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의 문장들 -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
박산호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평점 :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멋진 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니었다. 읽다 보니, 이건 삶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고, 때로는 부서지기도 했던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일기 같았다. 문장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천천히 되새긴 기록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어른이라는 말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기대가 얼마나 많은 착각일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고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라고 쓴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에게서 어른다움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어른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줄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저자는 ‘어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본문 초반, 저자는 우리가 자주 묻는 질문—‘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인생은 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시점은 우리가 유한한 자원을 어떤 선택에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선택의 기준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성장의 한계’를 냉정히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나만의 집중이다. 평범한 인생의 진짜 승부는 ‘선택 이후의 집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다양한 문학과 철학, 예술 속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정일의 칼럼을 인용하며 출판사에서 신인 작가들의 책을 보내 주겠다는 말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라 남은 시간동안 고전을 읽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 역시 무의미한 소비성 독서를 줄이고 좋은 책은 재독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40세가 넘은 사람은 나쁜 책을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롤프 도벨리의 문장을 되새기며 저자는 책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이 원칙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히사이시 조의 말도 인상 깊다. 그는 “경험은 가능성을 좁히기도 한다”고 말하며 쓸모없는 고생을 강요하는 어른들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지점을 짚으며 경험이 풍부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강요될 때 더욱 위험하다고 단언한다.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세계를 닫히게도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양면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가장 가슴을 울리는 대목은 아마도 『자기 앞의 생』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라는 모모의 질문에 “그렇단다”라고 답하는 하밀 할아버지, 그리고 그 말 뒤에 오는 눈물.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살아낼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이며 그것이 꼭 피를 나눈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또한, 이 책은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말한다. “실수가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는 할머니의 말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말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도 변명이 아닌 행동과 책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금 당장 행복하자.”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을 인용한 이 대목은 우리가 왜 ‘행복’을 자꾸 미래로 미루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저자는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감정의 쌓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의 문장들』은 나이만 먹었을 뿐 삶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어른이라는 단어가 더는 부담스럽거나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어른이란 결국 망가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또 건네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문장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을 아주 따뜻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건넨다.
ㅡ
'샘터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란 생각도 하게 됐다. - P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