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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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우리는 특별한 사건들이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평범한 순간들이다.

함께 밥을 먹던 저녁, 아무렇지 않게 나눴던 대화, 끝내 하지 못했던 사과,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침묵.

데니스 존슨의 유작 《바다 여인의 선물》은 바로 그런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서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줄거리도 선명하지 않고, 현실과 기억, 꿈이 뒤섞여 있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따라가다 보니, 이 작품은 사건을 들려주는 소설이 아니라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한 장씩 넘겨 보여주는 기록에 더 가까웠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무엇을 후회하며, 마지막에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가?’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첫 번째 단편인 〈바다 여인의 선물〉이었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큰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혼을 통보받던 순간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질 듯 뛰던 순간이나 아이가 태어나 처음 울던 소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크리스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내가 들은 가장 조용한 소리는 지뢰가 내 다리를 날려버리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가장 조용한 소리일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데니스 존슨이 말한 침묵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큰 충격은 오히려 모든 소리를 지워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도 사람은 크게 울부짖기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진짜 고통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말조차 잃게 만드는 침묵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인상 깊었다. 크리스는 농담처럼 자신의 잘린 다리를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의족을 벗는 순간 디어드리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에는 상처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읽으니 그녀가 본 것은 다리가 아니었다. 늘 유쾌하게 웃던 사람이 사실은 전쟁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몇 달 뒤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결말도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느껴졌지만, 작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도 나도 이유를 안다.“라는 한 문장만 남긴다. 그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너무 쉽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늘 웃는 사람은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고, 씩씩한 사람은 상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진짜 이해란 지금 눈앞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 온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장면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공범’에서는 침묵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한 남자가 자신이 아끼던 그림을 벽난로 속에 던져 버린다.

그는 “내 것이니 내가 태워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이상했던 것은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모두가 불타는 그림만 바라볼 뿐이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데니스 존슨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후회는 내가 저지른 잘못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힘들어하는데 괜히 나섰다가 불편해질까 봐 모른 척했던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다 끝내 하지 못했던 일처럼 말이다.

그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침묵이 가장 크게 마음에 남는다.

그림을 태운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도 결국 그 순간의 일부가 된다.

침묵은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못을 완성시키는 공범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조용히 일깨워 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화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광고인이었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 상을 받게 되지만, 기쁨보다 허무함을 먼저 느낀다.

몸은 조금씩 고장 나고, 신경통은 점점 심해지며, 예전의 영광은 기억 속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가 말한 “삶의 속도에 관한 엄청난 슬픔”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 해가 너무 빨리 끝나 버린다. 성공은 남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함께 흘러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큰 성공을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오래 붙잡아 주는 것은 성취보다 기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보다,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봤을 때 후회보다 따뜻한 기억이 하나라도 더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둔 첫 번째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잊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사과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화자는 통화 도중 자신이 첫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 두 번째 아내와 이야기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황당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억도 함께 늙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구였든 그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이제야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형수와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 이야기 역시 오래 남는다.

그녀는 남편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만큼은 행복한 마음으로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거짓말을 선택한다.

거짓말조차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반대로 화가 토니의 이야기는 예술조차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과 깊은 감수성을 지녔지만 끝내 외로움을 이겨 내지 못한 그의 삶은 예술도 인간의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남은 단어는 ‘침묵’이었다.

우리는 침묵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데니스 존슨은 가장 깊은 진실은 말보다 침묵에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도, 상실도, 용서도, 후회도 결국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친절하게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빈칸을 채우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이 어려운 이유이면서도 오래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같은 문장을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

그래서 이 소설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으로 남았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더 잘 살아가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인생은 거창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범했던 하루, 누군가와 나눈 대화, 끝내 하지 못한 말,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켜 준 사람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기억을 만드는 일은 거창한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 주었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젊은 크리스 케이스는 대화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서 침묵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가장 고요한 소리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서 지뢰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던 소리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침묵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제 우리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크리스가 다리 한쪽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다.
크리스는 아주 미약하게 다리를 절 뿐이었다.
나는 심지어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참전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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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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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더는 사람을 세게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명료함』은 리더십을 카리스마나 타고난 자질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리더십을 조직 안의 모호함을 줄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로 설명한다.

저자는 훌륭한 리더를 “조용한 엔지니어”에 비유한다.

좋은 엔지니어가 제품의 설계도를 그리듯, 좋은 리더는 조직의 목적과 기준, 일하는 방식을 설계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명료함은 바로 그 설계도의 밑그림이다.

리더의 말이 흐리면 조직은 추측으로 움직인다. 구성원은 리더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리더는 구성원이 자기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애초에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명료함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덜 헤매고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배려에 가깝다.


이 책이 인상 깊은 이유는 리더십을 추상적인 말로 설명하지 않고, 저자의 실패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과거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안젤라라는 직원을 “역량이 부족하고 성장 가능성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해 내보낸다.

그런데 2년 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놀랍게도 안젤라는 그곳에서 유능하고 신뢰받는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녀가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안젤라는 오히려 자신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2년 전에는 한 번도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없잖아요.”

이 장면은 책 전체의 핵심을 관통한다.

안젤라가 일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그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였던 저자 자신도 그 기준을 명료하게 정리해본 적이 없었다.

많은 리더들은 구성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기대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라”는 말은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에게 추측을 떠넘기는 말에 가깝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는 일이 많은 순간보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방향이 맞는지 모르고, 혼나긴 하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모를 때 사람은 지친다. 평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안내다. 기준 없는 평가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상처가 되기 쉽다. 그래서 리더가 해야 할 첫 번째 친절은 막연한 격려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 일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일이다.


저자는 조직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무질서해진다고 말한다.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 개념을 조직에 적용해, 리더의 역할을 ‘조직적 엔트로피를 줄이는 일’로 설명한다.

구성원이 늘어나고 일이 복잡해질수록 조직은 저절로 흐트러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선명한 기준이다. 리더는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정의하고,

그 차이를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명료함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조직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일이다.

조직에서 생기는 많은 오해는 누군가 게을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기준으로 성실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떤 사람은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또 다른 사람은 관계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조직의 기준이 없다면 그 최선은 서로 충돌한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의 노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다. 흩어진 성실함을 성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명료함이다.


책은 흔히 말하는 미션, 비전, 핵심 가치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질문한다.

저자는 과거 자신의 회사에 미션과 핵심 가치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멋진 말에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것을 “철학을 아웃소싱했다”고 표현한다.

리더가 직접 고민하지 않고 가져온 기준은 리더 자신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구성원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느낀다.

모든 회사가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진짜 목적이 없다면 억지로 거창한 Why를 만들기보다,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목표를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

사람은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더 믿는다.

아무리 멋진 미션을 내세워도, 실제 의사결정에서 그 가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구성원은 금방 알아차린다.

오히려 거창하지 않아도 진심인 목적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리더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실제로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할 때 조직은 혼란을 덜 겪는다.

좋은 리더십은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정직하게 찾는 데서 시작한다.


이 책이 실용적인 이유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준을 만드는 방법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최고의 인재와 평균 수준의 인재를 비교하고, 그들의 행동을 상황·행동·영향으로 나누어 분석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실함”, “주인의식”, “고객지향”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먼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만들었는지까지 구체화해야 비로소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고객 중심이라는 가치를 말하고 싶다면, 단순히 “고객을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이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단기 매출과 고객 신뢰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까지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문구가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 된다.

좋은 기준은 사람을 옥죄는 규칙이 아니라, 헷갈리는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지도와 같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매번 리더의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를 살핀다.

하지만 기준이 분명하면 리더가 없을 때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명료함의 힘이다.

명료한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단순히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인간 등대’ 개념도 오래 남는다.

인간 등대란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따라가는 상징적 인물이다.

아무리 벽에 멋진 가치를 붙여두어도 실제로 인정받고 승진하는 사람이 그 가치와 다르게 행동하면, 

구성원은 벽의 문구가 아니라 그 사람을 기준으로 배운다.

조직문화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인정받고 누가 남는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리더는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인간 등대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조직 안에서 계속 빛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직의 진짜 가치는 선언문에 적힌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남는다.

성과를 내면서도 동료를 존중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과, 결과만 좋으면 어떤 태도도 용인되는 조직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갖게 된다.

구성원은 리더가 칭찬하는 사람, 승진시키는 사람, 끝까지 지키는 사람을 보며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배운다.

결국 문화는 말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또 하나의 핵심 도구는 ‘명료함 캔버스’다.

명료함 캔버스는 “우리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도구다.

직무별·부문별로 기대 수준을 정리하고, 기본 수준과 탁월한 수준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도구가 중요한 이유는 기준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가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꺼내어 글로 쓰고, 구성원과 공유할 때 비로소 조직은 같은 언어를 갖게 된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는 선명해 보이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면 얼마나 흐릿했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기준을 적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글로 쓰인 기준은 리더 자신에게도 거울이 된다.

내가 정말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실제로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 구성원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 점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료함은 말하는 기술 이전에 생각을 끝까지 붙잡는 훈련이다.


『명료함』은 좋은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소통은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좋은 소통은 상대가 헤매지 않도록 기준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막연한 칭찬보다 무엇이 좋았는지 알려주는 피드백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추상적인 지시보다 판단 기준이 담긴 설명이 사람을 움직인다.

이 책은 CEO, 팀장, 관리자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는 리더가 된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의견을 나누고, 기준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명료함』을 읽고 나면 리더십의 출발점이 사람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리더의 생각이다.

명료한 리더는 사람을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남긴다. 

누군가를 움직이고 싶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건네야 한다. 

그 과정이 쌓일 때 사람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하며 움직이게 된다.


결국 명료한 리더가 명료한 조직을 만들고, 명료한 조직이 더 좋은 성과를 만든다.

『명료함』은 리더십책이지만, 동시에 관계와 소통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얻게 된다.


"나는 내가 기대하는 것을 정말 명료하게 말하고 있는가?"

'탁민 오'작가님에게 선물로 도서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조직은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조직 역시 다양성이 있을수록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장’과 ‘고객’이라는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해 조직은 다양성을 보유한 생명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깊이 있는 통찰의 과정 없이 ‘문화’라는 허울 아래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회사를 채우는 것은 번영이 아닌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다.
우리의 조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리더의 불성실함‘이 기준 없는 조직을 만든다.
기준 없는 회사는 비슷비슷한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세상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회사로 밀려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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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 : 야망은 큰데 왜 아직도 평범한가 세계척학전집 6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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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은 큰 꿈은 있지만 이상하게 늘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삶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까?

남들은 작은 실패에도 금세 회복하고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는데,

나는 왜 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리고 비교와 후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까?

이 책은 그 이유를 단순히 멘탈이 약해서,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강함이라고 믿어온 것, 더 나아지기 위해 붙잡고 있던 방식이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두고 있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다. 자리가 위태로워져도 조급해하지 않고,

실패를 겪고도 무너지지 않으며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며 “멘탈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현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으니 멘탈이 강하다고 하고, 멘탈이 강하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도는 설명일 뿐이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흔들리지 않음은 타고난 기질일까? 아니면 도달할 수 있는 상태일까?

『초월자의 조건』은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길을 2,500년 동안 탐구해온 인류의 사유를 25명의 사상가를 통해 보여준다.

니체, 헤세, 베커, 힐먼, 아렌트, 프랭클, 스피노자, 한병철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가진 사상가들이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자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더 강한 자아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던 껍데기를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니체의 ‘르상티망’이다.

친구의 좋은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다.

잘나가는 사람을 보며 “재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의 몰락 앞에서 이상하게 후련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니체는 이것을 단순한 질투나 분노가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원한이 안에서 곪는 상태로 본다.

르상티망의 무서움은 나의 하루를 타인의 삶에 묶어둔다는 데 있다.

내가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내 기분을 결정한다.

결국 내 삶의 운전대를 남의 손에 쥐여 주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누군가를 “악하다”고 부르기 전에, 정말 그에게 악의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아니면 내가 그를 이길 방법이 그 말밖에 없어서인지 돌아보라고 한다.

약자는 종종 결핍을 미덕으로 바꾸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한다.

“나는 저런 거 안 해”라는 말도 때로는 선택이 아니라 무력함을 꾸민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독자를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정의감이라 믿었던 감정, 겸손이라 여겼던 태도, 고생을 훈장처럼 붙잡고 있던 마음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도 오래 남았다.

베커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지 않으려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나만은 예외일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 더 큰 이름, 더 많은 성취를 향해 달린다.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르지만, 베커의 눈으로 보면 그 밑바닥에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숨어 있다.

돈과 명성, 업적과 인정은 결국 육체는 사라져도 무언가는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불멸 프로젝트’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베커는 "인간만이 자신의 소멸을 미리 아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 위해 문화와 종교, 예술, 업적 같은 상징적 성취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이후 공포관리이론의 출발점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따라왔다.

정말 죽음을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반려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임종을 앞둔 반려견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보호자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고, 품 안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동물이 인간처럼 자신의 죽음을 명확히 인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몸으로 느끼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행동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남았다.

물론 동물이 인간처럼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감지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마지막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은 남는다.

최근에는 동물의 죽음 인식을 연구하는 비교 타나톨로지(Comparative Thanatology) 분야에서도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침팬지, 코끼리, 범고래, 까마귀, 개 등이 죽음이나 이별 앞에서 애도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베커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오늘날에는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은 죽음을 언어와 철학으로 해석하고 미래까지 확장해 성찰하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감지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 사상가의 이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이후에 나온 힐먼의 ‘다이몬’ 이야기 또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방향을 아직 못 찾아서 제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좋은 재능을 찾고,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힐먼은 반대로 말한다. 방향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던 것,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것,

안정된 삶 속에서도 이상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끌림.

힐먼은 이것을 다이몬이라 부른다.

그것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천사가 아니라, 나답게 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내면의 부름에 가깝다.

이 부분은 자기계발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만든다.

우리는 늘 위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그러나 힐먼은 아래로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기 위해 먼저 땅속으로 내려가 뿌리를 내려야 하듯, 사람도 자기 안에 처음부터 묻혀 있던 것을 파내야 한다.

평생 고치려 애썼던 예민함, 내성적인 성격, 쉽게 질리는 기질도 어쩌면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방향이 아니라 고장으로 여겨왔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왜 같은 자리에 머무는지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변화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설명한다.

사람은 단순히 결심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나를 유지하는 방식이 있고, 불편하지만 안전한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변화란 더 나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어온 껍데기를 하나씩 의심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헤세의 말처럼 알을 깨지 않으면 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알은 한 번만 깨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다.

어제의 성공, 익숙한 역할, 남들이 인정해준 이미지, 안전하다고 믿어온 선택들이 다시 나를 가둔다.

이 책이 말하는 자기극복은 그래서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붙잡고 있던 낡은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과정에 가깝다.

특히 좋았던 점은 철학과 심리학의 개념이 현실적인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르상티망은 친구의 합격 소식 앞에서 묘하게 가라앉는 마음으로 설명된다.

베커의 죽음의 부정은 더 큰 성취를 향해 달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야망으로 이어진다.

힐먼의 다이몬은 돈이 되지 않아도 자꾸 마음이 돌아가는 일, 안정된 자리에서도 계속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과 연결된다.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사상가들의 개념이 내 일상 속 감정으로 다가온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은 더 날카로워진다.

우리가 바뀌지 못하는 이유가 능력 부족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자유가 두려워서 복종을 선택하고, 나를 지키려고 만든 성격의 갑옷이 오히려 나를 가둔다.

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애쓰는 마음도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조차 때로는 진짜 변화가 두려워서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붙이는 방식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의 자기 착취, 키건의 변화면역, 프롬의 자발적 복종 같은 개념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대로인가”라고 묻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노력, 더 강한 멘탈, 더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쩌면 더 많이 쌓으려는 마음, 더 강해지려는 마음, 더 완벽한 내가 되려는 마음이야말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천장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책은 초월을 어떤 완성된 상태로 말하지 않는다.

초월자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늘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읽을 줄 알고, 감정에 끌려가면서도 그 감정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빼앗길 수 없는 태도를 선택하고, 남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초월자의 조건』은 편안한 위로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는 동안 자주 멈칫하게 된다.

내가 강함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두려움이었을 수 있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가두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남는다.

큰 꿈은 있는데 계속 제자리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각오가 아니라,

나를 붙잡고 있는 내면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초월자의 조건』이 말하는 초월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이 왜 흔들리는지, 무엇에 묶여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끝내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보다 “나는 무엇에 붙잡혀 있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초월은 더 높은 곳으로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두고 있던 천장을 알아보고 깨뜨리는 일이다.


#단단한맘서평단 @gbb_mom

#수련서평단 @water_liliesjin

#모티브출판사 @motiv_insight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반대로 당신은, 작은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는다. 누가 던진 한 줄 평가가 머릿속에서 밤새 재생되고, 남들은 잊은 일을 혼자 곱씹는다. 분명 더 나아지려고 그 누구보다 애써왔는데, 어느 순간 멈춰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다. 5년 전과 지금의 고민이 토씨만 바뀐 채 똑같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늘 휘둘리고, 왜 한 발도 못 나아가는 걸까. 혹시 나는 원래 이런 기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
이 책은 그것이 기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음은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 인류는 그 길을 2,500년간 탐구해왔고, 거기 도달한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 책에서는 그를 초월자라 부른다. 자기를 넘어선 사람. 더 정확히는, 자기를 넘어서는 중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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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는 브랜드의 조건 - 디저트부터 AI까지, 로손 편의점 디테일 마케팅의 비밀
오가와 고스케 지음, 정현옥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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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대체로 ‘가까워서 가는 곳’이다. 목이 마를 때, 배가 출출할 때,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들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 지역의 생활을 붙들고 있는 작은 사회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선택받는 브랜드의 조건』은 일본 편의점 로손이 어떻게 고객에게 선택받는 브랜드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인 마케팅 책처럼 성공 사례를 단편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작부터 한 통의 전화로 이야기가 열린다.

2015년, 호세이대학교 오가와 교수에게 로손의 다마쓰카 게이치 사장이 전화를 건다.

저자의 『맥도날드 실패의 본질』을 읽고 로손의 경영을 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만남을 계기로 저자는 로손 본사를 방문하고, 경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국 매장과 현장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로손 응원 프로젝트’가 이 책의 출발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마치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로손이라는 기업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그렇다면 로손은 세븐일레븐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고 함께 고민하게 된다. 

보통 마케팅 책은 각각의 사례가 따로따로 소개되어 몰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로손을 움직인 사람들, 실제 매장에서 벌어진 변화, 매출의 흐름, 회사의 전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한 브랜드가 변화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지루한 기업 분석서가 아니라, 한 브랜드가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우리는 세븐만 보았고, 세븐은 고객을 보았다”는 다케마스 사장의 말이다.

로손은 오랫동안 세븐일레븐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매장 수, 일매출, 상품 전략, 시스템까지 세븐일레븐을 의식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쟁사를 보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은 나머지, 정작 고객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이 깨달음 이후 로손은 ‘고객을 위해서’라는 장사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로손 혁신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케마스 사장이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의 『경영자가 되기 위한 노트』를 반복해서 읽었다는 대목이다.

그는 방향을 잃거나 힌트가 필요할 때마다 그 책을 펼쳤다고 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하거나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인생 책’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답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로손의 변화는 말뿐인 선언에서 끝나지 않는다. 2020년 시작된 로손 혁신 프로젝트는 매장 혁신, 수익 구조 혁신, 근무 만족도 혁신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주방 프로젝트, 상품 혁신, 지역 전략 재구축, 데이터 활용, 물류 개혁, 그룹 브랜딩까지 회사 전체를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로손은 2023년도 결산에서 V자형 회복을 보여준다.

즉석식품과 즉석조리식품, 일용잡화, 신선·냉동식품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무인양품 도입과 매장 모델 개선도 성과에 영향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몇몇 상품이 잘 팔린 결과가 아니라, 조직의 방향을 고객 중심으로 다시 세운 결과라는 점이다.


특히 왓카나이 프로젝트는 이 책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최북단 마을 왓카나이는 물류센터에서 차로 4~5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한두 매장만으로는 물류 효율이 맞지 않는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쉽게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도 로손은 주민들의 오랜 요청을 듣고 2023년 여름 두 개 매장을 먼저 열었고, 이후 두 개 매장을 추가했다. 개점 첫날에는 각 매장에 3천 명이 넘는 손님이 몰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편의점 오픈이었겠지만,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ATM을 이용하고, 티켓을 사고, 로손의 디저트와 도시락을 만날 수 있는 생활의 변화였다.

왓카나이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로손은 한 매장만 내는 대신 네 개 매장을 비슷한 시기에 열어 물류 문제를 해결했고, 경험 많은 매니지먼트 오너를 투입했다. 지역 컴퍼니 제도를 통해 현장에 권한을 넘겼고, 눈이 쌓이는 겨울을 대비해 넓은 창고와 조리 시설도 갖추었다.

또한 무인양품, 세이조이시이, 내추럴 로손, 로손 키친 같은 로손만의 자원을 지역 상황에 맞게 배치했다.

이 과정은 ‘편의점 하나를 열었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보고, 그 필요를 실제 운영 시스템으로 바꿔낸 사례에 가깝다.


이 책이 말하는 브랜드의 조건은 화려한 광고나 유행을 빠르게 좇는 감각만이 아니다.

고객을 숫자로 보지 않고, 지역을 시장으로만 보지 않으며,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의 중심에 두는 태도다.

로손은 세븐일레븐을 무작정 따라가는 대신, 자신이 가진 무기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디저트, 로손 키친, 무인양품 협업, 로손팜, 아바타 직원, 그린 로손, 식품 손실 감축, 동네 책방형 매장까지 로손은 편의점의 역할을 조금씩 확장해 간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이 다루는 세계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속가능한 편의점인 그린 로손, 동일본대지진 이후 로손 키친이 보여준 현장의 힘, ‘로손 하면 디저트’라는 인식을 만든 프리미엄 롤케이크와 바스크 치즈케이크, 무인양품과의 협업, 농가와 연결된 로손팜, 식품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발주 시스템과 냉동 주먹밥 실험, 아바타 직원을 통한 따뜻한 기술의 가능성, 그리고 편의점 안에 책방의 기능을 더하는 시도까지 이어진다.

디저트부터 AI까지라는 부제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고객은 왜 로손을 일부러 찾는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답은 분명해진다. 

로손은 단순히 가까운 편의점이 아니라, 고객의 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고, 지역의 빈틈을 채우고, 작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되려 했기 때문이다. 선택받는 브랜드는 경쟁사만 바라보지 않는다. 고객이 사는 자리,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순간, 고객이 작게라도 행복해지는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선택받는 브랜드의 조건』은 바로 그 시선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동양북스 서포터즈2기' 활동을 통해

'동양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2020년 4월, 전 세계는 코로나19의 어둠에 굴복했다. 외출이 금지된 다케마스의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가 지은 《경영자가 되기 위한 노트》로, 다케마스의 애독서다. 부사장이었을 때 구매해서 읽었는데 사장으로 취임한 2016년에도 그 책을 다시 읽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숙고할 때, 힌트가 필요할 때 늘 습관처럼 야나이 다다시의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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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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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권, 5부 3권에 이르면 이 거대한 이야기가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1권의 평사리에서 시작된 삶의 물결은 이제 1940년대 초반,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는 시기까지 흘러왔다.

시대는 더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만으로 예비검속되어 끌려가고, 징병과 징용, 배급과 물자 부족, 일본식 훈련과 감시가 일상을 짓누른다.

역사를 아는 독자는 해방이 멀지 않았음을 알지만,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늘은 그저 한 걸음 더 버텨야 하는 시간일 뿐이다.


18권에서 가장 먼저 마음을 붙잡는 인물은 여옥과 명희, 그리고 임명빈이다.

여옥은 1년 4개월의 형무소 생활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나지만, 돌아온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해골에 가깝다.

명희는 그런 여옥을 보며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울부짖는다. 그런데 명희의 공포는 여옥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오빠 임명빈 역시 병명도 없이 생명의 불길이 꺼져가고 있다.

여옥은 해골처럼, 명빈은 산송장처럼 누워 있다. 한 사람은 시대의 폭력에 짓눌렸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과 패배감에 짓눌려 있다.

임명빈의 고통은 단순한 육체의 병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느낀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고, 평론가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독립운동이나 이념의 길에서도 자신의 의지에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을 쓸모없는 인생처럼 여기며 무너져 내린다.

그 말은 한 개인의 자책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살아낸 지식인의 무력감이 함께 들어 있다.

이 대목이 아픈 이유는 임명빈이 특별히 나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하고 싶었던 삶과 실제로 살아낸 삶 사이의 간격을 끝내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되고 싶었던 나’를 품고 산다. 그런데 시대가, 환경이, 능력의 한계가 그 길을 막아설 때 인간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잔인해진다.


『토지』 18권은 그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그런 임명빈 앞에서 명희는 냉정하게 말한다.

고통스럽다고 병이 난다면 성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마주 보고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 말은 오빠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명희 역시 여옥의 참혹한 모습과 자신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맞서 싸울 대상조차 없이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을 보는 일은, 그 어떤 싸움보다 더 막막하다.

명희는 임명빈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을 눈앞에서 본다.


그러나 이 권은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여옥은 죽고 싶었던 시간을 통과했기에 오히려 삶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든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여옥의 말은 흔한 위로처럼 들리지 않는다.

형무소를 지나고 배신을 지나고 절망의 늪을 건너온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더 무겁게 다가온다.

여옥이 말하는 힘은 단순한 신앙만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사람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다시 사람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이 다시 삶을 붙드는 이유는 거창한 이념이나 완벽한 해답이 아닐 때가 많다.

끝까지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아직은 믿고 싶은 한 조각의 선함, 가끔 나타나는 빛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토지』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질긴 존재인지 보여준다.


18권의 또 다른 축은 양현을 둘러싼 마음의 엇갈림이다. 서희는 양현과 윤국의 혼례를 생각하지만, 양현의 마음에는 이미 영광이 있다.

윤국은 양현을 사랑하지만 양현은 윤국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매처럼 자란 오빠를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는 일은 양현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윤국은 양현이 자신과 다른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양현은 양현의 길을 가고,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 사랑의 엇갈림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토지』에서 사랑은 늘 개인의 감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문의 역사, 부모 세대의 상처, 시대의 폭력, 신분과 관계의 얽힘이 함께 따라붙는다.

그래서 양현의 눈물은 한 사람의 연애 감정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웠던 시대의 슬픔으로 다가온다.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지키기 어려운 세계가 18권의 분위기를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조준구의 죽음 역시 오래 남는다. 『토지』 전체에서 가장 악독한 인물 중 하나였던 그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평생 남의 것을 탐하고, 사람을 짓밟고, 최참판댁을 무너뜨렸던 인물의 마지막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예상보다 씁쓸하다.

악인이 벌을 받는 장면이라기보다, 죽음 앞에서는 그 역시 아무것도 아닌 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장면처럼 보인다.

더구나 아들 조병수가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면, 죄와 혈연, 업보와 책임이 단순히 선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토지』가 대단한 이유는 악인의 죽음마저 통쾌함 하나로 끝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죄를 지어도 비교적 평온한 죽음을 맞고, 누군가는 죄 없이 끌려가 고통을 겪는다.

세상은 언제나 공평하게 보상하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믿음, 그리고 순간의 이익이 아니라 진실로 오래 버티는 삶이다.


18권에서는 3세대 인물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용이의 죽음 이후 그 뜻을 이어가는 홍이와 그의 딸 상의, 최참판댁의 후손 윤국, 그리고 여러 젊은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상의는 학교와 통영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교사와 학생, 장터와 선창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일본과 일본인을 어떻게 바라볼지 스스로 판단해 나간다. 부모 세대가 겪은 상처와 역사 위에서, 다음 세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시대를 배워간다.


그 점에서 18권은 끝을 향해 가는 권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는 권이기도 하다. 1세대와 2세대가 남긴 원한, 사랑, 실패, 신념, 상처가 3세대에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 얽힌 가문의 역사 속에서도 새롭게 힘을 합치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 자기만의 판단을 만들어간다. 전쟁 중 언제 폭격이 떨어질지 모르는 비상시국에서도 젊은이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 등지고 살 까닭이 없다고 말한다. 그 장면은 어둠 속에서도 다음 시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지』 18권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둡다. 하지만 그 어둠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다. 여옥과 명빈이 조금씩 회복해가는 모습, 모화와 몽치의 인연, 윤국이 자기 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상의가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가는 장면들은 이 거대한 소설이 끝까지 삶의 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사람들의 밥그릇과 말과 몸과 자유를 빼앗아가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사랑하고, 걱정하고,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책 속에는 “인간이란 끝없이 약한 거예요. 하지만 살기 위해선 끝없이 질긴 거예요”라는 말이 나온다. 이 문장이야말로 18권 전체를 관통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약하기 때문에 무너지고, 질기기 때문에 다시 일어난다. 절망하기 때문에 삶의 소중함을 알고, 배신당했기 때문에 진실의 가치를 더 또렷하게 본다.


『토지』 18권은 해방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왜 끝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삶이 아름다워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억울하고, 너무 무의미해 보여도, 살아 있는 한 다시 믿을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의 『토지』가 오래 남는 이유는 바로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을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권은 두 권뿐이다. 독자는 빨리 해방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이 거대한 세계와 헤어지는 일이 아쉬워진다. 『토지』 18권은 완결을 앞둔 길목에서 인간의 생명력, 시대의 폭력, 사랑의 엇갈림, 세대의 이어짐을 한데 묶어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조용히 말한다. 바닥 모를 늪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 속에서도, 사람은 끝내 다시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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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다면 병신이라도 다 살아가는 길이 어찌 없을 것이여? 손발 없는 배암도 묵고 살고 물속의 개기도 묵고 사는디, 일찍이 가고 더디게 가는 거사 천지조화,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닌께로."

‘할머니 말씀이 옳아요. 가두는 자가 없으면 갇히는 자도 없을 것이며 들판의 곡식이며 열매며, 많이 갖는 자가 없으면 굶어 죽는 자도 없을 것이며, 죽이는 자 없으면 죽는 자도 없을 것이며 주인이 있으니 하인도 있는 것, 부리 하나, 작은 밥통 하나 몸속에 달고서 수만 리 창공을 날아 먹이를 찾고 번식하는 새, 겨울 한 철 나무뿌리 갉아먹으며 연명하는 작은 짐승들, 그들은 자유롭다! 해방된 존재들이다! 오직 인간들만이 사로잡혀 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말, 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구원의 연장[道具]이기도 했지만 피로 물든 흉기는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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