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곧게 세운 자, 운명조차 그대를 따르리라 - 율곡 이이·신사임당 편 세계철학전집 5
이이.신사임당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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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건, 율곡 이이가 배운 지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한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배움을 이론으로 쌓기보다 그것을 삶을 바르게 하는 도구로 여겼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과 결심이 함께 담겨 있다. 추상적인 철학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마음을 곧게 세우는 일이다. 그는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늘 경쟁과 비교 속에서 불안에 시달리고, 편리함과 욕망에 쉽게 끌려 다닌다. 그런 시대에 율곡의 말은 “자신을 바로 세우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로 다가온다.

책의 초반부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삶과 교육에서 출발한다. 신사임당은 흔히 ‘현모양처’로 불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단순한 이상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냈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과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완벽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려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주변의 도움을 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오늘날 완벽하려다 지쳐버리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큰 위로가 된다. 결국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자기 삶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한 신사임당은 ‘순종’을 복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순종은 더 큰 가치를 위해 작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남편이 집을 비워도 원망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억지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했다. 신사임당에게 순종과 자기주도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한 줄기의 일관된 태도였다. 언제 물러서야 하고 언제 나서야 하는지를 아는 분별력, 그것이 그녀의 진짜 힘이었다.

그녀의 교육 방식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신사임당은 자녀를 훈육으로 몰아세우기보다 아이의 성향과 흥미를 세심히 관찰하며 지도했다. 아이가 ‘소학’을 재미있게 읽으면 더 깊게 가르치고, 흥미가 떨어지면 잠시 멈추었다. 억지로 시키지 않고 스스로 배우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아이가 잘못하면 타일러 바로잡되, 감정적으로 꾸짖지 않았다.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성급히 말하지 않고, 반드시 이치로 깨우쳐 주었다”는 구절이 바로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교육은 율곡이 자기주도적으로 배우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그는 감시가 없어도 스스로 공부했고, 생각을 깊이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질문하는 교육법이었다. 신사임당은 율곡이 글을 읽다 막히면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고 “이 글의 뜻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외우는 걸 확인하기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려 한 것이다. 그래서 율곡은 생각하는 힘,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어라. 질문하는 힘이 곧 살아가는 힘이 된다.” 이 말은 학생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적용된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선택이 정말 나를 위한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줄 알 때, 비로소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신사임당은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직접 공경했고, 겸손하라 말하기보다 겸손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마 이런 일치일 것이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 정보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본보기. 신사임당의 태도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이후 책은 율곡 이이의 대표 저서 세 권—『성학집요』, 『격몽요결』, 『동호문답』—을 통해 그의 사상과 실천 철학을 보여준다. 『성학집요』는 임금에게 바친 학문의 요약서이지만, 그 본질은 누구에게나 통한다. 율곡은 “먼저 자신을 닦은 뒤에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즉,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조화를 강조했다.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삶으로 옮기면,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공동체의 신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격몽요결』은 공부의 바탕이 되는 생활 습관을 다루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읽는 것,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는 것, 예의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는 공부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정한 몸가짐과 꾸준한 독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태도가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

『동호문답』은 정치와 인간관계를 이야기하지만, 본질은 “공정함”이다. 그는 사회를 이루는 기본은 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문제는 단호히 구분하되, 단순히 의견이 다른 문제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관점 차이일 때가 많다는 점을 일깨운다.

책을 덮고 나면, 세 가지 메시지가 선명히 남는다.

첫째, 마음을 세우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둘째,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셋째, 배움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삶을 바르게 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이근오가 엮은 『마음을 곧게 세운 자, 운명조차 그대를 따르리라』는 단순한 고전 요약서가 아니다.

신사임당의 따뜻한 교육과 율곡의 실천적 철학이 함께 흐르며,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꾸준히 바로 서려는 마음,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운명은 결국 그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질문은 바쁜 사회에서 우리를 잠깐 멈추게 하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를 만들어 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예컨대, 삶의 가치는 얼마나 더 많은 답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답은 항상 옳기만 한 게 아니다. 옳은 답일지라도 때에 따라 극단적인 결론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답은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상황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적용한다면 작은 실수에도 극단적인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오히려 "이 잘못을 어떻게 하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온다. 이처럼 정해진 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언제나 답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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