙한 역할, 남들이 인정해준 이미지, 안전하다고 믿어온 선택들이 다시 나를 가둔다.

이 책이 말하는 자기극복은 그래서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붙잡고 있던 낡은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과정에 가깝다.

특히 좋았던 점은 철학과 심리학의 개념이 현실적인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르상티망은 친구의 합격 소식 앞에서 묘하게 가라앉는 마음으로 설명된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은 더 큰 성취를 향해 달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야망으로 이어진다.

힐먼의 다이몬은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일, 안정된 자리에서도 계속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과 연결된다.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사상가들의 개념이 내 일상 속 감정으로 다가온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은 더 날카로워진다.

우리가 바뀌지 못하는 이유가 능력 부족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자유가 두려워서 복종을 선택하고, 나를 지키려고 만든 성격의 갑옷이 오히려 나를 가둔다.

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애쓰는 마음도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조차 때로는 진짜 변화가 두려워서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붙이는 방식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의 자기 착취, 키건의 변화면역, 프롬의 자발적 복종 같은 개념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대로인가”라고 묻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노력, 더 강한 멘탈, 더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쩌면 더 많이 쌓으려는 마음, 더 강해지려는 마음, 더 완벽한 내가 되려는 마음이야말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천장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책은 초월을 어떤 완성된 상태로 말하지 않는다.

초월자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늘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읽을 줄 알고, 감정에 끌려가면서도 그 감정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빼앗길 수 없는 태도를 선택하고, 남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편안한 위로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는 동안 자주 멈칫하게 된다.

내가 강함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두려움이었을 수 있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가두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남는다.

큰 꿈은 있는데 계속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각오가 아니라,

나를 붙잡고 있는 내면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초월자의 조건』이 말하는 초월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이 왜 흔들리는지, 무엇에 묶여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끝내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보다 “나는 무엇에 붙잡혀 있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초월은 더 높은 곳으로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두고 있던 천장을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다.


#단단한맘서평단 @gbb_mom

#수련서평단 @water_liliesjin

#모티브출판사 @motiv_insight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반대로 당신은, 작은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는다. 누가 던진 한 줄 평가가 머릿속에서 밤새 재생되고, 남들은 잊은 일을 혼자 곱씹는다. 분명 더 나아지려고 그 누구보다 애써왔는데, 어느 순간 멈춰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다. 5년 전과 지금의 고민이 토씨만 바뀐 채 똑같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늘 휘둘리고, 왜 한 발도 못 나아가는 걸까. 혹시 나는 원래 이런 기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
이 책은 그것이 기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음은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 인류는 그 길을 2,500년간 탐구해왔고, 거기 도달한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 책에서는 그를 초월자라 부른다. 자기를 넘어선 사람. 더 정확히는, 자기를 넘어서는 중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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