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곧게 세운 자, 운명조차 그대를 따르리라 - 율곡 이이·신사임당 편 세계철학전집 5
이이.신사임당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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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건, 율곡 이이가 배운 지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한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배움을 이론으로 쌓기보다 그것을 삶을 바르게 하는 도구로 여겼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과 결심이 함께 담겨 있다. 추상적인 철학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마음을 곧게 세우는 일이다. 그는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늘 경쟁과 비교 속에서 불안에 시달리고, 편리함과 욕망에 쉽게 끌려 다닌다. 그런 시대에 율곡의 말은 “자신을 바로 세우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로 다가온다.

책의 초반부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삶과 교육에서 출발한다. 신사임당은 흔히 ‘현모양처’로 불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단순한 이상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냈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과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완벽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려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주변의 도움을 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오늘날 완벽하려다 지쳐버리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큰 위로가 된다. 결국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자기 삶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한 신사임당은 ‘순종’을 복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순종은 더 큰 가치를 위해 작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남편이 집을 비워도 원망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억지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했다. 신사임당에게 순종과 자기주도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한 줄기의 일관된 태도였다. 언제 물러서야 하고 언제 나서야 하는지를 아는 분별력, 그것이 그녀의 진짜 힘이었다.

그녀의 교육 방식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신사임당은 자녀를 훈육으로 몰아세우기보다 아이의 성향과 흥미를 세심히 관찰하며 지도했다. 아이가 ‘소학’을 재미있게 읽으면 더 깊게 가르치고, 흥미가 떨어지면 잠시 멈추었다. 억지로 시키지 않고 스스로 배우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아이가 잘못하면 타일러 바로잡되, 감정적으로 꾸짖지 않았다.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성급히 말하지 않고, 반드시 이치로 깨우쳐 주었다”는 구절이 바로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교육은 율곡이 자기주도적으로 배우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그는 감시가 없어도 스스로 공부했고, 생각을 깊이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질문하는 교육법이었다. 신사임당은 율곡이 글을 읽다 막히면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고 “이 글의 뜻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외우는 걸 확인하기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려 한 것이다. 그래서 율곡은 생각하는 힘,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어라. 질문하는 힘이 곧 살아가는 힘이 된다.” 이 말은 학생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적용된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선택이 정말 나를 위한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줄 알 때, 비로소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신사임당은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직접 공경했고, 겸손하라 말하기보다 겸손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마 이런 일치일 것이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 정보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본보기. 신사임당의 태도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이후 책은 율곡 이이의 대표 저서 세 권—『성학집요』, 『격몽요결』, 『동호문답』—을 통해 그의 사상과 실천 철학을 보여준다. 『성학집요』는 임금에게 바친 학문의 요약서이지만, 그 본질은 누구에게나 통한다. 율곡은 “먼저 자신을 닦은 뒤에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즉,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조화를 강조했다.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삶으로 옮기면,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공동체의 신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격몽요결』은 공부의 바탕이 되는 생활 습관을 다루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읽는 것,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는 것, 예의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는 공부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정한 몸가짐과 꾸준한 독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태도가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

『동호문답』은 정치와 인간관계를 이야기하지만, 본질은 “공정함”이다. 그는 사회를 이루는 기본은 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문제는 단호히 구분하되, 단순히 의견이 다른 문제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관점 차이일 때가 많다는 점을 일깨운다.

책을 덮고 나면, 세 가지 메시지가 선명히 남는다.

첫째, 마음을 세우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둘째,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셋째, 배움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삶을 바르게 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이근오가 엮은 『마음을 곧게 세운 자, 운명조차 그대를 따르리라』는 단순한 고전 요약서가 아니다.

신사임당의 따뜻한 교육과 율곡의 실천적 철학이 함께 흐르며,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꾸준히 바로 서려는 마음,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운명은 결국 그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질문은 바쁜 사회에서 우리를 잠깐 멈추게 하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를 만들어 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예컨대, 삶의 가치는 얼마나 더 많은 답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답은 항상 옳기만 한 게 아니다. 옳은 답일지라도 때에 따라 극단적인 결론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답은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상황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적용한다면 작은 실수에도 극단적인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오히려 "이 잘못을 어떻게 하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온다. 이처럼 정해진 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언제나 답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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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의 눈으로 다시 배우는 티처조의 영어식 사고 수업 - 생각이 영어가 되는 2단계 사고 학습법
조찬웅(티처조).Coleen Dwyer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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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다시 배운다는 것은, 단어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해왔지만 정작 입을 열면 말이 느리고 어색하다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단어를 알고 문장을 외워도 막상 실전에서는 입이 굳는 이유는 단순하다.
영어가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여전히 한국어 중심으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티처조의 영어식 사고 수업》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에서 다룬다. 영어가 안 되는 이유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재능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고 시스템의 문제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기존 영어책과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영어 실력은 지식이 아니라 뇌의 동작 방식에 달려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영어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한국어로 해석하고, 말을 할 때도 먼저 한국어를 떠올린 뒤 영어로 번역한다. 이 두 단계를 거치는 사고 구조를 유지하는 한, 아무리 공부해도 속도는 절대 빨라질 수 없다. 따라서 해결책은 더 열심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번역기를 통째로 끄는 것”이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고 전환이 반드시 영어권 국가에 살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아침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작하고, 업무 시간에는 영어 이메일과 뉴스를 다루며, 일상 속 대부분을 영어에 노출시키는 루틴을 보여준다. 그는 묻는다.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영어권에 살고 있을까?” 물리적으로는 한국이지만, 언어적으로는 이미 영어권에 가깝다.
영어식 사고는 장소가 아니라 환경 설계의 문제라는 메시지는 특히 인상 깊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영어를 추상적인 감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고 단위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존 교재에서 popular를 ‘인기 있는’으로 외웠다면, 이 책에서는 be liked by many people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라고 안내한다. as soon as 역시 ‘~하자마자’가 아니라 almost at the same time이라는 감각으로 저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단어를 이해하면 암기가 아니라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실전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영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식 사고가 자리 잡히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고, 표현은 더 이상 한국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다. 단어를 더 많이 외워서 실력이 는다기보다는, 언어를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면서 반응 속도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티처조의 영어식 사고 수업》은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뻔한 동기부여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렇게 외워도 입이 안 열렸던 수많은 학습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영어를 못했던 게 아니라, 방식이 잘못됐던 것뿐입니다.
지금부터는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로 생각하세요.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영어를 못해서 답답했던 사람보다, 이제는 영어로 말하는 사람답게 사고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영어 공부법이 아니라 뇌의 언어를 교체하는 과정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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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허기
정능소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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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먼저]
간만에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났다.
이전에 ‘이제야‘ 시인님 시를 접하고 나서 이제 시도 가까워져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만난 시집 또한, 시 한 편으로도 깊은 사유를 하게 하는 매력 있는 시집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이다.

[본문 리뷰]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치고도, 이상하게도 다시 손을 내민다. 어떤 날은 사소한 한마디에 금세 가라앉고, 또 어떤 날은 더 확실히 사랑받고 싶어 애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오래 가는 약속을 꿈꾼다. 정능소의 『관계의 허기』는 이런 마음을 딱딱한 설명 대신, 밤·달·바람·물 같은 풍경으로 조용히 어루만진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장면이 먼저 펼쳐지고, 이성으로 따지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첫 시부터 인상적이다. ‘구름 의자’를 통해 고흐를 만나는 밤이었다.
느릅나무 아래, 칠이 벗겨진 의자에 고흐를 앉히고 담배 한 개비를 내어주며 건네는 질문.

“허망한 꿈을 몇 번이나 꾸셨냐고, 꿈 깨어 목 칼칼한 갈증은 어떻게 꾸셨냐고,
화폭에 별을 뿌렸던 고흐, 영혼과 맞바꾼 별 중에 하나라도 가질 수 있었던가”

이 대목에서 ‘별’은 화려한 상징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마음의 비유로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에서든 일에서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함을 원한다. 변하지 않는 애정, 모두가 인정할 만한 성취, 한 번 손에 넣으면 두 번 다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보증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가 말하는 ‘별’은 바로 그런 확실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별의 속성에 있다.
별은 멀리 있을 때 가장 밝고, 거리를 둔 채 바라볼 때 비로소 빛난다.
그 빛을 손에 쥐려는 순간(상대를 통째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순간) 별은 사라진다.
붙잡음은 빛나는 평온이 아니라, 서로를 질식시키는 그림자를 낳는다.
‘너와 나, 바람에 쉬이 흩어지는 구름일지니’라는 말은 관계라는 것은 원래 바람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처럼 변하고 흔들리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흐름을 허용하고 바라보기를 권한다.
서로를 조종하려 들면 금세 답답해지고, 변화를 전제로 곁을 지키면 관계는 오히려 오래 가게 된다.
이게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소유 대신 인정으로 허기를 줄이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화자는 고흐를 불러 냈을까. 그는 생전에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한 인물이다.
살아 생전 ‘안나 보흐‘라는 인물이 ‘붉은 포도밭’ 한 점을 사간 것이 생전 판매 된 유일한 유화 그림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삶은 아를에서의 귀 자해와 병원·요양원 생활로 대표되는 고독과 불안의 이미지가 짙은 인물이다. 그래서 시는 ‘영혼과 맞바꾼 별’의 뜻을 묻기 위해 그를 대표적으로 불러낸 것이 아닐까싶다.
그는 끝내 붙잡으려 했던 빛과 그 대가로 치른 상처를 함께 지닌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묻고 싶었던 별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이 시에서의 별은 ‘결국 변치 않는 사랑,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 한 번 쥐면 불안이 사라질 보증 같은 것‘을 가리킨다. 고흐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과 같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갈아 넣어 붙잡으려 한 그것은, 정말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답은 시의 마지막에 스며 있다. 별은 가까이 움켜쥐는 순간 사라진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고, 관계가 오래 가는 이유도 간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혼과 맞바꾼 별”의 진짜 뜻은, 소유하려는 순간 사라지는 확실함의 환상이며,
우리가 할 일은 붙잡기가 아니라 간격을 둔 바라봄—별은 하늘에 두고 빛만 가슴에 품는 태도임을 말한다.
여기서 화자의 목소리는 고흐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가르친다.
당신(고흐)은 별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 별을 보는 눈을 우리에게 남겼다. ㅡ 생전에 칭송받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해도, 그 밤을 건너며 그가 붙잡은 빛은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와닿았다.
(실제로 고흐는 병원과 요양원에 머무르며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을 남겼고, 그 밤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밤도 비추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시에서의 고흐는 실패한 화가의 상징이 아니라 ‘소유 대신 바라봄’을 가르쳐 준 스승에 가깝다. 별을 쥐지 못했기에, 대신 별을 보는 법을 남긴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평생 찾아 헤맨 그 별은 사실 거리와 함께 있을 때만 빛난다.
그러니 붙잡지 못한 것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그 밤을 건너며 버틴 당신의 눈이 지금의 우리를 살린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 외로웠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시는 〈집들이 초대장〉이다.
“우리, 영원히 서먹해야 할 사이는 아니잖소 부딪힌 칼날에 튄 불똥에 데인 날은 있었지만
그대와 나, 칼날이 무디어졌을 지금쯤은 얼굴 한 번 봅시다”라는 말은, 날 서 있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서로를 다치게 하던 말과 감정의 칼끝이 둔해졌으니 먼저 문을 열어 보자는 화해다. 이어지는 “강물은 기다리지 않고 구름은 머물러 있지 않을 테니”는 시간과 감정이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관계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흐른다.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면, 다시 만날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핵심은 누가 먼저 사과하느냐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결이 달랐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겠소”라는 제안은, 옳고 그름을 끝까지 가려 같은 결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서로 다른 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차이 위에 다시 만남을 이어 보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논쟁과 해명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우선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관계 회복의 골든타임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상처의 서사가 길어지기 전에, “이제는 날이 무뎌졌으니 한번 얼굴을 봅시다”라고 초대하는 쪽이 먼저 관계의 회복을 열 수 있다는 메시지다.

다음 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별아 내 가슴에>라는 시다.
“겨울바람에 굴려진 조약돌처럼 별빛이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별빛, 수천 년 혹은 몇백 년 전에 출발한 빛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고 하니
등골 서늘하게 와닿는 경이로움이여,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
사람들은 가슴에다 별들을 쓸어 담으며 무정한 세상살이에 위로받지 않았던가
무수히 반짝이는 별 무리,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는 바람에 저렇게 무한정으로 늘어났나 보다
나는 왜, 별 무리를 담글 가슴에다 구린내 풍기는 온갖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
좁쌀아, 좁쌀아,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니”

이 시 구절을 보면,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다. 별은 소유가 아니라 가슴에 품는 것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별을, 그러니까 완벽한 사랑과 확실한 인정 같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더 가까이, 더 오래, 더 확실하게. 그런데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다. 별은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별은 하늘에 두고, 가슴에 그 빛을 품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다. 멀리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고, 멀리 있기 때문에 넓게 오래 비춘다. 관계도 그럴지 모른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바라보고 돌보며, 각자의 간격을 인정하는 것이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아서 하늘의 별이 늘었다”는 시인의 상상은 아름답다. 마음속에서 키운 선한 마음, 다정한 말, 한 번 참은 성급함, 한 번 더 내민 손… 그런 것들이 죽고 나서도 빛이 되어 남는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시에서 말한 ‘가슴에 키운 별들‘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요즘 무엇을 키우고 있나? 가슴 속에서는 어떤 것이 자라나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러다 이어지는 한 줄에서는 뜨끔하기도 했다.
“나는 왜, 별을 담글 가슴에 구린내 나는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에서다.
나는 종종 질투, 억울함, 쓸데없는 비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걱정 같은 것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아무리 예쁜 풍경을 봐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허기는 더 심해지고, 속은 더 답답해졌다.
마음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담을지는 스스로 고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시인의 “좁쌀아, 좁쌀아”라는 자기호명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듯 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말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마지막 권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큰 기쁨에 너무 들뜨지 말고, 큰 슬픔에도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나갈 일을 지나가게 두는 연습. 붙잡을 건 책임이고 내려놓을 건 집착이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작은 실천을 한번 적어 본다.
첫째, 마음이 복잡할 때 하늘을 한 번 본다. 별이 보이든 안 보이든 고개를 드는 동작 자체가 숨을 바꾼다. 둘째, 확인이 필요할 때는 사람을 붙잡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묻는다.
“지금 내가 불안해서 확인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필요한 질문일까?”
셋째,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가슴에 담긴 “잡것” 하나를 이름 붙여서 내보낸다.
며칠 전에 읽은 ‘브레인 덤핑’에서 실행 했던 것처럼,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 이르면 질투, 억울함, 비교, 조급함 같은 것에 총체적으로 “잡것”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가슴 속에서 내보낸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나를 옥죄고 힘들게 하던 것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잡것”을 내보낸 자리에 오늘 본 작은 빛 하나를 채워보자. 고마웠던 말 한 줄, 누군가의 웃음, 스스로 한 작은 수고와 같은 것들로.

별은 결국 소유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오래 빛난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너를 가질 수 없지만, 너의 빛을 배울 수는 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키운 그 빛이 언젠가 누구에게 작은 별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관계의 허기』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거야라는 오래된 기대를 내려놓게 한다.
사람을 바꾸는 대신 나의 허기를 알아차리고, 차이를 인정하고, 슬픔을 제대로 보내고, 내 선(경계)을 제대로 세우고, 충분함을 배우는 일이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
별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밤하늘은 더 깊어진다.
이 책은 위로를 약속하기보다 매일 해볼 작은 연습을 권한다.
그 작은 변화가 내일의 관계를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시집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분명하다.
관계에서 자주 지치고, 비슷한 자리에서 반복해 넘어지는 사람.
화해와 단념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다.

『관계의 허기』는 정답집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다.
그 풍경을 지나며 우리는 자기 속도를 회복하고, 그 속도로 타인에게 다가서는 법을 다시 배운다.
허기는 남겠지만, 더 이상 우리를 마음대로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사랑은 소유의 별빛이 아니라 함께 걷는 달빛으로 곁을 비춘다.


'메이킹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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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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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1장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강력하여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면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을 따져 묻는 윤리 소설이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인어 기름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서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가족을 살리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는 긴 설명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 해보게 해준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흘러간다. 1902년 강원도 통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덕무와 딸 영실이, 막내 아들 영득이가 있다. 그리고 훨씬 이전 시대에 바다의 비밀을 마주친 소년.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듯 연결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탐욕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픈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내 금단의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훨씬 이전 시대의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존재를 지켜 주려다, 그 선택 탓에 마을의 공포와 욕망의 표적이 되어 그 반발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렇게 두 시간의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선의가 욕망으로, 연민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두 서사가 한 결로 모여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초반의 몇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얀 찔레꽃 언덕에 어머니를 묻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땅속에 묻힌 엄마를 보며 서럽게 울던 영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어머이는 왜 나무를 좋아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살리기 위해 내민 손이, 어느 순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손이 되지 않으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공 영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며 바다를 함부로 대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의 벌’ 같은 일이 닥치자, 어부들 사이에서는 그럴 만했다는 말이 돈다. 공 영감이 강치로 이익을 취하던 모습은 현실의 역사와도 겹친다. 동해의 강치(독도강치)는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 오키 제도 어민들의 대량 남획과 가죽·기름 채취로 급격히 줄었고, 결국 20세기 중반 멸종했다. 소설은 이 사실을 일본이 강치를 끔찍하게 대량 학살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시대의 무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적인 인물도 때로 주저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선택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선이 세계를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낼 존재’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시선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느꼈다. 책은 내내 두 마음을 비교하게 한다. 하나는 ‘살리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살아 있게 두려는 사랑’. 작가는 이 차이를 몇몇 장면으로 차분히 보여 주며, 끝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욕망·자연·인간을 한자리에서 묻는다. 상업 판타지에서의 흔한 회귀·환생 같은 도식은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설화의 결과 실제 역사·생태의 그늘을 차근차근 쌓아 미지의 생명을 불러낸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과한 자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침묵과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욕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타자와 공존한다는 건 무엇인가. 내 선택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배우 출신 작가라는 선입견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읽는 동안 독도 강치 멸종이나 바다 생태 파괴 같은 현실이 슬며시 겹쳐지지만, 작가는 설명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몇 개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줘 독자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이 소설은 생명의 가치를 되묻게 하고, 욕망이 어떻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인어 사냥』은 오래된 신화로 오늘의 윤리를 다시 묻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소유의 힘이 아니라 멈춤과 놓아줌의 태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절제를, 소설은 마지막까지 기억하게 한다.


'해결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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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1장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강력하여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면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을 따져 묻는 윤리 소설이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인어 기름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서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가족을 살리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는 긴 설명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 해보게 해준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흘러간다. 1902년 강원도 통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덕무와 딸 영실이, 막내 아들 영득이가 있다. 그리고 훨씬 이전 시대에 바다의 비밀을 마주친 소년.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듯 연결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탐욕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픈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내 금단의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훨씬 이전 시대의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존재를 지켜 주려다, 그 선택 탓에 마을의 공포와 욕망의 표적이 되어 그 반발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렇게 두 시간의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선의가 욕망으로, 연민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두 서사가 한 결로 모여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초반의 몇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얀 찔레꽃 언덕에 어머니를 묻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땅속에 묻힌 엄마를 보며 서럽게 울던 영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어머이는 왜 나무를 좋아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살리기 위해 내민 손이, 어느 순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손이 되지 않으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공 영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며 바다를 함부로 대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의 벌’ 같은 일이 닥치자, 어부들 사이에서는 그럴 만했다는 말이 돈다. 공 영감이 강치로 이익을 취하던 모습은 현실의 역사와도 겹친다. 동해의 강치(독도강치)는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 오키 제도 어민들의 대량 남획과 가죽·기름 채취로 급격히 줄었고, 결국 20세기 중반 멸종했다. 소설은 이 사실을 일본이 강치를 끔찍하게 대량 학살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시대의 무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적인 인물도 때로 주저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선택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선이 세계를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낼 존재’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시선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느꼈다. 책은 내내 두 마음을 비교하게 한다. 하나는 ‘살리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살아 있게 두려는 사랑’. 작가는 이 차이를 몇몇 장면으로 차분히 보여 주며, 끝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욕망·자연·인간을 한자리에서 묻는다. 상업 판타지에서의 흔한 회귀·환생 같은 도식은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설화의 결과 실제 역사·생태의 그늘을 차근차근 쌓아 미지의 생명을 불러낸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과한 자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침묵과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욕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타자와 공존한다는 건 무엇인가. 내 선택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배우 출신 작가라는 선입견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읽는 동안 독도 강치 멸종이나 바다 생태 파괴 같은 현실이 슬며시 겹쳐지지만, 작가는 설명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몇 개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줘 독자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이 소설은 생명의 가치를 되묻게 하고, 욕망이 어떻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인어 사냥』은 오래된 신화로 오늘의 윤리를 다시 묻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소유의 힘이 아니라 멈춤과 놓아줌의 태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절제를, 소설은 마지막까지 기억하게 한다.


'해결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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