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연수 옮김, 안지희 감수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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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고전 비극의 결정판이다. 이 작품은 단지 연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로마와 이집트라는 거대한 문명이 사랑과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휘청이는지를 보여준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이 두 인물은 역사적 상징이자 감정의 끝을 보여주는 인간으로 무대 위에 선다. 셰익스피어는 이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감정에 취약하며, 또 그 감정이 얼마나 쉽게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1막. 나의 망각은 그대의 것

이야기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에서 시작된다.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전장의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클레오파트라의 환락과 매혹에 빠져 로마의 소식을 외면하고 있다. 필로는 그런 안토니우스를 보며 “장군의 심장은 집시 여인의 욕망을 식히는 부채가 되었다”고 비꼬고, 데메트리우스는 “장군이 변했다”며 안타까워한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에 빠졌지만, 로마에서 전해진 소식은 그를 불편하게 한다. 카이사르의 명령, 풀비아 부인의 사망 소식, 폼페이우스의 반란 소식이 그를 로마로 다시 부른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런 안토니우스를 비난하고 애원하고 조롱하지만, 결국 그는 로마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안토니우스는 “사랑으로 충만한 내 마음은 그대 곁에 남기고 가오”라고 말하지만, 이별을 앞둔 사랑은 이미 균열을 예고한다.


2막. 환상 속 베누스와 같은 그대여

안토니우스는 로마로 돌아가 카이사르와의 정치적 화합을 위해 그의 누이 옥타비아와 정략결혼을 한다. 이 결혼은 겉으로는 평화를 위한 동맹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균열이 있다. 에노바르부스와 메나스는 이 동맹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예견한다. 안토니우스는 결국 다시 클레오파트라에게로 돌아갈 것이고, 옥타비아의 상처는 카이사르의 분노로 이어질 것이라는 대화가 인상 깊게 이어진다. 모두가 술잔을 부딪치며 화해를 연출하지만, 그 밑에는 정치적 불신과 감정적 배신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3막. 사랑이 영혼을 끌어당기다

안토니우스는 다시 클레오파트라의 곁으로 돌아간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맞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옥타비아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는 옥타비아의 키, 목소리, 걸음걸이, 위엄, 나이까지 하나하나 묻는다. 그녀보다 옥타비아가 나은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은 클레오파트라의 자존심과 불안이 뒤엉킨 감정의 결정체다. 사랑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약하게도 만든다.

안토니우스는 결국 옥타비아에게 카이사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신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과 자존심에 사로잡혀 제국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정을 내린다. 이 결단은 치명적인 선택이 되며, 그를 더욱 고립시킨다. 에노바르부스는 이런 안토니우스를 지켜보며 속으로 말한다. “장군의 머리가 차츰 쇠약해지니, 심장으로 채우나 보다. 용기가 이성을 잡아먹으면 싸움에서 휘두르는 칼도 녹슬게 되는 법이다.” 그는 더는 안토니우스를 따라갈 수 없음을 느끼며, 장군을 떠날 길을 고민하게 된다.


4막. 용서를 빌기 위한 눈물로 운명을 빛내리

카이사르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에노바르부스는 결국 안토니우스를 배반하고 카이사르 진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오히려 그에게 황금을 보내며 배신에도 불구하고 충의를 잊지 않는다. 이 너그러움은 에노바르부스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패색이 짙어진 안토니우스는 결국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격분한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달래기 위해 자결을 위장하고,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우스는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에 빠져 자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디오메데스를 통해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마지막 힘을 내어 그녀 곁으로 향한다.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안토니우스는 그 짧은 재회의 순간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5막. 태양과 달이 땅에 빛을 뿌리리

안토니우스의 죽음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속마음을 꿰뚫는다. 그녀는 자신이 로마의 전리품처럼 전시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한다. 광대를 시켜 독이 있는 뱀을 가져오게 하고, 그 뱀에게 물려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녀는 “죽음은 내게 가장 품격 있는 도피처”라 말하며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충직한 시종들 또한 여왕을 따라 독사에 물려 함께 생을 마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깊은 충격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안토니우스 곁에 묻도록 명령하며, 그들의 사랑과 죽음이 단순한 비극을 넘어 위대한 감정의 승리였음을 인정한다. “이 비참한 사건은 그 사건을 일으킨 자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장례가 성대하게 치러지도록 지시한다. 이 사랑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모든 제국의 역사보다 진하게 남는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단 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위대하게 만든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권력과 명예, 그리고 생명까지 모두 잃는다. 클레오파트라는 그 뒤를 따르듯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이들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무덤은 패배자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의 절정으로 남는다. 비극은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의 깊이와 선택의 결단이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더욱 강하게 비춘다.


이 책을 연애극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조각하고,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이야기한다. 안토니우스는 사랑 앞에 무너지지만, 그 무너짐은 치욕이 아닌 자기 존재를 걸고 감정을 증명한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퇴장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인 여왕을 넘어,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하는 위엄 있는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인물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저 유혹의 여인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사랑과 존엄을 지켜낸 여왕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의 밀도가 짙어지고,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고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감정의 서사이자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강렬한 이야기다.


'히스토리퀸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클레오파트라. 난 이젠 여왕도 아니고, 바랄 것 없이 소젖을 짜고, 노동하는 농사꾼이나 매한가지다. 내가 아직 여왕이라면 난 이 농락하는 신들에게 내 왕관을 집어 던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게 다 허무하구나. 인내는 어리석은 바보짓이고 화를 내는 건 미친개의 발작이야. 그렇다면 죽음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음의 비밀을 알아본다고 그게 죄가 된다고? 자, 카르미안, 그리고 시종들아, 우리의 등불이 다 꺼져버렸다. 우선 매장을 하고, 그 다음 훌륭하고 숭고한 로마 방식에 따라 장례하여 죽음의 신이 우리를 데려가게 하자. 저리 가. 위대한 영혼을 감은 그릇이 식었구나. 아, 얘들아, 우리에게 이젠 결심으로 빠르게 최후를 맞이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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