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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토지』 16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해방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결코 환한 기대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패망이 멀지 않았다는 기미가 보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곧바로 희망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선이 망해가는 일본과 함께 끝까지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언제 어디서 더 큰 폭력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해방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삶이 곧바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 책 속 인물들에게 해방 직전의 시간은 희망만큼이나 두려움이 컸고,
일본이 무너지기 전 조선을 끝까지 희생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번 권에서 초반에 마음에 남은 인물은 영광이었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무조건 우러러보지도 않고, 애국이나 정의 같은 말도 쉽게 믿지 않았다.
운동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찬양하는 것과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무언가에 동참하고 있다고 느끼는 태도까지 그는 의심한다.
그의 말은 차갑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만 말하기도 어려웠다.
영광은 차별과 모욕 속에서 오래 버텨온 사람이고, 인간의 본성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영광의 냉소가 옳다기보다, 그 냉소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삶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세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세상을 비웃는 것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영광의 말에만 기대어 가는 것은 아니다.
홍이는 그런 영광을 향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말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왜놈 군화 밑에서 짓밟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 있는 게 제일이라고만 말하는 것도 비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는 누가 옳고 그른지 쉽게 나누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고, 냉소를 지혜처럼 보여주지도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계속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명희의 이야기는 마음이 무거웠다.
조용하에게 납치되어 폭력을 겪은 뒤 자신을 도살당한 짐승처럼 느끼는 명희의 모습은 너무 참혹했다.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마저 치욕처럼 느끼는 마음을 생각하니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 상처는 명희 개인의 불행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의 몸과 삶이 폭력의 대상이 되고, 그 폭력 이후에도 피해자가 오히려 치욕을 떠안아야 했던 시대의 잔인함이 함께 보였다.
강선혜가 말하는 신여성의 현실도 인상 깊었다.
교육받은 여성이라고 해도 결국 좋은 혼처에서 원하는 고가품이거나,
돈 있는 남자들이 탐내는 완상품일 뿐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없다는 말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진보를 말하는 남자들도 실제 삶에서는 여자를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씁쓸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였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토지』가 대단하다고 느낀 이유는 식민지의 고통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폭력만이 아니라 조선 사회 내부의 신분, 가문, 남성 중심의 질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고통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훨씬 현실적인 삶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것은 양현의 이야기였다.
양현은 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는 길을 가고자 하지만,
그 길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가난이 가득한 시대에도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고 해치는 장면을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럴수록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귀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번 16권에서 가장 의외이면서도 깊게 남았던 장면은 서희가 흐느껴 우는 대목이었다.
『토지』를 읽어오면서 서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몰락과 복수,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속에서 살아온 서희에게 눈물은 사치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서희가 차 안에서도 울고, 평사리 별당 앞 연못에서도 울고, 끝내 길상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 낯설고 크게 다가왔다.
특히 어머니 별당아씨가 머물던 별당에서 서희가 비로소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희는 어머니가 과연 불행한 여인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행복한 여인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별당아씨는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고, 구천이 역시 벼랑 끝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랑을 끝까지 붙든 사람이었다.
그 사랑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금기이고 비극이었지만 적어도 그들 자신에게는 삶 전체를 걸 만큼 절실한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서희의 눈물은 단순히 어머니를 향한 연민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 안에는 어머니를 오래 오해했던 시간에 대한 슬픔도 있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쓸쓸함도 있었고, 끝내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아픔도 있었던 것 같다.
서희는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왔지만, 그 강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오래 눌러두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눈물은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이라기보다, 평생 막아두었던 마음의 둑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장면에서 서희가 처음으로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보였다.
최참판댁을 지키고, 복수를 이루고, 가족과 재산을 책임져야 했던 인물이 아니라 사랑과 상처와 외로움을 가진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별당아씨의 사랑을 이해하는 순간,
서희는 어머니를 용서한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서희가 흘리지 못했던 눈물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면서 결국 자기 삶을 위한 눈물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6권의 서희의 울음은 이 책 전체에서도 중요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강해서 울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울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안의 슬픔을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서희의 눈물은 약해진 사람의 눈물이 아니라 너무 오래 강해야 했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마음을 마주한 순간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16권은 해방을 앞둔 시기의 이야기이지만,
읽고 나면 해방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불안, 상처, 냉소, 연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홍이는 죽음과 이별에 익숙해진 사람처럼 담담하고,
영광은 세상을 믿지 못해 날카롭고,
명희는 자신에게 닥친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선혜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모순을 또렷하게 말한다.
그리고 서희는 오랜 세월 눌러두었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낸다.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지고 버틴다.
그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라서 더 오래 남았다.
나는 이 책이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를 묻고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신념으로, 누군가는 냉소로, 누군가는 책임감으로, 누군가는 연민으로 버틴다.
그 방식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비겁하고, 잔인하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자체가 『토지』가 붙들고 있는 삶의 진실처럼 느껴졌다.
『토지』 16권은 가벼운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조금 무게감 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던 책이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의 흐름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처럼 새겨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해방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 복잡한 삶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토지』는 정말 오래 읽힐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17편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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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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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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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 말입니다. 그 본성, 본성 말입니다. 밥그릇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위냐 너가 위냐, 그것 때문에 더 많이 때리고 맞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구요. 재물이나 권력이 한 인간의 생존을 지탱하는 데 얼마만큼이나 필요하겠어요? 천재지변이 없는 한 평등이면 굶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다 많은 재물, 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려는 것은 실상 배고픈 것하고 절실하게 관계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잘나고 호령하고 지배하고, 그런 걸 위해 권력과 재물을 가지려 하는 거 아니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얻은 것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다. 대체 그건 무엇일까요. 호령하고 뽐내고 남을 짓누르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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