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타임 - 단단한 삶을 위한 시간
이소원 지음 / 퍼블리온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근길, 그 흔한 풍경 속에서도 문득 고개가 돌아가는 날이 있다.

늘 보던 작은 정원인데도 햇살이 내려앉는 각도나 잎빛이 한 톤만 달라져도 하루의 기분이 바뀐다.

『가든 타임』은 바로 그 장면에서 출발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현장에서 정원을 가꾸는 저자는, 교육자의 삶을 지나 다시 땅 위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빛나는 숲’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 곳곳의 작은 틈에서 정원의 순간을 수집해왔다.

일상에 치여 감각을 잃고 헤매던 아침,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마주한 작은 정원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그에게 온 세포의 감각이 푸르게 살아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휘어지고 부러진 가지 사이로 각기 다른 빛을 내는 잎들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다시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는 고백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정원을 매개로 우리가 왜 일상 속에서 자꾸 지치고 감각이 무뎌지는지 짚어주고, 그 감각을 생활 가까이에서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 차분히 안내한다. 거창한 정원이 아니어도, 책상 위 작은 화분 하나라도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면 이미 나만의 정원이며, 정원의 순간을 자세히 살피고 수집하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론으로 설득하기보다, 빛과 그림자, 잎의 색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장면들로 독자를 이끈다. 읽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내 감각은 얼마나 무뎌져 있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정원의 숨에 기대어 다시 일상을 시작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저자에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정원이 뭐죠?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을까요?”

트렌드처럼 번진 가드닝 열풍과 달리, 아직 정원의 본질을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정원은 말로 담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다감각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원을 정의하기보다 정원에서 경험한 순간들을 통해 정원의 힘을 보여준다.

왜 우리에게 정원이 필요한지, 어떻게 삶 가까이에 들일 수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가며,

독자가 자신의 언어로 정원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 중심에는 정원은 나와 만나는 곳이라는 문장이 있다. 소쇄원 이야기는 이 문장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조선 중종 시대, 스승의 죽음을 겪고 낙향한 양산보가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조성한 정원이다. 광풍각 마루에 앉아 통나무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빛을 바라보던 저자의 경험은 회복의 기록이다. 뜻은 품고 있었지만 정작 그 뜻 안에 머물지 못하던 시절, 사업의 불안과 팬데믹의 막막함 속에서 흔들리던 마음이 그곳에서 잠시 가라앉았다는 고백은, 정원이 사람을 다시 자기답게 돌아오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 순간 저자는 비로소 공간 안에 오롯이 존재하는 자신을 만났다고 말한다. 정원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보는 일이고, 정원과 연결된다는 것은 내 마음과도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정원에 들어서면 우리는 감각부터 달라진다.

눈을 감으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향기가 먼저 다가오고, 새소리와 나뭇가지가 비벼대는 소리가 이어진다. 겨울의 정원은 겉으로는 침묵 속에 잠긴 듯 보이지만, 저자에게는 언제고 따뜻한 외딴 섬이 된다.

정원은 계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말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하나의 정원은 쉼의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돌봄과 배움, 놀이와 치유의 공간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적극적인 치료의 장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정리하는 존엄한 시간의 공간이 된다.

같은 정원을 바라보아도 각자가 읽어내는 의미는 다르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처럼, 어떤 이는 벽만 보고 고개를 떨구지만, 또 다른 이는 그 벽을 오르는 잎사귀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정원은 객관적인 공간이라기보다 각자의 감정과 사유가 스며드는 주관적인 세계다.

저자는 자연감각을 깨우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는 태생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 이른바 바이오필리아가 내재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는 왜 자연에 끌리는지를 되짚는다.

예쁜 꽃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가고, 숲과 강이 가까운 공간을 선호하는 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의 삶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너무 멀어졌고, 그 감각은 무뎌졌다.

그래서 시작은 거창 할 필요 없이, 책상 위 작은 화분 하나면 충분하다.

매일 물을 주고, 잎을 들여다보고, 해가 드는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주는 작은 행동이 삶과 자연을 다시 이어준다. 식물의 매일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안, 그 곁에서 함께 자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담긴 작은 화분 하나가 온 세상과 닿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원은 우리의 오감을 깨워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한다. 미국의 환경심리학자 캐플런 부부가 말한 주의력 회복 이론을 인용하며, 저자는 자연이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우리의 주의를 붙잡고 정신적 피로를 낮춘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색과 형태, 바람과 빗소리, 흙의 냄새와 촉감은 잘게 쪼개진 일상의 감각을 다시 모아준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곧 마음챙김의 시간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태도 속에서 우리는 내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정원에서는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돌담 틈에 핀 민들레 이야기도 인상 깊다. 흙이 넉넉하지 않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은 자신이 자란 곳을 불평하지 않는다.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장미는 장미답게 살아간다.

우리는 MBTI나 혈액형 같은 분류로 서로를 재단하고, SNS 속에서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비교하지만, 식물은 우리의 외모나 직업, 경제력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돌보는 손길에만 반응할 뿐이다. 디지털 속에서 만들어진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실제의 나를 만나는 경험이 정원에서 가능하다는 말이 깊게 남는다. 자연과의 공명을 통해 감정이 잠잠해지고, 살아 있구나! 하는 감각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정원은 울타리 속 나만의 천국이기도 하다. 정원의 어원을 따라가면 ‘울타리로 둘러싸인 즐거움’에서 출발한다. 고대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가 사막 한가운데 조성된 오아시스였듯,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울타리를 쳤고, 동시에 자연과 분리된 자신을 위해 다시 울타리 안에 자연을 불러들였다. 동양의 정원은 차경과 축경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고, 서양의 정원은 인간의 의지와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서로 다른 양식 속에서도 공통된 지점은 분명하다. 정원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만들어온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도시 속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정원의 의미를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시킨다.

정원은 무채색 도시를 물들이는 한 방울의 물감이 되고, 사람들의 걸음을 느리게 하며 심장박동을 낮춘다. 녹지공간이 늘어나면 안전감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연구도 소개된다.

작은 정원은 도시의 열을 낮추고, 바람이 통하는 길이 되며, 사람과 생물 모두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한다. 공공정원에서 열리는 음악회와 체험 프로그램, 지역 커뮤니티 활동은 정원이 문화와 사회를 잇는 통섭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자연의 사계절을 따라 삶의 성장과 리듬을 읽어내고, 감각을 통해 깊어지는 사유의 과정을 다루며, 정원이 어떻게 개인의 회복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가드닝을 놀이처럼 즐기고, 가꾸고 먹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정원이 일상의 문화로 스며드는 모습도 그려진다. 각 장은 정원을 단일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여러 층위와 연결된 다면적인 공간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가든타임’의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를 단단히 묶어준다.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의 나무 고아원, 개발로 베일 뻔한 나무들을 모아 조성한 근린공원에서 저자는 상처 입은 나무들 앞에 선다. “내가 너를 입양해도 될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상처 입은 존재를 돌보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150년 된 회화나무의 구부정한 몸통과 뒤틀린 가지, 잘려 나간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는 어린 가지들은 팬데믹의 시간 속에서 주저앉고 싶었던 저자 자신의 모습과 겹쳐진다. 상처에서 시작되는 성장이라는 문장은 이 책의 가장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원은 크기나 식물의 종류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깊이 마음을 두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화분 하나도 때로는 태산 같은 힘이 되어,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지탱해준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결국 나를 가꾸는 일이고, 세상이 주는 상처 앞에서도 오롯한 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든 타임』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 삶의 계절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내 감각으로 오늘의 나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상처 위에서도 다시 자라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거창한 결론을 내리게 하기보다, 빛과 바람, 잎의 결 같은 장면을 건네며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머무는 시간이 쌓일수록, 삶은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원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고, 크기가 아니라 관계다. 자연과 다시 이어지는 시간, 무뎌진 감각을 되찾는 시간,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곧 정원이다. 오늘 하루 안에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보라는 제안이 오래 다정하게 남는다.


'퍼블리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도시 속 작은 정원들이 늘어나면 비단 인간 생활환경의 쾌적함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가 팽창할수록 도시에 기대어 사는 많은 생물 또한 참 고달프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의 진화는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건만, 생존 앞에서 맘이 급해진 생물들은 도시의 속도에 맞추어 십수 년간에 급속히 진화를 이루어냈다. 작은 생물들은 깃털을 짧게 줄이고(흰털발제비는 날개의 깃털을 짧게 줄여 수직으로 빠르게 날 수 있도록 진화했고 그 결과 자동차를 재빨리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빛에 적응하며(도시 속 나방은 빛을 무시하고 곳곳에 몰려든다) 악착같이 도시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이것은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일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듯이, 도시의 작은 생물들에게도 마음껏 숨 쉬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허락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