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믿는 연습”


출간된 지 10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데미안』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인생책으로 불린다.

유행도 바뀌고 삶의 방식도 달라졌는데,

유독 이 책은 이상하게 계속 다시 읽힌고 있다.

왜 이 오래된 소설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걸까?

아마도 『데미안』이 오래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기준을 조용히 흔들어 놓기 때문 아닐까?

익숙한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굳어버린 고정관념에 “정말 그게 전부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숨에 읽히기 보다 순간순간 생각을 깨운다.

익숙한 세계를 한 번 뒤집어 놓고, 그 자리에 스스로의 시선으로 삶을 다시 보게 만든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책의 첫 질문이었던 이 문장은,

나는 정말 내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나를 계속 고쳐 쓰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데미안은 성장소설을 넘어, 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끝까지 추적하는 이야기로 바뀐다.

그리고 이 문장은 노자의 무위 자연을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自然)’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상태’이고, 억지로 꾸미지 않은 존재 방식이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싱클레어의 고백은 나는 나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라는 말에 가깝다. 그런데 왜 그 단순한 소망이 이렇게 어려울까. 삶은 끊임없이 인위적인 기준을 들이민다.

성공의 형태, 인정받는 방식, 바람직한 태도가 정답처럼 제시되며 우리의 흐름을 자꾸 수정한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는 일이 오히려 가장 어려워진다.

노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 어려움은 실패가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반드시 마주치는 저항이다. 『데미안』은 그 과정을 철학이 아니라 체험으로 보여준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두 세계’다. 싱클레어가 살아온 밝고 선량한 세계, 그리고 크로머를 통해 발을 들이게 되는 어둡고 금지된 세계. 흔히 선과 악의 대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규범과 자기 안의 충동이 처음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가깝다. 싱클레어가 무너지는 이유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거짓말 하나, 돈 몇 푼, 허풍 같은 사소한 사건들이 본질은 아니다.

진짜 변화는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한 번 비밀을 품고 나자,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집 안은 여전히 평화롭지만, 그의 내면은 점점 고립된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혼자이고, 웃고 있어도 불안하다. 성장이 외부 사건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 소설은 집요할 만큼 섬세하게 보여준다.

크로머에게 종속되는 과정은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다. 두려움이 어떻게 삶의 구조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반복되는 위협 속에서 싱클레어는 점점 피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듯 그 상황에 익숙해진다. 돈이 없어도 케이크를 챙기고, 눈치를 보고, 먼저 맞춘다.

겉으로는 비굴해 보일지 몰라도,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정이고 생존 전략이었다. 더 무서운 건 폭력이 바깥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없어도 공포가 계속 작동하고, 폭력은 마음속에 규칙처럼 남는다.

그래서 데미안이 던지는 말은 위로라기보다, 내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나를 지배할 힘을 내주는 일”이라는 문장은,

싱클레어가 자기 상황을 처음으로 객관화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크게 흔들렸던 장면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에 대한 데미안의 해석이었다. 우리는 늘 마지막 순간 회개한 강도를 감동적인 구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데미안은 묻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갑자기 눈물로 참회하는 장면이 과연 얼마나 진실한가. 그것은 오히려 성직자적 감동을 위해 만들어진, 달콤하고 교화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는 만약 두 강도 중 한 명을 친구로 택해야 한다면,

눈물의 회개자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길을 가는 다른 쪽을 더 믿겠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자기를 이끌어온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ㅡ 그는 처지를 미화하지도, 비겁하게 등을 돌리지도 않는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색깔이고 성격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솔직히 놀랐다. 너무 당연하게 믿어왔던 이야기가 사실은 하나의 해석일 뿐일 수 있다는 걸,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늘 이런 역할을 한다.

독자를 하나의 관점에 가두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엔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이야말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 없이, 상상력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한다.

작품 곳곳에는 인간이 아직 미완성 존재라는 상징들이 반복된다. 개미, 도마뱀, 개구리, 알껍질과 점액질 같은 이미지들.

우리는 이미 인간이지만 동시에 아직 덜 깨어난 존재다. 성장은 단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탈피다. 그래서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는 문장이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알은 세계다. 익숙함이고 안전함이고, 남이 만들어 준 틀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바깥의 제도만이 아니라 내 안의 습관과 편안함,

남이 준 기준에 기대어 살려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데미안이 말하는 허용과 금지의 문제도 결국 이 지점으로 수렴된다.

중요한 것은 규칙을 잘 지키느냐 어기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나에게 금지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아는 일이다.

많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규칙을 따른다.

편하니까. 하지만 데미안이 말하는 성장은 남의 규칙에 기대지 않고,

자기 안에서 계율을 만들어내는 단계다.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후반부의 ‘야곱의 싸움’은 그 성장을 몸으로 통과하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야곱이 밤새 천사와 씨름하듯 싱클레어는 욕망과 죄책감, 꿈과 현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끝없이 싸운다. 이 싸움은 이해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할수록 더 흔들리고, 흔들릴수록 더 진짜에 가까워진다. 통합은 평온이 아니라 통증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싸움은 성장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탄생에 가깝다.


에바 부인은 그 싸움의 끝에서 등장하는 통합의 상징이다.

그녀는 보호자이면서도 이상이고, 어머니이면서도 사랑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빛과 어둠을 나누지 않고 함께 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에바를 통해 자기 안의 데몬, 즉 삶을 이루는 힘과 운명의 방향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운명과 기질은 같은 개념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문장은,

미리 정해진 운명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결국 내 성향이 내 길을 만든다는 뜻처럼 들린다.

삶은 우연이 아니라, 내 성향이 만든 선택이 쌓여 형성된 길이라는 자각이다.


‘종말의 시작’에서 전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상징이다.

더 이상 안전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이전 세계의 붕괴이고, 그 붕괴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태어난다.

『데미안』이 마지막까지 편안한 희망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이유는,

탄생이 언제나 파괴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부록 해설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시간을 정밀하게 따라가 보면 싱클레어가 열 살에서 스무 살까지 겪는 내면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1915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인 바탕을 깔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작품은 표면의 이야기 아래에 심층심리학적 상징 구조를 촘촘히 숨겨 둔, 놀라운 이중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처음엔 성장소설로 읽히지만, 다시 읽을수록 전혀 다른 층이 열린다.

이 책이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읽힌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결국 『데미안』이 남기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자주 나를 수정해왔는가?

나는 정말 내 삶의 주인인가?

『데미안』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답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로 데려간다.

나답게 사는 일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덜 가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아프고 불편하다. 그래서 이 책은 편하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흔들릴 때마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펼쳐 볼 책이다.


'문학동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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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행동을 결정짓는 40가지 심리 코드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지음, 김희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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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후회성 발언을 자주 하는 것 같다.

분명 충분히 생각한 것 같았는데, 돌아보면 늘 비슷한 관계에서 같은 감정을 반복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의지가 약해서일까? 성격 탓일까?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조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이미 정해진 마음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설득하는 기술을 나열하지 않고,

대신 우리가 어떤 특정한 말에 흔들리고, 어떤 사람에게 끌리며, 왜 스스로를 쉽게 포기하는지 그 무의식의 원리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저자는, 인간의 선택과 감정은 하나의 심리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여러 심리 효과가 동시에 작동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가 겪어 온 오해와 갈등, 이해할 수 없던 감정의 혼란 역시 모두 설명 가능한 마음의 패턴이었다고 말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생성 효과’와 ‘자기 참조 효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는 읽기만 한 정보보다 스스로 만들어 낸 정보를 훨씬 잘 기억하고,

나와 관련된 정보일수록 더 깊이 저장한다.

빈칸을 채우며 적은 단어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고, 처음 만난 사람을 기억할 때도 얼굴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신발을 신었다와 같은 사실을 기억한다. 저자들은 이를 단순한 기억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구조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을수록 다시 읽기보다, 자기 말로 설명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 보라고 권한다. 기억은 반복이 아니라 나와의 연결 속에서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후 등장하는 ‘이름 철자 효과’는 우리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 자신의 생년월일 숫자, 자신과 닮은 대상에 무의식적인 호감을 느낀다. 익숙한 것은 처리하기 쉽고, 처리하기 쉬운 것은 좋다고 느끼는 뇌의 습성 때문이다.

문제는 이 호감을 우리는 종종 상대의 본질이나 가치로 착각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신뢰와 끌림 중 상당수가, 사실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의 반사 효과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자기 지각 이론’ 장에서는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직접 들여다보기보다, 그동안 해 온 행동을 근거로 스스로를 판단한다고 했다. 무엇을 자주 했는지가 곧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결론을 만든다.

질문의 방식이 감정 인식까지 바꾼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이 “불행한가요?”보다 더 많은 행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는,

질문 속에 이미 긍정의 방향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 인색하며, 그 공백을 자동화된 판단으로 채워 버린다.

중반부의 ‘사회성 튜닝’과 칭찬의 힘은 관계의 현실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논리는 호감 앞에서 힘을 잃고,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의 의견에 훨씬 쉽게 동조한다.

인간은 혼자 현실을 만들지 않고, 타인과 ‘공유된 현실’을 구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작은 칭찬 하나, 자존감을 건드리는 말 한마디가 긴 설명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관계를 조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솔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 역시 관계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우리는 보통 호의를 받았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호의를 베푼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탁을 들어준 순간, 뇌는 ‘이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라며 인지 부조화를 해소해 버린다.

감정이 행동을 낳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감정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학습된 무기력’은 반복된 실패와 통제 불가능한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실은 열려 있는 문 앞에서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들은 여기서, 무기력은 성격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이며, 귀인 양식을 점검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과 명확한 소통을 통해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우리는 마음이 약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라서 끌려다녔을 뿐이다. 감정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감정이 생겨나는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선택의 주도권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책을 읽으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을 조종하는 법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반응을 읽어 내는 법을 알려주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란, 타인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포레스트북스 출판사'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떤 단어가 가장 잘 기억나는가? 아무래도 당신이 직접 써넣은 단어, 개인적으로 당신과 확실한 관련이 있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를 알았다면 아주 멋진 기억법을 터득할 수 있다. 평소에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효과가 아주 교묘하게 맞물려 작용한다. 첫번째는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다. 우리 자신이 직접 ’생성’한, 즉 만들어 낸 정보와 단어는 읽기만 해도 훨씬 더 쉽게 기억된다. 이 효과는 앞선 빈칸 채워 넣기와 아주 비슷한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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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 -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절세 효과 만점의 ETF 투자법
미즈쑤(김수연)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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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우리는 돈에 대해 이렇게 늦게 배웠을까?”였다.

학원과 진로, 스펙과 성취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정작 돈을 어떻게 벌고,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는 대부분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부딪히며 익히게 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돈을 배운 기억은 희미하고, 현실에서의 배움은 대개 후회와 함께 찾아왔다. 그런 경험을 떠올릴수록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아이들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는 자녀 경제교육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온 저자의 성찰에서 출발한 책에 가깝다.

저자는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어 왔지만, 왜 항상 돈이 부족하게 느껴졌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자신의 삶에서 차분히 복기한다.

결혼 후 카드 명세서를 들여다보며 느꼈던 막막함, 외식과 야식, 주말의 편안한 한 끼 같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지출의 흐름, 그리고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조차 계산하지 않았던 모습을 자각하게 된다.

이 장면들은 특정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많은 성인 독자에게 익숙한 풍경처럼 다가온다.

존 리가 말한 ‘금융문맹은 질병과 같다’는 문장을 인용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 표현이 꽤 정확하다고 느꼈다. 돈을 이해하지 못하면 돈을 다룰 수 없고, 돈을 다루지 못하면 결국 인생은 불리한 방향으로 흐른다. 저자가 구조조정을 겪으며 느낀 절망과 동시에 떠올린 다짐은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더 이상 돈에 끌려 다니지 않고, 돈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겠다는 결심이,

나에게도 깊게 와닿기도 했다.

이후 책은 시선을 넓혀 유대인의 자녀 경제교육 사례를 소개한다.

바르미츠바와 바트미츠바라는 성인식에서 아이에게 주어지는 성경책, 시계, 그리고 축의금.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삶의 기준, 시간의 주인이 되기, 돈의 목적을 동시에 전하는 상징이다. 저축, 투자, 기부라는 돈의 세 가지 쓰임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게 하는 것은, 돈을 모으는 기술보다 돈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 이야기가 꼭 아이에게만 필요한 교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개념들을,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례는 분산투자와 시간의 힘을 설명하는 장치로 이어진다. 한곳에 몰아 넣지 않고 나누는 전략, 그리고 복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주는 선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서 ETF를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 이런 사고방식을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ETF가 주식처럼 거래되면서도 펀드처럼 분산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과 한 종목이 곧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ETF를 시장을 이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장의 성장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개별 종목 투자가 특정 기업의 미래에 베팅하는 일이라면, ETF는 경제 구조 전체의 성장에 올라타는 선택에 가깝다. 지수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빠지고,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 새로 편입되며, 시장 스스로 우량함을 유지하려는 구조가 작동한다는 설명은 투자에 대한 시선을 바꿔 놓는다.

투자는 결국 똑똑해지는 게임이 아니라, 감정을 덜 개입시키는 구조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말한다.

이 책은 감정 통제의 중요성도 반복해서 강조한다. 투자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지식 부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말처럼, 손실 앞에서의 두려움과 작은 수익 앞에서의 욕심이 충동적인 선택을 만든다. ETF가 장기투자에 적합한 이유는 바로 이 감정의 개입을 줄여주는 구조 덕분이다 단기간에 큰 수익을 노리는 대신, 시장의 성장 흐름을 믿고 시간을 편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녀 명의 계좌 개설이나 증여처럼 현실에서 바로 마주하게 되는 절차들에 대한 이야기, 포트폴리오 구성의 기본 원칙, 시장이 흔들릴 때의 태도 등은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돈을 다루는 기본기가 된다. 저자가 재테크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이 책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기법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에서 바로 따라갈 수 있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백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1억’은 도달해야 할 목표 금액이라기보다, 얼마를 모을지보다 먼저 ‘돈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부터 정하라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돈을 많이 버는 법이 아니라, 돈을 이해하는 법이다. 돈은 목표가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히는 도구이며, 돈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구조—수입과 지출, 시간과 리스크, 욕망과 감정—를 읽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는 아이를 위한 경제교육서이면서 동시에, 뒤늦게라도 돈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하는 어른에게 건네는 안내서 같이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선택을 탓하기보다, 오늘부터의 선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책이기도 하다.

 

'푸른향기 서포터즈 13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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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고 수익률을 추구하거나 레버리지를 이용해 초호화 생활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 두 가지는 친구들에게 잘난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게임처럼 보이고, 모두 숨은 리스크가 있다. 그냥 매일 아침 나와 내 가족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잠을 깨고 싶을 뿐이다.
-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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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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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순간, 독자가 더 이상 독자가 아니게 되는 책이 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소설도, 에세이도, 자기계발서도 아닌 독특한 형식을 선택한다. 책은 조용히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대 자신’에게로.


이 책의 인사말은 분명하다. 좋은 책이란 독자를 다른 인물로 도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다. 이 책은 스스로를 사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사물이 의식을 지닌 존재를 도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종이에 적힌 기호들이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독자의 지각을 흔들 수 있다면, 결국 변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며, 그 변화에 따라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만, 이 책은 책임을 대신 지지 않는다. 모험을 제안하는 것은 책이지만, 그 여행을 실현시키는 힘은 오로지 독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공기, 흙, 불, 물이라는 네 개의 원소 세계를 따라 진행된다.

각각의 세계는 내면의 상태를 상징하며, 색지와 글자체의 변화까지 포함해 독서 자체를 하나의 체험으로 만든다. 공기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다투기 쉽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언젠가 서로 사이좋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인간의 바탕에는 결국 선량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이 세계에서 특히 화산 장면은 유독 오래 남는다. 화산의 입구를 ‘입’이라 하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용암을 ‘지구의 피’라 부르는 순간, 풍경이 아닌 살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피’라는 단어가 붙자 용암은 장엄함이 아니라 경고 신호가 된다. 지금 심각하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붉은 이미지로 눈앞에 들이미는 듯하다. 책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지구가 피를 토하는 장면 하나로 우리가 만든 균열과 고통을 몸으로 먼저 알아차리게 만든다.


공기의 세계는 또한 정신의 비행을 둘러싼 오해를 짚는다. 마약, 종교적 고행, 기술적 환각처럼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수단들은 결국 도피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이 제안하는 대안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상상력만으로 충분히 날 수 있다는 것. 책은 독자가 도움을 원할 때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진짜 변화는 외부 자극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흙의 세계로 들어서면 시선은 보다 안정된 내부로 향한다. 이곳에서 책은 내밀한 안식처를 이야기한다. 정신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장소, 언제든 돌아가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정신세계의 서재를 정돈하듯 생각과 감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개인적인 상징’이다. 인간에게는 육체의 오감뿐 아니라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이라는 정신의 오감이 있으며, 상징은 그것들을 조율해준다. 이를 통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직관을 신뢰하며,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불의 세계는 고통과 투쟁의 영역이다. 체제와의 싸움, 질병과의 싸움, 불운과의 싸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진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언제나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정한 전사는 질 줄도 알아야 하며, 실패와 불운은 삶을 발전시키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공격보다 후퇴가, 섬멸보다 보존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마지막 물의 세계는 회복과 휴식의 시간이다. 돌고래가 깨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꿈을 꾸듯, 인간 역시 현실에 있으면서 꿈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은유는 독서 경험 그 자체를 설명한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현실에 있으면서도 내면의 깊은 곳을 여행한다. 이 세계의 끝에서 책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며, 가장 훌륭한 증거는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관계라는 메시지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남기고, 고요한 시간을 건네며, 독자가 자기 삶을 다시 써 내려가도록 이끈다. 독서를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 되돌려 놓는 책이다. 이 책은 내 삶이라는 책에 지금 어떤 문장이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장을 고쳐 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끝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책임은 언제나, 독자 자신에게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저것이 바로 화산이다.
저 뜨겁고 불그스레한 용암을 통해서
가이아 여신. 즉 지구의 피를 느껴 보라.
그대의 행성은 살아 있고,
마그마로 된 피가 끓고 있다.
원한다면 더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
이 화산이 거대한 입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 입을 통해서 지구가 그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지구가 장중한 연속음을 발하고 있는데,
그대는 알아듣지 못하는가 보다.
너무 낮고 미묘한 소리라서
아무래도 그대가 이해하기는 어렵지 싶다.
그대 행성과의 이 첫번째 만남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모든 걸 다 이해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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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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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먼저]

글쓰기와 관련 된 책 중 밀도가 높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그런 책 같다.

개인적으로 너무 도움이 되는 책이었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한번 이상은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추천한다~!

[본문 리뷰]

글을 읽다 보니 어떤 문장에서 정말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 멈춰 서게 됐다.

“글쓰기는 나의 머리에 담겨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한 움큼 푹 덜어내서

종이 위에 멋있게 플레이팅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초반에는 ‘글이야 그냥 쓰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자신감이라기보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객기에 가까웠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는 행위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는 특정 사안을 두고 끊임없이 해석하는 과정이며, 그중에서도 독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의미 있는 해석을 골라내는 일이다. 결국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자신을 ‘무한한 해석의 바다’에 풀어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편하게 쓰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익숙한 결론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으로 요구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이남훈 저자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기술 부족으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철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이 있는 글은 쓰는 중간에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철학이 없는 글은 문장만 매끈할 뿐 마음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쓰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왜 쓰는가’를 먼저 묻는다.

저자가 한때 글쓰기를 ‘전쟁터의 북소리’라고 정의했던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삶이 전쟁터라면 글은 단지 예쁘게 포장된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북소리’여야 한다는 믿음이다. 힘없이 처진 어깨를 다시 세우게 하고, 좌절한 사람에게도 희망을 건네 결국 다시 뛰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그런 글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감성적인 장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결론을 빙빙 돌려서 말할 이유도 없고, 독자의 고민을 향해 주저 없이 직진해야 한다.


이 철학이 자리 잡자 저자의 문장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고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으로 곧장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비슷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문장을 예쁘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앞설수록 정작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흐려지고, 글의 본질은 뒤로 밀려나곤 했다. 결국 글의 힘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덜어낼지 끝까지 선택하는 결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책의 중반부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문장은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창의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데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고, 상식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데 도발적인 문장을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을 저자는 단호하게 끊어낸다. 그래서 제시되는 방법이 ‘자기 파괴’다. 낡은 자신을 부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말을 전한다. 낯선 공간에 몸을 던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 보고, 혼란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사고는 확장된다. 글이 막힐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표현 기술이 아니라 더 넓은 삶의 반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해석’의 장은 글쓰기의 본질을 다시 짚는다. 글은 생각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해석을 선택하는 일이다. 단일한 진리에 매달리는 순간 글은 진부해지고, 세계의 복잡성을 담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글을 써 보는 훈련을 권한다. 스스로의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경험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사고를 유연하게 만든다. 다만 해석이 다양하다고 해서 제멋대로해서는 안된다. 독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가치 있는 해석만이 글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히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글이란 결국 정답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의 사고를 넓혀 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서 다루는 ‘전제’의 이야기는 특히 오래 남는다. 긍정과 행복을 만능 열쇠처럼 사용하는 글쓰기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모두가 동의하기 쉬운 전제에 기대면 글은 편해지지만 결론은 얕아진다.

삶에는 자연스러운 우울과 침잠이 함께 존재하고, 그것을 지운 채 쓰인 위로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저자는 자신의 세계관 바닥에 깔린 대전제를 점검하라고 말한다. 그 전제가 바뀌는 순간, 글의 관점과 말하는 방식도 함께 달라진다. 결국 글쓰기란 문장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틀을 계속 재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 장이 또 한 번 확인시켜 준다.


마지막 ‘저항’의 장에서는 글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이야기한다. 상식과 집단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처음 떠오르는 쉬운 생각을 한 번 더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집단 지성이 언제든 집단 착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는 믿음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글은 누군가를 흔들기 전에 먼저 작가 자신을 흔드는 작업이며 그 불편함을 통과할 때 비로소 새로운 문장이 나온다.


결국 『글쓰기를 철학하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글을 잘 쓰는 길은 예뻐 보이는, 있어 보이는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 글은 누군가를 각성시키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한계를 인정한 뒤, 낡은 자신을 부수고 재구축하는 훈련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생각을 건져 올리는 일이 아니라 해석의 바다에서 의미 있는 해석을 선택해 배치하는 일이 되고, 나도 모르게 굳어진 대전제—예컨대 긍정과 행복 같은 만능 전제—를 점검하며, 상식과 무리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저항의 태도까지 요구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써야 하지?”보다 “나는 어떤 전제로 세상을 보고 있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글이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기준은 문장 기술이 아니라,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글쓰기의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럽맹서평단 @luvv_mang’을 통해

'지음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세월이 흐르면서 단일한 해석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하나의 신념을 너무 완고하게 믿고 지켜나가게 되면, 그 사람의 글은 천편일률적인 해석의 틀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세상의 다양한 현상이 오히려 작가의 해석에 끼워 맞춰지고, 결과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본질을 다채롭게 서술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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