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문장들 -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
박산호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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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멋진 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니었다. 읽다 보니, 이건 삶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고, 때로는 부서지기도 했던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일기 같았다. 문장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천천히 되새긴 기록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어른이라는 말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기대가 얼마나 많은 착각일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고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라고 쓴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에게서 어른다움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어른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줄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저자는 ‘어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본문 초반, 저자는 우리가 자주 묻는 질문—‘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인생은 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시점은 우리가 유한한 자원을 어떤 선택에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선택의 기준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성장의 한계’를 냉정히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나만의 집중이다. 평범한 인생의 진짜 승부는 ‘선택 이후의 집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다양한 문학과 철학, 예술 속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정일의 칼럼을 인용하며 출판사에서 신인 작가들의 책을 보내 주겠다는 말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라 남은 시간동안 고전을 읽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 역시 무의미한 소비성 독서를 줄이고 좋은 책은 재독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40세가 넘은 사람은 나쁜 책을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롤프 도벨리의 문장을 되새기며 저자는 책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이 원칙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히사이시 조의 말도 인상 깊다. 그는 “경험은 가능성을 좁히기도 한다”고 말하며 쓸모없는 고생을 강요하는 어른들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지점을 짚으며 경험이 풍부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강요될 때 더욱 위험하다고 단언한다.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세계를 닫히게도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양면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가장 가슴을 울리는 대목은 아마도 『자기 앞의 생』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라는 모모의 질문에 “그렇단다”라고 답하는 하밀 할아버지, 그리고 그 말 뒤에 오는 눈물.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살아낼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이며 그것이 꼭 피를 나눈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또한, 이 책은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말한다. “실수가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는 할머니의 말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말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도 변명이 아닌 행동과 책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금 당장 행복하자.”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을 인용한 이 대목은 우리가 왜 ‘행복’을 자꾸 미래로 미루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저자는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감정의 쌓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의 문장들』은 나이만 먹었을 뿐 삶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어른이라는 단어가 더는 부담스럽거나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어른이란 결국 망가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또 건네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문장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을 아주 따뜻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건넨다.


'샘터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란 생각도 하게 됐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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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종이 울릴 때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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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익숙한 이 그림은 단지 아름다운 봄의 정경을 담은 것이 아니다. 봄에 피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과 희망, 그리고 부활을 상징한다.

이 책 『저녁 종이 울릴 때』의 표지로 이 그림이 쓰인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을 딛고 피어나는 삶, 잊힌 기억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인간의 존엄,

그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임홍순 저자의 『저녁 종이 울릴 때』는 한 교사의 삶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책이다. 주인공 김기수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1960~70년대 가난의 골짜기였던 산골 학교에 부임한다. 화전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산촌, 학교는 교육의 사각지대였고, 아이들은 배움보다 생존이 더 급한 현실에 놓여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로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청춘의 시간을 교실에 온전히 바친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도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이 책은 한 교사의 삶을 통해 한 시대의 고단한 풍경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소박하면서도 생생하게 풀어낸다.

설날을 앞두고 어머니가 손수 만드시던 다식,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와 빈대떡, 바구니 가득 담긴 대추와 밤, 감나무 아래에서 떨어질 감을 기다리던 풍경들.

이 모든 기억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힘들었지만 품이 있었던 삶.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자,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본질이다.

이야기는 점차 개인의 기억을 넘어, 민족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우리는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족이다. 오랜 세월 고난 속에 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가시떨기 같은 백성’이라 말하듯, 우리 또한 시련 속에서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역사학자들은 우리를 ‘동방의 이스라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말에 생생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단지 문장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때로 가장 귀한 것을 만들어낸다.

병든 고래의 기름으로 향수가 만들어지고, 병든 소의 우황으로 명약이 만들어지듯이.

로키산맥의 바람과 눈보라를 견딘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듯, 시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존재만이 세상을 울릴 수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바로 그런 울림을 품고 있다.

김기수는 이름 없는 교사였지만, 그가 남긴 울림은 작지 않다.

그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었고, 가난이라는 벽을 넘게 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한 줄기 등불처럼, 아이들의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우리는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결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또 다른 빛이 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옛날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앞날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잊지 않아야 앞으로의 길도 흔들리지 않는다.

표지에 피어난 아몬드 꽃처럼,

우리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

그 믿음이, 그 부활의 메시지가 이 책 전반에 잔잔히 흐르고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삶이 고단할수록, 기억은 더 빛난다.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도서출판 클북'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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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배고픈 아이들에게 책을 쥐서 그들의 허기를 전부 채워줄 순 없지요.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용기를 줄 수는 있어요. 겨울에 얼어붙은 개울물 밑에서도 붕어들이 헤엄치고, 눈 덮인 엄동설한 밭고랑 속에서도 밀과 보리는 뿌리를 내리며 자라잖아요. 헐벗은 가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 아니겠어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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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 - 철학의 문을 여는 생각의 단어들
이충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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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세계는 워낙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다 이충녕의 『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을 만나게 됐다. 이 책은 처음 철학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모든 개념을 다 다루려 하기보다는 일단 중요한 지점들을 콕 짚어주는 방식으로 길을 안내한다. 저자도 이 점을 명확히 밝힌다. 철학이란 분야는 워낙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개념들과 사유의 집합체라, 그 모든 역사를 한 권의 책에서 다룬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그는 각 철학 개념을 한 명의 철학자와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철학 지도’를 그리는 방식이다. 저자는 철학자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그 시대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을 다룬 철학자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덕분에 독자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철학 개념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밀레토스학파,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주의, 피론주의,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홉스,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니체, 벤담, 밀, 호르크하이머, 사르트르, 레비나스, 비트겐슈타인, 후설, 제임스, 버틀러, 그리고 가브리엘까지. 총 30명 이상의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전혀 버겁지 않다. 각 인물의 핵심 사유만을 뽑아내어 우리 삶과 연결지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챕터는 ‘고백하는 철학 –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고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간의 본질을 ‘지성’에서 찾았던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혀 다른 지점을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주의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심에 둔 전통적 주지주의와는 반대되는 관점이다.


책에서 설명한 예시가 인상 깊었다. 도둑질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 때, 그걸 단순히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고민이 생기진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나쁜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혹은 ‘도덕적 규칙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갈등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런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의지가 인간 내면에서 갈등을 만든다고 보았다. 이건 생각해보면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머리로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해서 행동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으니까. 결국 인간의 행동은 의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더 흥미로웠던 건, 아우구스티누스가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처음엔 이 문장이 낯설고 심지어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의미가 조금씩 다가왔다. 어떤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때로는 먼저 그것을 ‘믿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믿음은 의지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오히려 믿음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결국 그의 말은, “믿음이라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진정한 이해로 갈 수 있다”는 철학적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종교적 믿음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자세, 요즘 말로 하자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태도도 결국 이런 주의주의 철학에서 기원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믿고자 하는 마음, 해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진짜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 책은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그런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철학자들의 말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유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데 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트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방식. 덕분에 나는 철학을 ‘읽는 것’에서 ‘사유하는 것’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의지야말로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확하다.


“철학은 삶을 고상하게 꾸며주는 장식이 아니라, 삶을 더 선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철학의 세계를 이 책은 무겁지 않게, 그러나 깊이 있게 안내해준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사고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정말 좋은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철학을 잘 알지 않아도, 철학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들이 이 안에는 분명히 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철학의 시작
서양철학의 역사는 의외로 튀르키예에서 시작됐습니다.
흔히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그리스가 본고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그리스 문화권은 지금의 그리스 땅보다 훨씬 넓었거든요. 철학의 역사는 현재 기준으로 튀르키예이면서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에 속했던 지방에서 시작됐습니다. 바로 밀레토스라는 도시에서죠.
그곳에서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Thales가 활동했습니다.
탈레스는 기원전 626~623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추정합니다. 그를 중심으로 밀레토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무리를 가르켜 ‘밀레토스학파’라고 부르죠.
탈레스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일식을 예측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림자를 활용해 이집트기자Giza의 피라미드 높이를 쟀다고도 전합니다. 또한 올리브 풍년을 예측하고 미리 투자해 부자가 됐다고도 알려져 있죠.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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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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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 내가 원하는 ‘마땅한 부’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런 고민을 품고 있을 때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를 읽게 되었다.


책의 첫 시작점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계는 얼마나 좁으며 네모난 책은 얼마나 넓은가.“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이지(이탁오)가 남긴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같다. 세상이 갈수록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뭘 해도 잘 안 될 것 같고, 괜히 움츠러들게 된다. 고명환은 이럴수록 책이 답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막혀 있던 길이 보이고, 다시 세상이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코미디언 후배 김숙이 침구류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렸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모두가 멈추는 쪽을 택했다. 현실이 너무 어렵고 불안정하니 도전보다는 관망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였다.

고명환 역시 그 말에 수긍할 뻔했지만, 도서관에서 마주한 한 문장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게 하려면, 내가 직접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이 문장은 책을 읽는 나에게도 강하게 다가왔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야 바람개비는 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세상은 자꾸 우리를 축소시키고 있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고전 안내서다.

고전의 문장을 단순히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문장을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사유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개츠비와 이노크’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소유’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각자가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예쁜 새를 소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새장을 만들 것인가, 자유롭게 날게 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저자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질문을 자주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삶도, 돈도, 사고방식도 언제나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생각을 자주 점검하고 되풀이해야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부’는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깊이 묻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삶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가치다. 그래서 고명환은 철학자 최진석 교수와 한 학생 기자의 대화를 인용한다.

“기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말한 학생에게 교수는 되묻는다.

“기자가 되는 건 과정일 뿐, 진짜 꿈은 그걸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에 있어야 한다.”

꿈은 직업 자체가 아닌 방향이고 목적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가장 공감됐던 파트는 ‘자발적 피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오랜 친구 송은이와 나눈 대화를 통해 자발적 피로의 개념을 설명한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에 몰입하며 생긴 피로는 지치면서도 개운하다. 그 피로는 고통이 아니라 쾌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끝냈을 때 느끼는 ‘좋은 피로’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적 노동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저자는 말한다. “돈은 자발적 피로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발적 피로를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다.

처음엔 지루하고, 졸리기도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고통 속에서 결국 몰입하게 되면 그 독서는 곧 쾌감으로 바뀐다.


생각 없이 책을 읽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책 속의 이야기를 곱씹고, 삶에 적용할 해답을 찾고, 다시 내 삶의 질문으로 돌려보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것이 고전을 읽는 사람의 태도이자 책 읽는 사람의 의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돈에 대한 관점을 바꿔볼 수 있었다.

돈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고, 수단이 아니라 결과다.

삶을 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돈은 따라오는 것이지 쫓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고전을 통해,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의 깊은 사유를 통해 길러진다.

어쩌면 이 책은 단순한 ‘재테크 책’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일종의 철학서일지도 모른다. 샘플북이라 가벼운 분량이지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몇 백 권의 책을 읽은 나에게도 이 책은 짧지만 묵직하게 사유의 숲으로 이끌었다.


혹시 지금, 삶의 방향이 흐릿하게 느껴진다면.

아무것도 하기 두려운 마음이 커져 있다면, 그럴수록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들고 달려 나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한다면 그 길을 찾는 과정이 덜 고단하고 덜 막막할 것 같다.

추우우우우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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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연수 옮김, 안지희 감수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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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고전 비극의 결정판이다. 이 작품은 단지 연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로마와 이집트라는 거대한 문명이 사랑과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휘청이는지를 보여준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이 두 인물은 역사적 상징이자 감정의 끝을 보여주는 인간으로 무대 위에 선다. 셰익스피어는 이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감정에 취약하며, 또 그 감정이 얼마나 쉽게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1막. 나의 망각은 그대의 것

이야기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에서 시작된다.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전장의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클레오파트라의 환락과 매혹에 빠져 로마의 소식을 외면하고 있다. 필로는 그런 안토니우스를 보며 “장군의 심장은 집시 여인의 욕망을 식히는 부채가 되었다”고 비꼬고, 데메트리우스는 “장군이 변했다”며 안타까워한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에 빠졌지만, 로마에서 전해진 소식은 그를 불편하게 한다. 카이사르의 명령, 풀비아 부인의 사망 소식, 폼페이우스의 반란 소식이 그를 로마로 다시 부른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런 안토니우스를 비난하고 애원하고 조롱하지만, 결국 그는 로마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안토니우스는 “사랑으로 충만한 내 마음은 그대 곁에 남기고 가오”라고 말하지만, 이별을 앞둔 사랑은 이미 균열을 예고한다.


2막. 환상 속 베누스와 같은 그대여

안토니우스는 로마로 돌아가 카이사르와의 정치적 화합을 위해 그의 누이 옥타비아와 정략결혼을 한다. 이 결혼은 겉으로는 평화를 위한 동맹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균열이 있다. 에노바르부스와 메나스는 이 동맹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예견한다. 안토니우스는 결국 다시 클레오파트라에게로 돌아갈 것이고, 옥타비아의 상처는 카이사르의 분노로 이어질 것이라는 대화가 인상 깊게 이어진다. 모두가 술잔을 부딪치며 화해를 연출하지만, 그 밑에는 정치적 불신과 감정적 배신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3막. 사랑이 영혼을 끌어당기다

안토니우스는 다시 클레오파트라의 곁으로 돌아간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맞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옥타비아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는 옥타비아의 키, 목소리, 걸음걸이, 위엄, 나이까지 하나하나 묻는다. 그녀보다 옥타비아가 나은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은 클레오파트라의 자존심과 불안이 뒤엉킨 감정의 결정체다. 사랑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약하게도 만든다.

안토니우스는 결국 옥타비아에게 카이사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신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과 자존심에 사로잡혀 제국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정을 내린다. 이 결단은 치명적인 선택이 되며, 그를 더욱 고립시킨다. 에노바르부스는 이런 안토니우스를 지켜보며 속으로 말한다. “장군의 머리가 차츰 쇠약해지니, 심장으로 채우나 보다. 용기가 이성을 잡아먹으면 싸움에서 휘두르는 칼도 녹슬게 되는 법이다.” 그는 더는 안토니우스를 따라갈 수 없음을 느끼며, 장군을 떠날 길을 고민하게 된다.


4막. 용서를 빌기 위한 눈물로 운명을 빛내리

카이사르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에노바르부스는 결국 안토니우스를 배반하고 카이사르 진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오히려 그에게 황금을 보내며 배신에도 불구하고 충의를 잊지 않는다. 이 너그러움은 에노바르부스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패색이 짙어진 안토니우스는 결국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격분한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달래기 위해 자결을 위장하고,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우스는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에 빠져 자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디오메데스를 통해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마지막 힘을 내어 그녀 곁으로 향한다.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안토니우스는 그 짧은 재회의 순간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5막. 태양과 달이 땅에 빛을 뿌리리

안토니우스의 죽음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속마음을 꿰뚫는다. 그녀는 자신이 로마의 전리품처럼 전시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한다. 광대를 시켜 독이 있는 뱀을 가져오게 하고, 그 뱀에게 물려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녀는 “죽음은 내게 가장 품격 있는 도피처”라 말하며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충직한 시종들 또한 여왕을 따라 독사에 물려 함께 생을 마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깊은 충격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안토니우스 곁에 묻도록 명령하며, 그들의 사랑과 죽음이 단순한 비극을 넘어 위대한 감정의 승리였음을 인정한다. “이 비참한 사건은 그 사건을 일으킨 자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장례가 성대하게 치러지도록 지시한다. 이 사랑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모든 제국의 역사보다 진하게 남는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단 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위대하게 만든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권력과 명예, 그리고 생명까지 모두 잃는다. 클레오파트라는 그 뒤를 따르듯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이들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무덤은 패배자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의 절정으로 남는다. 비극은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의 깊이와 선택의 결단이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더욱 강하게 비춘다.


이 책을 연애극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조각하고,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이야기한다. 안토니우스는 사랑 앞에 무너지지만, 그 무너짐은 치욕이 아닌 자기 존재를 걸고 감정을 증명한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퇴장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인 여왕을 넘어,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하는 위엄 있는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인물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저 유혹의 여인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사랑과 존엄을 지켜낸 여왕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의 밀도가 짙어지고,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고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감정의 서사이자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강렬한 이야기다.


'히스토리퀸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클레오파트라. 난 이젠 여왕도 아니고, 바랄 것 없이 소젖을 짜고, 노동하는 농사꾼이나 매한가지다. 내가 아직 여왕이라면 난 이 농락하는 신들에게 내 왕관을 집어 던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게 다 허무하구나. 인내는 어리석은 바보짓이고 화를 내는 건 미친개의 발작이야. 그렇다면 죽음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음의 비밀을 알아본다고 그게 죄가 된다고? 자, 카르미안, 그리고 시종들아, 우리의 등불이 다 꺼져버렸다. 우선 매장을 하고, 그 다음 훌륭하고 숭고한 로마 방식에 따라 장례하여 죽음의 신이 우리를 데려가게 하자. 저리 가. 위대한 영혼을 감은 그릇이 식었구나. 아, 얘들아, 우리에게 이젠 결심으로 빠르게 최후를 맞이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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