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자의 조건 : 야망은 큰데 왜 아직도 평범한가 세계척학전집 6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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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은 큰 꿈은 있지만 이상하게 늘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삶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까?

남들은 작은 실패에도 금세 회복하고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는데,

나는 왜 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리고 비교와 후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까?

이 책은 그 이유를 단순히 멘탈이 약해서,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강함이라고 믿어온 것, 더 나아지기 위해 붙잡고 있던 방식이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두고 있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다. 자리가 위태로워져도 조급해하지 않고,

실패를 겪고도 무너지지 않으며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며 “멘탈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현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으니 멘탈이 강하다고 하고, 멘탈이 강하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도는 설명일 뿐이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흔들리지 않음은 타고난 기질일까? 아니면 도달할 수 있는 상태일까?

『초월자의 조건』은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길을 2,500년 동안 탐구해온 인류의 사유를 25명의 사상가를 통해 보여준다.

니체, 헤세, 베커, 힐먼, 아렌트, 프랭클, 스피노자, 한병철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가진 사상가들이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자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더 강한 자아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던 껍데기를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니체의 ‘르상티망’이다.

친구의 좋은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다.

잘나가는 사람을 보며 “재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의 몰락 앞에서 이상하게 후련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니체는 이것을 단순한 질투나 분노가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원한이 안에서 곪는 상태로 본다.

르상티망의 무서움은 나의 하루를 타인의 삶에 묶어둔다는 데 있다.

내가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내 기분을 결정한다.

결국 내 삶의 운전대를 남의 손에 쥐여 주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누군가를 “악하다”고 부르기 전에, 정말 그에게 악의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아니면 내가 그를 이길 방법이 그 말밖에 없어서인지 돌아보라고 한다.

약자는 종종 결핍을 미덕으로 바꾸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한다.

“나는 저런 거 안 해”라는 말도 때로는 선택이 아니라 무력함을 꾸민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독자를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정의감이라 믿었던 감정, 겸손이라 여겼던 태도, 고생을 훈장처럼 붙잡고 있던 마음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도 오래 남았다.

베커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지 않으려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나만은 예외일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 더 큰 이름, 더 많은 성취를 향해 달린다.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르지만, 베커의 눈으로 보면 그 밑바닥에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숨어 있다.

돈과 명성, 업적과 인정은 결국 육체는 사라져도 무언가는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불멸 프로젝트’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베커는 "인간만이 자신의 소멸을 미리 아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 위해 문화와 종교, 예술, 업적 같은 상징적 성취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이후 공포관리이론의 출발점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따라왔다.

정말 죽음을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반려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임종을 앞둔 반려견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보호자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고, 품 안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동물이 인간처럼 자신의 죽음을 명확히 인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몸으로 느끼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행동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남았다.

물론 동물이 인간처럼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감지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은 남는다.

최근에는 동물의 죽음 인식을 연구하는 비교 타나톨로지(Comparative Thanatology) 분야에서도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침팬지, 코끼리, 범고래, 까마귀, 개 등이 죽음이나 이별 앞에서 애도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베커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오늘날에는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은 죽음을 언어와 철학으로 해석하고 미래까지 확장해 성찰하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 사상가의 이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이후에 나온 힐먼의 ‘다이몬’ 이야기 또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방향을 아직 못 찾아서 제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좋은 재능을 찾고,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힐먼은 반대로 말한다. 방향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던 것,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것,

안정된 삶 속에서도 이상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끌림.

힐먼은 이것을 다이몬이라 부른다.

그것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천사가 아니라, 나답게 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내면의 부름에 가깝다.

이 부분은 자기계발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만든다.

우리는 늘 위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그러나 힐먼은 아래로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기 위해 먼저 땅속으로 내려가 뿌리를 내려야 하듯, 사람도 자기 안에 처음부터 묻혀 있던 것을 파내야 한다.

평생 고치려 애썼던 예민함, 내성적인 성격, 쉽게 질리는 기질도 어쩌면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방향이 아니라 고장으로 여겨왔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왜 같은 자리에 머무는지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변화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설명한다.

사람은 단순히 결심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나를 유지하는 방식이 있고, 불편하지만 안전한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변화란 더 나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어온 껍데기를 하나씩 의심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헤세의 말처럼 알을 깨지 않으면 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알은 한 번만 깨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다.

어제의 성공, 익숙한 역할, 남들이 인정해준 이미지, 안전하다고 믿어온 선택들이 다시 나를 가둔다.

이 책이 말하는 자기극복은 그래서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붙잡고 있던 낡은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과정에 가깝다.

특히 좋았던 점은 철학과 심리학의 개념이 현실적인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르상티망은 친구의 합격 소식 앞에서 묘하게 가라앉는 마음으로 설명된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은 더 큰 성취를 향해 달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야망으로 이어진다.

힐먼의 다이몬은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일, 안정된 자리에서도 계속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과 연결된다.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사상가들의 개념이 내 일상 속 감정으로 다가온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은 더 날카로워진다.

우리가 바뀌지 못하는 이유가 능력 부족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자유가 두려워서 복종을 선택하고, 나를 지키려고 만든 성격의 갑옷이 오히려 나를 가둔다.

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애쓰는 마음도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조차 때로는 진짜 변화가 두려워서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붙이는 방식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의 자기 착취, 키건의 변화면역, 프롬의 자발적 복종 같은 개념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대로인가”라고 묻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노력, 더 강한 멘탈, 더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쩌면 더 많이 쌓으려는 마음, 더 강해지려는 마음, 더 완벽한 내가 되려는 마음이야말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천장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책은 초월을 어떤 완성된 상태로 말하지 않는다.

초월자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늘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읽을 줄 알고, 감정에 끌려가면서도 그 감정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빼앗길 수 없는 태도를 선택하고, 남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편안한 위로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는 동안 자주 멈칫하게 된다.

내가 강함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두려움이었을 수 있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가두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남는다.

큰 꿈은 있는데 계속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각오가 아니라,

나를 붙잡고 있는 내면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초월자의 조건』이 말하는 초월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이 왜 흔들리는지, 무엇에 묶여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끝내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보다 “나는 무엇에 붙잡혀 있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초월은 더 높은 곳으로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두고 있던 천장을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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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서평단 @water_liliesjin

#모티브출판사 @motiv_insight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반대로 당신은, 작은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는다. 누가 던진 한 줄 평가가 머릿속에서 밤새 재생되고, 남들은 잊은 일을 혼자 곱씹는다. 분명 더 나아지려고 그 누구보다 애써왔는데, 어느 순간 멈춰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다. 5년 전과 지금의 고민이 토씨만 바뀐 채 똑같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늘 휘둘리고, 왜 한 발도 못 나아가는 걸까. 혹시 나는 원래 이런 기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
이 책은 그것이 기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음은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 인류는 그 길을 2,500년간 탐구해왔고, 거기 도달한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 책에서는 그를 초월자라 부른다. 자기를 넘어선 사람. 더 정확히는, 자기를 넘어서는 중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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