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 - 철학의 문을 여는 생각의 단어들
이충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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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세계는 워낙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다 이충녕의 『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을 만나게 됐다. 이 책은 처음 철학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모든 개념을 다 다루려 하기보다는 일단 중요한 지점들을 콕 짚어주는 방식으로 길을 안내한다. 저자도 이 점을 명확히 밝힌다. 철학이란 분야는 워낙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개념들과 사유의 집합체라, 그 모든 역사를 한 권의 책에서 다룬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그는 각 철학 개념을 한 명의 철학자와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철학 지도’를 그리는 방식이다. 저자는 철학자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그 시대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을 다룬 철학자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덕분에 독자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철학 개념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밀레토스학파,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주의, 피론주의,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홉스,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니체, 벤담, 밀, 호르크하이머, 사르트르, 레비나스, 비트겐슈타인, 후설, 제임스, 버틀러, 그리고 가브리엘까지. 총 30명 이상의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전혀 버겁지 않다. 각 인물의 핵심 사유만을 뽑아내어 우리 삶과 연결지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챕터는 ‘고백하는 철학 –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고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간의 본질을 ‘지성’에서 찾았던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혀 다른 지점을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주의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심에 둔 전통적 주지주의와는 반대되는 관점이다.


책에서 설명한 예시가 인상 깊었다. 도둑질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 때, 그걸 단순히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고민이 생기진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나쁜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혹은 ‘도덕적 규칙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갈등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런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의지가 인간 내면에서 갈등을 만든다고 보았다. 이건 생각해보면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머리로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해서 행동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으니까. 결국 인간의 행동은 의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더 흥미로웠던 건, 아우구스티누스가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처음엔 이 문장이 낯설고 심지어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의미가 조금씩 다가왔다. 어떤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때로는 먼저 그것을 ‘믿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믿음은 의지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오히려 믿음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결국 그의 말은, “믿음이라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진정한 이해로 갈 수 있다”는 철학적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종교적 믿음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자세, 요즘 말로 하자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태도도 결국 이런 주의주의 철학에서 기원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믿고자 하는 마음, 해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진짜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 책은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그런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철학자들의 말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유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데 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트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방식. 덕분에 나는 철학을 ‘읽는 것’에서 ‘사유하는 것’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의지야말로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확하다.


“철학은 삶을 고상하게 꾸며주는 장식이 아니라, 삶을 더 선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철학의 세계를 이 책은 무겁지 않게, 그러나 깊이 있게 안내해준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사고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정말 좋은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철학을 잘 알지 않아도, 철학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들이 이 안에는 분명히 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철학의 시작
서양철학의 역사는 의외로 튀르키예에서 시작됐습니다.
흔히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그리스가 본고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그리스 문화권은 지금의 그리스 땅보다 훨씬 넓었거든요. 철학의 역사는 현재 기준으로 튀르키예이면서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에 속했던 지방에서 시작됐습니다. 바로 밀레토스라는 도시에서죠.
그곳에서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Thales가 활동했습니다.
탈레스는 기원전 626~623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추정합니다. 그를 중심으로 밀레토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무리를 가르켜 ‘밀레토스학파’라고 부르죠.
탈레스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일식을 예측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림자를 활용해 이집트기자Giza의 피라미드 높이를 쟀다고도 전합니다. 또한 올리브 풍년을 예측하고 미리 투자해 부자가 됐다고도 알려져 있죠.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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