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타임 - 단단한 삶을 위한 시간
이소원 지음 / 퍼블리온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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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그 흔한 풍경 속에서도 문득 고개가 돌아가는 날이 있다.

늘 보던 작은 정원인데도 햇살이 내려앉는 각도나 잎빛이 한 톤만 달라져도 하루의 기분이 바뀐다.

『가든 타임』은 바로 그 장면에서 출발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현장에서 정원을 가꾸는 저자는, 교육자의 삶을 지나 다시 땅 위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빛나는 숲’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 곳곳의 작은 틈에서 정원의 순간을 수집해왔다.

일상에 치여 감각을 잃고 헤매던 아침,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마주한 작은 정원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그에게 온 세포의 감각이 푸르게 살아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휘어지고 부러진 가지 사이로 각기 다른 빛을 내는 잎들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다시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는 고백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정원을 매개로 우리가 왜 일상 속에서 자꾸 지치고 감각이 무뎌지는지 짚어주고, 그 감각을 생활 가까이에서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 차분히 안내한다. 거창한 정원이 아니어도, 책상 위 작은 화분 하나라도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면 이미 나만의 정원이며, 정원의 순간을 자세히 살피고 수집하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론으로 설득하기보다, 빛과 그림자, 잎의 색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장면들로 독자를 이끈다. 읽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내 감각은 얼마나 무뎌져 있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정원의 숨에 기대어 다시 일상을 시작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저자에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정원이 뭐죠?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을까요?”

트렌드처럼 번진 가드닝 열풍과 달리, 아직 정원의 본질을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정원은 말로 담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다감각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원을 정의하기보다 정원에서 경험한 순간들을 통해 정원의 힘을 보여준다.

왜 우리에게 정원이 필요한지, 어떻게 삶 가까이에 들일 수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가며,

독자가 자신의 언어로 정원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 중심에는 정원은 나와 만나는 곳이라는 문장이 있다. 소쇄원 이야기는 이 문장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조선 중종 시대, 스승의 죽음을 겪고 낙향한 양산보가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조성한 정원이다. 광풍각 마루에 앉아 통나무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빛을 바라보던 저자의 경험은 회복의 기록이다. 뜻은 품고 있었지만 정작 그 뜻 안에 머물지 못하던 시절, 사업의 불안과 팬데믹의 막막함 속에서 흔들리던 마음이 그곳에서 잠시 가라앉았다는 고백은, 정원이 사람을 다시 자기답게 돌아오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 순간 저자는 비로소 공간 안에 오롯이 존재하는 자신을 만났다고 말한다. 정원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보는 일이고, 정원과 연결된다는 것은 내 마음과도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정원에 들어서면 우리는 감각부터 달라진다.

눈을 감으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향기가 먼저 다가오고, 새소리와 나뭇가지가 비벼대는 소리가 이어진다. 겨울의 정원은 겉으로는 침묵 속에 잠긴 듯 보이지만, 저자에게는 언제고 따뜻한 외딴 섬이 된다.

정원은 계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말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하나의 정원은 쉼의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돌봄과 배움, 놀이와 치유의 공간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적극적인 치료의 장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정리하는 존엄한 시간의 공간이 된다.

같은 정원을 바라보아도 각자가 읽어내는 의미는 다르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처럼, 어떤 이는 벽만 보고 고개를 떨구지만, 또 다른 이는 그 벽을 오르는 잎사귀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정원은 객관적인 공간이라기보다 각자의 감정과 사유가 스며드는 주관적인 세계다.

저자는 자연감각을 깨우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는 태생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 이른바 바이오필리아가 내재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는 왜 자연에 끌리는지를 되짚는다.

예쁜 꽃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가고, 숲과 강이 가까운 공간을 선호하는 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의 삶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너무 멀어졌고, 그 감각은 무뎌졌다.

그래서 시작은 거창 할 필요 없이, 책상 위 작은 화분 하나면 충분하다.

매일 물을 주고, 잎을 들여다보고, 해가 드는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주는 작은 행동이 삶과 자연을 다시 이어준다. 식물의 매일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안, 그 곁에서 함께 자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담긴 작은 화분 하나가 온 세상과 닿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원은 우리의 오감을 깨워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한다. 미국의 환경심리학자 캐플런 부부가 말한 주의력 회복 이론을 인용하며, 저자는 자연이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우리의 주의를 붙잡고 정신적 피로를 낮춘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색과 형태, 바람과 빗소리, 흙의 냄새와 촉감은 잘게 쪼개진 일상의 감각을 다시 모아준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곧 마음챙김의 시간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태도 속에서 우리는 내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정원에서는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돌담 틈에 핀 민들레 이야기도 인상 깊다. 흙이 넉넉하지 않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은 자신이 자란 곳을 불평하지 않는다.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장미는 장미답게 살아간다.

우리는 MBTI나 혈액형 같은 분류로 서로를 재단하고, SNS 속에서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비교하지만, 식물은 우리의 외모나 직업, 경제력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돌보는 손길에만 반응할 뿐이다. 디지털 속에서 만들어진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실제의 나를 만나는 경험이 정원에서 가능하다는 말이 깊게 남는다. 자연과의 공명을 통해 감정이 잠잠해지고, 살아 있구나! 하는 감각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정원은 울타리 속 나만의 천국이기도 하다. 정원의 어원을 따라가면 ‘울타리로 둘러싸인 즐거움’에서 출발한다. 고대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가 사막 한가운데 조성된 오아시스였듯,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울타리를 쳤고, 동시에 자연과 분리된 자신을 위해 다시 울타리 안에 자연을 불러들였다. 동양의 정원은 차경과 축경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고, 서양의 정원은 인간의 의지와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서로 다른 양식 속에서도 공통된 지점은 분명하다. 정원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만들어온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도시 속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정원의 의미를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시킨다.

정원은 무채색 도시를 물들이는 한 방울의 물감이 되고, 사람들의 걸음을 느리게 하며 심장박동을 낮춘다. 녹지공간이 늘어나면 안전감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연구도 소개된다.

작은 정원은 도시의 열을 낮추고, 바람이 통하는 길이 되며, 사람과 생물 모두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한다. 공공정원에서 열리는 음악회와 체험 프로그램, 지역 커뮤니티 활동은 정원이 문화와 사회를 잇는 통섭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자연의 사계절을 따라 삶의 성장과 리듬을 읽어내고, 감각을 통해 깊어지는 사유의 과정을 다루며, 정원이 어떻게 개인의 회복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가드닝을 놀이처럼 즐기고, 가꾸고 먹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정원이 일상의 문화로 스며드는 모습도 그려진다. 각 장은 정원을 단일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여러 층위와 연결된 다면적인 공간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가든타임’의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를 단단히 묶어준다.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의 나무 고아원, 개발로 베일 뻔한 나무들을 모아 조성한 근린공원에서 저자는 상처 입은 나무들 앞에 선다. “내가 너를 입양해도 될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상처 입은 존재를 돌보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150년 된 회화나무의 구부정한 몸통과 뒤틀린 가지, 잘려 나간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는 어린 가지들은 팬데믹의 시간 속에서 주저앉고 싶었던 저자 자신의 모습과 겹쳐진다. 상처에서 시작되는 성장이라는 문장은 이 책의 가장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원은 크기나 식물의 종류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깊이 마음을 두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화분 하나도 때로는 태산 같은 힘이 되어,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지탱해준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결국 나를 가꾸는 일이고, 세상이 주는 상처 앞에서도 오롯한 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든 타임』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 삶의 계절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내 감각으로 오늘의 나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상처 위에서도 다시 자라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거창한 결론을 내리게 하기보다, 빛과 바람, 잎의 결 같은 장면을 건네며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머무는 시간이 쌓일수록, 삶은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원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고, 크기가 아니라 관계다. 자연과 다시 이어지는 시간, 무뎌진 감각을 되찾는 시간,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곧 정원이다. 오늘 하루 안에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보라는 제안이 오래 다정하게 남는다.


'퍼블리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도시 속 작은 정원들이 늘어나면 비단 인간 생활환경의 쾌적함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가 팽창할수록 도시에 기대어 사는 많은 생물 또한 참 고달프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의 진화는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건만, 생존 앞에서 맘이 급해진 생물들은 도시의 속도에 맞추어 십수 년간에 급속히 진화를 이루어냈다. 작은 생물들은 깃털을 짧게 줄이고(흰털발제비는 날개의 깃털을 짧게 줄여 수직으로 빠르게 날 수 있도록 진화했고 그 결과 자동차를 재빨리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빛에 적응하며(도시 속 나방은 빛을 무시하고 곳곳에 몰려든다) 악착같이 도시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이것은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일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듯이, 도시의 작은 생물들에게도 마음껏 숨 쉬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허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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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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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는 거대한 사건이 폭발하는 권은 아니다.

대신 사람들 마음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흔들리는 변화가 중심이 된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 권을 읽다 보면 ‘독립’이나 ‘혁명’ 같은 단어보다 먼저 와닿는 건, 그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운 공기다.


이야기는 길노인의 생일잔치로 시작한다.

겉으로는 잔치지만, 사실은 앞으로의 방향을 의논하는 자리다.

땅을 어떻게 할지, 조직을 어떻게 유지할지, 누가 책임을 질지 같은 문제들이 오간다.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시대에 ‘결정’은 곧 위험이라는 걸. 말 한마디가 집안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침묵은 또 다른 죄가 될 수도 있다.

이 장면은 14권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겉은 평온하지만 속은 팽팽하다.


이 권에서 가장 마음이 쓰인 인물은 명희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 삶이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바느질과 수예를 가르치며 조용히 살아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다닌다.

명희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관계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또 다른 외로움 속으로 들어갈 뿐일까?

명희의 삶은 해방이 아니라, 고요한 고독에 가깝다.


인실과 오가타의 관계도 그렇다. 조선 여자와 일본 남자. 서로의 감정은 진심이지만, 시대가 그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은 쪽과 빼앗긴 쪽이라는 현실이 둘 사이에 놓여 있다.

인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가해자가 반드시 승리자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체념이야말로 패배라는 사실도 안다. 그 단단함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진다.

사랑이 개인의 감정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시대라면, 그 사랑은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관수와 한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시대와 맞선다.

관수는 가난과 차별 속에서 자라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뼛속 깊이 느낀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혁명 안 하고 애국 안 하고 살 수 없나?” 이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애국하지 않으면 배신자 취급을 받고, 싸우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묻는 절규다. 한복은 “살인자의 아들로 끝나느니 애국자로 끝나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영웅적이라기보다,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존엄처럼 느껴진다.

정의는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름일 뿐인가?


이 권에는 인간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문장도 등장한다.

맹수는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지만, 인간은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읽으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인간은 이념과 애국이라는 이름으로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래서 14권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정의는 누구의 것인가. 성공한 자가 들고 있는 칼 위에 꽂힌 말은 과연 진짜 정의인가?


읽는 내내 ‘밤’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관수가 술에 취해 “왜 이리 날이 안 새느냐”고 울부짖는 장면은 개인의 한탄을 넘어 시대의 탄식처럼 느껴진다.

새벽이 오지 않는 기분.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땅을 지키고, 사랑을 붙들고, 조직을 이어가고, 다시 모인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사람은 왜 계속 버티는가?

희망 때문일까, 아니면 포기할 수 없다는 자존 때문일까?


『토지 14』는 큰 사건보다 사람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싸우고, 어떤 이는 버티고,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이 모여 시대를 만든다. 이 권을 덮고 나면 거창한 감동보다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정의를 믿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밤을 지나고 있는가.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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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인스타 @hagonolza



"인종이란 신들린 무당 말이나 눈앞에 보이는 엽전 한 닢을 더 믿으니,
바늘구멍만 들여다보지 화산구멍은 눈앞에 없고,"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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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밤의 뮤지컬 -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N차 관람 뮤지컬의 감동 Collect 37
윤하정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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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밤의 뮤지컬』은 제목 그대로, 30편의 대표 뮤지컬을 따라 밤의 무대를 여행하는 책이다.

저자 윤하정은 머리말에서 무대를 “밤의 산물”이라 부른다.

하루의 일과가 느슨해지는 그 시간, 무대 안팎에는 그날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는 사람들(제작진·배우·연주자·관객)이 모이고, 한순간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공연장을 채운다는 고백으로 책의 결을 잡는다. 그리고 그 무대를 좇느라 오랫동안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밤에는 공연장으로, 낮에는 공연장 안팎에서 배우와 관계자를 만나고 원작과 배경을 탐험하며 기사와 방송을 이어온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 세월이 흩어지지 않도록 관람·취재·기록을 아카이브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구성은 ‘하루 한 편’의 리듬을 닮았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뮤지컬 서른 편을 중심에 두고, 15개의 카테고리로 정리한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인기작부터 프랑스·오스트리아 뮤지컬, 우리 색이 짙은 창작뮤지컬, 1~2인극 소극장 작품부터 블록버스터급 대극장 공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단순한 관람기라기보다, 자칫 단편적인 기사로 흩어질 수 있는 기록을 섬세하게 이어 붙인 입체적 안내서에 가깝다. 뮤지컬이 완성도 높은 종합예술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공연예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화려한 무대 뒤에는 시대와 문화, 삶의 방식, 인간의 깊은 내면이 겹겹이 숨어 있음을 한 편씩 꺼내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이 다정한 이유는 ‘용어’부터 잡아주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연시장의 양대 산맥인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설명하면서,

웨스트엔드는 런던의 상업 공연지구, 브로드웨이는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중심 공연가라는 배경을 짚는다. 또한 국내 무대에서 자주 헷갈리는 오리지널·라이선스·창작뮤지컬의 구분도 명확하다.

해외 팀이 내한해 공연하면 오리지널(정확히는 내한공연에 가깝고), 저작료와 판권을 구입해 한국 제작진이 한국어로 올리면 라이선스, 우리 제작진이 만든 작품은 창작뮤지컬. 여기에 토니 어워즈(1947~)와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1976~)처럼 공연계의 대표 시상식, 뮤지컬의 노래를 뜻하는 ‘넘버’,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리프라이즈’, 더블/트리플 캐스팅과 원 캐스팅의 차이까지 친절하게 정리해 둔다. 덕분에 입문자도 길을 잃지 않고, 마니아는 자신이 아는 공연을 정리된 언어로 다시 만난다.

이 책은 한때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던 〈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캣츠〉·〈미스 사이공〉에서 출발한다. 기준은 단순하다.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들이라는 것. 모두 영국산으로, 〈캣츠〉(1981)·〈레미제라블〉(1985)·〈오페라의 유령〉(1986)·〈미스 사이공〉(1989)이 그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세월이 흐르며 순위가 바뀌었을지라도, 이 작품들이 지금도 멋진 선배처럼 무대를 지키며 젊은 관객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이유를 저자는 계속 질문한다. 이 질문이야말로 책을 단순 정보 모음이 아닌,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묶어준다.

예컨대 Day 1 〈오페라의 유령〉에서 저자는 작품의 주요 기록부터 또렷하게 정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35년 이상 쉬지 않고 공연된 유일한 뮤지컬이며(브로드웨이는 2023년 폐막), 2010년 런던 만 회, 2012년 뉴욕 만 회를 돌파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왜 이 작품이 오래 버티는가를 “변치 않는 클래식함”으로 풀어낸다.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재현한 웅장한 무대, 200여 벌의 의상, 대형 샹들리에 같은 볼거리뿐 아니라, 드라이아이스와 촛불을 활용한 장면 구성, 도르래와 케이블로 설계된 샹들리에 추락의 기술적 구현까지 ‘무대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핵심은 결국 음악이다.

‘The Phantom of the Opera’의 파이프 오르간, ‘The Music of the Night’의 다감한 내면, ‘All I Ask of You’와 이어지는 팬텀의 리프라이즈가 같은 선율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무겁게 만드는 방식까지.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은 히트곡이 나온 뮤지컬로도 명성은 깨기 힘들 것이라는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읽는 쪽이 납득하게 된다. 게다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실제 공간(지하 수공간)과 원작 소설을 연결하며 ‘런던에서 시작된 영국산 뮤지컬이 왜 프랑을 쓰는가’ 같은 궁금증까지 자연스럽게 해소해 준다. 공연을 본 사람은 장면이 다시 선명해지고, 못 본 사람에겐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든다.

Day 2 〈레미제라블〉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 작품을 저자는 가슴을 파고드는 포근한 인류애라고 부른다. 제목부터가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빵 하나로 19년을 복역한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관용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은촛대까지 내어주는 작은 자비가 장발장의 삶뿐 아니라 주변의 삶까지 바꿔 놓고, 그 사랑은 마리우스와 코제트, 에포닌, 그리고 자베르의 원칙이 무너지는 비극까지 큰 파문으로 번진다.

혁명의 바리케이드와 ‘One Day More’ 같은 대서사 장면이 유명하지만, 결국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는 절망 속에 피어난 작은 사랑과 희망의 불씨를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또한 〈레미제라블〉의 포스터가 장발장이 아닌 어린 코제트인 이유를 상징으로 풀어주는 대목은, 작품을 한 번 더 깊게 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코제트는 비참한 인간의 상징이면서도 사랑과 포용, 새로운 삶을 향한 의지, 곧 작품이 말하는 방대한 인류애를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설명은 공연을 보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곱씹게 만든다.

결국 『30일 밤의 뮤지컬』이 주는 선물은 정보만이 아니다.

저자는 30일의 밤 동안 자기만의 시공간에서 30편의 뮤지컬을 감상하며 색다른 감동을 느껴보라고 초대한다. 입문자에게는 가장 친절한 가이드로, 애호가에게는 공연장의 공기와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기록집으로 기능한다. 화려한 장면 뒤의 역사와 맥락을 알고 나면, 공연은 더 깊고 오래 남는다.

이 책은 그 깊이를 어렵지 않게 건네는,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정한 초대장이다.


'동양북스 서포터즈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한때 세계 4대 뮤지컬로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을 꼽았습니다. 기준이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들입니다. 모두 ‘영국산’으로 〈캣츠〉가 1981년, 〈레미제라블〉이 1985년,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미스 사이공〉은 1989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세기가 달라지고 새로운 인기 뮤지컬도 많아진 만큼 순위가 조금은 바뀌었을 듯한데요. 그럼에도 대다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흔 살 안팎, ‘라떼’나 ‘꼰대’ 수식어가 달릴 이들 뮤지컬이 꾸준히 ‘멋진 선배’ ‘진정한 리더’로 무대를 지키며 자신보다 어린 관객들과도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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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트렌드
코엔 드 레우스.필립 기젤스 지음, 신용우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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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경제는 예전처럼 언젠가 금리가 내려가고 자산이 다시 오를 거야!라는 익숙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는 구간에 들어섰다. 『글로벌 경제 트렌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앞으로 수십 년을 흔들 다섯 개의 거대한 파도(혁신·세계화 재편·기후·부채·고령화)를 한 번에 지도처럼 펼쳐 보여주고,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지금 돈줄(유동성)은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로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세워준다. 전망 맞히기가 아니라 생존 규칙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딱 그 역할을 해준다.

어제와 오늘은 현저히 다르다. 우리는 지금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기로에 서 있고, 앞으로 세계 경제를 휩쓸 결정적인 물결들이 다가온다. 저자들이 꼽는 파도는 다섯 가지다.

기후 변화, 세계화의 재편, 혁신에 따른 생산성 변화, 고령화, 그리고 부채.

이 다섯 가지는 따로 오지 않고, 서로를 밀고 당기며 성장·인플레이션·금리의 방향을 바꾼다.

특히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하락 국면을 벗어나, 더 높은 인플레이션과 명목 금리의 세계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메가트렌드’는 결국 금리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각인된다.

이 책의 강점은 역할 분담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한 저자는 거시경제의 큰 그림을 분석하고, 다른 저자는 그 거시경제를 투자자의 언어로 해석한다.

덕분에 이 책은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가?!로 바로 이어진다. 미래를 단정하지 않고, 오히려 기본 개념을 제시하고,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스스로 조사하고 조언을 구하라고 경고한다. 이 태도는 과장된 확신이 넘치는 다른 경제서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 책이 내놓는 가장 직관적인 프레임은 금리다. 저자들은 금리를 세상의 중력이라고 부른다.

금리가 낮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자산이 날아오르고, 금리가 치솟으면 자산이 주저앉는다.

그래서 현재의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해진다.

돈줄이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거창한 테마 분석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환경 체크리스트’가 된다.

이 설명을 돕는 장치로 등장하는 ‘코끼리’ 비유가 인상 깊다.

중앙은행은 수도꼭지를 쥔 존재지만, 물(유동성)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통제하지 못한다.

물길을 흔드는 것은 투자자와 기업,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언론과 논객, 고문들이다.

유동성이 넘치면 자산군과 테마라는 양동이들이 가득 차 투자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시기가 된다.

반대로 물가가 오르고 수도꼭지가 잠기면, 한쪽이 오르려면 다른 쪽에서 물을 빼앗아와야 한다.

이럴 때 나타나는 게 ‘부의 역효과’다. 주식·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내 자산이 줄었네” 하고 느끼면서 지갑을 닫는다. 소비와 투자가 줄고, 그 영향이 실물경제(매출·고용·경기)로 번진다. 그래서 시장 분위기도 바뀐다. 예전처럼 돈이 넉넉히 돌던 때가 아니라, 물이 마른 것처럼(유동성이 줄어든 것처럼) 전반이 팍팍해지는 가뭄 같은 시기가 된다. “요즘 왜 이렇게 다들 조심하지?”라는 체감이, 사실은 돈의 흐름이 줄어든 구조에서 오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간의 관점으로 들어가면 책의 논지는 한층 더 분명해진다.

이자는 돈의 가격이 아니라 시간의 가격이며, 자산 가치는 결국 미래의 현금흐름을 오늘로 당겨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순현재가치(NPV) 공식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다. 미래의 현금흐름이 좋아 보여도 할인율(금리)이 바뀌면 현재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금리가 높아지면 미래는 더 싸게 평가되고, 금리가 낮아지면 미래는 크게 평가된다.

그래서 기술주나 바이오처럼 “현금흐름이 미래에 몰린 자산”이 금리에 유독 민감한 이유도 설득력 있게 연결된다. 이제 금리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숫자가 아니라, 내 자산 가격을 직접 움직이는 핵심 요소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지식보다 태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규칙을 모르면 게임을 하지 말 것, 승자는 오래 들고 패자는 빨리 자르라는 원칙이 반복된다.

흥미로운 건 끈기만을 미덕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포기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서핑을 하다 떨어질 때마다 악어가 달려든다는 비유는 과격하지만 핵심을 찌른다. 더 버티고 더 합리화할수록 상처가 커진다.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영웅 서사가 아니라, 다음 기회를 맞을 체력을 남기는 일이다.

시장에 대한 관점도 현실적이다. 중요한 사건이 터졌다고 해서 시장이 즉시 정답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큰 뉴스의 중대성을 시장이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정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며 가격에 반영된다. 저자들이 이야기와 입소문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서사가 강해지면 전염병처럼 번지고, 또 어느 순간 추진력을 잃고 사라진다. 그 흐름을 이해하면, 우리는 파도를 맞는게 아니라 형성되는 과정에서 읽어내는 쪽에 가까워진다.

결국 『글로벌 경제 트렌드』는 메가트렌드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혁신·세계화·기후·부채·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금리·유동성·시간·심리라는 필수 렌즈를 얹어 지금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가를 정리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 “글로벌 경제 트렌드, 이것만은 기억할 것 10” 같은 요약을 덧붙여, 내용을 한번 더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건 더 많은 예측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갈 기준이다. 이 책이 주는 건 바로 그 기준이다.


'동양북스 서포터즈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금리는 우리 세상의 중력과 같다. 금리가 낮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모든 자산이 날아오른다. 반대로 금리가 치솟으면, 모든 자산은 주저앉는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메가트렌드(주류)는 금리의 변동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돈의 흐름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스스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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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 - 결핍을 성장으로 바꾸는 나만의 자기경영
신다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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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대개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달래는 나이다.

하지만 『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는 그 익숙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기적’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냉정함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지쳐버린 마음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 세우는 용기다.

그리고 “나는 왜 늘 나를 뒤로 미뤘을까?”라는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보는 결심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뒷순위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저자의 멈춤은 해고에서 시작된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창가에 섰고 초겨울 바람이 유난히 차가운 날이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 생각이 스치자 세상을 등지고 싶어졌다.

거울 앞에 선 얼굴은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고, 생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깨를 움츠린 채 부족함을 감추려 애쓰며 살아왔는지 문득 선명하게 깨닫는다. “더 잘해야 해, 더 채워야 해.”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남들을 위해 달려왔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점점 희미해졌다. 남을 위한다는 마음이 어느새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는 고백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런데 그날, 저자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사라진다면 아이들은 그리워하면서도 오래 원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살고 싶었다가 아니라 살아내야 했다가 된다.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살았으면 하는지 떠올리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였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저자는 결심한다. ‘마흔, 이기적이 되기로 했다.‘ 더 이상 남을 위해 나를 지우지 않기로 말이다.

그 결심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소 의외였다.

바로 ‘묵언’ 이다.

말을 멈춘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동안은 대화로 문제를 풀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단어가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저자는 100일의 묵언을 선택한다.

아이들 방문을 노크하려다 멈추고, 전화를 들었다가도 내려놓고, 꼭 필요한 말만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은 정말 필요한가.’ 해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뱉던 말들, 사랑이라고 믿었던 말들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잔소리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말을 줄이자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짜증은 외로움이었고, 화는 두려움이었고, 불안은 사랑이었다.” 저자는 감정을 덮어두거나 다스리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 숨어 있는 마음을 찾아냈다.

외로움 뒤에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슬픔 뒤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감정을 인정해 주는 순간, 감정은 이상하게도 힘을 잃는다.

누군가의 날 선 말도 ‘짜증’으로만 보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사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른의 마음도 아기의 울음처럼, 말과 행동 뒤에 욕구가 숨어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단점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저자는 한때 자신을 괴롭혔던 게으름을 다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게으름이라 여겼던 마음에 나는 ‘쉼’이라 이름 붙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버려진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는 조금만 멈춰도 스스로를 쉽게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을 미뤘던 저녁, 침대에서 뒤척이던 아침을 ‘나태’라 부르며 몰아붙인다.

그런데 저자는 그 시간들을 기록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 마음이 지쳐 있었던 때였다.

앞만 보고 달려온 몸이 이제는 잠깐 멈춰야 한다고 보내는 신호였다.

그러니 쉼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이고,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대기다.

그 멈춤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은, 이 문장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도망치지 않는 쪽을,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더 빨리 가는 길 대신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했을 때 비로소 숨이 돌아왔다.”

우리는 늘 빠른 길이 정답인 줄 안다. 빨리 회복하고,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속도를 바꾸는 순간 삶의 숨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하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용기다. 삶을 다시 살겠다는 결심이다.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이 책은 유난히 따뜻하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타임캡슐’로 부르기로 한다.

수면 아래 돌처럼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 착해야 한다는 생각과 공손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눌러둔 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지우려고 할수록 더 떠오르는 기억들 앞에서, 저자는 창고의 문을 억지로 부수지 않는다. 트라우마라고 부를 때마다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타임캡슐’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다.

타임캡슐은 과거를 들춰내어 고통을 반복하는 상자가 아니라,

과거 속에서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찾는 상자가 된다.

타임캡슐을 연다는 건 과거를 들춰내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현재를 배우는 일이라는 문장이 그 방향을 단단히 잡아 준다.

묵언의 끝자락에서 딸이 말한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싱크대 정리해 줘서 고마웠어.”

그 한마디가 저자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말이 아닌 마음이 오간 첫 경험이었으므로.

물론 이 책은 그 과정이 늘 아름답기만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술 취한 남편 앞에서 “당신이 문제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쌓아 올린 침묵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저자는 그 순간을 통해 내가 화를 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게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의 용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묻는다.

“나는 누구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나였다. 나는, 내가 가장 그리웠다.”

이 고백은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의 용기이기도 하다.

나를 찾는 일은 대단한 변화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오래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을 다시 불러 세우는 일이다. 내가 나를 그리워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부족함은 결함이 아니라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의 다른 이름이 된다. 불안은 잘 살고 싶다는 신호가 되고, 화는 나를 지키라는 경계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조차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다시 숨을 고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하루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 위에서 비로소 남이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갈 힘이 생긴다.

『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는 거창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누구를 가장 먼저 돌보고 있는가?”

그 질문 끝에서 우리는 결국 같은 답에 닿는다.

남을 위해 나를 지우는 삶이 아니라 나를 지키며 함께 가는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을.

빠른 길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하는 용기다.

이 책이 말하는 ‘이기적’이란 누군가를 밀어내는 태도가 아니라,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며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 먼저 나를 살리는 방식이다.


‘그릿 아카데미’를 통해 '미다스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를 지켜준 감정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작은 텃밭을 보았다. 주인이 없는 듯 잡초가 무성했는데, 그 사이로 배추 한 포기가 버티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잡초가 쓸모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배추를 바람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배추가 얼지 않도록,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미워했던 게으름과 두려움과 회피도 저 잡초처럼 나를 지키고 있었다는 걸.

나는 평생 그 마음들을 뽑아내려 애썼다. 게으름을 없애려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두려움을 감추려 용감한 척했으며, 회피를 극복하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뽑아도 뽑아도 더 깊이, 더 질기게 다시 자랐다. 사실 그것들은 뽑아낼 대상이 아니었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단점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것이었다. 게으름이라고 여겼던 마음에 ‘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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