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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허기
정능소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짧은 평 먼저]
간만에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났다.
이전에 ‘이제야‘ 시인님 시를 접하고 나서 이제 시도 가까워져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만난 시집 또한, 시 한 편으로도 깊은 사유를 하게 하는 매력 있는 시집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이다.
[본문 리뷰]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치고도, 이상하게도 다시 손을 내민다. 어떤 날은 사소한 한마디에 금세 가라앉고, 또 어떤 날은 더 확실히 사랑받고 싶어 애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오래 가는 약속을 꿈꾼다. 정능소의 『관계의 허기』는 이런 마음을 딱딱한 설명 대신, 밤·달·바람·물 같은 풍경으로 조용히 어루만진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장면이 먼저 펼쳐지고, 이성으로 따지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첫 시부터 인상적이다. ‘구름 의자’를 통해 고흐를 만나는 밤이었다.
느릅나무 아래, 칠이 벗겨진 의자에 고흐를 앉히고 담배 한 개비를 내어주며 건네는 질문.
“허망한 꿈을 몇 번이나 꾸셨냐고, 꿈 깨어 목 칼칼한 갈증은 어떻게 꾸셨냐고,
화폭에 별을 뿌렸던 고흐, 영혼과 맞바꾼 별 중에 하나라도 가질 수 있었던가”
이 대목에서 ‘별’은 화려한 상징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마음의 비유로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에서든 일에서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함을 원한다. 변하지 않는 애정, 모두가 인정할 만한 성취, 한 번 손에 넣으면 두 번 다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보증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가 말하는 ‘별’은 바로 그런 확실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별의 속성에 있다.
별은 멀리 있을 때 가장 밝고, 거리를 둔 채 바라볼 때 비로소 빛난다.
그 빛을 손에 쥐려는 순간(상대를 통째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순간) 별은 사라진다.
붙잡음은 빛나는 평온이 아니라, 서로를 질식시키는 그림자를 낳는다.
‘너와 나, 바람에 쉬이 흩어지는 구름일지니’라는 말은 관계라는 것은 원래 바람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처럼 변하고 흔들리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흐름을 허용하고 바라보기를 권한다.
서로를 조종하려 들면 금세 답답해지고, 변화를 전제로 곁을 지키면 관계는 오히려 오래 가게 된다.
이게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소유 대신 인정으로 허기를 줄이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화자는 고흐를 불러 냈을까. 그는 생전에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한 인물이다.
살아 생전 ‘안나 보흐‘라는 인물이 ‘붉은 포도밭’ 한 점을 사간 것이 생전 판매 된 유일한 유화 그림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삶은 아를에서의 귀 자해와 병원·요양원 생활로 대표되는 고독과 불안의 이미지가 짙은 인물이다. 그래서 시는 ‘영혼과 맞바꾼 별’의 뜻을 묻기 위해 그를 대표적으로 불러낸 것이 아닐까싶다.
그는 끝내 붙잡으려 했던 빛과 그 대가로 치른 상처를 함께 지닌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묻고 싶었던 별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이 시에서의 별은 ‘결국 변치 않는 사랑,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 한 번 쥐면 불안이 사라질 보증 같은 것‘을 가리킨다. 고흐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과 같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갈아 넣어 붙잡으려 한 그것은, 정말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답은 시의 마지막에 스며 있다. 별은 가까이 움켜쥐는 순간 사라진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고, 관계가 오래 가는 이유도 간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혼과 맞바꾼 별”의 진짜 뜻은, 소유하려는 순간 사라지는 확실함의 환상이며,
우리가 할 일은 붙잡기가 아니라 간격을 둔 바라봄—별은 하늘에 두고 빛만 가슴에 품는 태도임을 말한다.
여기서 화자의 목소리는 고흐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가르친다.
당신(고흐)은 별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 별을 보는 눈을 우리에게 남겼다. ㅡ 생전에 칭송받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해도, 그 밤을 건너며 그가 붙잡은 빛은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와닿았다.
(실제로 고흐는 병원과 요양원에 머무르며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을 남겼고, 그 밤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밤도 비추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시에서의 고흐는 실패한 화가의 상징이 아니라 ‘소유 대신 바라봄’을 가르쳐 준 스승에 가깝다. 별을 쥐지 못했기에, 대신 별을 보는 법을 남긴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평생 찾아 헤맨 그 별은 사실 거리와 함께 있을 때만 빛난다.
그러니 붙잡지 못한 것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그 밤을 건너며 버틴 당신의 눈이 지금의 우리를 살린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 외로웠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시는 〈집들이 초대장〉이다.
“우리, 영원히 서먹해야 할 사이는 아니잖소 부딪힌 칼날에 튄 불똥에 데인 날은 있었지만
그대와 나, 칼날이 무디어졌을 지금쯤은 얼굴 한 번 봅시다”라는 말은, 날 서 있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서로를 다치게 하던 말과 감정의 칼끝이 둔해졌으니 먼저 문을 열어 보자는 화해다. 이어지는 “강물은 기다리지 않고 구름은 머물러 있지 않을 테니”는 시간과 감정이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관계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흐른다.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면, 다시 만날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핵심은 누가 먼저 사과하느냐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결이 달랐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겠소”라는 제안은, 옳고 그름을 끝까지 가려 같은 결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서로 다른 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차이 위에 다시 만남을 이어 보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논쟁과 해명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우선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관계 회복의 골든타임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상처의 서사가 길어지기 전에, “이제는 날이 무뎌졌으니 한번 얼굴을 봅시다”라고 초대하는 쪽이 먼저 관계의 회복을 열 수 있다는 메시지다.
다음 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별아 내 가슴에>라는 시다.
“겨울바람에 굴려진 조약돌처럼 별빛이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별빛, 수천 년 혹은 몇백 년 전에 출발한 빛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고 하니
등골 서늘하게 와닿는 경이로움이여,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
사람들은 가슴에다 별들을 쓸어 담으며 무정한 세상살이에 위로받지 않았던가
무수히 반짝이는 별 무리,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는 바람에 저렇게 무한정으로 늘어났나 보다
나는 왜, 별 무리를 담글 가슴에다 구린내 풍기는 온갖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
좁쌀아, 좁쌀아,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니”
이 시 구절을 보면,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다. 별은 소유가 아니라 가슴에 품는 것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별을, 그러니까 완벽한 사랑과 확실한 인정 같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더 가까이, 더 오래, 더 확실하게. 그런데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다. 별은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별은 하늘에 두고, 가슴에 그 빛을 품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다. 멀리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고, 멀리 있기 때문에 넓게 오래 비춘다. 관계도 그럴지 모른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바라보고 돌보며, 각자의 간격을 인정하는 것이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아서 하늘의 별이 늘었다”는 시인의 상상은 아름답다. 마음속에서 키운 선한 마음, 다정한 말, 한 번 참은 성급함, 한 번 더 내민 손… 그런 것들이 죽고 나서도 빛이 되어 남는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시에서 말한 ‘가슴에 키운 별들‘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요즘 무엇을 키우고 있나? 가슴 속에서는 어떤 것이 자라나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러다 이어지는 한 줄에서는 뜨끔하기도 했다.
“나는 왜, 별을 담글 가슴에 구린내 나는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에서다.
나는 종종 질투, 억울함, 쓸데없는 비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걱정 같은 것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아무리 예쁜 풍경을 봐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허기는 더 심해지고, 속은 더 답답해졌다.
마음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담을지는 스스로 고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시인의 “좁쌀아, 좁쌀아”라는 자기호명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듯 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말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마지막 권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큰 기쁨에 너무 들뜨지 말고, 큰 슬픔에도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나갈 일을 지나가게 두는 연습. 붙잡을 건 책임이고 내려놓을 건 집착이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작은 실천을 한번 적어 본다.
첫째, 마음이 복잡할 때 하늘을 한 번 본다. 별이 보이든 안 보이든 고개를 드는 동작 자체가 숨을 바꾼다. 둘째, 확인이 필요할 때는 사람을 붙잡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묻는다.
“지금 내가 불안해서 확인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필요한 질문일까?”
셋째,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가슴에 담긴 “잡것” 하나를 이름 붙여서 내보낸다.
며칠 전에 읽은 ‘브레인 덤핑’에서 실행 했던 것처럼,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 이르면 질투, 억울함, 비교, 조급함 같은 것에 총체적으로 “잡것”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가슴 속에서 내보낸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나를 옥죄고 힘들게 하던 것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잡것”을 내보낸 자리에 오늘 본 작은 빛 하나를 채워보자. 고마웠던 말 한 줄, 누군가의 웃음, 스스로 한 작은 수고와 같은 것들로.
별은 결국 소유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오래 빛난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너를 가질 수 없지만, 너의 빛을 배울 수는 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키운 그 빛이 언젠가 누구에게 작은 별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관계의 허기』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거야라는 오래된 기대를 내려놓게 한다.
사람을 바꾸는 대신 나의 허기를 알아차리고, 차이를 인정하고, 슬픔을 제대로 보내고, 내 선(경계)을 제대로 세우고, 충분함을 배우는 일이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
별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밤하늘은 더 깊어진다.
이 책은 위로를 약속하기보다 매일 해볼 작은 연습을 권한다.
그 작은 변화가 내일의 관계를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시집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분명하다.
관계에서 자주 지치고, 비슷한 자리에서 반복해 넘어지는 사람.
화해와 단념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다.
『관계의 허기』는 정답집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다.
그 풍경을 지나며 우리는 자기 속도를 회복하고, 그 속도로 타인에게 다가서는 법을 다시 배운다.
허기는 남겠지만, 더 이상 우리를 마음대로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사랑은 소유의 별빛이 아니라 함께 걷는 달빛으로 곁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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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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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