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 - 결핍을 성장으로 바꾸는 나만의 자기경영
신다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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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대개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달래는 나이다.

하지만 『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는 그 익숙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기적’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냉정함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지쳐버린 마음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 세우는 용기다.

그리고 “나는 왜 늘 나를 뒤로 미뤘을까?”라는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보는 결심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뒷순위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저자의 멈춤은 해고에서 시작된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창가에 섰고 초겨울 바람이 유난히 차가운 날이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 생각이 스치자 세상을 등지고 싶어졌다.

거울 앞에 선 얼굴은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고, 생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깨를 움츠린 채 부족함을 감추려 애쓰며 살아왔는지 문득 선명하게 깨닫는다. “더 잘해야 해, 더 채워야 해.”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남들을 위해 달려왔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점점 희미해졌다. 남을 위한다는 마음이 어느새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는 고백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런데 그날, 저자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사라진다면 아이들은 그리워하면서도 오래 원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살고 싶었다가 아니라 살아내야 했다가 된다.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살았으면 하는지 떠올리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였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저자는 결심한다. ‘마흔, 이기적이 되기로 했다.‘ 더 이상 남을 위해 나를 지우지 않기로 말이다.

그 결심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소 의외였다.

바로 ‘묵언’ 이다.

말을 멈춘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동안은 대화로 문제를 풀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단어가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저자는 100일의 묵언을 선택한다.

아이들 방문을 노크하려다 멈추고, 전화를 들었다가도 내려놓고, 꼭 필요한 말만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은 정말 필요한가.’ 해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뱉던 말들, 사랑이라고 믿었던 말들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잔소리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말을 줄이자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짜증은 외로움이었고, 화는 두려움이었고, 불안은 사랑이었다.” 저자는 감정을 덮어두거나 다스리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 숨어 있는 마음을 찾아냈다.

외로움 뒤에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슬픔 뒤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감정을 인정해 주는 순간, 감정은 이상하게도 힘을 잃는다.

누군가의 날 선 말도 ‘짜증’으로만 보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사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른의 마음도 아기의 울음처럼, 말과 행동 뒤에 욕구가 숨어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단점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저자는 한때 자신을 괴롭혔던 게으름을 다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게으름이라 여겼던 마음에 나는 ‘쉼’이라 이름 붙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버려진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는 조금만 멈춰도 스스로를 쉽게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을 미뤘던 저녁, 침대에서 뒤척이던 아침을 ‘나태’라 부르며 몰아붙인다.

그런데 저자는 그 시간들을 기록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 마음이 지쳐 있었던 때였다.

앞만 보고 달려온 몸이 이제는 잠깐 멈춰야 한다고 보내는 신호였다.

그러니 쉼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이고,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대기다.

그 멈춤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은, 이 문장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도망치지 않는 쪽을,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더 빨리 가는 길 대신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했을 때 비로소 숨이 돌아왔다.”

우리는 늘 빠른 길이 정답인 줄 안다. 빨리 회복하고,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속도를 바꾸는 순간 삶의 숨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하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용기다. 삶을 다시 살겠다는 결심이다.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이 책은 유난히 따뜻하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타임캡슐’로 부르기로 한다.

수면 아래 돌처럼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 착해야 한다는 생각과 공손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눌러둔 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지우려고 할수록 더 떠오르는 기억들 앞에서, 저자는 창고의 문을 억지로 부수지 않는다. 트라우마라고 부를 때마다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타임캡슐’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다.

타임캡슐은 과거를 들춰내어 고통을 반복하는 상자가 아니라,

과거 속에서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찾는 상자가 된다.

타임캡슐을 연다는 건 과거를 들춰내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현재를 배우는 일이라는 문장이 그 방향을 단단히 잡아 준다.

묵언의 끝자락에서 딸이 말한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싱크대 정리해 줘서 고마웠어.”

그 한마디가 저자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말이 아닌 마음이 오간 첫 경험이었으므로.

물론 이 책은 그 과정이 늘 아름답기만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술 취한 남편 앞에서 “당신이 문제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쌓아 올린 침묵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저자는 그 순간을 통해 내가 화를 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게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의 용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묻는다.

“나는 누구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나였다. 나는, 내가 가장 그리웠다.”

이 고백은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의 용기이기도 하다.

나를 찾는 일은 대단한 변화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오래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을 다시 불러 세우는 일이다. 내가 나를 그리워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부족함은 결함이 아니라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의 다른 이름이 된다. 불안은 잘 살고 싶다는 신호가 되고, 화는 나를 지키라는 경계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조차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다시 숨을 고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하루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 위에서 비로소 남이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갈 힘이 생긴다.

『마흔을 위한 이기적인 용기』는 거창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누구를 가장 먼저 돌보고 있는가?”

그 질문 끝에서 우리는 결국 같은 답에 닿는다.

남을 위해 나를 지우는 삶이 아니라 나를 지키며 함께 가는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을.

빠른 길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를 택하는 용기다.

이 책이 말하는 ‘이기적’이란 누군가를 밀어내는 태도가 아니라,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며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 먼저 나를 살리는 방식이다.


‘그릿 아카데미’를 통해 '미다스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를 지켜준 감정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작은 텃밭을 보았다. 주인이 없는 듯 잡초가 무성했는데, 그 사이로 배추 한 포기가 버티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잡초가 쓸모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배추를 바람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배추가 얼지 않도록,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미워했던 게으름과 두려움과 회피도 저 잡초처럼 나를 지키고 있었다는 걸.

나는 평생 그 마음들을 뽑아내려 애썼다. 게으름을 없애려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두려움을 감추려 용감한 척했으며, 회피를 극복하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뽑아도 뽑아도 더 깊이, 더 질기게 다시 자랐다. 사실 그것들은 뽑아낼 대상이 아니었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단점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것이었다. 게으름이라고 여겼던 마음에 ‘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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