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사랑은 오해다 세계척학전집 4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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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 완성된다.”

『세계척학전집: 사랑은 오해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사랑을 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내가 왜 사랑 앞에서 자꾸 비슷한 모습이 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늘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상처받는 방식은 비슷했다.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도 불안해지는 순간은 닮아 있었고, 마음이 무너지는 장면도 어딘가 반복됐다.

그래서 이 책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관점이 처음부터 마음에 걸렸다.

사랑을 더 낭만적으로 믿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의 구조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같았다.

『세계척학전집: 사랑은 오해다』는 유튜브 채널 <이클립스>를 운영하는 지식 크리에이터 이클립스의 책이다.

철학, 심리, 경제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사랑을 다룬다.

그런데 사랑을 감성적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하나의 공식처럼, 구조처럼, 반복되는 패턴처럼 바라본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먼저 연락하면 지는 것 같고, 좋아한다고 말하면 약자가 되는 것 같고,

답장이 늦으면 신경 쓰이면서도 괜찮은 척한다.

읽었는데 답이 없는 메시지를 계속 확인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쉽게 정리되어 버리는 상황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사랑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왜 우리는 사랑 앞에서 유독 속수무책이 되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을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에서 찾는다.

사랑을 많이 겪는다고 저절로 사랑을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패턴을 보지 못하면, 겪을수록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문장이 이상하게 아프게 남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도로시 테노브의 ‘리머런스’였다.

책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의 상당 부분이 실제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내 안의 이미지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자 몇 줄, 스쳐 지나간 표정,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를 모아 머릿속에서 한 사람을 완성하고, 그 빈칸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운다는 설명이 현실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을 많이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남기면 생각보다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조각들을 붙들고 한 사람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에 매달린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랑이 아니라 기대를 사랑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헬렌 피셔의 사랑의 뇌과학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책은 사랑을 하나의 감정으로 묶지 않고 성욕, 끌림, 애착이라는 세 개의 시스템으로 나눈다.

좋아하는데 설레지 않을 때가 있고, 설레는데 함께 있고 싶지는 않을 때가 있으며,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같은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끌림인지, 애착인지, 욕망인지 구별해보라고 말한다.

특히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내 뇌 안에서 스위치 하나가 켜진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관계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상대가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경험.

연락이 없을수록 더 신경 쓰이고 도망치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마음.

그것을 단순히 운명이나 미련으로만 보지 않고,

불확실성과 도파민의 작동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사랑을 너무 정확하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내가 운명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사실은 새로움에 대한 반응일 수 있고,

내가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던 끌림이 상대가 아니라 장애물에 반응한 뇌의 작동일 수도 있다.

사랑을 냉소적으로 부정하는 책이 아니라 사랑을 덜 오해하기 위해 차분히 들여다보는 책처럼 느껴졌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지만, 지금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게 구성되어 있다.

“왜 그 사람에게 끌렸는지 알고 싶을 때”,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을 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꺼내 읽을 수 있는 사랑의 공식 같은 책이다.

각 챕터에 있는 Insight 박스도 좋았다.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관계에 적용해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사랑이 쉽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왜 어려운지 조금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반복해서 보지 못한 구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계척학전집: 사랑은 오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던 기대와 결핍, 끌림과 불안, 애착의 구조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지난 관계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랑 때문에 자주 흔들렸던 사람, 비슷한 사람에게 반복해서 끌리는 사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헷갈렸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사랑을 더 멋지게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덜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또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은 꽤 필요한 질문을 건네준다.


'책읽는쥬리'님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Part 1. 사랑의 정체 —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꺼내라.
Part 2. 끌림의 구조 — 왜 그 사람에게 끌렸는지 이해하고 싶을 때 꺼내라.
Part 3. 파국의 공식 —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을 때 꺼내라.
Part 4. 사랑의 기술 —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꺼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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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장미 에디션) - 시인의 그림에 색을 입히다, 나태주 그림 컬러링북
나태주 지음 / 드림셀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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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그림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컬러링북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쁜 꽃 그림에 색을 입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 책은 색칠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마음이 지친 날 조용히 펼쳐 두고 오래 바라보는 책에 더 가까웠다.

나태주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을 화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시를 쓰는 사람이고, 그림은 그저 삽화 정도의 단순한 그림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이 책의 매력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 준다.

완벽하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서 더 다정하고,

꾸미지 않은 선이라서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꽃잎 하나, 잎사귀 하나, 줄기 하나가 정교한 작품이라기보다

시인의 마음에서 막 건져 올린 작은 숨처럼 느껴진다.

책에는 나태주 시인이 직접 그린 식물과 꽃 그림들이 담겨 있다.

어떤 페이지는 이미 색이 입혀져 있고,

어떤 페이지는 독자가 직접 색을 채울 수 있도록 비워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시를 읽고, 그림을 보고, 색을 고르고, 손으로 천천히 칠하는 과정까지 모두 독서가 된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갑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좋아한다는 것, 몰아의 경지를 맛본다는 것,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

우리는 자주 잘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잃어버린다.

예쁘게 칠해야 할 것 같고, 틀리면 안 될 것 같고, 남들이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손을 멈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살짝 내려놓게 한다.

색이 조금 삐져나가도 괜찮고, 원래 꽃과 다른 색을 입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 번 한 말 여러 번 되풀이해도 괜찮아 / 걱정하지 마 / 그래서 네가 더 예뻐.”라는 시구도 오래 남았다.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지치지 않은 척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꽃은 바람에 한 번만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 번 흔들리고도 여전히 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시와 그림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조용히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시는 그림을 설명하지 않고, 그림은 시를 장식하지 않는다.

둘은 함께 한 페이지에 머물며 독자가 자기만의 감정을 천천히 발견하도록 기다린다.

그래서 이 책은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한 번에 끝까지 읽기보다, 하루에 한 장씩 펼쳐 놓고 싶은 책이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색연필을 꺼내 들거나,

마음이 복잡한 밤에 아무 말 없이 꽃잎 하나를 칠해 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위로와 휴식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시와 함께하는 컬러링북이기에,

부모님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좋다.

실제로 책을 넘겨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글씨가 크고 그림이 복잡하지 않아 어른들에게도 부담이 적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컬러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래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닮았다.

제목처럼 꽃에게 오래 그렇게 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게, 사랑에게,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힘든 날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운 날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지친 날 조용히 색을 입힐 꽃 한 송이가 있다는 것.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는 그런 작고 부드러운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시를 읊조리고, 꽃을 바라보고, 내 손으로 색을 채우는 동안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진다.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 누군가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진다.

오늘도 흔들렸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너는 아직 꽃으로 서 있다고.

오래 그렇게 있어도 된다고.

'드림셀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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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 - 여행 크리에이터의 꿈과 현실 사이, 그 진짜 이야기
강은빈(써니앤쎄이)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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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를 읽기 전에는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조금은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다.
예쁜 여행지를 다니고, 멋진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니 부럽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 직업은 그저 부러운 삶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노동과 고민이 쌓여 만들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은빈 작가, 그러니까 써니앤쎄이의 ‘쎄이’는 여행을 좋아해서 돈이 모이면 떠났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와 유럽 배낭여행, 제주살이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지나오며 삶 자체가 여행이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여행하면서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벌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 닿게 된다.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 부부 여행 크리에이터 써니앤쎄이가 어떻게 여행을 콘텐츠로 만들고 수익으로 연결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여행 크리에이터는 단순히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지의 풍경과 정보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사람들이 가고 싶게 만들고,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새로운 스팟을 찾아내며, 팔로워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인스타그램을 ‘작은 블로그’처럼 운영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짧고 정확하게 정보를 요약하고, 예쁜 사진과 함께 꾸준히 올리면서 팔로워가 늘고 협찬이 들어오고, 결국 원고료를 받는 단계까지 성장한 과정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좋았던 건 이 책이 ‘월 1,000만 원’이라는 결과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입이 늘어난 만큼 부담도 커졌고, 좋아하던 여행이 싫어지기도 했으며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괴롭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하면 성공합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은 이런 모습입니다!라고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릴스나 숏폼을 만들 때 배경음악을 미리 구상해두면 편집 속도가 빨라진다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사실 나는 촬영 후에 편집하는 단계에서 음악을 고르는 줄 알았는데 촬영 장소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어울릴 노래를 미리 생각한다는 점에서 콘텐츠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촬영 전부터 기획되는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AI 활용, 협업 연락 대처, 원고료, 콘텐츠 2차 활용 문제, 내 몸값을 올리는 방법까지 현실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은 건 번아웃 이야기였다. 일이 끊길까 봐 들어오는 일을 계속 받고,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다 보니 결국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는 고백이 오래 남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상태를 그냥 바라보세요.”
상담 선생님이 해준 이 말은 나에게도 필요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더 해야 나아지는 게 아니라, 가끔은 지금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 먼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중 쉐어하우스 주인 아주머니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뜻밖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풍경보다 오래 남는 건 사람이고, 여행의 순간들보다 더 깊이 남는 건 그곳에서 나눈 마음인 것 같다.

이 책은 여행 크리에이터의 화려한 겉모습보다 그 안쪽의 진짜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예쁜 여행 사진 뒤에는 고된 촬영과 보정, 정보 정리, 알고리즘 분석, 브랜드 협업, 원고료 협상, 소통, 불안과 책임감 등 많은 노력과 감정이 존재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SNS를 키워보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써니앤쎄이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꿈과 현실 사이의 온도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푸른향기 서포터즈 13기' 활용을 통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떤 정보를 주느냐보다 ‘누가’ 그 정보를 주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아무리 유익한 정보라도 콘텐츠 속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 팔로워 전환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
결국 사람들은 정보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구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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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 문명의 종말은 어떻게 새로운 시작이 되는가
리지 웨이드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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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포칼립스’라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어떤 뜻인지도 몰랐고,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도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아포칼립스의 의미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원래 그리스어 ‘apokalypsis’에서 온 말로,

본래 뜻은 ‘드러냄’, ‘폭로’, ‘계시’에 가깝다고 한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권인 요한묵시록, 또는 요한계시록을 영어로 Apocalyps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뜻을 알고 나니 이 책의 제목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포칼립스는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나는 장면이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던 불평등,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약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아포칼립스』에서 말하는 아포칼립스는 단순히 세상이 끝났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아포칼립스는 한 사회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사람들이 예전처럼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급속하고 집단적인 상실에 가까웠다.

해수면이 높아져 마을이 물에 잠기거나, 기후가 갑자기 달라져 먹고사는 방식이 흔들리거나,

정부와 나라가 무너지거나,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일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아포칼립스는 무언가를 잃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 잃어버림을 통해 사회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 책의 초반에서 저자는 문명의 멸망이 피할 수 없는 예언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최종 종착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낡고 경직된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아포칼립스는 끝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고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게 만드는 전환점일 수도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막연한 상상이나 공포가 아니라 고고학에 기반한 자료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인류가 겪어온 여러 ‘끝’을 하나씩 따라간다. 네안데르탈인의 멸망과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한 인류로 남게 된 순간에서 시작해, 북해 아래로 사라진 도거랜드, 하라파 문명과 이집트 고왕국의 붕괴, 흑사병, 멕시코 지진, 그리고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하는 최근의 감염병 상황까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이 사건들이 모두 따로 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들을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나 죽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동했고, 적응했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어떻게든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네안데르탈인의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막연히 현생인류보다 덜 발달했고, 사고력도 부족했으며, 결국 더 뛰어난 호모사피엔스에게 밀려 사라진 인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네안데르탈인’이라는 말에서 거칠고 둔하고 원시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었다. 독일의 네안더 계곡에서 우연히 발견된 뼈를 통해 과학자들은 한때 지구에 호모사피엔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인류도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 뼈가 어떤 존재의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웠지만, 연구가 이어지면서 네안데르탈인은 그저 미개하고 뒤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오랜 시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추운 지역에서 사냥을 했고, 고기를 저장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며, 도구를 만들고, 이동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단순히 승자와 패자처럼 나뉘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생인류의 유전자 안에는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네안데르탈인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타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우리 안에도 남아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부분에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들은 단순히 멸종한 실패자가 아니라, 기후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쓴 또 다른 인류였다.

책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을 폭력과 경쟁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기후가 불안정해지고, 인구가 줄어들고, 새로운 인류와 같은 공간을 나누게 되었을 때

그들이 무작정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무리는 고립과 죽음 대신 다른 공동체와 합류하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화와 전통이 달랐어도, 서로의 아이들이 장신구를 주고받고, 먹을 것을 나누고, 때로는 사랑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눈에는 그것이 멸종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향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역사를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로만 보지 않고,

동반자와 협력자,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농경지는 사막으로 변할 수 있으며, 폭풍과 산불은 더 강해지고, 해안 마을과 섬나라는 점점 물에 잠길 위험에 놓여 있다. 동물이 살던 곳을 인간이 침범하면서 새로운 병이 인간에게 옮겨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코로나19를 겪은 우리에게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고, 친구나 가족을 마음껏 만나지 못했다.

학교, 직장, 가게, 병원, 일상생활이 모두 달라졌다.

마스크를 쓰는 일이 당연해졌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시간은 분명 힘들었다. 누군가는 생계를 잃었고,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많이 지쳤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중요한 것도 알게 되었다.

평범하게 만나서 밥을 먹는 일, 같이 웃고 이야기하는 일,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조심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때의 일들을 너무 빨리 잊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이제 끝났으니 예전처럼 살자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힘든 시간을 빨리 지나 보내고 싶었고,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중요한 것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겪으며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포칼립스는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환점이었다.

이대로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바뀔 것인가를 묻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변화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변화는 오래도록 사람들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아포칼립스를 쉽게 새로운 기회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 안에는 분명 아픔이 있고, 상실이 있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통도 있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일을 변화라는 말로만 가볍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음을 보게 한다.

무너진 뒤에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다시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갔다. 고고학자들이 중요하게 보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아포칼립스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디로 이동했는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 어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는지다. 그 흔적 속에서 고고학자들은 단순한 멸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복력과 창의성,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나는 이 책이 왕이나 지배자만의 역사를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고고학은 기록에서 사라진 평범한 사람들, 노동자와 여자와 아이, 주변부 사람들의 삶도 함께 들여다본다.

아포칼립스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닥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잃는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기존의 억압적인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거대한 제국과 딱딱한 체제가 무너질 때,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며 더 유연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 책은 멸망을 인류의 끝으로만 보지 않는다.

멸망은 때로 지배 체제의 종말일 뿐, 인류 전체의 멸종은 아니었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포칼립스는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지켜야 할까?

무엇은 내려놓아야 할까?

그리고 어떤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할까?

이 질문들이 책을 읽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는다.

『아포칼립스』는 종말에 관한 책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끝보다 시작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무너지는 일은 분명 아프고 두렵다. 하지만 그 순간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간일 수도 있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사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변화는 어쩌면 모든 것이 흔들린 뒤에 시작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포칼립스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도 누군가의 생존이 있고,

상실이라고 부르는 시간 안에도 새로운 관계와 선택이 있었다.”

『아포칼립스』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와 문명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아주 쉬운 질문 하나를 남기는 책이었다.


“우리는 위기가 온 뒤에 어떤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인가?”


우주클럽 @woojoos_story 에서 도서지원받아 우주클럽_역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고학자들이 보기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은 아포칼립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들이 아포칼립스에서 도망치려고 옮겨간 곳, 의식의 변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회와 손을 잡은 방식 등에서 고고학자들은 회복력과 창의성의 이야기는 물론 심지어 희망의 이야기까지도 수없이 찾아낸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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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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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해방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결코 환한 기대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패망이 멀지 않았다는 기미가 보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곧바로 희망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선이 망해가는 일본과 함께 끝까지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언제 어디서 더 큰 폭력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해방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삶이 곧바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 책 속 인물들에게 해방 직전의 시간은 희망만큼이나 두려움이 컸고,

일본이 무너지기 전 조선을 끝까지 희생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번 권에서 초반에 마음에 남은 인물은 영광이었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무조건 우러러보지도 않고, 애국이나 정의 같은 말도 쉽게 믿지 않았다.

운동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찬양하는 것과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무언가에 동참하고 있다고 느끼는 태도까지 그는 의심한다.

그의 말은 차갑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만 말하기도 어려웠다.

영광은 차별과 모욕 속에서 오래 버텨온 사람이고, 인간의 본성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영광의 냉소가 옳다기보다, 그 냉소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삶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세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세상을 비웃는 것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영광의 말에만 기대어 가는 것은 아니다.

홍이는 그런 영광을 향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말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왜놈 군화 밑에서 짓밟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 있는 게 제일이라고만 말하는 것도 비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는 누가 옳고 그른지 쉽게 나누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고, 냉소를 지혜처럼 보여주지도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계속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명희의 이야기는 마음이 무거웠다.

조용하에게 납치되어 폭력을 겪은 뒤 자신을 도살당한 짐승처럼 느끼는 명희의 모습은 너무 참혹했다.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마저 치욕처럼 느끼는 마음을 생각하니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 상처는 명희 개인의 불행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의 몸과 삶이 폭력의 대상이 되고, 그 폭력 이후에도 피해자가 오히려 치욕을 떠안아야 했던 시대의 잔인함이 함께 보였다.


강선혜가 말하는 신여성의 현실도 인상 깊었다.

교육받은 여성이라고 해도 결국 좋은 혼처에서 원하는 고가품이거나,

돈 있는 남자들이 탐내는 완상품일 뿐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없다는 말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진보를 말하는 남자들도 실제 삶에서는 여자를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씁쓸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였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토지』가 대단하다고 느낀 이유는 식민지의 고통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폭력만이 아니라 조선 사회 내부의 신분, 가문, 남성 중심의 질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고통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훨씬 현실적인 삶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것은 양현의 이야기였다.

양현은 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는 길을 가고자 하지만,

그 길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가난이 가득한 시대에도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고 해치는 장면을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럴수록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귀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번 16권에서 가장 의외이면서도 깊게 남았던 장면은 서희가 흐느껴 우는 대목이었다.

『토지』를 읽어오면서 서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몰락과 복수,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속에서 살아온 서희에게 눈물은 사치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서희가 차 안에서도 울고, 평사리 별당 앞 연못에서도 울고, 끝내 길상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 낯설고 크게 다가왔다.

특히 어머니 별당아씨가 머물던 별당에서 서희가 비로소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희는 어머니가 과연 불행한 여인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행복한 여인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별당아씨는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고, 구천이 역시 벼랑 끝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랑을 끝까지 붙든 사람이었다.

그 사랑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금기이고 비극이었지만 적어도 그들 자신에게는 삶 전체를 걸 만큼 절실한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서희의 눈물은 단순히 어머니를 향한 연민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 안에는 어머니를 오래 오해했던 시간에 대한 슬픔도 있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쓸쓸함도 있었고, 끝내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아픔도 있었던 것 같다.

서희는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왔지만, 그 강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오래 눌러두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눈물은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이라기보다, 평생 막아두었던 마음의 둑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장면에서 서희가 처음으로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보였다.

최참판댁을 지키고, 복수를 이루고, 가족과 재산을 책임져야 했던 인물이 아니라 사랑과 상처와 외로움을 가진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별당아씨의 사랑을 이해하는 순간,

서희는 어머니를 용서한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서희가 흘리지 못했던 눈물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면서 결국 자기 삶을 위한 눈물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6권의 서희의 울음은 이 책 전체에서도 중요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강해서 울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울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안의 슬픔을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서희의 눈물은 약해진 사람의 눈물이 아니라 너무 오래 강해야 했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마음을 마주한 순간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16권은 해방을 앞둔 시기의 이야기이지만,

읽고 나면 해방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불안, 상처, 냉소, 연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홍이는 죽음과 이별에 익숙해진 사람처럼 담담하고,

영광은 세상을 믿지 못해 날카롭고,

명희는 자신에게 닥친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선혜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모순을 또렷하게 말한다.

그리고 서희는 오랜 세월 눌러두었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낸다.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지고 버틴다.

그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라서 더 오래 남았다.


나는 이 책이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를 묻고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신념으로, 누군가는 냉소로, 누군가는 책임감으로, 누군가는 연민으로 버틴다.

그 방식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비겁하고, 잔인하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자체가 『토지』가 붙들고 있는 삶의 진실처럼 느껴졌다.


『토지』 16권은 가벼운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조금 무게감 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던 책이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의 흐름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처럼 새겨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해방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 복잡한 삶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토지』는 정말 오래 읽힐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17편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 말입니다. 그 본성, 본성 말입니다. 밥그릇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위냐 너가 위냐, 그것 때문에 더 많이 때리고 맞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구요.
재물이나 권력이 한 인간의 생존을 지탱하는 데 얼마만큼이나 필요하겠어요?
천재지변이 없는 한 평등이면 굶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다 많은 재물, 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려는 것은 실상 배고픈 것하고 절실하게 관계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잘나고 호령하고 지배하고, 그런 걸 위해 권력과 재물을 가지려 하는 거 아니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얻은 것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다.
대체 그건 무엇일까요. 호령하고 뽐내고 남을 짓누르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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