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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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본다. SNS 피드에는 광고, 짧은 영상, 밈, AI가 만든 그림과 문장이 끝없이 흘러간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설계된 욕망일 수도 있고, 감동이라고 느꼈던 것이 사실은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계산된 자극일 수도 있다.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무엇이 좋은 예술인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예술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를 묻는다.

저자 J. F. 마르텔은 광고, 정치 선전, 상업적 이미지, SNS 콘텐츠처럼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인공물’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보다 무언가를 사게 하고, 따르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열망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얼굴을 한 조작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예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예술을 감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미지와 콘텐츠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지만, 정작 하나의 장면 앞에 오래 머물고, 하나의 문장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하나의 음악 안에서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이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깊이 느끼는 시대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의 추천 글들은 이 작품을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영혼을 위한 지침서’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노리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며, 상상력을 기계의 부품처럼 만들려 한다는 지적도 인상 깊다.

이 말은 지금 시대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콘텐츠를 보고 있지만,

정작 더 깊이 느끼는 능력은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이 보는 것과 깊이 감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도나 타트의 추천 서문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더 넓게 펼쳐 보인다.

그는 예술이 정치권력에 이용되고, 이론으로 해체되고, 상업광고로 팔려가며 디지털 자극에 밀려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현실을 짚는다.

예술이 돈과 성공, 대중의 입맛, 특정 이념을 위해 쓰이는 순간 그 안에 있던 신비로운 생명력은 사라진다.

퀸시 존스의 표현처럼, 그때 ‘신은 그 방을 떠나버린다.’는 말은,

진짜 예술은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할 때 가장 큰 힘을 가진다.

예술은 상품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 구호가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교훈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모든 예술은 쓸모없다”라는 문장도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쓸모없다는 말은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술이 광고, 선전, 교훈, 도덕적 명령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앞에서 자유로워진다.

진짜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안의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세계에 균열을 내며 다시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어쩌면 예술의 가장 큰 힘은 ‘쓸모없음’에 있다. 쓸모 있는 것들은 대개 우리를 어떤 목적지로 데려간다.

더 많이 벌게 하고, 더 빨리 처리하게 하고, 더 효율적으로 살게 만든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가기보다 잠시 멈춰 세운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진짜로 사랑했는지, 어떤 감각을 너무 오래 외면하고 살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예술은 당장 쓸모없어 보여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쓸모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쇼베 동굴벽화에 대한 이야기다.

3만 년 전 인류가 깊은 동굴 속에 남긴 동물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생존에 급급했을 구석기 인류가 왜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 들어가 그런 이미지를 남겼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알 수 없음 때문에 예술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예술이 서서히 진화한 문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예술은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라기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책은 예술과 인간의 상상력을 연결한다.

인간은 단순히 현실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이미지로 그려내며,

‘있는 그대로의 세상’ 너머에 ‘마땅히 그래야 할 세상’을 꿈꾸는 존재다. 저자는 이 상상력의 세계를 ‘상상계’라고 부른다.

예술은 바로 이 상상계의 이미지를 현실의 형태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래서 예술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 꿈과 신화와 기억과 무의식이 뒤섞인 장소와 연결된다.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현실이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인간은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래서 예술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가장 깊은 방식일 수 있다.

지금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 내 삶이 지금의 조건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그 작은 틈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반대로 인공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좁힌다.

광고와 포르노처럼 욕망을 자극하는 ‘말초적 인공물’, 정치 선전물처럼 감정을 선동하는 ‘교훈적 인공물’은 모두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인공물은 속삭인다. 나를 사랑해라, 나를 구매해라, 나에게 투표해라.

진짜 예술이 우리를 멈춰 세우고 내면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면, 인공물은 욕망과 혐오를 부추겨 우리를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AI 시대에 이 구분은 더욱 중요해진다. 생성형 AI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AI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기보다,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데이터 조각을 그럴듯하게 조합해 ‘예술처럼 보이는 제품’을 만든다고 본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진짜 예술의 자리를 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매끄럽고 빠르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 세상과 부딪치며 얻은 상처, 실패, 시간, 육체의 감각까지 품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정교한 AI 그림이라도 인간이 남긴 서툰 낙서 한 장에 담긴 날것의 생명력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인간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두려움은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그럴듯한 것’에 너무 쉽게 만족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이미지, 즉각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 문장, 공식처럼 잘 짜인 음악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서툴지만 진짜인 것,

거칠지만 살아 있는 것, 완성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통과한 흔적을 알아보는 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예술을 지키는 일은 결국 인간의 불완전함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AI를 거부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분별력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쉽게 조종당하게 만드는가. 나를 더 깊은 감각과 사유로 이끄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소비와 반응으로 몰아가는가. 이것을 구분하는 힘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너무 많은 콘텐츠 속에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 내가 보는 것과 믿는 것이 정말 내 선택인지 의심해본 사람, AI와 알고리즘의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한 힘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술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다. 유명한가, 비싼가, 화려한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것은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것은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가.

결국 좋은 예술은 우리를 더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많은 지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 앞에서 이유 없이 마음이 오래 머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의 표정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예술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일을 시작하는 때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진짜 예술은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에 가깝다.

자본과 권력, 알고리즘과 AI가 우리의 욕망과 감각을 대신 설계하려는 시대에 예술은 우리 안에 아직 조종되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예술은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설득하려 들지 않으며, 특정한 답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다만 낡은 현실에 작은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새로운 빛이 들어오게 한다.

진짜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며, 다시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자리로 데려다준다.

그래서 예술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인간을 가장 깊이 자유롭게 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예술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예술 앞에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빠르게 소비하고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을 깨우는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감상법일지도 모른다.

진짜 예술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사라지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인간이 아직 완전히 조종되지 않았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ㅡ

'서스테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제 사람들은 작가를 보고 작품을 신뢰할지를 결정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작가에게 도덕적 흠결이 발견되면 작품의 흠결로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공물이 지배하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작가만을 요구하기에 진정한 예술은 더욱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은 언제나 작가라는 틀을 넘어서서 스스로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예술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 작품은 작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 배경, 심지어 그 시대가 가진 한계마저도 뛰어넘어 자신만의 생명력을 갖는다. 따라서 예술이 작가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작가의 개인적인 흠결이 작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예술은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될 수 없는 ‘상상계’가 보내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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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유어 마인드 - 반복되는 루틴에 가려진 내 안의 잠재력과 마주하는 법
마리오 알론소 푸이그 지음, 성소희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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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불안할 때마다 같은 생각에 빠지고, 외로울 때마다 익숙한 행동을 반복하며, 상처받았던 관계와 비슷한 관계를 다시 선택하기도 한다.

분명히 변하고 싶은데도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셋 유어 마인드』는 그 답을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찾는다.

이 책의 문장처럼, “프로그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프로그램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그램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면 탐험의 안내서다.


저자 마리오 알론소 푸이그는 인간의 마음을 막연한 감정이나 긍정적인 태도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뇌과학, 심리학, 의식과 무의식, 신체 감각과 정서적 기억을 함께 설명하며 우리가 왜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보여준다. 책에서는 인간의 정신에도 컴퓨터처럼 여러 운영체제가 있다고 말한다.

생존과 본능을 담당하는 시상 하부, 감정과 애착을 기억하는 대뇌변연계, 언어와 분석을 맡는 좌뇌, 직관과 연결감을 느끼는 우뇌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 안에는 “지금 당장 안전해야 한다”는 마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마음, “더 깊은 의미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행동 하나에도 여러 층의 이유가 있다.

시상 하부는 배고픔, 목마름, 성적 욕구, 스트레스 반응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이 영역은 “지금 당장 필요해”라고 외친다.

반면 대뇌변연계는 위험과 기회를 감지하고, 즐거움은 가까이하고 고통은 피하려 하며, 무엇보다 정서적 유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왜 낯선 변화보다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르려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변화가 무서운 것은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깊게 남은 부분은 신체 접촉과 정서적 유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아기에게 안기고 쓰다듬어지는 경험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뇌 발달과 관계 형성의 중요한 토대라고 말한다.

편도체는 대뇌변연계의 중심이며 감정적인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다.

어린 시절 충분한 접촉과 애착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 관계에서 불안정함을 느끼거나 외로움과 거절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외로울 때 음식을 찾고, 어떤 사람은 불안을 느낄 때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며, 어떤 사람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대목은 단순히 뇌과학 지식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행동을 보며 “왜 나는 또 이러지?”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행동을 곧바로 비난하기 전에 그 안에 숨은 결핍을 보라고 말한다.

음식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을 수 있고, 물건을 사고 싶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허전함을 달래고 싶었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를 때, 가장 가까이 있는 대체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그래서 변화의 시작은 행동을 억지로 끊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대신 채우고 있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도 좋았다. 저자는 누군가의 행동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과거에 겪은 일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어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 상처, 결핍, 두려움 속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반응할 때 우리는 쉽게 판단한다.

그러나 판단은 대상을 좁게 보고, 이해는 대상을 넓게 본다.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묻는 대신 “저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어떤 맥락이 있었을까?”라고 묻는 순간, 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물론 과거의 상처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일과 원인을 이해하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원인을 보지 못하면 같은 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진짜 성숙은 상처를 핑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나를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알아차리고 더 이상 그 방식으로만 살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일이다.


좌뇌와 우뇌에 대한 설명도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좌뇌는 언어, 분석, 분류, 판단을 담당한다.

우리는 좌뇌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현실과 다를 때도 우리가 그것을 진실처럼 믿는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안 돼”,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늘 실패한다” 같은 생각도 반복되면 하나의 자기 서사가 된다.

반면 우뇌는 존재의 느낌, 직관, 연결감, 더 깊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좌뇌가 소유와 성과와 통제를 중시한다면, 우뇌는 존재와 공감과 연결을 중시한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좌뇌가 나쁘고 우뇌가 좋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뇌만 강하면 삶을 성과와 인정, 소유로만 바라보기 쉽고, 우뇌만 강하면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통합이다. 이성과 감정, 논리와 직관, 현실과 내면이 함께 움직여야 우리는 더 온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삶은 논리만으로도 부족하고 감정만으로도 불안하다.

좋은 선택은 차가운 분석과 따뜻한 감각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자리에 앉을 때 가능해진다.


책에서 말하는 ‘리셋’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던 반응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는 상처받았던 과거가 괴로우면서도 그것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반복한다.

익숙한 고통은 이상하게도 안전처럼 느껴진다. 불편하지만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할 때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조용히 건드린다.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반복이 정말 나를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가두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후반부에서 말하는 명상과 호흡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명상은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라보는 시간이다.

집중해야 하는 활동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호흡에 집중할 때, 뇌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때 창조적 무의식이 움직이고,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기억 자체를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제한하지 못한다.


『리셋 유어 마인드』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뇌의 구조와 의식, 무의식, 좌뇌와 우뇌, 운영체제 같은 개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고장 난 존재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존재다.

나를 힘들게 했던 반복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감정도, 자꾸만 돌아가던 익숙한 선택도 모두 나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자기 이해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회복의 출발점이다. 나를 알아야 나를 바꿀 수 있고, 나를 바꿀 수 있어야 비로소 내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책을 읽고 나서 오래 남았떤 생각은, 괜찮은 정도의 삶에 머물기엔 우리 안의 잠재력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그 자원이 잠들어 있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다.

물이 액체, 얼음, 수증기로 형태를 바꾸듯 인간도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발휘한다.

지금 무기력하다고 해서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불안하다고 해서 삶 전체가 불안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다.

결국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더 세게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 안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감정에 묶여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사실처럼 믿어 왔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반응하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진짜 리셋은 과거의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이해한 뒤 더 이상 그 방식만으로 살지 않겠다고 조용히 선언하는 일이다.


ㅡ

'오픈도어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떤 대상이든 겉모습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협력을 이끄는 감정적 유대를 쌓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시상 하부는 개체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서적 유대를 일으키는 데 아주 중요한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도 생성한다. 그런데 이 기능은 포유류에만 존재할 뿐 파충류에는 없다. 아울러 진화 과정에서 더 나중에 발달하는 편도체 핵이야말로 진정한 정서적 유대감 형성 및 모성 행동의 핵심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몇 년 동안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다면, 편도체 핵이 발달하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는 성장한 후 스트레스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회복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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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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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분명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자주 텅 비는 순간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왜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밤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SNS를 보면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열심히 일해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고, 쉬는 날이 와도 제대로 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혼자인 것 같고, 무언가를 사고 먹고 보고 즐겨도 잠깐뿐, 다시 원래의 허전함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다.

나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아주 크게 무너진 사람뿐 아니라,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는 지금 뭘 위해 살고 있지?”라고 묻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상하게 힘든데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돈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관계 때문에 지친 것 같기도 한데,

막상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의 상실’은 바로 그런 마음의 상태에 가까웠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마음이 굶주린 느낌. 쉬고 있는데도 쉬어지지 않고, 웃고 있는데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느낌.

이 책은 그 공허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인간에게는 의미가 필요하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해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단순히 강제수용소의 고통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그 이후의 질문을 던진다.

살아남은 뒤에도 사람은 다시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

하루하루는 계속되지만, 마음속에서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삶은 쉽게 버거워진다.

나는 이 부분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보통 힘든 일을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지나간 뒤에 더 크게 남기도 한다.

사건은 끝났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고, 겉으로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속으로는 삶의 이유를 다시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니라, 버틴 이후에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서문에서 손자 알렉산더 베셀프랭클은 할아버지를 쾌활하고 사랑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주들과 놀이공원에 가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고, 화를 내더라도 금방 사과할 줄 아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보였지만, 그는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튀르크하임을 지나온 사람이었다.

가족을 잃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세상을 미워하는 사람으로만 남지 않았다.

이 부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 반드시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상처가 없어서 다정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깊어진 사람도 있다는 것.

프랭클의 삶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픔을 겪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망만 남는 것은 아니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간에게는 고통 이후에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밝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산산이 부서지고도 원망에만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프랭클이 전쟁 후 빈으로 돌아왔을 때 더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강제수용소에서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목표가 분명했다.

살아남아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

그러나 돌아왔을 때 가족은 더 이상 없었다.

삶을 지탱하던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은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을 견뎌야 할 이유가 사라졌을 때 더 깊이 무너지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시간도 “이걸 지나면 만나게 될 사람”, “이걸 견디면 해내고 싶은 일”,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삶은 갑자기 방향을 잃는다.

프랭클이 겪은 절망은 감히 쉽게 상상할 수 없지만, 그가 다시 붙든 것이 ‘나를 위한 이유’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일’이었다는 점이 깊게 다가왔다. 자기 삶이 무너진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붙드는 쪽으로 걸어갔다는 것. 그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프랭클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남은 하나의 과제를 붙들었다.

의사로서, 작가로서, 자신과 비슷하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처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였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삶의 의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내게 던지는 질문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생긴다.

나는 이 문장이 단순한 명언처럼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주 삶에게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왜 나는 이렇게 힘드냐고, 왜 원하는 만큼 얻지 못했냐고.

그런데 프랭클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삶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쉬운 위로는 아니지만,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삶의 의미는 생각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깊게 다가온다.

취업에 실패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 매일 바쁘게 살지만 마음속은 텅 빈 사람, 남들처럼 소비하고 과시하려 애쓰지만 정작 왜 사는지 모르는 사람. 번아웃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사람, 주말이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지는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앞으로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

프랭클은 이런 상태를 단순한 우울이나 나약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안에 실존적 공허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 있는 의미를 향한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생기는 깊은 허기다.

이 표현이 참 정확하다고 느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정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이유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인 것 같다.

계속 비교하게 되고, 계속 증명해야 하고, 계속 더 나아져야 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 정작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놓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텅 빈다.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안 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프랭클은 그 공허를 인간의 중요한 신호로 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내 삶이 의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신호로 말이다.


프랭클은 현대인이 더 빠르게 달리는 이유도 이 공허와 관련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일이 많아서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멈추면 자신 안의 공허가 드러날까 봐 더 바쁘게 움직인다.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빨리 달리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목표가 없을수록 속도만 빨라진다는 말은 오늘의 삶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요즘 사람들의 삶이 많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계속 보고, 사고, 올리고, 확인하고, 계획하고, 일정을 채우지만 정작 혼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바쁘게 살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멈췄을 때 마주하게 될 허전함이 두려워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방향 없는 성실함일지 모른다.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구원은 거창하지 않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성취하는 일이다.

둘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셋째,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일부러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고통 앞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가 좋았던 이유는 너무 멀리 있는 답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은 꼭 대단한 성공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조금 더 성실하게 해내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슬픔 앞에서도 나 자신을 함부로 망가뜨리지 않는 것. 그런 일들 속에도 의미는 있었다.

결국 의미는 나만 바라볼 때보다 내가 기여할 일과 사랑할 사람과 지키고 싶은 태도를 가질 때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말은 오래 남는다.

이 말은 고통을 똑같이 보자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실직이, 누군가에게는 이별이, 누군가에게는 질병이,

누군가에게는 죄책감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몰라주는 외로움이 자기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고통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고통을 비교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걸로 힘들어하면 안 되지” 같은 말로 누군가의 아픔을 작게 만든다. 하지만 고통은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 “내가 힘들어해도 되는구나”라는 작은 위로처럼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힘든 것도 진짜라고,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프랭클은 인간을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말하면서 반드시 책임을 함께 말한다.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취할 태도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다.

군중 속에 숨고, 시대 탓을 하고, 운명 탓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반대로 소수일지라도 품위 있는 사람의 편에 서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프랭클의 위로가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힘든 사람에게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을 믿는 말처럼 느껴졌다.

상황에 휩쓸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작은 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조금씩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들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만들어간다.


책 후반부에서 프랭클은 덧없음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설명을 남긴다.

사람들은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프랭클은 덧없음이야말로 가능성이자 기회라고 말한다.

우리가 한 일, 우리가 한 사랑, 우리가 견딘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창고 안에 보관된다.

한 번 실현된 것은 아무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나는 이 생각이 참 좋았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자주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

끝난 관계, 실패한 시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떠올리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프랭클은 과거가 사라진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게 보관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 최선을 다해 견딘 시간, 누군가를 위해 애쓴 시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삶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고, 누구도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이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말하는 의미의 형태도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이런 뜻인 것 같다. 삶의 의미는 처음부터 완성된 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흩어진 점처럼 보이는 경험들, 실패, 사랑, 일, 상실, 고통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아, 이 일이 내 삶에서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조금씩 알게 된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삶 안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모양에 가깝다.

같은 사건도 누구에게는 절망으로 끝나지만, 누구에게는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그 모양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해서, 내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는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당시에는 실패처럼 보였던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당시에는 상실처럼 보였던 시간이 나에게 사랑의 깊이를 가르치기도 한다.

삶은 매 순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내고, 사랑하고, 견디는 동안 흩어진 조각들은 조금씩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간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완벽한 답을 손에 넣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조각들이 어떤 그림을 이루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고통을 없애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이 책은 내게 아직 삶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으며, 끝까지 견뎌내야 할 태도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나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가 완전히 절망하는 순간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만이 아닌 것 같다.

그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정말 무너진다.

프랭클은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마지막 자유를 이야기한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조차, 나는 그 상황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은 작아 보여도 결코 작지 않다.

그 태도 하나가, 고통 속에서도 내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게 붙들어주는 마지막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랭클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피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작은 응답들이 쌓여 내 삶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과거라는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끝내 우리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삶의 의미란 대단한 성공이나 특별한 사명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는 멀리 있는 답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더 가까웠다.

무너진 날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는 것,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감당하는 것.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작고 조용한 선택들이 한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태도가 남아 있다고 말해준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책임을 붙들 것인지.

결국 그 응답들이 모여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말해준다.



ㅡ

'북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스트레스 연구의 창시자인 몬트리올의 한스 셀리에조차도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스트레스는 삶의 소금이며, 인간에게는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신중하게, 인간에게는 건강한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큰 긴장도, 너무 적은 긴장도 아닌 적정 수준, 즉 건강한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런 긴장은 양극을 가진 자기장에서 생겨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쪽 극에는 인간이 있고, 다른 쪽 극에는 의미가, 오직 그가 실현해주기를 기다리는 고유하고 구체적인 ‘의미’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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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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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우리는 특별한 사건들이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평범한 순간들이다.

함께 밥을 먹던 저녁, 아무렇지 않게 나눴던 대화, 끝내 하지 못했던 사과,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침묵.

데니스 존슨의 유작 《바다 여인의 선물》은 바로 그런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서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줄거리도 선명하지 않고, 현실과 기억, 꿈이 뒤섞여 있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따라가다 보니, 이 작품은 사건을 들려주는 소설이 아니라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한 장씩 넘겨 보여주는 기록에 더 가까웠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무엇을 후회하며, 마지막에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가?’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첫 번째 단편인 〈바다 여인의 선물〉이었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큰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혼을 통보받던 순간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질 듯 뛰던 순간이나 아이가 태어나 처음 울던 소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크리스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내가 들은 가장 조용한 소리는 지뢰가 내 다리를 날려버리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가장 조용한 소리일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데니스 존슨이 말한 침묵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큰 충격은 오히려 모든 소리를 지워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도 사람은 크게 울부짖기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진짜 고통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말조차 잃게 만드는 침묵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인상 깊었다. 크리스는 농담처럼 자신의 잘린 다리를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의족을 벗는 순간 디어드리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에는 상처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읽으니 그녀가 본 것은 다리가 아니었다. 늘 유쾌하게 웃던 사람이 사실은 전쟁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몇 달 뒤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결말도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느껴졌지만, 작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도 나도 이유를 안다.“라는 한 문장만 남긴다. 그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너무 쉽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늘 웃는 사람은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고, 씩씩한 사람은 상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진짜 이해란 지금 눈앞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 온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장면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공범’에서는 침묵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한 남자가 자신이 아끼던 그림을 벽난로 속에 던져 버린다.

그는 “내 것이니 내가 태워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이상했던 것은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모두가 불타는 그림만 바라볼 뿐이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데니스 존슨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후회는 내가 저지른 잘못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힘들어하는데 괜히 나섰다가 불편해질까 봐 모른 척했던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다 끝내 하지 못했던 일처럼 말이다.

그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침묵이 가장 크게 마음에 남는다.

그림을 태운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도 결국 그 순간의 일부가 된다.

침묵은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못을 완성시키는 공범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조용히 일깨워 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화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광고인이었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 상을 받게 되지만, 기쁨보다 허무함을 먼저 느낀다.

몸은 조금씩 고장 나고, 신경통은 점점 심해지며, 예전의 영광은 기억 속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가 말한 “삶의 속도에 관한 엄청난 슬픔”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 해가 너무 빨리 끝나 버린다. 성공은 남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함께 흘러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큰 성공을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오래 붙잡아 주는 것은 성취보다 기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보다,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봤을 때 후회보다 따뜻한 기억이 하나라도 더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둔 첫 번째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잊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사과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화자는 통화 도중 자신이 첫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 두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황당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억도 함께 늙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구였든 그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이제야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형수와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 이야기 역시 오래 남는다.

그녀는 남편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만큼은 행복한 마음으로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거짓말을 선택한다.

거짓말조차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반대로 화가 토니의 이야기는 예술조차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과 깊은 감수성을 지녔지만 끝내 외로움을 이겨 내지 못한 그의 삶은 예술도 인간의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남은 단어는 ‘침묵’이었다.

우리는 침묵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데니스 존슨은 가장 깊은 진실은 말보다 침묵에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도, 상실도, 용서도, 후회도 결국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친절하게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빈칸을 채우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이 어려운 이유이면서도 오래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같은 문장을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

그래서 이 소설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으로 남았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더 잘 살아가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인생은 거창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범했던 하루, 누군가와 나눈 대화, 끝내 하지 못한 말,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켜 준 사람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기억을 만드는 일은 거창한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 주었다.


ㅡ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젊은 크리스 케이스는 대화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서 침묵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가장 고요한 소리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서 지뢰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던 소리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침묵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제 우리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크리스가 다리 한쪽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다.
크리스는 아주 미약하게 다리를 절 뿐이었다.
나는 심지어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참전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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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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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더는 사람을 세게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명료함』은 리더십을 카리스마나 타고난 자질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리더십을 조직 안의 모호함을 줄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로 설명한다.

저자는 훌륭한 리더를 “조용한 엔지니어”에 비유한다.

좋은 엔지니어가 제품의 설계도를 그리듯, 좋은 리더는 조직의 목적과 기준, 일하는 방식을 설계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명료함은 바로 그 설계도의 밑그림이다.

리더의 말이 흐리면 조직은 추측으로 움직인다. 구성원은 리더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리더는 구성원이 자기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애초에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명료함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덜 헤매고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배려에 가깝다.


이 책이 인상 깊은 이유는 리더십을 추상적인 말로 설명하지 않고, 저자의 실패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과거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안젤라라는 직원을 “역량이 부족하고 성장 가능성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해 내보낸다.

그런데 2년 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놀랍게도 안젤라는 그곳에서 유능하고 신뢰받는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녀가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안젤라는 오히려 자신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2년 전에는 한 번도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없잖아요.”

이 장면은 책 전체의 핵심을 관통한다.

안젤라가 일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그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였던 저자 자신도 그 기준을 명료하게 정리해본 적이 없었다.

많은 리더들은 구성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기대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라”는 말은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에게 추측을 떠넘기는 말에 가깝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는 일이 많은 순간보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방향이 맞는지 모르고, 혼나긴 하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모를 때 사람은 지친다. 평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안내다. 기준 없는 평가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상처가 되기 쉽다. 그래서 리더가 해야 할 첫 번째 친절은 막연한 격려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 일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일이다.


저자는 조직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무질서해진다고 말한다.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 개념을 조직에 적용해, 리더의 역할을 ‘조직적 엔트로피를 줄이는 일’로 설명한다.

구성원이 늘어나고 일이 복잡해질수록 조직은 저절로 흐트러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선명한 기준이다. 리더는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정의하고,

그 차이를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명료함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조직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일이다.

조직에서 생기는 많은 오해는 누군가 게을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기준으로 성실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떤 사람은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또 다른 사람은 관계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조직의 기준이 없다면 그 최선은 서로 충돌한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의 노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다. 흩어진 성실함을 성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명료함이다.


책은 흔히 말하는 미션, 비전, 핵심 가치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질문한다.

저자는 과거 자신의 회사에 미션과 핵심 가치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멋진 말에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것을 “철학을 아웃소싱했다”고 표현한다.

리더가 직접 고민하지 않고 가져온 기준은 리더 자신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구성원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느낀다.

모든 회사가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진짜 목적이 없다면 억지로 거창한 Why를 만들기보다,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목표를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

사람은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더 믿는다.

아무리 멋진 미션을 내세워도, 실제 의사결정에서 그 가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구성원은 금방 알아차린다.

오히려 거창하지 않아도 진심인 목적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리더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실제로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할 때 조직은 혼란을 덜 겪는다.

좋은 리더십은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정직하게 찾는 데서 시작한다.


이 책이 실용적인 이유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준을 만드는 방법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최고의 인재와 평균 수준의 인재를 비교하고, 그들의 행동을 상황·행동·영향으로 나누어 분석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실함”, “주인의식”, “고객지향”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먼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만들었는지까지 구체화해야 비로소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고객 중심이라는 가치를 말하고 싶다면, 단순히 “고객을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이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단기 매출과 고객 신뢰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까지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문구가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 된다.

좋은 기준은 사람을 옥죄는 규칙이 아니라, 헷갈리는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지도와 같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매번 리더의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를 살핀다.

하지만 기준이 분명하면 리더가 없을 때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명료함의 힘이다.

명료한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단순히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인간 등대’ 개념도 오래 남는다.

인간 등대란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따라가는 상징적 인물이다.

아무리 벽에 멋진 가치를 붙여두어도 실제로 인정받고 승진하는 사람이 그 가치와 다르게 행동하면, 

구성원은 벽의 문구가 아니라 그 사람을 기준으로 배운다.

조직문화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인정받고 누가 남는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리더는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인간 등대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조직 안에서 계속 빛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직의 진짜 가치는 선언문에 적힌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남는다.

성과를 내면서도 동료를 존중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과, 결과만 좋으면 어떤 태도도 용인되는 조직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갖게 된다.

구성원은 리더가 칭찬하는 사람, 승진시키는 사람, 끝까지 지키는 사람을 보며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배운다.

결국 문화는 말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또 하나의 핵심 도구는 ‘명료함 캔버스’다.

명료함 캔버스는 “우리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도구다.

직무별·부문별로 기대 수준을 정리하고, 기본 수준과 탁월한 수준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도구가 중요한 이유는 기준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가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꺼내어 글로 쓰고, 구성원과 공유할 때 비로소 조직은 같은 언어를 갖게 된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는 선명해 보이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면 얼마나 흐릿했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기준을 적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글로 쓰인 기준은 리더 자신에게도 거울이 된다.

내가 정말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실제로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 구성원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 점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료함은 말하는 기술 이전에 생각을 끝까지 붙잡는 훈련이다.


『명료함』은 좋은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소통은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좋은 소통은 상대가 헤매지 않도록 기준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막연한 칭찬보다 무엇이 좋았는지 알려주는 피드백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추상적인 지시보다 판단 기준이 담긴 설명이 사람을 움직인다.

이 책은 CEO, 팀장, 관리자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는 리더가 된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의견을 나누고, 기준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명료함』을 읽고 나면 리더십의 출발점이 사람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리더의 생각이다.

명료한 리더는 사람을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남긴다. 

누군가를 움직이고 싶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건네야 한다. 

그 과정이 쌓일 때 사람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하며 움직이게 된다.


결국 명료한 리더가 명료한 조직을 만들고, 명료한 조직이 더 좋은 성과를 만든다.

『명료함』은 리더십책이지만, 동시에 관계와 소통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얻게 된다.


"나는 내가 기대하는 것을 정말 명료하게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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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민 오'작가님에게 선물로 도서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조직은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조직 역시 다양성이 있을수록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장’과 ‘고객’이라는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해 조직은 다양성을 보유한 생명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깊이 있는 통찰의 과정 없이 ‘문화’라는 허울 아래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회사를 채우는 것은 번영이 아닌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다.
우리의 조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리더의 불성실함‘이 기준 없는 조직을 만든다.
기준 없는 회사는 비슷비슷한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세상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회사로 밀려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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