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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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본다. SNS 피드에는 광고, 짧은 영상, 밈, AI가 만든 그림과 문장이 끝없이 흘러간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설계된 욕망일 수도 있고, 감동이라고 느꼈던 것이 사실은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계산된 자극일 수도 있다.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무엇이 좋은 예술인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예술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를 묻는다.

저자 J. F. 마르텔은 광고, 정치 선전, 상업적 이미지, SNS 콘텐츠처럼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인공물’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보다 무언가를 사게 하고, 따르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열망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얼굴을 한 조작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예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예술을 감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미지와 콘텐츠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지만, 정작 하나의 장면 앞에 오래 머물고, 하나의 문장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하나의 음악 안에서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이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깊이 느끼는 시대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의 추천 글들은 이 작품을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영혼을 위한 지침서’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노리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며, 상상력을 기계의 부품처럼 만들려 한다는 지적도 인상 깊다.

이 말은 지금 시대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콘텐츠를 보고 있지만,

정작 더 깊이 느끼는 능력은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이 보는 것과 깊이 감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도나 타트의 추천 서문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더 넓게 펼쳐 보인다.

그는 예술이 정치권력에 이용되고, 이론으로 해체되고, 상업광고로 팔려가며 디지털 자극에 밀려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현실을 짚는다.

예술이 돈과 성공, 대중의 입맛, 특정 이념을 위해 쓰이는 순간 그 안에 있던 신비로운 생명력은 사라진다.

퀸시 존스의 표현처럼, 그때 ‘신은 그 방을 떠나버린다.’는 말은,

진짜 예술은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할 때 가장 큰 힘을 가진다.

예술은 상품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 구호가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교훈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모든 예술은 쓸모없다”라는 문장도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쓸모없다는 말은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술이 광고, 선전, 교훈, 도덕적 명령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앞에서 자유로워진다.

진짜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안의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세계에 균열을 내며 다시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어쩌면 예술의 가장 큰 힘은 ‘쓸모없음’에 있다. 쓸모 있는 것들은 대개 우리를 어떤 목적지로 데려간다.

더 많이 벌게 하고, 더 빨리 처리하게 하고, 더 효율적으로 살게 만든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가기보다 잠시 멈춰 세운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진짜로 사랑했는지, 어떤 감각을 너무 오래 외면하고 살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예술은 당장 쓸모없어 보여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쓸모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쇼베 동굴벽화에 대한 이야기다.

3만 년 전 인류가 깊은 동굴 속에 남긴 동물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생존에 급급했을 구석기 인류가 왜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 들어가 그런 이미지를 남겼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알 수 없음 때문에 예술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예술이 서서히 진화한 문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예술은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라기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책은 예술과 인간의 상상력을 연결한다.

인간은 단순히 현실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이미지로 그려내며,

‘있는 그대로의 세상’ 너머에 ‘마땅히 그래야 할 세상’을 꿈꾸는 존재다. 저자는 이 상상력의 세계를 ‘상상계’라고 부른다.

예술은 바로 이 상상계의 이미지를 현실의 형태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래서 예술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 꿈과 신화와 기억과 무의식이 뒤섞인 장소와 연결된다.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현실이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인간은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래서 예술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가장 깊은 방식일 수 있다.

지금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 내 삶이 지금의 조건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그 작은 틈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반대로 인공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좁힌다.

광고와 포르노처럼 욕망을 자극하는 ‘말초적 인공물’, 정치 선전물처럼 감정을 선동하는 ‘교훈적 인공물’은 모두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인공물은 속삭인다. 나를 사랑해라, 나를 구매해라, 나에게 투표해라.

진짜 예술이 우리를 멈춰 세우고 내면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면, 인공물은 욕망과 혐오를 부추겨 우리를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AI 시대에 이 구분은 더욱 중요해진다. 생성형 AI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AI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기보다,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데이터 조각을 그럴듯하게 조합해 ‘예술처럼 보이는 제품’을 만든다고 본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진짜 예술의 자리를 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매끄럽고 빠르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 세상과 부딪치며 얻은 상처, 실패, 시간, 육체의 감각까지 품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정교한 AI 그림이라도 인간이 남긴 서툰 낙서 한 장에 담긴 날것의 생명력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인간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두려움은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그럴듯한 것’에 너무 쉽게 만족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이미지, 즉각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 문장, 공식처럼 잘 짜인 음악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서툴지만 진짜인 것,

거칠지만 살아 있는 것, 완성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통과한 흔적을 알아보는 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예술을 지키는 일은 결국 인간의 불완전함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AI를 거부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분별력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쉽게 조종당하게 만드는가. 나를 더 깊은 감각과 사유로 이끄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소비와 반응으로 몰아가는가. 이것을 구분하는 힘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너무 많은 콘텐츠 속에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 내가 보는 것과 믿는 것이 정말 내 선택인지 의심해본 사람, AI와 알고리즘의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한 힘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술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다. 유명한가, 비싼가, 화려한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것은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것은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가.

결국 좋은 예술은 우리를 더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많은 지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 앞에서 이유 없이 마음이 오래 머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의 표정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예술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일을 시작하는 때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진짜 예술은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에 가깝다.

자본과 권력, 알고리즘과 AI가 우리의 욕망과 감각을 대신 설계하려는 시대에 예술은 우리 안에 아직 조종되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예술은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설득하려 들지 않으며, 특정한 답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다만 낡은 현실에 작은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새로운 빛이 들어오게 한다.

진짜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며, 다시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자리로 데려다준다.

그래서 예술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인간을 가장 깊이 자유롭게 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예술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예술 앞에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빠르게 소비하고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을 깨우는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감상법일지도 모른다.

진짜 예술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사라지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인간이 아직 완전히 조종되지 않았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서스테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제 사람들은 작가를 보고 작품을 신뢰할지를 결정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작가에게 도덕적 흠결이 발견되면 작품의 흠결로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공물이 지배하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작가만을 요구하기에 진정한 예술은 더욱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은 언제나 작가라는 틀을 넘어서서 스스로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예술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 작품은 작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 배경, 심지어 그 시대가 가진 한계마저도 뛰어넘어 자신만의 생명력을 갖는다. 따라서 예술이 작가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작가의 개인적인 흠결이 작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예술은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될 수 없는 ‘상상계’가 보내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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