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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종이 울릴 때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5월
평점 :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익숙한 이 그림은 단지 아름다운 봄의 정경을 담은 것이 아니다. 봄에 피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과 희망, 그리고 부활을 상징한다.
이 책 『저녁 종이 울릴 때』의 표지로 이 그림이 쓰인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을 딛고 피어나는 삶, 잊힌 기억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인간의 존엄,
그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임홍순 저자의 『저녁 종이 울릴 때』는 한 교사의 삶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책이다. 주인공 김기수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1960~70년대 가난의 골짜기였던 산골 학교에 부임한다. 화전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산촌, 학교는 교육의 사각지대였고, 아이들은 배움보다 생존이 더 급한 현실에 놓여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로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청춘의 시간을 교실에 온전히 바친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도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이 책은 한 교사의 삶을 통해 한 시대의 고단한 풍경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소박하면서도 생생하게 풀어낸다.
설날을 앞두고 어머니가 손수 만드시던 다식,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와 빈대떡, 바구니 가득 담긴 대추와 밤, 감나무 아래에서 떨어질 감을 기다리던 풍경들.
이 모든 기억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힘들었지만 품이 있었던 삶.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자,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본질이다.
이야기는 점차 개인의 기억을 넘어, 민족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우리는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족이다. 오랜 세월 고난 속에 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가시떨기 같은 백성’이라 말하듯, 우리 또한 시련 속에서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역사학자들은 우리를 ‘동방의 이스라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말에 생생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단지 문장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때로 가장 귀한 것을 만들어낸다.
병든 고래의 기름으로 향수가 만들어지고, 병든 소의 우황으로 명약이 만들어지듯이.
로키산맥의 바람과 눈보라를 견딘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듯, 시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존재만이 세상을 울릴 수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바로 그런 울림을 품고 있다.
김기수는 이름 없는 교사였지만, 그가 남긴 울림은 작지 않다.
그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었고, 가난이라는 벽을 넘게 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한 줄기 등불처럼, 아이들의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우리는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결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또 다른 빛이 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옛날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앞날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잊지 않아야 앞으로의 길도 흔들리지 않는다.
표지에 피어난 아몬드 꽃처럼,
우리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
그 믿음이, 그 부활의 메시지가 이 책 전반에 잔잔히 흐르고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삶이 고단할수록, 기억은 더 빛난다.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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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클북'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물론, 배고픈 아이들에게 책을 쥐서 그들의 허기를 전부 채워줄 순 없지요.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용기를 줄 수는 있어요. 겨울에 얼어붙은 개울물 밑에서도 붕어들이 헤엄치고, 눈 덮인 엄동설한 밭고랑 속에서도 밀과 보리는 뿌리를 내리며 자라잖아요. 헐벗은 가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 아니겠어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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